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서는 경제학 서적보다는 종합적인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 경제가 애초에 사람들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잉글랜드의 부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비교해가면서 철저하게 분석한 애덤 스미스의 집념이 느껴진다.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기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당시 유행했던 만연체를 생각해 보면, 경제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이 쓰인 18세기에 쓰인 경제관이 오늘날에 어떻게 변했는지, 또는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확인하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국부론』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경제'를 쓰려면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잘 버는 방법이나 수입을 유지하는 기술을 소개하는 것은 경제보다는 투자 서적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세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비판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당장의 이윤을 얻기 위해 착취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파국을 초래한다. 스미스가 동인도회사의 독점이나 중상주의를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이 방대한 저서를 쓴 이유도, 현재의 상황을 직면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나 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저자가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경제와 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 교육 제도나 십일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보고 나면, 그가 사회의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분야들 간의 상관관계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18세기에 쓰인 경제학 서적이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이 돋보이기에 오늘날 다시 읽어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세련된 느낌을 준다. 경제학 분야, 아니 인문학 분야에서 영원한 고전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므로 노동은 명백히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하고 정확한 척도이자, 유일하고 보편적인 척되다. 언제 어디서든 다른 상품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뜻이다. - P57

금과 은은 원래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가장 가치가 낮다. 모든 국가 중 가장 가난한 야만인들 사이에서는 금과 은은 거의 가치가 없다.
곡물은 한 나라의 대도시에서 시골 오지보다 항상 더 비싸다. 하지만 이는 은이 실제로 저렴해서가 아니라 곡물이 실제로 고가여서 생기는 결과이다. 은을 어떤 국가의 오지로 가져가는 것보다 대도시로 가져가는 것이 더 적은 노동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곡물은 훨씬 더 많은 노동이 들어간다. - P236

모든 문명사회에서 대규모 상업은 주로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 상업은 원자재와 완제품의 교환 형태로 이루어지며, 직접 물물교환을 할 수도 있고, 돈을 매개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돈을 대신하는 다른 증서로 거래를 체결할 수도 있다. 농촌은 도시에 생계 수단과 제조 원료를 제공한다. 반면 도시는 농촌 주민에게 완제품 일부를 되돌려 보냄으로써 이러한 농촌의 공급에 보답한다. 생계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며, 그런 물자를 재생산하지도 못하는 도시는 그 부와 생계를 대부분 농촌으로부터 얻는다고 할 수 있다. - P428

남한테는 주지 않고 혼자 독차지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통치자들의 비열한 원칙이었다. - P466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관세 환급은 수출 장려 물품이 실제로 해외에 수출될 때만 유익하고, 그 물품이 몰래 국내 시장으로 재수입되는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품목들, 특히 담배에 대한 환급은 여러 사기 행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사기는 국가 수입과 공정한 거래자 모두에게 해로운데, 그런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 P565

그러므로 독점 회사는 모든 면에서 해롭다. 그런 회사들이 수립된 국가에 언제나 불편함을 안기고, 불운하게도 그 회사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파멸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 P722

선생을 관리하는 당국자가 선생 자신이 구성원인 대학 또는 대학교에 있다면, 그리고 다른 구성원 대다수가 그와 같은 선생이라면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런 대학의 선생들은 서로에게 무척 관대하다. 따라서 교원 각자는 교직의 의무를 방치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다른 선생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동의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는 대다수 교수가 오랜 세월 동안 가르치는 척하는 것마저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 P852

각 대학에서 문학이나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이 아닌 학장에 의해 지정되고, 선생이 태만하거나 무능하게, 엉터리 강의를 해도 학생이 학교의 허락 없이 다른 선생으로 바꾸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런 규정은 같은 대학 선생들 사이의 경쟁을 크게 줄일 뿐 아니라, 선생이 제자에게 부지런하게 관심을 보일 필요를 크게 줄인다. 그런 선생은 학생에게 수업료를 후하게 받더라도 수업료를 전혀 받지 못하거나 봉급 외 다른 보수가 없는 선생처럼 학생을 등한시할 것이다. - P853

모든 세금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든지 혹은 호주머니 밖에서 나오든지 간에, 국고에 꼭 들어가야 할 금액 이외의 것은 징수되지 않도록 고안되어야 한다. 세금이 국고에 납부되는 것 이상으로 국민 호주머니에서 많이 나오게 되는 경우는 다음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세금을 부과하려면 많은 수의 관리가 필요하므로, 이들의 급여는 세금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들에 관한 특전은 국민에게 또 다른 추가 세금과도 같다.
둘째, 세금은 국민의 근면한 노동을 방해하고, 생계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특정 사업 분야에 전념하려는 의욕을 꺾는다.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더 쉽게 납세하도록 일부 기금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 P926

