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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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딱히 삶에 회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활동들의 치사함과 아니꼬움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지는 게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고통과 불안과 분노와 고독, 미움과 시기와 질투, 수치를 묵묵히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런 불편한 감정들과 불안한 생각들은 숨이 끊어질 때 까지 계속 되는 걸까?

 

어떤 종교의 신은 인간은 모두 나름의 쓰임이 있어서 태어난다고 한다는데,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대단한 사명은커녕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움직이는 이유조차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살아가는 것이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므로 그냥 저냥 살아는 가는데 말이다, 사는 게 본디 그렇게 치사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은 ‘행복’이라고 부르더라.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는커녕 사명 같은 거창한 것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저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 말이다. 행복.

 

이 행복의 형태는 개인의 경험과 취향과 성품에 따라 실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은, 그래도 가장 단순하고 공통된 형태는 돈이다. 지금의 세상은 돈으로 대다수의 것들이 해결된다. 돈만 있으면 수없이 가질 수 있고, 부릴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너무도 간편하게 이것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이 쉽게 해결 되니 그 돈 이라는 것을 누구나 원하고,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이라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런데, 그 평범한 일상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야 돈이라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더 대단하고 간절하겠는가? 이를테면 아무리 못나고 모자란 사람에게도 가족이나 친구나 애인이 있다. 그들과의 추억이 있고 돌아갈 고향이 있다. 그런데 전혀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 친구, 애인과 고향은 전쟁 중 폭격으로 산산조각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니 좋은 추억이나 기억이 있을 리도 없다. 오직 홀로된 몸땡이 하나와 최소한의 삶을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올 리 없다. 그래서 그녀는 돈이 정말 간절하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래서 그녀가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누리게 해줄 돈 말이다.

 

힐데가르트 마이스너. 34세. 프리랜서 번역가.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외모뿐이다. 그녀는 매주 신문 광고란을 뒤지며 그녀의 행복 없는 인생을 구제해줄 돈 많은 남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의 조건에 딱 걸맞은 공고를 보게 된다. 인생의 반쪽을 찾는 억만장자의 청혼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생일대의 기회가 눈앞에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솔직하게 편지를 쓴다. 억만장자와의 결혼으로 그녀는 이제까지의 구질구질한 삶에 작별을 고하고, 결혼으로 얻게 될 막대한 부로 많은 것을 누릴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행복해 질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속물이다. 한탕주의에 찌들어있고 대단한 몽상가다. 그녀가 그런 사람이 된 데는 그녀의 불행했고, 여전히 불행하고, 앞으로도 불행할 것 같은 삶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줬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행동력이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명확히 알 고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움직인다. 그녀를 욕할 수 있다. 한심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 안의 어느 부분은 그녀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너무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까? 그녀에게 조력자가 나타난다. 억만장자의 신부 찾기 공고에 편지를 보낸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안톤 코르프. 억만장자의 유능한 비서이다. 괴팍한 억만장자를 보필하길 수십 년, 그의 젊은 시절을 온통 그 억만장자에게 바쳤건만 가족이 없는 억만장자의 유서에 안톤 코르프의 몫은 아주 적었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계획을 짰다. 괴팍한 억만장자에게 신부를 만들어 주자. 늙은 억만장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 신부가 생긴다면 억만장자의 재산은 모두 그 신부의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여자가 그 대단한 행운을 거머쥐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자신이 그 여자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여자는 자신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줄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을 말이다.

