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호흡에 모두 읽어내렸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을 뼈대 삼아 긴장감 있게 이야기가 잘 짜여서일까.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넓은 만주를 외롭게 내달린 그의 족적이 너무 생생해서일까. 외롭게 악의 시대와 분투하다 서른한 살에 죽은, 영웅의 외투를 벗은 안중근의 젊은 날을 만났다.문장은 역시나 간결하고 이야기 흐름은 흐리멍덩하지 않고 또렷하다. 세세한 내러티브는 작가의 상상으로 새로 엮었지만 사건의 줄기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 없는 낭설과 군더더기는 모두 뺐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그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토와 기타 주변 인물의 내면을 묘사한 대목 중에 단편적으로 잘라서 보면 간혹 작가의 역사관을 오해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대를 그렇게 끌고 간 대세의 흐름과 침략자를 정당화한 논리, 한국의 비극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의 상황 인식의 어떤 단면을 느끼게 해주는, 그렇게 안중근이 걸어간 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광복절 새벽부터 띄엄띄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덮으니 광복절 다음날 새벽 네 시다. 되지도 않는 명분과 말의 성찬을 앞세워 한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힘으로 휘젓고 집어삼킨 그 시대가 새삼 너무 슬프다. 그런 시대에 총을 들어 이토를 쏘아 죽인, 자기를 스스로 변호하지도 않은, 담담하게 포수와 무직으로 스스로를 진술한 안중근의 청춘과 담배팔이를 전전하다가 말없이 그와 함께 총을 들었던 우덕순의 청춘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홀연히 던져버린 그들의 젊은 날과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 같은 사람의 젊은 날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까?
읽던 책을 두고 나간 바람에 근처 서점에서 급하게 사게 된 책이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책을 놓지 못했다.‘고전 그리스‘와 ‘고대 로마‘ 사이에 끼어서 흘러가듯 지나치기 쉬운 헬레니즘 시대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그것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파죽지세로 영역을 확장시켜나가던 무렵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부하들이 사분오열하여 거대한 제국을 나누어 먹은 이후의 시점을 다루었는데, 나는 예전에 이 부분을 가지고 수업할 때 뭔가 임팩트를 주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세계가 팽창하고 사람들의 사유와 삶의 방식이 자유로워지긴 했는데 결국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로마 문명에 잡아먹히고 말았으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전공자로서 많이 반성했다. 이걸 이렇게 재미있게 다룰 수도 있는데, 내 공부가 참 얕았구나 싶어서.바로 그 혼란스럽지만 한없이 드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담아냈다. 농부와 도망 노예, 리라 연주가, 건축가, 올림피아 제전에 참가하는 달리기 선수, 마케도니아 제국의 외교관 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가상 인물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실제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지중해를 가로질러 넓은 세상을 항해하는 사람들의 궤적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데, 특히 아래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스포츠를 군사 훈련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발가벗고 운동하는 체육관이 많았고 거기서 많은 역사가 이루어졌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 또한 체육관에서 운영되던 학교였다.고대 신전은 예배당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신이 사는 집이었고, 대중들에게 그곳은 들어가서 향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오브제였다.올림피아 제전에서 선수가 부정행위를 하면 심판 보조원에게 채찍으로 매질을 당했다.책 막바지에서 주인공이 고된 여정 끝에 벅찬 가슴을 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아름다웠다. 이 노래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악보와 기보법이 전해져서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재연이 가능하다고 한다.살아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찬란하게 빛나라.절대로 슬픔에 휘둘리지 마라.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니언젠가는 그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리라.
