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게 결정하라 - 불확실함에 맞서는 생각의 프로세스
칩 히스,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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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이 책이 우유부단한 사람에게 힘을 주는 책인가 싶었다. 마침 요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있던 터라 뭔가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 펼쳐보았다. ‘자신 있게 결정하라니까.

 

읽어보니 자신 있게 결정할 수 있는 법을 일러주는 책은 맞다. 그런데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섣불리 판단해서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보면 좋은 책인 것 같다. 잘 판단하는 방법, 슬기롭게 살펴서 스스로 자랑스러울 만큼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프로세스를 다루는 책이다. 물론 나처럼 뭔가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도 힌트를 얻어갈 수 있다. 결정을 잘 내리는 방법을 습관처럼 익히면 자신 있게 뭔가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프로세스 그 자체는 우리에게 크나큰 감정적 선물, 바로 자신감을 안겨준다. 한쪽에 치우친 정보를 모으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무시하는 데서 오는 오만한 과신이 아니라 자신이 최고의 결정을 했을을 아는데서 오는 자신감 말이다. p347.

 

 

뭔가 판단하고 방향 정하는 일을 지혜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격언과 속담이 이미 많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급할수록 돌아가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같은 말들에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들어 있다. 중요한 일일수록 급하게 보지 말고 두루 살펴서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천천히 이것저것 잘 재보고 정하라는. 하지만 너무 흔하고 뻔해서일까. 그런 충고를 많이들 그냥 흘려듣는다. 그리고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덜컥 뭔가 정했다가 나중에 가서 후회하곤 한다.

 

자신 있게 결정하라는 어떻게 보면 별 내용 없는 책처럼 보인다. 격언이 숱하게 다루고 속담이 골백번 이야기하던 바로 그 무언가를 또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에이 뭐야 하며 덮어버리지 않고 쭉 읽게 된다. 격언과 속담 속 지혜들을 조리 있게 잘 정리해서 그럴듯하게 있어보이게 잘 포장해놓았다고 해야 할까. 심리학 연구, 의사결정 연구 사례를 꽤 많이 인용했다. 적어도 글쓴이 혼자만의 개똥철학을 무책임하게 써놓은 건 아닌 것 같아서 믿음이 간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결정 내리는 과정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각 단계마다 저지르기 쉬운 실수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마음에 와 닿게 설명해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결정을 잘 내리는 체계적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뭔가를 정할 때는 크게 네 단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선택에 직면하고, 선택지를 따져보고,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밀고 나가고.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좁은 시야와 들쭉날쭉한 감정이라는 타고난 약점이 있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곤 한다.

 

첫째, 선택에 직면했을 때 지나치게 좁은 선택지 안에 갇혀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사람 시야가 생각보다 좁아서 여러 가능성을 두루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또는 할까 말까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더 많은 선택지들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좁디좁은 시야 안에 갇힌다. ‘범위 한정 성향이다. 그럴 때는 다른 것들을 볼 수 있게, 더 넓게 볼 수 있게 일부러라도 이것저것 노력해야 한다.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 나는 다음 두 가지 방법이 가장 좋았다.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걸 선택하면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똑같은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같은 간단한 질문을 먼저 던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p75.

 

일명 선택안 없애기 테스트도 범위한정성향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정한 선택안을 전혀선택할 수가 없다고 상상하면 심리적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그전까지는 스포트라이트의 방향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p75-77.

 

 

둘째, 선택지를 따져 볼 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잘못 판단한다. ‘확증 편향이다. 뭐가 가장 좋은지 찾아본 다음에 선택하는 게 아니다. 먼저 마음속으로 어느 한 쪽을 정해놓고는 그게 좋은 이유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찾는다. 이렇게 내린 선택과 결정은 엉터리일 확률이 높다. 자기 생각이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 검증은 안에서 하는 게 힘들다.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스스로 말하기 어렵다.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자기 생각의 반대편이 되어보고, 자기 느낌에 기대지 말고 객관적 수치에 주목한다. 내 생각을 바깥세상과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머릿속 가정에 대해 검증을 실시할 수 있을까? 그 첫 단계는 자신의 처음 생각과 반대되는 방향을 고려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p140.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내부적 관점은 우리의 스포트라이트 안에 들어온 정보에 의존한다. 즉 해당 상황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평가에 의존한다. 반면 외부적 관점은 나름의 특별한 측면들을 무시하는 대신 보다 큰 그림을 분석한다. 외부적 관점이 더 정확하다. 특정 개인의 느낌이 아니라 다수의 직접적인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p167-168.