 

힐데가르트와 안톤의 계획은 빈틈없이 착착 진행되어 간다. 결혼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힐데가르트와 자신의 몫을 분명히 챙기고 싶은 안톤은 좋은 파트너가 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지나친 행운은 불운을 몰고 오는 법이다.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게 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앞일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마치 우리의 이야기 같다. 우리들 또한 앞일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치사스러운 삶이 어디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생의 이유도, 존재의 목적도 모른다. 다만 살아질 뿐이다. 그 방향도 끝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행복’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값싼 행복이라도 손에 쥐어줄 돈을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바라고, 욕망하고, 행운을 기대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절대로 내 마음같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징그럽게 바라고 또 바란다.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일까? 저 한심한 속물일까? 아니면 우리일까? 앞을 모르고 그저 살아가야 하는 모든 것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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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이어트는 운동 1할, 식사 9할
모리 다쿠로 지음, 안혜은 옮김 / 이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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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실내 자전거를 5달 타서 6kg를 뺐다. 살이 빠지는지도 모르게 미미하게나마 조금씩 6kg를 덜어내고 있을 때 음식은 전혀 가리질 않았으니 오로지 운동으로 감량한 셈이다. 운동의 효과를 봤다고 하면 본 사람인데 다이어트에 있어서 운동의 효과를 부정하는 듯한 제목의 책을 보니 이건 뭐지 싶었다. 실상 읽어보니 운동의 효과를 부정하고 있다기보다는 그 효율성에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었다. 더 나아가서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알려진 데로 강력한 식이 조절과 고강도 운동을 지속하는 방법은 여러모로 어려우니 그보다는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더 쉽고 건강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다이어트에 있어서 운동의 저 효율성에 대해서

 

이 책은 다음 두 가지 유형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첫째, 식생활은 그대로 유지하고 운동으로 살을 빼려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평소처럼 먹던 대로 먹고 그만큼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고 생각한다. 평소 운동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면 바로 다이어트 효과가 나올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의 저효율성은 다소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요는 유산소 운동은 분명 체지방이 빠지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당질과 체지방이 같이 빠지는 것이므로 적어도 30분 이상 운동을 지속해야 하며, 당질이 먼서 사용되고 이후에 체지방이 사용되는 것이므로 체지방이 빠지는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은 만큼 운동으로 뺀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무산소 운동에 대해서도 그렇다. 과거에는 우리 몸의 기초대사량이 내장기관에서 60, 근육에서 40이 쓰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장기관이 80, 근육이 18이란다. 근육을 불러 기초대사량을 늘려서 살이 찌지 않는 몸을 만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기초대사량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은 18% 정도 이므로 근육을 많이 불려봤자 기초대사량이 엄청나게 커지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근육을 불리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므로 기초대사량을 늘리려고 근육을 키운다는 건 확실히 비효율적이라는 것. 대신, 내장기관에서 차지하는 기초대사량의 비율이 90%나 되니 건강하고 좋은 것을 먹어서 내장기관의 대사과정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다이어트에 더 효율적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는 식사가 9할.

      

  다이어틀 할 때 칼로리가 있는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칼로리는 없지만 우리 몸의 대사과정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체지방을 연소시키는 미네랄과 비타민을 신경 써서 챙겨야 하고,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불포화 지방산들도 반드시 섭취해야 하며 등등, 요는 음식을 먹을 때는 칼로리를 따질 것이 아니라 영양성분을 고루 갖춰서 고영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단지 고영양식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과식을 막을 수 있고, 과식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

 

  특히 주의할 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먹거리들이다. 그런 음식들은 장기간 보관을 위해 화학처리가 되어 있거나 염분이 너무도 많거나 트랜스 지방으로 범벅되어 있거나 등등. 우리 몸의 대사과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영양성분 보다는 당질이 많은 경우가 많으므로 영양분 없는 칼로리 덩어리인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멀리 해야 한단다.

 

  그러니까 우리 몸에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영양을 흡수한 우리 몸은 음식을 더 원하지 않을 것이니 과식할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과도한 운동이나 고된 식이 조절 없이도 원하는 몸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먹을 수만 있다면 운동은 아주 최소한만 해도 좋다는 말도 곁들인다.

