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똑똑하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해가 될 일은 알아서 피하고 이로운 일만 고를 수 있다. 감정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감정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 이성으로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많이 알수록 더 똑똑해지니까. 이러쿵저러쿵. 사람은 이성을 지녔다. 이성이야말로 인간 자체다. 근대 사회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신을 죽이고 우뚝 섰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실제로는 저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저렇게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만은 완벽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이 배우고 익힌다. 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다. 누구나 감정에 휘둘린다. 며칠 밤을 고민해놓고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느낌에 의존할 때가 많다. 남들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할까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많이 배웠다고 잘 사는 건 아니다. 배운 사람이 오히려 무척 못난 사람이 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오고 믿어온 근대적 인간상은 제대로 뭐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기본 전제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근대적 인간상을 믿는 모습을 보면 예전에 신을 믿던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걸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는 근대는 여러 가지로 그 이전보다 나은 시대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 어떤 시대보다 많은 것들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잘 사는지를 알기는 정말 어려워진 시대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겠다. 많은 학자들이 사람의 진짜 모습을 파고들었고 성과를 냈다. 심리학이 대표적이다.

 

소셜 애니멀은 심리학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연구 사례를 들어 보이며 인간에 대한 근대적 환상을 벗겨낸다.

 

사람은 사실 참 엉터리 같은 존재다. 무척 나약하고 이리저리 휩쓸리기 좋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벌거벗은 임금님을 만날 수 있다. 임금님의 나체는 참 보잘것없고 때때로 흉해보일지 모르지만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힌트를 얻어갈 수도 있다. 사람은 똑똑한 이성을 지녔지만 거기에서 지혜가 나오지는 않는다. 지혜는 의식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나온다. 인간 지성의 진정한 힘은 무의식과 감정,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잘 살아가려면, 사회를 더 좋게 바꾸려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성합리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되 그저 많이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이성보다는 감정과 무의식이다. 감정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정해지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건 무의식에 새겨져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하는 실행모델이다. 실행모델이 모여 인격이 된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무의식이 튼튼하다. 무의식이 건강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의식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멀리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와 부모의 양육방식에서, 가까이는 한 사람이 속해 있는 공동체 문화와 인간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 무의식을 튼튼하게 만드는 건 좋은 관계와 문화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며 살아가는가는 내가 옆 사람들과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에 달려 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는 내가 얼마나 좋은 문화 속에서 지내왔는가를 떠나서 생각하기 힘들다. 한 사회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는 크고 작은 공동체가 얼마나 건강하게 잘 살아 있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양육은 단순히 돈으로 보살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좋은 관계에서 좋은 문화를 전해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학교는 그냥 지식을 전달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훌륭한 실행모델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스스로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기회를 주는 장소여야 한다.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은 개인을 단순히 도와주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의 역량을 북돋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심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로 시작해서 정책 제안서로 나아간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핵심 줄기 말고 곁다리에도 온갖 지식들로 가득하다. 무척 두껍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전체적으로 소설 형식이다. 두 등장인물-해럴드와 에리카-이 태어나서 삶을 다할 때까지 보여주는 드라마 한 편을 보듯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책 끄트머리에 노년을 다루는 부분도 참 좋았다. 나이 먹어감에 대해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심리학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글쓴이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전업 작가다. 그래서 두껍지만 부담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좋은 내용만큼 탁월한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힌트 한 조각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가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걸쳐 행하는 수많은 판단의 집약된 버전일 뿐이다.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본래 감정 차원의 일이다. p37-38.

 

 

웃음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메릴랜드대학교의 로버트 프로바인 교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혼자 있을 때보다 서른 배나 더 많이 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서로 돈독한 유대감을 나눌 때 웃음은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사람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상황이나 발언에 정확하게 맞춰서 웃지 않는다. 웃음을 유발하는 문장 중에 15퍼센트만이 확실하게 우습다. 대신 웃음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감정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에 자기가 긍정적으로 대응한다고 느낄 때 저절로 나오는 것 같다. 웃음은 사회적인 어색함을 덮어주거나 유대감을 형성강화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p74.

