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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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치졸한 질투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열심히 책을 읽는다고 읽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누군가의 책을 통해서 내 독서의 한계 혹은 편협한 독서 취향을 낱낱이, 적나라하게 들키게 되면 화르륵 질투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그 감정에 사로잡히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재밌는 글이 앞에 있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대로된 평가는 물론, 어떤 것도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였을거다.

투덜투덜, 이 책을 펼쳐 놓고 첫장부터 담백하게 읊조리듯 조곤조곤 나에게 이야기하는 여행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불평만 해대고 있었다. 

뭐야, 책이야기가 주인줄 알았는데, 여행이야기가 더 중요한거야?

에게게.. 무슨 여행 이야기를 이렇게 쬐금 하는거야?

이 책이랑 이 장소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투덜투덜, 빈정빈정, 대충대충......

그렇게 러시아와 티베트, 네팔 등을 지나버렸다. 도스토옙스키, 백야, 잃어버린 지평선, 샹그릴라...  모두 놓치고 있었다.  ‘재미없네, 뭐’라는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자신이 부족한 것을 깨달았기에 불편한 마음 때문일것이다.

핑계를 그렇게라도 대고 싶었다.

그랬는데......  미얀마에서 읽었다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야기에서부터였을까.

여행이, 책이 눈에,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에 대해 저자는 고마워해야할 것이다. 아니, 그 영화에 나왔던 귀여운 루트 녀석이랑, 연기 잘하는 배우 루트 엄마, 따스한 목소리와 몸짓의 박사님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말이겠다. 미얀마와 얽힌 책이야기에 웃음이 지어지더니 마음이 풀어져버렸다. <베트남과 연인> 부분에서는 부모님 몰래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대했지만 너무 까맣기만 해서 도대체 뭘하는지 알 수 없어 친구들과 라면을 먹으며 보았던 영화 <연인>을 떠올리며 괜시리 웃음지었고 그렇게 나와, 내 추억과 반응한 책은 정말 잘도 읽혀 나갔다.

저자가 읽은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곳에 나도 가보고 싶어졌다.

베트남의 여성작가 응웬옥뜨의 소설 <끝없는 벌판>이라는 책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하는 기분에 의아해하기도 했고, <연금술사>를 떠올리며 나의 꿈에 대해 또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 세상은 망해가는데 우리는 사랑에 빠져 버렸군” 이라는 명대사를 가진 영화 <카사블랑카>를 찾아보고 싶고, 세상에 망해가든 말든 사랑에 빠져봐야겠다 뜬금없는 다짐도 했다. “ 어느 한사람은 그가 읽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는 구절에 먹먹해져버렸고,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체 게바라의 인생을 훔쳐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났다니, 이렇게 재밌는 책을 읽고 있다니.. 기분은 행복해지지만 또한 읽어야 할 쪽수가 줄어드는 것이 왠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마침내 마지막 장을 넘기고선 ‘다음에 한번 더 읽어야지’ 하고 책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랬더니 섭섭한 마음이 덜해졌다.

또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었더니 투덜투덜 대던 마음도 가셔버렸다. 이렇게 좋은 책을 편협한 마음에 놓쳐버렸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아마, 다시 한번 펼쳐볼때 이 책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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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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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접하다보면 종종 이름이 거론되곤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 그를 존경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작품 속에서 언급이 되기도 했다. 본받고 싶은 작가라고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도련님>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안하무인에 천방지축이기만 한 도련님의 캐릭터에 질려서 더 이상 그의 작품을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기도 했었다. 일본어로 읽었다면 그 매력을 알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번역본의 한계였는지 작품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없기도 했다.

<인간실격> 또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쓸데없는 것이었다.

책장을 잘못넘겼는지 <머릿말>을 작가의 말정도로 생각하고 <인간실격>의 첫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끊임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다시금 앞으로 넘겨 그게 소설의 시작이었다는 걸 알고 놀라기도 했다.