 

외부적 관점은 평균치에 눈을 돌린다. 통계학 용어를 쓰자면 해당 상황에 대한 기저율(base rates)’, 즉 유사 상황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성과율을 나타내는 데이터에 주목하는 것이다. p168.

 

전문가에게 충고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만능이 아니다. 그들을 최대한 잘 써먹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점은 명심해라. 전문가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를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것 말이다. 전문가들은 예측에 서툴 때가 많다. 그 대신 기저율을 평가하는 데는 뛰어나다. p171.

 

돌다리를 건너기 전에 두들겨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우칭(Ooching)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몇 차례 작은 실험을 실시해보는 것을 뜻한다. p193.

 

우칭을 실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시험해볼 수 있는데 왜 예측하지? 확실히 알 수있는데 왜 짐작하는 거지? p214.

 

 

셋째,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감정에 휘둘려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읽지 못하고 놓친다. 특히 단기감정이 발목을 잡는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지금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한다. 눈앞의 무언가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결정을 망치곤 한다. 현명하게 결정하려면 자기감정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뭐라고 해줄까를 생각해보라는 팁이 무척 좋았다.

 

10-10-10 기법이란 우리의 결정을 세 가지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10분 후에 이 선택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지금으로부터 10개월 후에는? 10년 후에는? 이 세 가지 시간적 관점은 결정을 할 때 거리감을 확보해준다. p225.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생각이 막혔을 때는 아래 질문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만일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뭐라고 조언할까? p241.

 

 

넷째, 선택을 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자주 실수한다. 사람은 자기 예측과 판단을 지나치게 믿는다. 보통 비관하기보다 낙관한다. 그러다 방향을 틀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생긴다. 잘 될 때와 잘 안 될 때를 모두 생각해봐야 한다. 마치 책을 똑바로 잘 세우려고 양쪽에 북엔드를 받쳐놓는 것처럼 미래 예측에도 양쪽 받침대가 필요하다.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하면 가능한 결과의 예상 범위를 확장하여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미래란 투자 종목이 아닌 인생 그 자체다. 따라서 양쪽 북엔드 사이의 그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미래에 북엔드를 세워두면 최악의 상황과 최고의 상황 모두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p278.

 

자기 과신에 관한 연구는 앞날을 제대로 예측했다고 자신할 때도 우리가 틀릴 확률이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래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넓은 범위이기 때문이다. p278-279.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는 매우 간단한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자신이 과대 확신하고 있다고 가정한 뒤에 넉넉한 오차범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엔지니어들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안전계수를 설정한다. 안전계수는 혹시 있을지 모를 기계 결함에 대한 바람직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p288-289.

 

 

‘~() 책으로 배우나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 인생을 책만 읽어서 알기는 어렵다. 연애도 책으로 배울 수 없고 대인관계도 책만 읽어서는 뾰족한 수를 찾기 힘들다. 직접 이리저리 부딪쳐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해답이 여기 있소하는 식의 자기계발서는 믿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일을 매번 직접 겪어가며 배울 수는 없다. 그럴 때 적당한 매뉴얼이 참 절실하다. 책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도 어디로 가면 똥을 피할 수 있는지 정도는 배울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택하기 전에 제대로 따져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야무지게 밟아나가면서 참고할 매뉴얼로 잘 써먹을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맨 뒤에 친절하게 요약도 달아놓았다. 여러 선택 장애 사례와 극복 방법을 볼 수 있는 클리닉부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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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부탁해 - 온전한 자존감과 감정을 위한 일상의 심리학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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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인상은 좀 별로였다. 책의 절반이 말랑말랑한 그림이다. 글자 크기도 크고 줄 간격도 넓고.

