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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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을 봤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신과 촌스럽고 어설픈 시골뜨기 남자 나폴레옹을 보는 재미가 있었으나 다소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섞어버리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를 본 김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제대로 다룬 역사책을 읽고 싶어졌다. 최근에 나왔다는 ˝새로 쓴 프랑스 혁명사˝도 있지만 그건 번역이 좀 난잡하다는 평이 있어서, 좀 오래된 다른 책을 골랐다. 무려 초판이 1980년대에 나왔다는 책이다.



사실 프랑스 혁명사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하다. 산을 하나 넘었나 싶었는데 또 다른 산이 나타나고, 그냥 돌아갈까 하고 뒤를 돌아보면 퇴로는 이미 막혀있고. 뭐 그런 느낌이다.

앙시앵 레짐부터 1789년의 혁명, 1791년의 입헌 군주제 헌법, 1793년의 공화제 헌법, 자코뱅, 지롱드, 로베스피에르, 테르미도르 반동, 나폴레옹,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워털루, 왕정복고,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과 2공화국, 나폴레옹 3세, 1871년 파리 코뮌까지 블라블라블라~


이 책은 그 과정을 훌륭하게 정리해놓은 듯하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런저런 최신 학설을 담지는 못했겠으나 이 복잡하고 아리송한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깔끔하고 먹기 좋고 예쁘게 다듬어놓았달까. 특히 나폴레옹이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를 변종 또는 혁명의 배반이라거나 불세출의 영웅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혁명의 중간 정산이자 1차 결산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 부분이 탁월했다.


아무튼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뭔가 마음이 웅장해졌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었고, 우리가 프랑스 그리고 파리라는 단어에서 흔히 느껴왔건 ‘자유‘의 냄새가 그냥 괜히 맡아지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왕의 나라를 국민의 나라로 스스로 싸워서 만들고, 그걸 침략자들로부터 지켜내려고 싸우고 또 싸웠던. 찬탈자들과 도둑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던. ‘혁명‘이 곧 ‘애국‘이었고, 그게 정체성과 전통이 된. 그러다 보니 지금도 반정부 시위를 한번 하면 온 나라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부당함을 그냥 넘기지 못하며, 심지어 경찰이 파업을 하기도 하는. 1789년과 1793년, 자코뱅을 때만 되면 다시 호명하고, 그걸 자기들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그런 나라. 솔직히 부럽다. 그럼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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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일반적인 서양사 개설서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서술은 어렵지 않고 친절하다. 프랑스 혁명을 자세히 궁금해하는 사람이나 영화관, OTT로 나폴레옹이나 레미제라블을 보고서 남은 여운에 뭐라도 붙잡고 프랑스를 더 잘 알고 싶어진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다만, 책이 좀 예스럽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아주아주 옛날 대학 교재나 역사 개설서를 보는 것 같은, 뭔가 거창하게 의미 부여하려 한다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는 점이 옥에 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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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이러했다.

일본을 잘 설명하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위험한 일본책˝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저자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념이 굳은 사람이 보면 무척 불편하고 싸움을 걸고 싶어질지도 모르는 책이라고 하면 독서하다 느껴진 점이 잘 전달되려나?

아무튼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저자 나름대로의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었고, 그 뒤에서 학자로서의 내공이 느껴졌달까. 그래서 같은 저자가 예전에 메이지 유신을 다룬 책을 추가로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연달아 읽은 책이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이다.

한 마디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고 하면 괜찮은 표현일까?

그동안 역사 교사로서 일본의 근대사와 메이지 유신을 설명하는 기존 틀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껴왔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서양의 충격을 받아 이루어진 급격한 도약 또는 순전한 운에서 찾는 기존의 대중적인 설명은, 솔직히 우리 역사가 아니어서 그렇게 대충 설명했다고 핑계를 대기에도 좀 많이 게으른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아마도 이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메이지 정부의 서양화 정책은 막부가 깔아 놓은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린 것이었다.˝



에도 막부는 서양의 접근에 통념보다도 훨씬 민감하고 기민하게 반응했고 중국, 조선보다 한층 빠르게 체제 개혁과 근대화에 착수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1) 이미 일본이 200년간 동시대 최고 수준의 도시화, 상업화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고, 2) 다른 동양 국가보다 서양의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3) 일본 사무라이 일반이 기존 이미지처럼 단순한 무인이라거나 행정 실무 서리가 아니라 학문적 소양과 정치 참여 의식을 갖춘 계층으로 거듭나고 있었기에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킬 핵심 세력까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와글와글 시끌시끌 여기저기에서 일어나서 막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이 모든 변화와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일본은 세계의 대세에 올라타는 데에 성공했고, 그 와중에 막부 체제가 엎어지면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이벤트가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생각보다 일본 정치와 문화에서 성리학이 큰 지분을 차지했으며, 일본의 변혁 과정에서 성리학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일본의 변화를 이끈 막부 말 사무라이들은 알고 보면 각자 성리학을 가르치는 학당을 중심으로 정치 조직을 만들어서 뭉쳤던 ‘칼을 든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아. 일본이 성리학과 단절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하는 거구나. 성리학에는 그저 고인물에 변화를 가로막는 이미지만 가졌는데(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진 이미지는 그러했다), 그런 성리학에도 열정과 에너지가 있었구나.