인상깊었다. 이게 작가 자신의 고백인지, 등장인물의 고백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분명, 굉장히 사실적이었고, 내면을 잘 묘사한 느낌이었다. ‘거짓’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이 묘하게 여운을 남긴다. 그저 살아내기 위해 광대짓을 일삼는 그의 모습은 슬프지만, 뭐랄까 누구나의 안에 있을지 모를 똑같은 마음을 드러냈다고나 할까, 숨기고 싶었지만 들켜버린 느낌..  그런걸 잘 짚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차 벌였던 일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다르게 평가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허무하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인간의 삶이라니... 인간의 삶이란 과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도 한다.

<인간실격> 외에도 이 책에는 <물고기 비늘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와 같은 단편이 실려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의 거짓된 삶이나 거짓말과 같은 ‘거짓’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었다. 경멸하듯 차디찬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있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상하게 따스한 기운이나 유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의 작품은 계속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단편 뒤에는 해설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문학>, <다자이 오사무 연보>가 함께 실려 있는데, 작가 실제의 생활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해설과 연보를 보면서 소설가는 역시, 자신의 삶을 소설 속에 투영시키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의 생을 알면 알수록,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찾아 읽고 싶어지게 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더 많은 작품을 남길수 없었다는 점은 분명 애석하고도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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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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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사미’ 라는 말이 있다. 용의 머리, 뱀의 꼬리란 뜻으로 흔히 시작은 거창했지만 지지부진하게 끝이 날 때 이 말을 쓴다. 이 책을 읽고 이 사자성어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대로의 의미라기 보다는 좀 변형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사두용미’ 뱀의 머리, 용의 꼬리. 이런 표현이 가당키나 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소설, 그 시작은 미약했을지 모르겠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

등장인물마다 존재의 이유가 분명했고,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튀는 것 같았던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인물과 사건이 잘 맞물리는게 깔끔했다. 무엇보다 배경으로 존재감이 뛰어났던 ‘미국 대통령 납치 사건’ 역시 다른 사건들 속에 잘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컸다. 음, 그래도 왠지 기대를 많이 했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1’의 대상감으로는... 조금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건가?

‘자유와 정의라는 말을 좋아하며 세계 제 3위의 인구와 면적을 자랑하고 국내 총생산은 세계 1위에 빛나는 최고의 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 바다 건너 일본의 도쿄 학교에 다니는 츠지오 아카네는 생애 첫 ‘옥상’을 경험하고 그 시시함에 실망하고 있었다.

과제를 하기 위해서 올라간 옥상에서 쿠니시게 요시토, 사와키 준노스케를 만나게 되었고, 자살을 하려는 행동을 통해 어필하고 싶었던 히라하라 케이타도 만나 ‘옥상의 평화를 지킨다’는 슬로건 아래  ‘옥상부’를 결성하게 된다. 옥상의 안녕과 평온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네 명의 아이들은 사건을 만나게 되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친해진다.

처음에 그냥 단순히 청춘의 연애담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하였던 이야기는 사기, 약물, 납치 등 중범죄로 연결이 되고, 권총, 킬러, 칼 등 흉악한 단어와 만나더니 어째 범죄 해결 탐정단 같은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사건에 연결이 되는거지...

넋놓고 있다가 보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해결하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이 아이들, 어른들보다 깔끔하고 쿨하게 일을 처리한다.  다소 믿기지 않는 출중한 싸움 실력을 가진 쿠니시게와 사와키, 잘 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언변을 자랑하며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라하라, 이들이 펼치는 만담같은 유머식 화술, 모든게 우연처럼, 가짜인 것처럼 술렁술렁 넘어간다. 그게 장점일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묘한 경계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두꺼운 듯한 이 책은 그 덕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이거 말도 안돼,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밌네 하는 기분으로 끝까지 책에서 손을 뗄수 없었다.

쿨함을 가장한 묘한 이기주의적인 시선이랄까, 세상이야 어찌되었든 지금 이순간,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도 일본스러웠다.