 

괜찮은 책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았다. 그런데 막상 펴보니 책장사들이 대충 찍어내서 파는 책 같아서 놀랐다. 표지하고 페이지를 예쁘장하게 만들어놓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알맹이 없는 내용을 끼워 넣은, 신간코너에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책인가 싶었다. 일단은 글쓴이를 믿고 샀다. 그가 쓴 다른 책을 참 재미있게 읽어본 적이 있으니까. 그냥 가볍게 읽어보자 생각하고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그런데 읽다보니 마냥 책장을 빠르게만 넘길 수는 없었다. 읽을수록 단단한 알맹이가 느껴지는 책.

 

이번 책에서는 글쓴이가 그동안 쓴 심리학책들의 요점을 추려 모아 놓은 듯하다. 실험 사례나 일화들을 많이 뺐다. 소개는 하더라도 내용이나 과정을 자세히 넣지는 않았다. 대신 글쓴이의 통찰과 조언을 많이 넣었다. 빤한 말도 있지만 귀담아들을만한 이야기도 많다.

 

이 책은 무척 가볍게 펼 수 있다. 어려운 말이 나오지 않고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던 이야기가 많다. 생각해보니 그게 이 책의 미덕이다. 뻔하고 많이 들어봤던 말이라도 그걸 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어떤 조언이 내게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조언의 내용보다 조언의 전달 방법에 달려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말들이 무척 설득력 있어서 여러 내용이 마음에 묵직하게 와 닿는다. 예전에 흘려들었던 말들을 이번에는 귀담아 듣게 된다. 빠르게 훑어볼 수도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읽어보면 더 좋은 책이다. 게다가 일반적 통념을 깨는 내용들도 꽤 있다.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독감 예방주사 몇 번 맞는다고 평생 독감을 앓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에 맞춰 맞아 놓으면 독감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심하게 앓지 않고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심리학책 몇 권 읽는다고 곧바로 잘 사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울하거나 지쳐서 마음의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꺼내서 위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물며 그 위로와 통찰이 알맹이 없는 헛소리가 아니라 많은 연구와 실험으로 검증된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음의 예방주사 같은 책이다. 많이 꺼내볼수록 약효가 잘 듣는.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나쁜 환경을 과감하게 거부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의지를 신경 쓰기보다 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삶의 모든 순간은 온전히 내가 할 경험들이다. 따라서 모든 결정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내려야 한다. p194.

 

 

이 책은 내가 내 마음을 잘 추스르면서 건강한 마음으로 살려면 어떤 것들을 잊지 말고 챙겨야 하나를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줄기는 자존감이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

 

마크 리어리 등의 학자들은 자존감은 어떤 것의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그럭저럭 잘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고 그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그 결과로서 건강한 자존감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해보이든, 나보다 더 잘 나가든 말든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 말이다. 따라서 건강한 자존감은 급조하기 어렵다. ‘나는 내가 좋다는 주문을 천 번을 외우더라도 진심으로 지금의 삶이, 내 모습이 만족스럽고 자랑스럽지 않으면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p90-91.

 

 

원론적이지만 무척 옳은 말이다. 내가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데 얕은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튼튼한 자존감은 갑자기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다. 내 삶이 내 마음에 들어야 정말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싫은 일은 되도록 피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조금씩 해나가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작은 벽돌을 쌓아올리다 보면 큰 집을 지을 수 있다. 글쓴이는 무척 소박하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매 순간 진실로 살아 있는 삶을 살자.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하기 싫은 일, 자신의 꿈이나 가치관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나와 맞는 길을 걷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 행복하다하고 느낄 수 있는 일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더라도 스스로 뿌듯하다거나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p92-93.

 

나 자신이 가장 크게 자존감을 걸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만약 자존감 지지대가 스쳐가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거나 극단적으로 어느 하나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건 좀 위험하다. 자존감을 (평가에 취약한) 외적인 무엇보다 나의 내적 가치에 더 많이 걸어두는 것이 좋다. 당신의 중요한 가치, 또는 당신이 좋아하는 당신만의 특징에 자존감을 걸어두라는 얘기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 ‘사과를 잘 깎는 내가 좋아’,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좋아’, ‘미식가인 내가 좋아등등, 누가 뭐라고 하든 나 스스로 좋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특성들을 자잘하게 개발해두는 것이다. p76-79.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사람들과 관계를 건강하게 맺기 힘들다. 마음은 생각날 때마다 자기감정을 잘 추스르고 챙기는 과정 속에 건강해진다. 감정이 끓어오를 때 그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고, 마음을 쉴 수 있게 즐거운 일을 찾고, 내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일들은 굳이 부딪치지 말고 피하면서.

