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 - 우주, 지구, 인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
요시다 다카요시 지음, 박현미 옮김 / 해나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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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아본다. 뼈와 근육, 피와 살덩어리로만 봤던 몸을 다르게 상상해본다. 좀 더 작은 세계로 들어가 본다. 나는 닫혀있지 않다. 내 몸은 안으로도 열려있고 바깥으로도 열려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물질이 안팎으로 쉼 없이 드나든다. 내가 먹고 싸고 들이마시고 내뱉는 모든 과정은 사실 화학 반응이다. 내게 필요한 원소를 받아들이고 내게서 필요 없어진 원소를 내보내는 과정이다. 원소들이 내 안에서 춤춘다.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또한 나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우주의 일부이고, 세계와 하나로 이어진다.

 

조금 복잡한 수식만 보면 울렁거리는 문과 쟁이인 내가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책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책으로 화학을 아주 가볍게 슬쩍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개념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꽤 쉽게 알아듣게끔 애썼다. 구어체에 존댓말을 쓰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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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학 시간에 주기율표와 이렇게 만났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친해지지는 않았다.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에서는 주기율표를 다르게 바라보라고 한다. 원소번호 순서대로 보지 말고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그물망으로 보라고 한다. 세로줄은 ’, 가로줄은 주기. 세로줄 또는 가로줄은 비슷한 성질을 갖는 원소들의 모임이다.

 

세로줄로 닮은 원소들의 특징 가운데 재미있는 게 있다. 어떤 원소가 몸에 좋다면 같은 세로줄에 몸에 해로운 원소도 함께 있다는 것. 그런데 몸은 같은 줄에 있는 원소를 아예 같은 원소로 착각한다. 그래서 때때로 무척 해로운 원소를 몸에 좋은 원소와 구별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인다는 것.

 

칼륨과 같은 줄의 세슘, 칼슘과 같은 줄의 스트론튬은 원전사고 때 나오는 방사능 물질로 유명하다. 몸은 세슘을 칼슘으로, 스트론튬을 칼슘으로 착각해서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방사능 피폭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피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칼륨과 칼슘을 많이 먹어두라는 이야기가 있다. 몸에 그것들이 충분하면 반대로 세슘과 스트론튬 흡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몸에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가 많다. 그 밖에도 주기율표 아래쪽의 무거운 원소는 거의 없고 주기율표 위쪽 가벼운 원소가 많다. 무거운 원소보다 가벼운 원소가 우주에 많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우주를 정확히 닮았다. 우주에 많은 것은 몸에도 많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원소는 사람 몸에 필요할 확률이 높고, 무거운 원소는 사람 몸에 해로울 확률이 높다고 한다. 주기율표는 이런 식으로 우주 질서와 사람 몸의 신비를 알기 쉽게 보여주는 친절한 그림지도였다. 무턱대도 순서대로 외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면 인체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로 이루어진 정밀장치인 셈입니다. p85.

 

 

나와 우주가 하나이고 이어져있다는 식의 세계관을 좋아한다. 동양철학에서 많이 봤다. 자연에는 기운이 흐르고, 나는 혼자 존재하지 않고 기운을 타고서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는. 좋은 말이긴 하지만 왠지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 몸을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용광로로 바라보니 눈앞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나는 원소들의 집합이고 화학 반응으로 에너지를 내는 공장이기도 하다. 역시 좋은 말은 어디로든 다 통하게 되어있다.

 

 

승려로부터 만다라란 조화를 이룬 우주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만다라에서는 불상의 배치가 가로와 세로 양 방향으로 깔끔하게 균형이 잡혀있습니다. 그 세계관이 주기율표와 절묘하게 겹쳐진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쩌면 우주의 진리를 탐구해 나가다보면 최종적으로는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이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209.

 

 

근본 원리까지 배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은 원리를 언급하지 않고 현상과 사례만 말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수식을 빼고 복잡한 내용도 걸러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나보다. 하지만 잘 외워서 시험 성적 잘 받을 목적이 아니라면, 과학으로 뭔가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충분한 책이다.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왠지 무서워서 담쌓았던 과거를 아쉬워하는 어른이나 딱딱한 교과서에 지친 학생들에게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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