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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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조각이 모여 소설이 된다. 문학이 삶을 반영하듯, 사소함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를 만든다. 『공터에서』는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을 빼고, 창작자가 생각한 파편을 조립해야 책의 의미가 완성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반드시 써야 하는 장면을 점 찍어 두고 상상력이라는 선을 이용해 그것을 잇는다. 점 찍기는 너무나 간단하고 열띠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선 긋기는 고통스럽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그 선을 긋는 과정이 다소 선명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나, 독자가 집중해야 하는 후반의 서사는 얇다. 작가의 의도일지는 몰라도 개인사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는 파편적이다.


 박상희에 대한 태도도 다소 아쉽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매우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학원 강사를 하면서, 군대에 간 마차세를 기다려 주는 한편, 결혼한 이후에도 큰 다툼 없이 남편을 보필한다. 그녀가 생명을 잉태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나, 별다른 굴곡 없이 마차세를 지지하는 박상희의 존재가 어쩐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능력, 성품, 사랑,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이 인물은 존경 받기 합당하나, 그가 그리는 세계에 과연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여자가 마차세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를 품은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박상희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아꼈기에, 나는 그녀의 연약한 부분과 약점을 더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상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현대사의 단면은 촘촘하게 구현되어 있다. 흥남 철수와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기록과 처절하기 짝이 없는 개인사가 교차된다. 분명히 나는 역사적 사건보다 마차세가 치러야 하는 삶이라는 전쟁에 더욱 몰입했다. 그 시절 모두가 힘들게 살았건만, 그중에서도 마차세는 치매에 걸려 쪼그라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필하다가 자신도 요양원에 들어가는 이도순을 지켜봐야 했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매번 좌절했으며, 오장춘의 꾀임에 넘어가 형의 불법적인 사업에 휘말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에 나는 가슴을 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아주 작은 순간까지 포착하다가,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대기에 대해서는 시야를 넓힌다. 두 축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함은 축적되고, 그것이 마차세의 삶을 이룬다.


 마차세와 마장세의 삶에서 그들의 결핍을 본다. 마차세는 자신을 지우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간직했고, 마장세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마차세는 누니라는 딸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고, 마장세는 린다와 결합하지만, 그녀의 떠남으로 인해 상처가 악화된다. 각 인물이 통과한 삶의 여정이 새옹지마 같았다. 마차세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마장세는 사업으로 잠시 성공을 얻은 듯 했지만, 그 실체가 들통나자 모든 것을 잃었다.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는데, 같은 역사를 겪었는데, 형제였던 두 사람은 왜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조리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현재 너머를 보는 여유가 주어진다.


 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누니가 통과했던 현실이 지금과 다른가? 어쩌면 격동의 시기였던 과거보다 오늘이 훨씬 더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대통령 암살, 독재라는 거대한 암흑은 지나갔으나, 개인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벌이가 안정되고 기술이 발전했지만, 행복은 찾아왔는가? 각자에게 사랑할 여유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여전히 공터에서 어떤 해답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실마리를 실시간으로 놓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거대한 서사에 목을 매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포를 직면하고, 맞설 수 있기를. 감당했던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날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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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예배 종교개혁자들과의 대화 시리즈 1
안재경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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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역사와 예배의 변천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쓰였다. 종교개혁은 사실 회복이라는 구절이 와 닿는다. 우리의 예배도 언제든지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언제나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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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하나님 믿음의 글들 276
안재경 지음 / 홍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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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직접 선물 받은 책은 『고흐의 하나님』이 처음일 거야.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나는 고흐의 이름만 들었지, 그의 작품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어. 고흐가 신학교까지 갔다가 쫓겨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 하나님을 사랑했고, 가난한 자들을 품었기에 그들처럼 살고자 했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기에 거듭되는 발작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리 아름답지 못한 작별임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나 봐. 혹자는 그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동행했다면, 결과만으로 빈센트의 인생을 평가하기에는 무리야.


 이 책은 고흐의 작품을 테마별로 전시하고,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큐레이터 같아.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림들의 의미가 선명하게 박혀. <감자 먹는 사람들>에 성찬 공동체가 담겨 있다는 사실, <별이 빛나는 밤>에 주님과의 합일을 꿈꾸는 소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 빈센트의 삶과 그의 작품을 별개로 놓을 수 없어.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그림을 해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만, 어쩌면 미술이야말로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도 들어. 화법이나 기풍은 흉내낼지 몰라도 그 안에 영혼이 없달까? 인생이 없는 존재이기에 어떤 그림에도 자신을 투영할 수 없겠지. 새삼스럽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야.


 빈센트의 삶을 들여보고 있노라면,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의 가사가 떠올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난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그래서 그는 유럽 전역을 걸으며 마주한 세상을 영혼에 담았어. 일본의 자연 친화적인 사상과 불교에 매료되기도 해. 거리를 방황하는 과부를 거두어 그녀와 그의 아이를 책임지려 하기도 해. 하지만 그의 삶은 결점투성이였어. 동생 떼오의 집에 머무르며 손님들에게 화를 퍼부었어.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래서 평생 혼자였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빈센트에게 엄청난 절망이었을 거야. 눈앞의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 놓였겠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통과해야 하는 믿음의 여정도 고흐와 같을지 몰라. 주님께 내 삶을 드린다고 결단하고, 그분의 사랑을 닮고 싶다고 간구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종교 공동체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피하기도 해. 믿음이 충만해졌다가도 삶의 폭풍 속에 꺾이기도 하고,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 그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막연하게 기도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말은, 나의 것을 정말 모두 내려놓았는지 묻고 싶어.