 

감정이 발생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본 사람들(감정과 관련된 사건을 재평가해 본 사람들), 즉 성급히 부정적 감정으로 빠져들기 전에 잠깐하고 외쳐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 모든 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 잠깐!’하고 외쳐보면서 감정을 조금씩 조절해보자. p142-143.

 

한두 시간 짬을 내어 정말 확실하게 재충전을 해주는 게 좋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쉬는 것도 좋지만 잠깐 동안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느껴주는 것도 좋다. 특히 힘들 때 즐거움을 느껴주면 육체적으로 푹 쉬는 것 못지않게 큰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효과가 사라지고 떨어졌던 수행이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바버라 프레드릭슨 등의 학자들은 스트레스 지우개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p152-153.

 

스트레스 지우개. 멋진 말이다. 읽다가 나의 스트레스 지우개는 뭔지 생각해봤다. 그리고는 조이스틱을 하나 질렀다. 앞으로는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집에서 쉴 때 스트리트파이터라도 한 판씩 하려고 한다. 쓸데없어 보이지만 뭐 어때? 당장은 시간낭비 같아도 잠깐 이렇게 쉬어갈수록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데.

 

 

일상적인 스트레스는 별 일 아닌 듯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큰 스트레스보다 이런 자잘한 것들이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크게 해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의미나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는 게 좋다.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하면 게으르다고 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편하게 살자. 이런 작은 스트레스들의 해로움을 알고 나면 실은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가장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관리이자 투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p184-185.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보통 삶의 조언 같은 걸 건넨다는 책에는 꼭 꼰대 같은 말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아파야 청춘이라느니,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장한다느니 같은. 그게 다 누구를 위한 말인가? 적어도 정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픔을 위로해주는 말인가, 아니면 더 많이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말인가?

 

그런데 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말인가. 고통을 찾아서 겪을 필요가 없다니. 가급적이면 편하게 살자니. 그게 내게 가장 좋은 투자라니. 저 구절을 읽고서 이 책 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글쓴이부터 흔해빠진 꼰대와 다른, 무척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사람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인간관계다. 사람은 사람 눈치를 안 볼 수가 없고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건 관계 자체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내 마음, 내 태도라고 한다. 상황은 내가 보는 것처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비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에 관계가 실제로 더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두려움이 오히려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주 미묘해도 표시가 나게 마련이고(불안해하는 눈빛, 굳어 있는 표정, 움츠러든 몸 등) 금세 주변 사람들에게도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는군같은 메시지를 준다. 두렵고 미숙할 뿐이지만 상대방의 머릿속에서는 나를 불편해하거나 탐탁지 않아한다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p215-217.

 

어떻게 보면 무척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잘 까먹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참 뻔하다. 사람을 좀 더 편하게 대하라는 것. 그러나 무척 지키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떠올려보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해보면 좋을까? 글쓴이는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려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완벽하고 뛰어난 아이라서 내가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좋고 취향이 비슷하며 엉뚱해서 등등, 사소하고 다양한 이유 때문에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또한 나를 다양한 이유 때문에 좋아할 수 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좀 더 편안하게 사람을 대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사그라질 것이다. p220-221.

 

 

글쓴이는 전에 냈던 책에서 사회심리학 내용을 알기 쉽게 소개했다. 이번 책은 그보다는 내 마음을 잘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심리학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 하나 읽었다고 바로 예전보다 더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실천해보면 도움이 되는 것들을 여럿 알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럴 때마다 이 구절도 떠올려봐야겠다.

 

실패는 유리가 힘을 받아 깨지는 과정과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철이 두드림으로 단련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p265.

