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이러했다.

일본을 잘 설명하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위험한 일본책˝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이 책 저자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념이 굳은 사람이 보면 무척 불편하고 싸움을 걸고 싶어질지도 모르는 책이라고 하면 독서하다 느껴진 점이 잘 전달되려나?

아무튼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저자 나름대로의 설득력과 호소력이 있었고, 그 뒤에서 학자로서의 내공이 느껴졌달까. 그래서 같은 저자가 예전에 메이지 유신을 다룬 책을 추가로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그렇게 연달아 읽은 책이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이다.

한 마디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고 하면 괜찮은 표현일까?

그동안 역사 교사로서 일본의 근대사와 메이지 유신을 설명하는 기존 틀에서 부족함을 많이 느껴왔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서양의 충격을 받아 이루어진 급격한 도약 또는 순전한 운에서 찾는 기존의 대중적인 설명은, 솔직히 우리 역사가 아니어서 그렇게 대충 설명했다고 핑계를 대기에도 좀 많이 게으른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아마도 이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메이지 정부의 서양화 정책은 막부가 깔아 놓은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린 것이었다.˝



에도 막부는 서양의 접근에 통념보다도 훨씬 민감하고 기민하게 반응했고 중국, 조선보다 한층 빠르게 체제 개혁과 근대화에 착수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1) 이미 일본이 200년간 동시대 최고 수준의 도시화, 상업화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었고, 2) 다른 동양 국가보다 서양의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3) 일본 사무라이 일반이 기존 이미지처럼 단순한 무인이라거나 행정 실무 서리가 아니라 학문적 소양과 정치 참여 의식을 갖춘 계층으로 거듭나고 있었기에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킬 핵심 세력까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와글와글 시끌시끌 여기저기에서 일어나서 막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이 모든 변화와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일본은 세계의 대세에 올라타는 데에 성공했고, 그 와중에 막부 체제가 엎어지면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이벤트가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생각보다 일본 정치와 문화에서 성리학이 큰 지분을 차지했으며, 일본의 변혁 과정에서 성리학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일본의 변화를 이끈 막부 말 사무라이들은 알고 보면 각자 성리학을 가르치는 학당을 중심으로 정치 조직을 만들어서 뭉쳤던 ‘칼을 든 사무라이‘였던 것이다.

아. 일본이 성리학과 단절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하는 거구나. 성리학에는 그저 고인물에 변화를 가로막는 이미지만 가졌는데(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진 이미지는 그러했다), 그런 성리학에도 열정과 에너지가 있었구나.



타성에 젖어 게을러졌던 두뇌에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 책을 함께 읽은 사람이 있다면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학자가 썼지만 참 재미있고 쉽게 잘 썼다. 일본을 어느 정도 알았지만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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