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해마다 3.1절이면 기분이 우울하다.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기리느라 마음이 숙연해지는 이유도 있지만, 그 때가 되면 어김없이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 투사들의 후손이 비교되곤 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팔았던 사람들은 일제치하에서 호의호식한 것도 모자라 그 후손들까지도 잘 먹고 잘만 사는데 독립 투사들의 후손은 하나같이 비참하게들 산다. 가족이 독립 운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못 먹고 못 배우는 등 온갖 고초를 다 겪은 것으로 모자라 자식에 자식까지 가난과 고통이 되물림 되고 있다. 
 

 광복 당시 국내에 세력이 없었던 이승만은 친일파들을 끌어모아 정권을 세웠고,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그 후로도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미 지나간 일을 자꾸 들추어서 무엇하느냐고, 과연... 그럴까? 개인을 위해 나라를 버린 이들을 내버려두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이들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가 또다시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자신을 내던지겠는가 말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 책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출간된 책으로,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애써왔던 이수광님이 러시아 독립 운동의 대부 최재형과 안중근 의사가 활동했던 독립운동지를 둘러보고 글로 엮은 것이다. 다가오는 10월 26일이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의거 당시의 나이는 불과 서른 한 살, 한 여자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사실이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 

 
장부가 세상에 태어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 날에 대업을 이룰꼬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장부가>, 안중근

 

  이야기는 러시아령 자루비노로 떠나는 페리호의 갑판에서 시작된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 직전에 썼다는 장부가를 떠올리며 출항을 기다리는 장면을 읽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한 것이 긴장감과 숙연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용면에서 보면 기행문 형식의 글과 안중근 의사 1인칭 시점의 글이 교차되고 있다.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둔 안중근 의사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는 내용으로 독립 투사 안중근과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아내를 그리는 마음이 애틋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 시대에 남성상과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전첵적으로는 재현이 적절하게 가미된 한편의 역사 다큐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안중근 의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하여 처자를 둔 가장의 몸이었으나 일본에 유린당하는 나라를 두고 볼 수 없어 독립군을 조직하기로 한다. 최재형의 힘을 빌어 독립 자금을 마련하고, 일본에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동포들을 설득하여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도 거두었지만 쓰라린 패전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겪는다. 무장 투쟁에 실패한 후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고 3년 안에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죽이지 못하면 자결하겠다는 혈서를 쓴다. 그날의 의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후 "우라 코레아!!(대한제국 만세)"를 외쳤던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독립군 소속이며 일본과의 전쟁 포로로 대우해 줄것을 요구하였다. 재판 과정에서도 일본의 만행과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열거하며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으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단순 살인범으로 몰았고, 단 여섯 차례의 불공정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른다. 
 

 그날의 의거는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으며, 국제사회가 주목했던 세기의 사건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것은 그날의 의거를 위해 희생했던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금을 마련하는 것부터 의거 이후에도 많은 이들의 희생 뒤따랐다는 사실에 또 한번 마음이 숙연해 졌다. 안타까운 것은 죽은 후에라도 광복된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재형을 비롯한 연해주의 교민들이 유해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일본은 유족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매장해 버렸다고 한다. 책을 덮은 후에도 죄스러움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문득 학창 시절, 국사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방학을 앞둔 시점이라 다들 마음이 풀려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선생님께 노래를 불러달라며 떼를 쓴 적이 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선구자'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고,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그 심각한 표정에 오히려 큭큭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1절이 끝나고 2절, 3절로 이어지자 웃음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가슴 뭉클함을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비소설 분야 읽으면서 이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책을 읽으면서 '선구자'의 가사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니 가사 한 구절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이역 하늘 바라보며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노라 다짐했던 선구자들, 이름도 빛도 없이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이들을 떠올리니... 심장이 죄여오는 것만 같다. 안중근 의사는 그들을 대신하는 대명사로서 우리의 선조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불멸의 기억, 불멸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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