 

 

간단해 보이는데 전혀 간단하지 않은,

 

  이 책에 적힌 것만 본다면 다이어트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지도, 엄청난 노력을 요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제대로 고영양식을 끼니마다 챙겨먹는 것이 사실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삼시세끼 제대로 밥해 먹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예능이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히 보이지 만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아주 중요하지만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을 잘 짚어주고 있다. 다이어트의 목적은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에 구지 고되고 힘든 과정을 더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몇몇 부분들을 덜어내기만 해도 된다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시간을 들여 운동 계획을 짜고, 절식을 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야 몸에 좋지 않은 정크 푸드를 덜 먹고 설탕만 잔뜩 들어 있는 군것질거리를 줄이는 것이 쉽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다.

 

  길지 않은 분량이고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읽었다. 어딘가 다이어트 서적에서 읽어본 내용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볼만 한 책이었다. 비타민이랑 미네랄, 오메가3는 꼭 챙겨 먹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빵을 끊어야 겠다. 아니, 줄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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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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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롤리타』는 정말 좋아한다. 영화 『롤리타』하면 돌로레스의 뇌쇄적인 눈빛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험버트 험버트 역을 맡은 제레미 아이언스의 어벙한 미소가 떠오른다. 정원에서 스프링클러에 흠뻑 젖은 롤리타를 처음 본 험버트는 정말 환하게 웃으며 뷰티풀을 외친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의 험버트는 변태 소아성애자가 아니었으며, 불행한 사랑에 빠진 자라지 못한 어린애일 뿐이었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얼굴을 한 험버트는 돌로레스와 정말 순수하고 무모하게 사랑에 빠진 남자로 기억된다. 그래서 해리 쿼버트는 책을 읽는 내내 제레미 아이언스였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역을 연기한 제레미 아이언스

해리 쿼버트는 딱 이런 이미지.

 

*영화 [롤리타]의 제레미 아이언스(험버트)와 도미니크 스웨인(롤리타)

 

데뷔작의 엄청난 성공 이후 더 그럴듯한 작품을 써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한 글자도 적지 못하는 불행한 작가 마커스 골드먼은 딱 브래들리 쿠퍼다. 영화 『리미트리스』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불쌍한 작가 연기가 인상적이기도 했고, 미남인데다가 재능이 넘치고 유능하기까지 하지만 내적으로는 어리고 찌질한 면이 있다는 설정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라서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더라.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자연스럽게 배우의 얼굴이 떠오르고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읽히는 소설이다. 2012년 프랑스에서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전 세계 30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고, 급기야 영화화도 계획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로 멋진 소설이다.

 

* 브래들리 쿠퍼. 마커스 골드먼은 이런 이미지.

 

 

그들은 삶을 향해 떠나갔다. (조엘 디케르.[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2].246쪽. 문학동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오로라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미국의 위대한 작가 해리 쿼버트. 그의 자택 정원에서 오래된 시체 한구가 발견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다. 해리 쿼버트의 제자이자 친구인 마커스 골드먼은 첫 책의 성공 이후 명작을 써내야 한다는 욕심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그는 소설가가 되는 법을,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스승 해리 쿼버트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지만 좀처럼 ‘작가의 병’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스승인 위대한 작가 해리 쿼버트가 살인죄로 기소되고, 30여 년 전 해리 쿼버트가 15살 난 여자애와 관계를 맺었다는 추문이 세상에 드러난다.

 

* 영화 [롤리타]의 험버트와 돌로레스.

내가 상상한 해리와 놀라의 이미지.

 

  해리 쿼버트의 정원에서 발견된 15살 소녀의 시체와 그녀 놀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해리 쿼버트. 시체와 함께 드러난 해리의 과거에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저서 『악의 기원』에 대한 세간의 평가마저 뒤집히며, 해리와 놀라의 사랑이야기였던 『악의 기원』은 추잡한 책으로 여겨지고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된다. 진정한 친구 해리의 구명을 위해, 위대한 스승이자 존경하는 작가인 해리 쿼버트의 명예를 위해 30여 년 전에 일어난 놀라 켈리건 실종사건을 다시 파헤치기로 한 마커스 골드먼.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생각지 못한 충격적인 진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며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작가가 밝혀내는 작가의 진실