타성에 젖어 게을러졌던 두뇌에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 책을 함께 읽은 사람이 있다면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학자가 썼지만 참 재미있고 쉽게 잘 썼다. 일본을 어느 정도 알았지만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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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사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조병한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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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읽었던 동양사 개설서 종류보다는 확실히 재미있다. 저자의 말투가 살아있는 서술이라 신기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문명의 파도가 대륙의 서쪽과 동쪽으로 퍼져나갔고, 유구한 중국 문명 또한 그 영향 아래에서 싹을 틔웠으며, 동양과 서양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선진 지역이 되었다가 후진 지역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이 책을 읽는 동안에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특히 서양의 르네상스와 중국의 송-원-명-청 왕조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대비하는 관점이 신선했다. 그리고 이슬람 문명이 그렇게나 대단했던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과 물자는 강과 산맥과 바다를 넘어 흘렀을 텐데, 그동안 내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 꽤나 경직된 것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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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ck 스틱! (15주년 기념판) - 1초 만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 그 안에 숨은 6가지 법칙
칩 히스.댄 히스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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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달라붙는 말을 하려고 한다면

1. 의표를 찔러 말하고
2. 쉽게 쉽게 말하고
3. 믿음이 가게 말하고
4. 구체적으로 말하고
5. 이야기의 힘을 빌려서 재미있게 말하라는 것인데.

책을 끝까지 읽고 보니 결국 이런 내용이었나 싶어서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업하는 입장에서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집어 들었는데 이미 알고 있거나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나는 내용을 인상적으로 잘 짜인 이야기로 엮어야 하는, 즉 내러티브를 잘 살려야 하는 역사 과목을 가르치는 중이다) 크게 얻을 내용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래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가운데 자잘하게 얻어 갈 수 있는 내용들을 주워 담는 시간을 보냈던 듯.

그러나 자기 계발서의 최대 덕목이라는 게 뭔가 참신하고 대단한 말을 해주는 것보다도 뻔한 이야기일지언정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기분을 끌어내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꽤 좋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일화들이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고 응원하고 또 응원해 준다. 나도 수업을 지금까지처럼, 아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이 내가 언제 교실에 들어가나 기다려주고 10년 뒤쯤 찾아와서는 이런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해주는 그런 수업을 만들어봅시다.


* 3번 내용이 무척 충실하다. 결국 믿음직한 근거는 통계 자료에서 찾게 될 텐데, 단순히 숫자 놀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관계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풀어내라는 조언을 읽은 게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 1번을 잘 하려면 결국 질문을 잘 해야 한다. 수업을 재미있게 하려고 해도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역시 ‘적절한 발문‘을 만드는 건 교사의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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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었나?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질문이다.

​19세기 후반은 일본 역사에서 가장 큰 변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며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은 그 중심에 있는 사건이다. 너무 유명한 사건이고 너무 잘 알려진 시기라 이를 다루는 책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여러 책들 중에 거의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를 메이지 국왕의 서사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일본 근대사에 정통한 서양인이 정리한 메이지 국왕 시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기본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는 하지만 일본이나 일본 왕실을 찬양하여 불편한 기분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 책이다. 비판할 지점은 과감하게 비판하면서도(예를 들면 대만 침략이나 한국 강제 병합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 시대에 이루어낸 성취를 우호적으로 평가한다. 그냥 그 정도의 지점에 서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책이 특별한 지점은, 메이지 국왕의 아버지 치세부터 본인 치세까지의 일들을 국왕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당시 시대의 모습을 무척 천천히,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우리가 쉽게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일본 왕실의 전통 의례 모습이라던가, 일본 국왕에게는 통치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종교적인 색채를 띤 의식을 주관한다거나 단카(일본의 전통 시가의 일종)를 잘 짓는 일이 더 중요한 일로서 요구되었다는 따위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메이지 국왕이 태어나서 장성하고 죽는 과정이 일본이 전근대 국가에서 서구화된 근대 국가로 바뀌어가는 여정과 포개진다. 주인공은 국왕이지만 때때로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연들(이를테면 사이고 다카모리라던가, 우리 입장에서 잊을 수 없는 이토 히로부미라던가)이 이야기를 앞에서 끌고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과 관계가 있었던 주변 국가들-중국, 조선, 러시아 등-의 사정도 역시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너무 구체적이라 내용이 길게 늘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



그리고 조선 왕조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무척 가슴이 아프다.

일본이 조선(대한 제국)을 강제 병합한 건 야만스럽고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비난만 해서는 우리가 배울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이 멀쩡한 나라 하나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왜 망하는 길로 가게 되었는가를 짚어봐야 할 일이다. 막바지의 조선 왕실, 그리고 위정자들은 무척 어설펐고, 무능했고, 때때로 지독하게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문제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나라를 당시에 이끌었던 사람들의 선택과 책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 일본은 가능했지만 우리는 불가능했던, 일본은 취했지만 우리는 취하지 못했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자. 그럼 지금 이 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으며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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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2-27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무라이 중심의 에도 바쿠후 시대
가 저물어 가던 무렵, 흑선 내항으로
쇄국으로 일관하던 일본 사회에 외
부의 강력한 충격파가 몰아 닥쳤습니다.
기존 사회 질서에 불만을 품고 있던
하급 사무라이들이 나라를 한 번 뒤
집어 엎어 보자는 사회 변혁에까지
도달했습니다. 물론 내전에 가까운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었
구요.

이웃 청나라와 일본이 엄청난 변혁
을 겪고 있었지만, 왕조국가 조선
의 실질적 지배자들이었던 사대부들
국가 개조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었죠.

현재 우리의 위정자들은 미래에 대
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온탕아 2023-02-27 23:22   좋아요 0 | URL
일본이 기회를 잡았던 사정도, 우리가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유도. 지금 시점에서보면 아쉬운 점이 참 많지요. 이 시기에 만들어진 질서가 지금의 질서를 아직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에요. 이런 책을 읽으며 생각을 많이 해보고 나누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성스런 댓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