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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러시아의 공주 아나스타샤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비극적인 몰락도 그렇지만,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딸 아나스타샤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인이 나타났기 때문에 러시아 마지막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이슈가 되었었다. 그리고 영화며, 책으로 만들어져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마지막 공주, 황녀가 있었다고 한다. 생소하기만한 ‘덕혜옹주’이다.
그녀를 알게 된 후,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다소곳한 모습의 어린 그녀의 사진을 보며 내 마음에 서서히 들어찬 것은 그녀를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시대의 상처를 고스란히 품어야 했던 그녀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지금 그녀 나이 즈음인 조카 녀석만 봐도 그렇듯, 어린 아이들이란 재밌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면 눈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장난치고 놀면서 까르르 거칠 것 없이 웃고, 혹시나 넘어지거나 다치면 아프다고 엉엉 소리내어 울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어린 시절부터 “옹주님께서 참 의젓하고 영민하신 듯합니다.“ 라는 책 속의 글이 아니더라도 이미 아이의 몸에 어른보다 더한 기품과 깊은 지혜를 담은 눈, 시대의 아픔을 모두 담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영민한 스스로의 생각으로 그렇게 말이다.
좀 더 아이다워도 좋을텐데...... 아이답게 떼를 쓰고, 장난도 치다 혼나기도 하면서 살면 좋을텐데......하는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였다.
‘유치원’에 다닌다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인 고종의 뜻을 헤아리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앞날을, 백성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나라의 옹주라는 지위가 주는 위엄과 지혜가 이정도일까 감탄을 하게 된다.
본래 타고난 것이던, 자리가 주는 빛남이던, 그녀는 그렇게 빛나고 있었지만, 때는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던 암흑과도 같은 시기였다.
한나라의 왕비를 잔인하게 죽이는 일이 벌어졌어도, 왕자를 볼모처럼 일본에 보내놓고도, 강제로 한나라의 황제가 폐위가 되어도, 독살일지 모르는 이유로 승하하여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라의 독립을 도모하며 일본에 맞서는 독립투사와 그런 독립투사들을 일본군에게 밀고하는 앞잡이가 있고, 여자아이들을 좋은데 보내주겠다며 위안부로 보내버리는 순사, 그저 그저 목숨을 연명해가는 불쌍한 백성이 있는 때였다.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으며, 조선의 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는 노력 뿐 아니라, 아끼는 자신의 딸만큼은 지켜보려는 고종의 노력도 일본의 무력 앞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덕혜옹주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음속에 조선,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만 남아 그것만으로도 힘든 그녀를 일본인들은 조센징이라 무시하고 괴롭히고 조롱한다. 그런 생활 속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는 돌아간다. 반드시 ’ 하며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생활은 번번이 그녀의 결의를 무너뜨릴 뿐이다.
그 때, 그 곳에서, 덕혜옹주의 어린 날의 영민함과 기품은 날이 갈수록 옅어지게 된다.
너무 일찍 피어버린 꽃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 앞에 남은 생은 원하지 않는 대마도 번주의 양자 소 다케유키와의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온 아이, 그리움에 생긴 조발성치매, 정신병원에 입원... 이렇게 하나하나가 힘들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되는 시간뿐이었다. 그 아픔으로 그녀는 세상을 향한 마음을 닫아 버렸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그녀에게 “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될지 모르겠다.
“ 도쿠에 히메, 당신은 왜 여기 있나요? 내가 당신이라면 조선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을 거에요. “ (p153)
어린 시절, 그녀를 측은히 여기던 아이가 했다는 질문을 통해 그녀의 처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그녀가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혼란스런 시기에 구부리면 휘는 것이 아니라 부러져 버리길 바랐던, 그래서 부러져 버린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시기를 살아내면서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일반인이 아닌 황녀라는 자리에 있기에 일본의 감시는 당연하였을 것이고 그 감시가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지 않아 그녀를 옴싹달싹하지도 못하게 옥죄었다는 건 그녀의 삶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의 잣대로 과거를 가늠한다는 건 무언가 모순이 아닐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식민지가 아닌 자유로움이 보장된 나라에서 현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가 어떻게 그녀에게 “ 왜 ”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할뻔했던 그녀가 기자였던 김을한의 노력으로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잊혀졌던 그녀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이 책<덕혜옹주>를 통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제라도 그녀를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우리가 그녀를 기억해야, 알아야 하는 건 그녀의 삶이 우리의 진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는 그녀에게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기억하겠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