 

  미제 실종사건을 소재로 하며, 우연히 발견된 유해를 계기로 과거의 망령과 마주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할런 코벤의 『숲』과 매우 유사하다. 순박하고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유로 진실을 덮고, 결과적으로는 악인의 공모자가 되어버린다는 전개 또한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으며 할런 코벤의 『숲』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플롯을 갖고 있어도 두 책이,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이 다르게(심지어는 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이가 바로 ‘작가’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하고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작가로부터 한권의 소설이 쓰이고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출판소설(이런 말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마는)이다. 또한 챕터마다 해리 쿼버트가 마커스 골드먼에게 소설쓰기를 가르치면서 나눈 대담들이 실려 있어서 작가가 어떤 계획을 갖고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지 일종의 암시를 주고 있는 구성이다. 책 안에서 마커스 골드먼이 쓴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일 터이지만, 이 책의 저자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기승전(반전)결이 뚜렷한 한편의 소설이다. 마커스 골드먼의 취재 과정과 책 쓰기가 해리 쿼버트의 소설쓰기 대담에 곁들여져, 조엘 디케르의 소설 쓰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팎으로 참 재미있는 구성이다.

  

* 영화 [리미트리스].

로이가 마커스의 '해리 쿼버트 사건' 초기 원고를 받고 계약하자고 얘기하는 부분은

이런 이미지.

  

  마커스 골드먼의 소설 쓰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뉴욕의 대형 출판사 슈미트 앤드 핸슨의 사장 로이 버나스키와의 본격적인 출판을 위한 논의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묘사된다. 로이 버나스키는 수완이 아주 좋은 사업가로 자사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는 데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을 홍보할 것이며, 사회의 각종 이슈들을 피해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 책을 내놓아야 효과적인지 계산하며 판을 짜는 인물이다. 마커스 골드먼에게 그가 계산한 시기에 맞춰서 책을 내야 한다며 협박과 회유를 일삼고, 원활한 출간일정을 위해 유령작가를 써야 한다며 마커스의 자존심을 긁어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일생의 한권의 책을 남긴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로지 명작을 쓰기 위해 고뇌하는 작가와 책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품적 가치를 우선시 하는 출판계의 대립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런 부분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수십 권의 책을 그야말로 찍어내듯 써내는 작가들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새삼 새로웠달 까.

 

  또한,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사실 사랑 이야기다. 작가의 예술혼을 불태우게 만드는 환상적인 뮤즈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결국 명작을 쓰게 되는 작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악의 기원』이라는 명작이 탄생하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과 그 명작에 대한 작가의 진실을, 그 민낯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추악한 것인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와 그의 뮤즈가 함께 나눈 아름다운 사랑만이 존재할 뿐이고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도 씁쓸하고 긴 여운이 남는다.

 

  해서 이 책을 단순하게 미제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도 한번 적었지만 너무나도 멋진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사족이지만,

  이 책에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이 스쳤지만, 내가 이 책을 영화화하는 감독이라면 이 배우를 꼭 캐스팅하겠다. 라민 카림루. 엘리야 스턴의 운전기사인 루터 케일럽역에 라민 카림루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더라. 1권을 읽을 때만 해도 루터 케일럽은 흑백영화시절 어설픈 분장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이미지였는데, 2권을 읽고 책을 덮자 라민 카림루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라민 카림루는 뮤지컬 스타고, 내가 그 쪽을 잘 아는 것도 아니며, 라민 카림루가 연기하는 건 25주년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팬텀 역밖에 본 게 없지만, 그 팬텀 역을 연기하는 라민 카림루의 얼굴이 루터 케일럽이었다. 루터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는데다가 키도 크고 덩치도 좋다는 설명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루터 케일럽의 캐릭터가 젊은 팬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캐릭터가 비슷한 구석이 많다.