따라서 그런 세금은 공평하게 만들고자 하면 전적으로 임의적이거나 불확실해지고, 반대로 자의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만들고자 하면 완전히 불평등해진다. 세금이 가볍든 무겁든 불확실성으로 불만은 무척 커진다. - P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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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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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펜을 들어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아니 생존자들을 만나 아픈 기억을 되뇌이기까지, 비극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기까지. 소설은 그 허구성 때문에 종종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차라리 『소년이 온다』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길 바라게 만든다. 다름이 아니라,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가 너무나 황폐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지배욕이다. 상대의 삶과 죽음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이 초래한 수많은 역사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실히 그 힘을 떨치고 있다. 권력은 종종 그 지배욕이 당연한 것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권력이 행사된 자리에는 생명도, 인간성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들다. 소년의 이름과 꿈과 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차곡차곡 완성된 이 소설의 페이지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했을까?"라고 질문했다. 내국인에게 반동분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얼마든지 잔인하게 학살해도 된다는 허가를 내렸다니, 그리고 자신의 승진과 돈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수락했다니, 원하는 자백을 듣기까지 수감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유린하다니, 어떻게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 있을까? 누가 그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부여한 것인가? 그 수많은 질문에 위정자들은 "권력"이라고 대답하고, 억울하면 힘을 기르라고 나를 도발한다. 그렇게 세상에 부조리가 판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면, 네가 힘을 길러서 그것을 바꿔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역사는 알고 있다. 그날 광주 사람들이 강했던 이유는 한 명 한 명이 연약했기 때문임을 말이다. 진정한 힘은 약자에게 있다. 물론 고문과 학살에 희생된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은 무슨 말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에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아니 애초에 전두환의 집권과 비상계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체제가 올바르게 작동했더라면 5·18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작점을 더듬어 가보자. 개인은 세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힘을 기른다 한들,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몰아치는 파도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날 광주 시민들이 보였던 작은 용기는 거대한 권력에 휩쓸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는 황폐함만 남아 있었다.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통곡하고, 찾아내지 못한 유골들에 애통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밝혀짐에 따라 변화는 시작된다.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 성희....... 권력이 군홧발과 탱크로 짓밟았던 사람들의 몸에서 영혼이 솟아난다. 그 어떤 무기와 억압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순결한 정신이 다른 이들의 마음으로 이전된다. 그곳에 있었던 어떤 이들의 희생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다시 수많은 이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그 대가로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시간을 돌렸을 때 몇 번이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대답하리라. 고결한 양심은 그런 것이니까. 자신의 안위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손해와 실패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은, 인간의 역사를 피로 얼룩진 지배욕에 맞서온 강력한 힘이니까.


 역사는 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찰나의 지배욕을 맛보기 위해 고결한 양심을 버린 이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영원한 악인으로 기록된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역사는 어떤 이도 그것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끊임없이 "억울하면 힘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해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약자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권력의 밑바닥으로 갈수록, 나의 욕망을 포기할 수록 우리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곳에는 어떠한 사상도 설명하지 못한 신비한 힘이 있다. 권력자들이 그토록 없애고자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나는 그 힘을 믿고 나아가려 한다.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꽃을 피우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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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집 - 2001년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품집
은희경 외 지음 / 개미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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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에게는 두 가지 눈이 있나 보다. 하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는 냉정한 시선이다. 거기에는 꽤 큰 대가가 따르는데, 우선 많은 적이 생긴다. 진실을 밝히거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소설가란 '요란 떠는' 족속에 다름 아니리라. 하지만 소설가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길을 기꺼이 걸어가기에 그러한 시선에 잠시 주눅이 들지라도 멈추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따뜻한 시선이다.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라도 줄 수 있다면, 자신의 인생이 다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한다. 그때 그들은 묻는다. "당신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소설가는 대답한다. "나도 한때 당신이었습니다."


