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아이라 재판소동
데브라 하멜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기원전 4세기경 법정 고소를 당한 한 여인으로 인해 아테네가 술렁인다. 네아이라는 어린시절 유곽에 팔려 스무살이 넘도록 창녀로 살았다. 그녀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유곽 주인에 의해 다른 남자에게 팔릴 처지가 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자유의 몸이 된다. 그 후 스테파노스를 만나 30여년이 넘도록 함께 살았고 쉰 살을 넘긴 나이에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그녀의 죄목은 아테네 시민법을 어겼다는 것. 당시 아테네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연인 관계는 될 수 있으나 공식적인 부부가 되는 것은 불법이었고, 자식들 또한 부모가 모두 시민권자여야만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있었다. 재판의 쟁점은 결국 '노예 출신인 네아이라와 아테네 시민권자인 스테파노스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의 고소인은 아폴로도르스라는 인물로 네아이라, 그것도 쉰이 넘은 늙은 창녀에게 무슨 원한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아폴로도르스의 의도가 네아이라에게 있지 않고 정치적으로 맞서고 있었던 스테파노스에게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아폴로도르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네아이라는 다시 노예가 될 것이고, 스테파노스 또한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서는 아폴로도르스가 무척이나 비열한 사람으로 보인다. 재판 과정에서 스테파노스와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스테파노스에 대한 복수를 위해 네아이라를 고소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는 있으나, 한 여인의 비참한 과거를 낱낱히 들추어내는 추잡한 짓은 용납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 책은 웅변가 데모스테네스 작품 전집에 있는 연설문 중 아폴로도르스가 쓴 것이라고 추정되는 네아이라 사건에 관한 연설문(변론서)을 바탕으로 서술되었다. 솔직히 지금의 법체계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대 그리스 법정의 엉성한 재판 과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우선은 501명이나 되는 배심원 수도 놀랍거니와 신정한 재판정에서 왜곡된 정보를 말하거나 아예 거짓말을 하고, 관련 법률을 엉뚱하게 적용하는 것이 흔했다는 사실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증거보다 감성에 치중된 특이한 재판이다. 때문에 아폴로도르스는 네아이라의 과거와 부도덕함을 들춤으로써 '범법자일 것이다'로 몰아가는 주장을 펼치는데 사실상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   

연설문의 헛점에 공감하며 아폴로도르스의 변론이 무리한 주장이란 생각으로 기울면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송사는 양쪽의 변론을 모두 들어야만 하는 것인데 고소인의 연설문만 존재하다 보니 생긴일이다. 저자의 서술방식도 자신의 의견을 살짝 비치는 듯 하다가 다시 생각의 여백거리를 남기는 식으로 전개되는데 객관적인 관점도 중요하지만 약간은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내용면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우며, 소설로 씌여진다는 가정을 해보면 모티브 또한 훌륭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아름다운 고급 창녀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 그리고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또 다른 남자(들)의 등장...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 와서 아폴로도르스의 연설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혹은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려 2,500년전 아테네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폴로도르스의 연설문은 비록 엉성하고도 불완전할지언정 당시의 정치, 문화, 노예제도, 종교행사등 수많은 정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끝으로 이 사건의 판결에 대하여는 동시대의 다른 문서를 통해 추정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고대 사회를 재현하는 것도 퍼즐을 맞추는 과정처럼 느껴졌는데 사건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연구하는 어려움이면서 또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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