 

    * 25주년 [오페라의 유령] 기념공연. 팬텀을 연기하는 라민 카림루

 

* 라민 카림루. 잘생김.

 

  정말 멋지고 좋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표시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여하튼,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함.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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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저주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8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물론 단편은 제하고, 매우 가볍다. 미쓰다 신조는 민속학에서 다룰법한 소재들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라서 한 마을이나 지역의 역사를 훑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룰 뿐이며 그래봤자 위로 한세대부터 다루기 때문에 복잡할 게 없다. 벌어지는 사건도 지극히 단순하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금방 금방 읽힌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다른 책들만큼 재미가 없다.

 

잘 읽히는데 재미가 없다니. 어째서 그렇게 돼 버렸을까 생각해 봤는데 이게 시리즈의 1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책이 드럽게도 안 팔린다는 우리나라에서 시리즈물을 내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고들 한다. 한참 잘 나간 외국소설 시리즈들을 몇 가지 떠올려 보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나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도 그랬다. 이 잘나가는 시리즈들 모두 시리즈의 1편부터 출간되지 않았다. 『스노우맨』도,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도,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도 시리즈의 중간에 나온 책들이다. 시리즈 중에도 재미가 보장된, 검증된 책들인 것이다. 시리즈를 내도 될 만한지 어떤지 시장의 반응을 미리 살피는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사상학 탐정은 정직하게 1권부터 나왔다. 사실 이게 정석이긴 하지만 1편이 큰 재미가 없다면 이것 또한 모험인 것이다. 소설의 첫 장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시리즈의 첫 선을 보이는 편도 중요하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므로.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애매하다. 딱 그런 인상을 남기는 1편 이었다.

 

영험한 무녀인 할머니의 재주를 이어받은 쓰루야 슌이치로의 능력은 바로 사람들의 몸에 갖가지로 나타나는 사상을 보는 것이다. 사상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죽음의 그림자다. 사람이 어디에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어릴 적부터 죽음을 볼 수 있었던 슌이치로는 힘든 유년기를 보내고 이제 막 독립하여 탐정 사무소를 차렸다. 특별한 능력으로 할머니를 도와 암암리에 활약하고 있었으므로 나름의 명성도 있고, 본인은 잘 모르지만 조력자들도 많다. 독립하자마자 그를 찾아온 첫 번째 고객은 예쁘장한 아가씨로 한 집안에 벌어지고 있는 괴이한 일들을 조사해 달라고 하는데, 슌이치로는 그녀에게 사상이 보이지 않자 매몰차게 돌려보낸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그녀에게 엄청난 사상을 보게 되고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이게 된다.

 

한 집안에서 일가족이 모두 괴이한 일들을 겪게 되다가 차례로 사망에 이른다. 그들의 겪는 괴이한 현상은 모두 제각각으로 어떠한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죽음의 순서도 규칙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하게 한명씩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어째서 이 집안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겪는 괴이한 현상들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슌이치로의 눈에 보이는 사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사건들의 연속에서 슌이치로는 현상들의 규칙을 찾고 죽음을 막을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단 제목부터가 어쩌면 스포일러이며,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데 이 책에서 제시되는 몇 가지 의문점 중에 하나가 비교적 간단하게 풀린다. 책에서 친절하게 슌이치로의 조사노트를 공유하기 때문에 눈치가 빠른 사람은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슌이치로보다 한발 앞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맞췄다.(오예!! 하지만 눈치가 빠른 건 아닌데, 힌트가 너무 많았다.) 범인 맞추기도 좀 미지근하게 끝난다. 애초에 용의자도 몇 명 없었고, 나름의 반전이 있기는 한데 그게 그렇게 참신한 반전은 아니다. 이는 작가도 본문에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 아쉬운 부분이 영능력이 인정된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살인이 매우 쉽게 성립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러면 딱히 추리를 해 낼 여지가 없어지고, 추리를 해 낸다고 한들 의미가 없어진다.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조차 없다. 이러다 보니 재미가 반감되는 면이 있다.