 

 

오늘은 그럼 뭐부터 해볼까? ! 일단 조이스틱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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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9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스트레스 지우개‘는 책입니다. 가끔 마음이 울적해지면 중고책 서점에 가서 책을 많이 고릅니다. ^^

돌아온탕아 2017-05-29 20:57   좋아요 0 | URL
정말 부러운 지우개입니다. 그게 최고지요! 저도 책으로 지우개를 삼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cyrus 2017-05-29 21:21   좋아요 0 | URL
부럽긴요. 지갑 안에 있는 돈도 순식간에 지워져요. 절제가 제일 중요해요. ㅎㅎㅎ

돌아온탕아 2017-05-29 22:07   좋아요 0 | URL
지름중에 제일 무서운게 책 지름이지요 ㅎㅎ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 - 우주, 지구, 인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
요시다 다카요시 지음, 박현미 옮김 / 해나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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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아본다. 뼈와 근육, 피와 살덩어리로만 봤던 몸을 다르게 상상해본다. 좀 더 작은 세계로 들어가 본다. 나는 닫혀있지 않다. 내 몸은 안으로도 열려있고 바깥으로도 열려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물질이 안팎으로 쉼 없이 드나든다. 내가 먹고 싸고 들이마시고 내뱉는 모든 과정은 사실 화학 반응이다. 내게 필요한 원소를 받아들이고 내게서 필요 없어진 원소를 내보내는 과정이다. 원소들이 내 안에서 춤춘다.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또한 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주의 일부이고, 세계와 하나로 이어진다.

 

조금 복잡한 수식만 보면 울렁거리는 문과 쟁이인 내가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책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책으로 화학을 아주 가볍게 슬쩍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개념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꽤 쉽게 알아듣게끔 애썼다. 구어체에 존댓말을 쓰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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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학 시간에 주기율표와 이렇게 만났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친해지지는 않았다.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에서는 주기율표를 다르게 바라보라고 한다. 원소번호 순서대로 보지 말고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그물망으로 보라고 한다. 세로줄은 ’, 가로줄은 주기. 세로줄 또는 가로줄은 비슷한 성질을 갖는 원소들의 모임이다.

 

세로줄로 닮은 원소들의 특징 가운데 재미있는 게 있다. 어떤 원소가 몸에 좋다면 같은 세로줄에 몸에 해로운 원소도 함께 있다는 것. 그런데 몸은 같은 줄에 있는 원소를 아예 같은 원소로 착각한다. 그래서 때때로 무척 해로운 원소를 몸에 좋은 원소와 구별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

 

칼륨과 같은 줄의 세슘, 칼슘과 같은 줄의 스트론튬은 원전사고 때 나오는 방사능 물질로 유명하다. 몸은 세슘을 칼슘으로, 스트론튬을 칼슘으로 착각해서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방사능 피폭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피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칼륨과 칼슘을 많이 먹어두라는 이야기가 있다. 몸에 그것들이 충분하면 반대로 세슘과 스트론튬 흡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몸에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가 많다. 그 밖에도 주기율표 아래쪽의 무거운 원소는 거의 없고 주기율표 위쪽 가벼운 원소가 많다. 무거운 원소보다 가벼운 원소가 우주에 많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우주를 정확히 닮았다. 우주에 많은 것은 몸에도 많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원소는 사람 몸에 필요할 확률이 높고, 무거운 원소는 사람 몸에 해로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주기율표는 이런 식으로 우주 질서와 사람 몸의 신비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친절한 그림지도였다. 무턱대도 순서대로 외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면 인체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로 이루어진 정밀장치인 셈입니다. p85.

 

 

나와 우주가 하나이고 이어져있다는 식의 세계관을 좋아한다. 동양철학에서 많이 봤다. 자연에는 기운이 흐르고, 나는 혼자 존재하지 않고 기운을 타고서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는. 좋은 말이긴 하지만 왠지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 몸을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용광로로 바라보니 눈앞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나는 원소들의 집합이고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내는 공장이기도 하다. 역시 좋은 말은 어디로든 다 통하게 되어있다.

