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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두 편을 읽었다. 찰스 램의 [굴뚝 청소부 예찬]과 밀란 쿤데라의 [만남]이다.

[굴뚝 청소부 예찬]이 소소한 일상 생활에 대한 기억 및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에세이라면 [만남]은 작가가 프랑스에서 지식인들과의 우연적인 만남과 대담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현대성의 철학적인 사유에 대한 비평 에세이에 가깝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세이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에세이는 저자의 타자 그 것이 사소한 일상사에 관한 명상이든 예술과 문학에 관한 철학적 사유이든 상관 없이 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주가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을 가진 문학 장르로 독자가 이에 공감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부조화를 피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찰스 램은 [굴뚝 청소부 예찬] 구석구석 마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으나 나에게는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전혀 울림이 없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자랑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 [굴뚝 청소부 예찬]에서 두 장의 리포트 과제를 위해 한 장 분량의 내용을 글자 크기나 간격을 조절하는 꼼수로 늘려 보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밀란 쿤데라의 [만남]은 여러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예술적 비평과 소설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에 대한 깊은 사고를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거론하는 작가들의 대부분을 나는 알지 못하며 그러므로 그의 비평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밥에 김치만 먹다가 갑자기 프랑스 풀코스 요리를 먹으려고 하니 영 식욕이 나지 않고 일단 들어간 음식이 소화되지 않는 꼴이다.

 

그리고 위 두편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격려와 위로' 한 답시고 요즘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에세이들이 참 불편하고 불만이다. 워낙 그런 부류의 책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 적절한 처사일지 모르지만 꼭 이말만은 하고 싶다. 개인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 정, 모든 인생의 상처는 몇 줄의 아름다운 은유나 그럴싸한 아포리즘 따위로 치유될 수 없다. 이런 부류의 책들을 잠시 휴식하는 차원에서 물 한 모금 먹는 정도 이상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위험하며 경계할 일이다. 

 

요즘 게을러져서 책도 읽기 귀찮고 읽은 책도 영 별로다. 장마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슬럼프가 강림하신 것 같다. 그래서 기분 전환 겸 책 몇 권을 아낌없이 질러 버렸다. 도착한지 이틀이나 됐지만 아직 열어 보지도 않았다. 다른 박스들이 기다리고 있어 주저하고 있지만 마냥 저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하지만 급할 것은 없다. 이 번에 다시 한번 느끼지 않았나? 내 분수와 능력에 맞지 않는 과욕은 자존심만 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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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응모했던 이벤트에서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전집을 경품으로 받았다. 올해는 뭔가 되겠지 하고 막연한 희망 같은 게 있었는데 이 책들이 나한테는 소중한 행운임에 틀림 없다고 자위해 본다. 안그래도 How to Read 시리즈에 좀 지루함 - 사실 지루했다기 보다는 탈진을 동반한 무기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소설 전집을 떡하니 받아 보니 마음도 뿌듯하고 무엇보다 알라딘과 시공사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번역이 무척이나 깔끔했다. 난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번역자를 알라딘에서 검색해 봤는 데 옮긴 책이 무려 149권에 다다른다고 하니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6월은 시간적 여유가 생겨 이 번 달은 책 많이 읽고 리뷰도 열심히 쓸 작정이다. 물론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서도 말이다. 하지만 전에는 항상 책 읽고 바로 멍 때리는 게 다반사 였는데 요즘 몇 자 끄적거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머리에 남는 게 있는 것 같아 계속해서 힘닿는 데까지 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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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히틀러' 를 읽었다. 라캉을 읽고 나서 다음 책으로 푸코, 데리다, 니체, 비트겐슈타을 읽기에는 잠깐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꼈다. 책은 역자가 지적 하였듯이 [나의 투쟁]과 [제2권]을 텍스트로 히틀러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지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원전 텍스트의 친절한 안내서라는 How to read 시리즈의 의도에 가장 충실한 책이 아닌 가 싶다. 그리고 이는 역자 (안인희)의 군더더기 없는 번역에 크게 기대고 있음에 틀림 없다.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번역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의 요지는 히틀러의 악행을 그가 '악마'나 '똘아이'  였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연설과 글은 대부분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때로는 조잡하지만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족적을 남긴 정치가 - 간혹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 그는 1933년 쿠데타가 아닌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물론 1923년 뮌헨에서 쿠데타 실패로 감옥살이를 했지만 말이다. - 를 단순히 미치광이 취급을 하는 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독해라는 전제가 이 책의 출발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리뷰를 통하겠지만 이 책은 히틀러와 그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참고로 다음의 책들도 히틀러와 제3제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아직 읽지 못했지만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은 텍스트들이다. 반값 세일을 기다리는 것은 좀 무리겠지만 좀 가격이 착해지면 지를 예정이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by 한나 아렌트

- 나치 시대의 일상사 by 데들레프 포이케르트

-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by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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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다. 뭐 시작은 했지만 영 신통치 않다. 갈수록 느낌이 오질 않는다.

 

첫째, 유럽의 역사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려운 걸 떠나서 공감이 어렵다.

둘째, 작가가 목에 힘을 좀 빼야 싶지 않나 싶다. 물론 이 역시 나의 자질 부족이다.

 

하지만 2013년간 완간 예정이라는 그의 전집에서 - 지금까지 한 6-7권 정도를 읽은 것 같다 -

역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최고다. 물론 나의 대학 새내기 시절의 기억의 흔적에

기대고 있음에 애당초 객관적인 관점은 기대하지 말자. 

 

이 책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 물론 내 게으름으로 - 소설과의 만남에 잠시 쉼표를 남긴다.

주말부터는 'How To Read' 시리즈 16권 세트이다. 서재에 자리가 없어 책상 밑에서 박스에 감금(?)되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낸 책들에게 꼭 햇빛을 보여 주리라 다짐해 본다. 기대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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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불멸] 을 어렵게 다 읽었다.

 

밀란 쿤데라의 책들 중에 제일 재미없고 어려웠다. 전집 출간 이전 구판의 리뷰를 훌터 보면 그의 책 중에 최고라는 찬사가 대부분인데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작품 속 인물과 작가의 만남, 소설 안팎의 경계를 무너뜨린 대담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그 불멸로 인해 더욱 깊어지는 고독을 그린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직접 자신만의 철학과 소설관을 들려준다."

 

윗 글은 알라딘 책 소개에서 발췌한 것으로 내가 이 소설을 지루하고 재미 없게 읽은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첫째, 뜬금없이 작가가 나와서 작품 속 인물과 소통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 대담한 서술일지는 몰라도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 뜨리고 군더더기로 느껴진다.  

 

둘째, 밀란 쿤데라 소설이 갖는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사유와 철학의 매력이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여과되지 않은 과잉된 의욕으로 인하여 반감되었다. 다시 말해서 작가가 직접 작품에 개입해서 자신의 철학, 인생관, 소설관을 드러내는 것은 독자의 해석의 몫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을 전제 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경우 그 선을 넘어 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준이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비평이나 이론서에 가깝다.  

 

아쉽지만 오랜 만에 만난 밀란 쿤데라는 너무 멀리, 높이 서 있는 꼰대 같았다.     

P.S.: 리뷰는 잛게 해야 할 듯 싶다. 솔직히 기억나는게 별로 없다. 기억으로 남아야 불멸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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