 

여러 미스터리소설 작가들이 그들만의 특화된 트릭이 있다. 밀실트릭을 잘 쓰는 작가가 있고, 알리바이트릭을 잘 활용하는 작가도 있고 미쓰다 신조의 경우는 호러가 작가의 트릭이다. 뭔가 튀어나올 것 같고 으스스한 분위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상황설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 책에서는 그 부분이 약하다. 초반에는 한껏 분위기를 잘 잡아놓기는 하는데 막상 본 사건에 들어가서는 완전히 본격 추리물이다. 그런데 그 본격 추리물이 참신한 맛도 없고 치밀한 맛도 없다. 놀랄만한 전개는 힌트가 이미 너무 많이 주어져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이다. 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흥미가 떨어지고 읽는 재미도 줄어들더라. 안타까운 부분이다.

 

탐정이라는 것들은 사람이 죽어야 단서를 얻고 그렇게 한명, 두 명, 세 명, 네 명 많으면 대여섯 명을 골로 보낸 이후에야 ‘범인은 당신이야. 나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를 외치지만, 그들이야 말로 인간 살육자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 영원히 그러하겠다. 여기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보다도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탐정이 나타났으니 나름 신선하기는 하다만은 1편이 이렇게 약해서야. 아마 뒤에 사상학 탐정 2권 홍보문구가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과감하게 접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권이 퍽 흥미로운 줄거리라서 2권이 나온다면 일단 2권 까지 읽고 판단을 내리겠다. ‘사우의 마’ 라니. 한밤중에 라디오로 듣고 연습장 한편에 그림 그려가며 이야기 듣다가 소름이 확 돋았던 기억이 있어서 기대된다. 이걸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지 봐야겠다. 2권이 나온다면! 근데 2권이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니까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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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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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엿보는 눈’ 혹은 ‘엿보는 여자’ 라는 뜻이다. 어째서 번역하지 않고 생소한 일본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왔나 했더니, 이게 일종의 고유명사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 제목들처럼 요괴의 이름이니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적은 것.

 

교고쿠 나츠히코처럼 실제로 문헌에 존재하는 요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아니고, 미쓰다 신조가 교묘하게 창조해낸 요괴인데 좀 독특한 면이 있다. 이 요괴는 대략 6~7세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표지를 참고 하시라. 심지어 예쁘장하기까지 하다.) 특별히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고 그저 지켜본다. 지독하게 지켜본다. 문틈이나 벽장 속에서, 오후에 그늘진 창문 아래에서, 도저히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공간에서도 두 눈을 희번덕대며 지켜보는 것이다. 그게 무슨 공포의 소재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인지 어쩐지, 노조키메의 시선을 받은 사람은 사고를 당하거나 죽게 된다는 규칙이 있다. 지역성이 강한 요괴로 몇 가지 금기사항만 따른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나, 한번 씌이게 되면 답이 없다. 끈질긴 시선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죽게 된다.

 

뭐 그런 설정이고, 이야기는 이렇다.

 

편집자 시절 공포물 기획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미쓰다 신조는 그쪽 세계에 대한 무한한 관심으로 기담과 괴담을 여럿 수집해 놓았는데, 이는 작가로 전업한 이후에 요긴한 소재가 되었다. 이때 수집한 괴담이 첫 번째 - 엿보는 저택의 괴이. 작가로 전업한 이후에 호러와 미스터리의 장르적 융합이라는 목표를 위해 자료를 모으던 시절, 빙의물 신앙에 대해 취재를 하다가 얻은 원고가 두 번째 - 종말저택의 흉사. 이 두 원고가 묘하게 연결된다고 느낀 미쓰다 신조는 두 원고를 묶어 한권의 책으로 출판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노조키메』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전형적인 괴담의 플롯을 따른다. 젊은 남녀가 아르바이트로 외딴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는데, 관리인이 신신당부한 금기를 어기고 괴이를 맞닥뜨리게 된다.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여서 ‘무언가’에 씌이게 된다는 이야기. 괴담답게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밝혀지는 것 없이 ‘그건 뭐였을까?’하면서 끝난다.