 

 

승려로부터 만다라란 조화를 이룬 우주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만다라에서는 불상의 배치가 가로와 세로 양 방향으로 깔끔하게 균형이 잡혀있습니다. 그 세계관이 주기율표와 절묘하게 겹쳐진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쩌면 우주의 진리를 탐구해 나가다보면 최종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이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209.

 

 

근본 원리까지 배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은 원리를 언급하지 않고 현상과 사례만 말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수식을 빼고 복잡한 내용도 걸러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나보다. 하지만 잘 외워서 시험 성적 잘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과학으로 뭔가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충분한 책이다.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왠지 무서워서 담쌓았던 과거를 아쉬워하는 어른이나 딱딱한 교과서에 지친 학생들에게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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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똑똑하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해가 될 일은 알아서 피하고 이로운 일만 고를 수 있다. 감정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감정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 이성으로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많이 알수록 더 똑똑해지니까. 이러쿵저러쿵. 사람은 이성을 지녔다. 이성이야말로 인간 자체다. 근대 사회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신을 죽이고 우뚝 섰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실제로는 저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저렇게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만은 완벽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이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다. 누구나 감정에 휘둘린다. 며칠 밤을 고민해놓고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느낌에 의존할 때가 많다. 남들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많이 배웠다고 잘 사는 건 아니다. 배운 사람이 오히려 무척 못난 사람이 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오고 믿어온 근대적 인간상은 제대로 뭐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기본 전제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근대적 인간상을 믿는 모습을 보면 예전에 신을 믿던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걸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는 근대는 여러 가지로 그 이전보다 나은 시대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것들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잘 사는지를 알기는 정말 어려워진 시대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겠다. 많은 학자들이 사람의 진짜 모습을 파고들었고 성과를 냈다. 심리학이 대표적이다.

 

소셜 애니멀은 심리학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연구 사례를 들어 보이며 인간에 대한 근대적 환상을 벗겨낸다.

 

사람은 사실 참 엉터리 같은 존재다. 무척 나약하고 이리저리 휩쓸리기 좋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벌거벗은 임금님을 만날 수 있다. 임금님의 나체는 참 보잘것없고 때때로 흉해보일지 모르지만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힌트를 얻어갈 수도 있다. 사람은 똑똑한 이성을 지녔지만 거기에서 지혜가 나오지는 않는다. 지혜는 의식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나온다. 인간 지성의 진정한 힘은 무의식과 감정,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잘 살아가려면, 사회를 더 좋게 바꾸려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성합리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되 그저 많이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이성보다는 감정과 무의식이다. 감정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정해지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건 무의식에 새겨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하는 실행모델이다. 실행모델이 모여 인격이 된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무의식이 튼튼하다. 무의식이 건강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의식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멀리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와 부모의 양육방식에서, 가까이는 한 사람이 속해 있는 공동체 문화와 인간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을 튼튼하게 만드는 건 좋은 관계와 문화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며 살아가는가는 내가 옆 사람들과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에 달려 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는 내가 얼마나 좋은 문화 속에서 지내왔는가를 떠나서 생각하기 힘들다. 한 사회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는 크고 작은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게 잘 살아 있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양육은 단순히 돈으로 보살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좋은 관계에서 좋은 문화를 전해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학교는 그냥 지식을 전달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훌륭한 실행모델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스스로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기회를 주는 장소여야 한다.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은 개인을 단순히 도와주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의 역량을 북돋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심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로 시작해서 정책 제안서로 나아간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핵심 줄기 말고 곁다리에도 온갖 지식들로 가득하다. 무척 두껍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전체적으로 소설 형식이다. 두 등장인물-해럴드와 에리카-이 태어나서 삶을 다할 때까지 보여주는 드라마 한 편을 보듯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책 끄트머리에 노년을 다루는 부분도 참 좋았다. 나이 먹어감에 대해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심리학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글쓴이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전업 작가다. 그래서 두껍지만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좋은 내용만큼 탁월한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힌트 한 조각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가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걸쳐 행하는 수많은 판단의 집약된 버전일 뿐이다.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본래 감정 차원의 일이다. p37-38.