글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사진이 그려진다. 책 제목 그대로다. 예를 들면 이렇다.˝언제부터인가 긴 벽이 지붕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불룩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기둥들도 휘었다. 습기 먹은 안개는 오래된 모르타르를 먼지로 풍화시키면서 어디든지 스며들었다. 문짝들도 더 이상 아귀가 맞지 않았다. 수리하면 집은 살릴 수 있겠지만 돈이 많이 들 것이다.˝오래된 동네의 낡은 집은 이런 느낌이어야만 할 것 같다. 이 책은 이렇듯 저자가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글로 채워져있다. 사진을 찍고서 남긴 스케치랄까, 촬영 대상에 대한 감상문이랄까. 아무튼 사진을 잘 찍고 잘 남기는 사람은 이토록 세상을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관찰하고 남기는구나 싶었다.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대단해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이 끝난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에는 이 책이 재미없어서 정말 혼났다. 천천히 그리고 낱낱이 이어지는 묘사가 내게는 다소 버거웠다. 아무래도 내가 묘사형 인간이기보다는 설명형 인간에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내 사진에는 무언가 반짝반짝하는 느낌이 없는 것일지도. 가끔 이렇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걸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한동안 바빴다. 결혼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새 학기를 맞아 일도 참 열심히 했다. 웃고 울고 즐거웠다가 화도 냈다가.삶의 속도가 빨라진만큼 휩쓸리기도 쉬워졌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싶어, 10년 전에 사놓고는 읽지 않았던 불교 서적을 하나 꺼내 읽어봤다. 나이 좀 먹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처럼 감정적으로 헐떡대면서 사는 사람에게 불교 철학은 그저... 보약이다.가볍게 살아라.그저 밥 두 숟가락 떠주고 잊어버리는 것처럼 살아라. 그 누구도 밥 두 숟가락 떠주고 자랑하지는 않는다.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이며, 내가 무엇을 했고, 얼마나 많이 이루고 배웠는지 따위에 집착하면 사는 게 무거워지고 무서워진다.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흐릿한 시력과 부족한 인식 능력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나도, 당신도, 눈 앞에 펼쳐진 세상 그 무엇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허깨비에 불과한 것들을 부여잡고 질척대지 말자. 그렇게 애처롭게 멍청히 살지 말고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라. 그렇게 부디 ‘똑똑하게‘ 살아라.착하게 살라는 것도 아니고, 욕망을 통제하면서 살라는 것도 아니다. 부처는 무엇보다도 똑똑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그게 참 와닿는달까. 심호흡 크게 하고 나도 똑똑하게 보고 지혜롭게 살아보기로 다짐해본다.어렵게 생각했던 금강경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쉽지만 가볍지 않게 핵심을 짚는다. 옛스러운 말투와 어휘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참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사람 좋은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다. 불교 철학에 가볍게 접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설득력 있는 책이다. 앉은 자리에서 책의 대부분을 읽어 치웠다. 지금 어떤 게 어떻게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척 재미있다. 이 모든 내용의 기반에는 ‘데이터‘가 있다.하지만 전체 페이지의 3분의 2를 지난 시점에서, 더는 견디지 못하고 책장을 덮어 버렸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저자가 이런저런 데이터를 긁어모아 ‘해석‘한 현재와 ‘예측‘한 미래가 우울하고 섬뜩하기 이를 데 없다.일거수 일투족을 하나하나 감시 당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아니 일터와 집의 구분과 노동과 여가의 구분조차 흐리멍텅해진 이상한 현실 속에서 일의 과정 전체에 대한 검증을 매 순간 요구 당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시대.사회에서 요구하는 규칙에 숨도 못 쉬고 순한 양처럼 순응하면서 살아가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지금과 한 시간 후가 달라질 수도 있는 엄청한 변화 속에서 부초처럼 힘없이 흔들리는 삶.그런 변화가 좋든 싫든 어쨌든 세상이 변하는 거니까 나는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아니, 기민하게 반응하고 남보다 앞서서 적응하고 스스로를 ‘현행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외마디 고함이라도 질러볼 여지 따위 전혀 안 보이는. 그런 짓하는 쓸모없는 인간 따위는 되지 말고 부디 ‘현명한 사람‘이 되시라고 권유하는 책이라서, 끝까지 들고 읽기가 참 거북한 책이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이런 세상이 정말 온다면 나는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데이터는 말 그대로 건조한 데이터일 뿐,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이끌어가는가는 또다른 차원의, 이를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치적인 사연‘이 존재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에서 데이터를 갖고 보여주는 현재와 미래 또한 이 책을 쓴 저자의 해석일 따름이다. 나는 그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가 그려내고 어쩌면 ‘만들고 싶어 할‘ 세상의 모습에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