 모든 수상작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상을 받은 은희경 작가의 『내가 살았던 집』이 초반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몇몇 특정한 표현을 제외하면 서사가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고 후반부 작품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인상 깊었던 것은 「자미원에는 어떻게 가는가」가 아닐까 싶다.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 은혜와 닥터 정, 참전용사 박 등이 현지에 방문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독자를 베트남 땅에 올려놓고, 거기서 있었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다. 새삼스럽지만,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비록 단편이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을 고스란히 현대에 옮겨 놓는 데에 성공한다.


 또 하나 기억나는 단편은 「삭매와 자미」이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몇몇 수사적인 표현이 추가되었을 뿐, 역사와 크게 달라진 서사도 없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용맹한 장군 삭매와 그가 사랑했던 자미, 굽이치는 강을 달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여인을 바치라는 말을 애써 무시하고 급류에 활을 쏘고 돌격을 명령하는 어리석음, 사랑에 눈이 멀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비극을 초래한 역사가 거기에 담겨 있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집단보다 우선시 여겨 그 공동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또는 파멸 시키는 우화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약 25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현대의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사리사욕보다는 공공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마음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지켜지는 일이 상당히 드물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단편은 「사심」이다. 한 여배우의 회고록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 성장한 주인공에게 그 상처가 어떻게 발현되고, 이후의 결혼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각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찾아와 괴롭게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그녀가 느끼는 바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 안에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넘나드는 인식이 잠재한 것은 분명하다. 좋은 어른에게 양육되지 못한, 사랑에 결핍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이 이후에 어떤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는지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이외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감상평은 비교적 오래된 단편 소설을 많이 봐서 좋았다는 것이다. 문학의 길을 담담히 걸어가는 이들은 이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가볍게 읽은 단편을 쓰기 위해 혹자는 수 개월을, 혹자는 수 년을 공들였으리라. 그 노력의 결과를 편하게 감상하며, 비판까지 하고 있자니, 문득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정신, 즉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작가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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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 - 예수님의 은혜를 늘 누리며 그분을 닮아가고 싶은 당신을 위한 묵상집
햇살콩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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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아서 읽게 된 책. 활자 간의 간격이 지나치게 많은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전하는 내용이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든다. 묵상에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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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보급판 문고본) C. S. 루이스 보급판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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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작은 악마가 살고 있어요. 날 떠나지 않는 유일한 친구죠. 그 얜 끊임없이 내게 말해요. You are the most useless, worthless person I've ever met." - 디어클라우드 <Bye Bye Yesterday> 중


 퇴마나 오컬트 영화에서 보는 악마의 형상은 기괴하고 공포스럽긴 하지만, 우리 삶에 작용하는 지점은 매우 작다. 그러나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악마가 부추기는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악마는 아주 교묘하고 은밀하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이길 힘이 전혀 없기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인간을 무너뜨리고 그 영혼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악마는 오로지 자기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으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버러지 같은 존재'인 인간은 물론이고 동료 악마를 희생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C.S 루이스의『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을 때는 다른 신앙 서적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악마가 지껄이는 말들에 현혹되지 말 것, 그들도 인정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사랑을 잊지 말 것. 내가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스크루테이프가 계속 언급하는 '환자'에 해당하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지 짚어보아야 한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 교만한 마음, 세상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은 악마들이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다. 인간이 자신의 영적 타락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그들은 원한다. 악마들은 조금의 유혹에도 인간이 흔들리고 스스로 넘어질 수 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 이들에게도 고난과 시험을 아낌없이 준다. 그러나 악마들은 그것이 구원자의 큰 뜻 아래에 있는 일임을 결코 모른다.


 특이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이, 악마의 사역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논쟁이 예상될 테지만, 악마들은 그것보다는 개인을 공략하는 일에 집중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조금씩 얻어간다. 세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외부의 사건들은 나의 믿음을 흔들 수 없다.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우상이나 그릇된 욕망이 내 마음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욕망, 상대를 지배하려는 갈망,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행위가 나에게는 더 무서운 일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분명 독특한 책이다. 철저히 악마의 시점에서 인간을 무너뜨리는 법을 쓰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찾게 되니까.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반박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의 위대함을 부인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했다. 예수님을 '원수'라고 부르며, 그를 조롱하는 듯 보이지만, 악마들조차 그를 인정하고, 또 존경한다. 세상의 어떠한 가치도, 어떠한 업적도 그분의 놀라우신 사랑에 비견될 수 없다. 악마의 입장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성취가 얼마나 하찮겠는가? 또한,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믿음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모든 업적들보다 우리가 얼마나 귀하겠는가? 악마와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자명하다. 우리가 할 것은 그저 그분의 품에 안기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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