 

 

웃음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메릴랜드대학교의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혼자 있을 때보다 서른 배나 더 많이 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서로 돈독한 유대감을 나눌 때 웃음은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사람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이나 발언에 정확하게 맞춰서 웃지 않는다. 웃음을 유발하는 문장 중에 15퍼센트만이 확실하게 우습다. 대신 웃음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감정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에 자기가 긍정적으로 대응한다고 느낄 때 저절로 나오는 것 같다. 웃음은 사회적인 어색함을 덮어주거나 유대감을 형성강화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p74.

 

 

어린 시절의 양육 애착이 인생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인식하는 무의식적인 실행 모델을 강화한다. 많은 학자들이 초기 애착 양상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추적하고 밝혀냈다. p109.

 

 

교사라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해서 주입하는 것 이상의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형성하고, 훈육의 규칙을 흡수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임무다. 이런 일을 하는 교사들은 나중까지 학생들의 기억에 남는다. p131.

 

 

인격은 수백만 개의 작고 선한 영향력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인격형성에는 공동체가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을 배양하기란 매우 힘들다. p197.

 

 

최근에 발표된 한 논문은, 놀라운 성공 뒤에는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살풍경하고 청교도적인 연습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천재성을 평범한 재능과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는 결코 반짝거리는 신의 뜻이 아니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이 보여주었듯이, 그것은 신중한 연습이다. 최고의 연주자들은 솜씨를 갈고 닦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훨씬 많은!) 시간을 들인다. p208.

 

 

언어와 같은 문화적 구조물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문화는 특정한 모형을 뇌 안에 수용하게하기도 하고 반대로 뇌 안에 있는 모형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p229.

 

 

지혜는 특정한 사실을 안다거나 어떤 분야의 지식을 소유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지식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자신감이 있지만 지나쳐서는 안 되고, 모험을 무릅쓰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져야 한다. 반증에 기꺼이 맞서며, 이미 알려진 것 너머의 광대한 공간을 느낌으로 느껴야 한다. p252.

 

 

작가 안드레아 돈데리는 세상은 묻는 사람과 추측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묻는 사람은 요청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거절당하면서도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므로 언제나 기꺼이 거절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추측하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며,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 추측하는 문화에서는 긍정의 대답을 확신하지 않는 한 어떤 요청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한다. p281-282.

 

 

사실 사람은(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의 뇌는)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잘 찾아낸다. 뇌는 복잡한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실수를 인식한다. 때문에 시험을 칠 때 답을 적으면서 어렴풋하게 뭔가 잘못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답을 고치는 게 좋다. 수많은 관찰 연구 보고서는, 시험에서 정답을 장담할 수 없는 미심쩍은 답을 다른 것으로 고칠 때 성적이 더 나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379-380.

 

 

처음에 인간은 소규모 집단에서 일하도록 진화했다. 사실 집단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보다 늘 우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널려 있다. 어떤 실험에서, 전체 집단 가운데 75퍼센트가 이른바 와슨 선택 과제라는 복잡한 카드 게임에서 성공했다. 그런데 개인의 성공률은 9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p390.

 

 

한 개인이 잘 살고 못 살고는 의식적인 성취를 거두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무의식적인 기술에 달려 있다. 무의식적인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힘들게 산다. 상사를 공손하게 대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활짝 웃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편안한 얼굴로 사는 일을 더 힘들어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갖지 못한다. 또 굉장한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제안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며, 지금 희생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p493.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은 학습과 성장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뇌는 평생 동안 새로운 연결점 심지어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업 기억, 산만한 요소를 무시하는 능력, 수학 문제를 재빠르게 푸는 능력은 분명히 퇴보하지만, 다른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뉴런이 죽고 뇌의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는 연결점이 활력을 잃긴 해도, 노인의 뇌는 노화에 따른 효과를 상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스스로 재조직된다. 노인의 뇌는 청년의 뇌에 비해서 동일한 결과를 내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p509.