 

두 번째 이야기 ‘종말저택의 흉사’에서 비로소 ‘그것’의 정체에 대한 단서들이 던져진다. 두 번째 원고는 어느 민속학자의 봉인된 기록으로, 민속학자는 끝끝내 그 원고가 세상에 공개되길 꺼려했으나 결국은 작가에게 전달된다.

 

그 원고의 내용은 이렇다.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는 민속학을 공부하던 학생시절 불의의 사고로 친우를 잃는다. 그의 명복을 빌어주고자 친구의 본가를 찾아가는데, 친구의 본가는 독특한 사연이 있는 곳이었다. 지역의 2대 지주이면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으며, 이방인 살해 전설의 장본인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일족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일족은 노조키메, 즉 엿보는 눈의 앙화를 받게 되어 재앙을 피하기 위해 혼례나 상례와 같은 집안의 큰일에서부터 평소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면에서 기묘하고도 기괴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일족은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 노조키메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그 노조키메는 첫 번째 원고의 ‘그것’과 같은 요괴이다. 종말저택이라고 불리는 친구의 본가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괴이가 끊이질 않고 줄초상이 이어진다. 그 모든 현상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이자와 소이치는 그때의 경험을 원고로 남긴다.

 

마지막으로 두 원고와 원고를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서로 작가 미쓰다 신조의 추리가 이어진다. 첫 번째 원고에서 금기를 범하고 괴이를 겪게 되는 학생들 에게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었던 것인지, 두 번째 원고에서 민속학자 아이자와 소이치가 겪게 되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실체는 무엇인지, 어째서 종말저택에서는 계속해서 흉사가 이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아주 명쾌한 해설이 이어진다.

 

『일곱 명의 술래잡기』때와는 다르게 호러의 소재이자 괴이의 정체인 ‘노조키메’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게 소개되기 때문인지 『일곱 명의 술래잡기』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추리도 명쾌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은 게, 간과하기 쉬운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되짚어주는데 그 한 가지가 무서운 연출에 가려진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준다. 미쓰다 신조가 단편에서나 장편에서나 누군가의 ‘수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때 자주 쓰는 트릭이 있는데 그것이 두 번째 원고 ‘종말저택의 흉사’에서도 쓰였다. 이것도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봐야 할지 어떨지. 글을 읽는 사람은 글을 쓴 작가의 시점으로 글을 읽는다. 글을 쓴 이가 본 것만 볼 수 있고, 글을 쓴 이가 들은 것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글을 쓴 이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다각도로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진실을 볼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행간을 읽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행간을 읽으면 미쓰다 신조의 트릭을 간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쓰면 혹시나 스포일러가 될 수 도 있어서 꺼려지지만 적어본다. 작가의 다른 책인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에서 「슈자쿠의 괴물」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이게 좀 비슷하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비슷하느냐? 그냥 비슷하다. 둘 다 읽어본 사람은 아마 동의 할 듯싶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호러로, 두 번째 이야기는 본격미스터리로, 또 그 두이야기를 아주 절묘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그야말로 호러와 미스터리의 융합이다. 그저 지켜볼 뿐인 어린 아이의 시선이 어떻게 호러가 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시선에 민감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 혼자 앉아서 딴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나를 보는 눈과 마주친다.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해 봤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한 감정이 크게 느껴진다면 그게 시선공포증인 것이고. 나는 좀 놀랐다. 이런 소재로 공포물을 써냈다는 것이 참신하지 않은가? ‘숟가락 살인마’ 이후로 꽤 참신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소설은 ‘숟가락 살인마’처럼 발랄하지 않다. 때때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 책장의 빈 공간에서 시선이 느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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