 

 

어린 시절의 양육 애착이 인생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인식하는 무의식적인 실행 모델을 강화한다. 많은 학자들이 초기 애착 양상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추적하고 밝혀냈다. p109.

 

 

교사라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해서 주입하는 것 이상의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형성하고, 훈육의 규칙을 흡수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임무다. 이런 일을 하는 교사들은 나중까지 학생들의 기억에 남는다. p131.

 

 

인격은 수백만 개의 작고 선한 영향력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인격형성에는 공동체가 수행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을 배양하기란 매우 힘들다. p197.

 

 

최근에 발표된 한 논문은, 놀라운 성공 뒤에는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살풍경하고 청교도적인 연습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천재성을 평범한 재능과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는 결코 반짝거리는 신의 뜻이 아니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이 보여주었듯이, 그것은 신중한 연습이다. 최고의 연주자들은 솜씨를 갈고 닦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훨씬 많은!) 시간을 들인다. p208.

 

 

언어와 같은 문화적 구조물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문화는 특정한 모형을 뇌 안에 수용하게하기도 하고 반대로 뇌 안에 있는 모형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p229.

 

 

지혜는 특정한 사실을 안다거나 어떤 분야의 지식을 소유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지식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자신감이 있지만 지나쳐서는 안 되고, 모험을 무릅쓰지만 충분한 근거를 가져야 한다. 반증에 기꺼이 맞서며, 이미 알려진 것 너머의 광대한 공간을 느낌으로 느껴야 한다. p252.

 

 

작가 안드레아 돈데리는 세상은 묻는 사람과 추측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묻는 사람은 요청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거절당하면서도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므로 언제나 기꺼이 거절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추측하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며,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 추측하는 문화에서는 긍정의 대답을 확신하지 않는 한 어떤 요청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한다. p281-282.

 

 

사실 사람은(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의 뇌는)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잘 찾아낸다. 뇌는 복잡한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실수를 인식한다. 때문에 시험을 칠 때 답을 적으면서 어렴풋하게 뭔가 잘못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답을 고치는 게 좋다. 수많은 관찰 연구 보고서는, 시험에서 정답을 장담할 수 없는 미심쩍은 답을 다른 것으로 고칠 때 성적이 더 나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379-380.

 

 

처음에 인간은 소규모 집단에서 일하도록 진화했다. 사실 집단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보다 늘 우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널려 있다. 어떤 실험에서, 전체 집단 가운데 75퍼센트가 이른바 와슨 선택 과제라는 복잡한 카드 게임에서 성공했다. 그런데 개인의 성공률은 9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p390.

 

 

한 개인이 잘 살고 못 살고는 의식적인 성취를 거두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무의식적인 기술에 달려 있다. 무의식적인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힘들게 산다. 상사를 공손하게 대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활짝 웃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편안한 얼굴로 사는 일을 더 힘들어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갖지 못한다. 또 굉장한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제안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며, 지금 희생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p493.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보면 노인들은 학습과 성장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뇌는 평생 동안 새로운 연결점 심지어 새로운 뉴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업 기억, 산만한 요소를 무시하는 능력, 수학 문제를 재빠르게 푸는 능력은 분명히 퇴보하지만, 다른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뉴런이 죽고 뇌의 다양한 영역을 연결하는 연결점이 활력을 잃긴 해도, 노인의 뇌는 노화에 따른 효과를 상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스스로 재조직된다. 노인의 뇌는 청년의 뇌에 비해서 동일한 결과를 내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p509.

 

 

빅터 프랭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이 의미를 찾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기부여이다.” 그러면서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인생의 이유why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과정how이든 다 견뎌낼 수 있다.” 그 때 프랭클은 결정적이고 도움이 되는 요점을 적시했다. 인생 전체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려하면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 사람이 살았던 특정한 삶의 특정한 환경 아래서만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p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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