 

 

빅터 프랭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이 의미를 찾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기부여이다.” 그러면서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인생의 이유why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how이든 다 견뎌낼 수 있다.” 그 때 프랭클은 결정적이고 도움이 되는 요점을 적시했다. 인생 전체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려하면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 사람이 살았던 특정한 삶의 특정한 환경 아래서만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p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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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즐겨 만나는 편이 아니다. 혼자 다니고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옆에 누가 있으면 좋지만 홀로 시간 보내는 쪽이 더 편하다. 칩거하거나 은둔하지는 않지만 그런 생활이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주말은 또 어떤가. 약속이 생기면 나가지만 약속 잡지 않는 하루가 반가울 때도 많다. 피곤할 때는 그냥 누구와도 말 섞지 않고 조용히 혼자 노래나 듣다가 잠들고 싶다. 누군가 나 같은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였다. ‘내향적 성격이라고. 나도 내가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차라리 내 본성에 맞게 살자 싶었다. 혼자 있는 게 좋으면 쭉 혼자 있으면 되는 거다. 왜 다들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러나 글쓴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사람 만나는 데 내향적 외향적 성격 따로 없다. 사람 좋아하고 찾는 건 사람이니까 그런 거다. 내향적 성격도 사람 만나는 걸 사실 좋아한다. 다만 외향적 성격보다 내향적 성격이 어떤 에너지, ‘사람 만나는 즐거움을 찾는 적극적 태도가 부족할 뿐이다. 생긴 대로 살라는 게 성격이 내향적이라고 외롭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도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곁에 사람을 두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 사람이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다. p14-15.

 

 

사람이 외로우면 우울하다. 게다가 몸까지 아프다. 반대로 아픈 사람은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아픔은 곁에 있어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며, 누군가 옆에 따뜻하게 있어줄 때 사람은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다.

 

실제로 곁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병을 빨리 이겨내고 생존율도 높다. 또한 대체적으로 사회의 관계의 크기가 큰 것, 즉 단순히 친구가 많은 것보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환자들의 건강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p119.

 

 

사람은 누군가 옆에 있어야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속 얘기 털어놓고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내는 삶이야말로 정말 행복 그 자체다.

 

인생은 시간이다. “인생을 잘 살았는가?”라는 질문은 순간순간의 시간, 즉 일상을 얼마나 잘 보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p98.

 

연구 결과 여러 가지 일상적인 활동 중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주로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행복한 인생은 일상의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결과는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종종 운동도 하는 것만 한게 없다는 걸 보여준다. p100-101.

 

 

다른 사람 마음을 알고 싶어서 심리학책을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보편적으로 어떤 생물이고, 어떤 마음을 타고 났는지를 더 잘 알게 되어서 좋은 것 같다.

 

나는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진짜 내가 될 수 있다. 잘 보이기 위해 깔끔하게 씻고, 옷을 차려 입고, 눈치도 봐가면서 자기를 조절한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 있기에 마음껏 즐거워할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의 존재 때문이다.

 

글쓴이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람은 어쨌든 사람과 함께 살아야한다.”

 

!’하고 그냥 흘려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실험사례와 이론을 펼쳐 보이며 설득하는 글쓴이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글쓴이는 한편 사람 사는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다 해도.

 

권력을 맛보게 되면 사람들은 공감능력(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함께 느끼는 것)과 조망수용능력(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 떨어지게 된다. 이는 권력이 없는 사람은 권력이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의중을 읽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그 반대는 잘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p262.

 

 

슬프다. 사람이란 알고 보면 얼마나 천하고 얄팍한 존재인가. 알량한 권력일지언정 그게 자기 손 안에 있으면 신나서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게 사람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무척 옳은 말이다. 다만 자리가 좋은 사람을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권력자들은 어느 쪽일까? 자리에 앉을수록 훌륭해지는 편일까, 아니면 형편없어지는 편일까.

 

아래 내용은 더 슬프다.

 

모방 행동은 직장 상사 같은 권력자들 앞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월 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자들이 웃을 때 미묘한 미소까지도 열심히 따라하는 모습을 보인다. p272.

 

 

어머나. 세상에. 씁쓸하지만 부정하기 어렵네. 나도 혹시 무의식적으로 저러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사람은 알수록 참 재미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힘써서 스스로를 바꿔보는 일도 좋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은 사실 이런 존재구나하며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여볼 수 있다면, 사람을 알아가며 나도 그렇게 알아갈 수 있다면 사는 게 참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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