 고흐에게는 그림이 자신의 정체성이었겠지. 이것을 포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야. "주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화가로서의 삶도 포기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어려웠을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고흐를 사용하기 시작했어.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의지로 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은사를 쓰기 시작한 거야. 주님께 내 삶을 드리는 것은 모든 소유와 욕망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니야. 그런 삶도 참 귀하지만, 자신의 구원밖에 이루지 못하지. 고흐는 다시 세상에 보내졌어. 외로움과 궁핍함이 함께 했지만, 그렇기에 낮은 자들과 위태로운 자들의 마음을 이해했을 거야. 그리고 비로소 그의 붓은 자신의 뜻이 아닌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지. 누군가는 렘브란트처럼 기독교적 소재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 거야. 그 말이 맞아. 하지만 다르게도 볼 수 있지. 그것이 예술의 특징이야. 정답을 강요하는 이 세상의 원리 속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고 외치는, 시대의 흐름에 정통으로 거스르는 것이 문화의 옷을 입은 예술이 쓰임 받는 방식이겠지.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니? 사실 정답은 나와 있어. 사랑하기 위해서야. 그러나 막상 세상에 발을 들이면 말로는 너무 쉬웠던 사랑이 삶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알게 돼.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때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니까. 언제나 정답을 알고 난 후에 실천에 옮기는 것이 지혜롭고, 그렇지 않은 자를 미련하다고 말하는 추세야. 먼저 사랑을 받아야만 그에 대해 반응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세대야. 그러나 항상 사랑은 먼저 마음을 여는 자에게 허락되더라. 사랑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결국 주님의 시선을 갖출 수밖에 없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 유일한 존재니까. 전부를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순종하는 자에게 사랑의 실마리가 주어지더라.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상처 받고, 기꺼이 낮아지고, 기꺼이 손해 보는 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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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생각수업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1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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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긴 했지만, 신선한 전환점을 주었다는 점에서 독서의 의의는 충분했다. 테스트 결과 나는 전체론에 조금 가깝다.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의 딜레마, 예술에 대한 토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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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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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모순으로 가득함을, 인간은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인과 관계를 설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여서 만사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로 삶이란 설명하려 할수록 그럴 수 없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던 그 이유가 미움의 계기가 되고, 누가 봐도 보필인 사람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보다 행복에 가깝다. 무엇보다 각자의 인생에게 반대편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다. 부족한 아비를 둔 자식은 그 아비를 외면하려고 하나, 끝내 그를 포기할 수 없고 그를 닮아간다. 가난에 진절머리가 난 자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부자는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결핍이 있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해한다.


 『모순』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구한,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나 속은 모순으로 찬 안진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 삶의 편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솔직한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끝내 그녀가 통과하는 비극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인 듯이 말이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재회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 상황에서 진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할 뿐이다. 누구한테 들려주어도 어리석었다고 말할 짓만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이 오래된 소설은 안진진의 작은 다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던 그녀는 담담하게 가난에 저항했고,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던 이모를 따른다. 자유로운 아비를 끝내 사랑하는 어머니, 용서를 넘어서 불구나 다름 없는 남편을 돌보는 어머니를 거부한다. 나영규는 철저히 계획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고, 김장우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했다. 안진진은 어떤 것은 선택으로, 어떤 것은 받음으로 엇갈린 운명을 맛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께 돌아가고, 이모부와 다름 없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행복에 잠겨 있는 줄 알았던 이모는 불행과 불안 속에서 침식되고 있었다.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상실을 겪음으로 안진진은 인생이 모순투성이임을 이해한다.


 아마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모순은 이것이 아닐까. 죽음을 받아내는 것은 산 자의 몫이다.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일은 오직 생존자의 영역이다. 죽은 자가 통과한 영역을 끝내 남겨진 자는 알 수 없음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리라. 세상살이에 놓인 우리는 종종 이러한 논의를 잊고, 외면한다. 마치 죽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타인의 고통과 몰락이 그들 자신의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산 자들끼리 죽음에 대해 나누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모순이다. 아마도, 죽음이란 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인생의 모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유일한 관념이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인생의 격언으로 삼는다. 마치 주어진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선조들의 조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라틴어 경구가 완성되려면 반드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동반되어야 한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현재는 너무나 소중해진다. 누구도 지금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꿈꾼 자에게만 진정한 오늘이 주어진다. 그저 눈앞의 즐거움만을 따르며 산다면, 반드시 자기 안의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좌절하고 아예 무너져버리느니, 우리의 일상을 적당한 무지와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고통으로 채우는 것이 오히려 행복에 가깝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완벽하게 건강하고,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를 꿈꾸며 살아간다면, 글쎄, 그 꿈이 당신을 좀먹을 것이다. 인간의 자체적인 모순과 불완전함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미련하게 살아가도, 조금은 더 손해 봐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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