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 현실에 대한 통합적 비전의 등장
에르빈 라슬로 지음, 변경옥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연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었다. 주말내내 이불빨래며 눅눅해진 집안을 말리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소파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며 커피한잔을 마시다 보니 그제서야 어깨죽지가 욱신거린다. 일기예보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기상청도 지금쯤 한숨 돌리고 있겠지. 지질 특성상 비가 내리기 무섭게 지하로 빠져버린다는 제주도에서조차 유례없는 물난리를 겪었다고 할 정도니 이번 장마아닌 장마가 특이하긴 한가 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는 10여전 전부터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미 예견되어진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견되어진 상황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렇다쳐도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대책있는 예견'을 기대해 본다.  

 과학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광범위해서 명쾌하게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저자는 과학에 대해 관찰을 하고, 측정하거나 계산하여 기록하는 학문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였다. "과학은 인간이 세계와 세계속의 자신을 이해하려는, 영원한 추구의 일환이다. p158 " 라는 주장인데 한마디로 과학은 '의미'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대한 과학자들, 현대 과학의 창시자들은 대부분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신학,문학,예술등 다방면에 능통했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영성과 과학 두 분야있어서 통합적 사고를 한 사람들이었다. "의식과 정보가 스며들어 있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으로 진화하는 우주, 이것이 다시 마법에 걸린 우주다. p.160"

흔히 인체를 '소우주'라고 표현한다. 인체의 신비스러움과 긴밀성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생각한다. 우주 또한 놀라운 긴밀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기하게도 인간(특히 인간의 마음)과 우주 사이에는 더 큰 긴밀성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사물들을 연결하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아카샤' 라고 이름지었다. 아카샤는 창조가 시작될 때 유일하게 존재하였던 만물의 기초가 되는, 만물이 되는 매질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생애의 흔적들이 아카샤장에 보존됨은 물론이고, 인간의 의식이 아카샤장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들에게 열린 상태', '영계 소통', '환생'에 이르기까지 초우주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책의 반정도를 차지하는데 상당한 이해력을 요하고 있다.    

우리 인간을 '거대한 생명공동체'의 일부로 보았을 때,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가 맡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그것의 본절적 가치를 위해, 다른 것들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를 파괴한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의 무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쟁점은 인간-지구-우주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에 대한 것으로 영성과 철학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였다.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대해 기본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책 읽는 내내 이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했다.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다다르니 결국은 '현실', 우리앞에 직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희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 기후'라는 말도 자꾸 듣다보니 익숙해지려 한다. 그것이 두렵다. 바닷가에 해파리가 넘쳐나고, 가끔씩 거대오징어 같은 특이한 바다 생물의 출현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이상의 파괴를 멈추고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리 후손을 위해 이 행성을 보존해야 겠다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