이런 다양한 매력을 지닌 <옥상 미사일>, 읽고 나면 왠지 한바탕 사건에 휘말렸다가 정신을 차리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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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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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티스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다. ”

“ 마술적 사실주의를 현대 인간의 문제와 연결시킨 콜롬비아 최고의 시인이자 소설가, 알바로 무티스의 대표작! ”

책표지의 이런 홍보 문구는 책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화를 돋우면 돋았지 도대체 왜? 라는 의문만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사실 이 책을 끝까지 본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의 독서 습관이 국내 소설 혹은 일본 소설에만 너무 한정되어가는 듯 하여 다양한 국가의 소설을 접해보고자 하는 바람때문이었다.

책을 펼쳤다가 덮었다를 한 세 번정도 반복했을까?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이웃 블로거의 서평을 읽게 되었고, 작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마크롤 가비에로의 삶에 대한 어떤 몽환적인 듯한 평은 이 책을 어서 읽어보라 부추겼다.

그렇게 하여 다시 읽게 된 책은 그나마 처음의 그 지루함을 조금 없애주기는 했지만,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진부한 지혜의 말들 즉 무위도식하면서 강물이 흐름을 바꿔주기만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가운데 태어난 무의미한 가짜 보석들을 하나씩 실로 엮는다. (p36)

‘피로에 지친 슬픈 광기’ ‘ 칙칙한 기쁨’ ‘정신 지체아같은 언어’ ‘ 무(無)의 인질’ ‘ 따스한 침묵’ ‘각 도시만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리듬’ 과 같은 문장과 글에서는 학생때 배웠던 ‘공감각적’ 이니 ‘은유’니 하는 표현법을 떠올렸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속뜻을 파악해야만 하는 표현들...  어쩌면 이 책은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이라 말하는 그 여행과 그의 삶에 주목해야할 뿐 아니라 그 여정 속에 담긴 많은 속뜻을 파악해야 하는 이야기인 줄 모르겠다.

두꺼운 책 여기저기에 찔끔찔끔 숨겨 놓은 단서와 같은 구절들을 잘 이해해야만 전체적인 사건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바쁜 사람이 읽기에는 적합치 않아 보인다. 이야기 속에 흐르고 있는 그 시간에 맞춰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처음의 조급했던 마음을 지우고, 그래 뭐가 됐든 읽어보자고 해야할 일들을 미루고 의도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며 책을 펼쳐들자 글이,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왔던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광활하고 쓸쓸하고 고독한 밀림같은 그 언어들이 내 안에 들어와 생긴 반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기나긴 여정에 함께 할 수 없었음이 그저 아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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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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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이었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마 깨닫지 못했을 뿐 꽤 오래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나 끄적끄적 무언가를 쓰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언제나 같은 내용의 일기와 같은 그런 이야기였을 뿐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할 말이 마음 속에 차오르는 요즘, 글쓰기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었다. <라이팅 클럽>을 만난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방황하고 있는 순간.

제목부터 보고 사실 글쓰기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다.

주인공 ‘나’는 17살 소녀로 ‘김작가’라 불리는 엄마와 함께 계동에 살고 있다.

엄마란 사람은 작가랍시고 언제나 글쓰기에만 파묻혀 있었고, 딸인 그녀는 언제나 집안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보통의 엄마와 딸 관계와는 좀 다르게 어쩌면 둘은 그저 ‘동거인’ 정도의 의미로만 한 집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도록 한 것은 그녀가 ‘쟝'이라는 예명을 붙여준 글쓰기를 배우러온 남자에 의해서였다. 김작가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딸인 그녀 역시 그에게 빠졌다. 그에게 스무장이 넘는 편지를 건넸지만, 그의 반응은 묵묵부답일뿐.

그러던 어느날 그가 거짓말쟁이에 사기꾼같은 남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

김작가는 남자와 헤어지고 난 뒤 한바탕 앓고 일어나고 그녀가 아이들을 상대로 해오던 글쓰기 교실을 지역 주부들을 상대로 바꾸고 ‘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인들의 모임’을 이끌게 된다. ‘나’인 그녀는 엄마가 그렇게 홍역을 치르는 사이 가출도 했다가 동거도 했다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가고 있었다.  글쓰기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생활전선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못한다. 엄마인 김작가는 오히려 아줌마들과 수다 떨며 놀면서도 글을 계속 쓰고 있어 문집까지 발간을 하게 되고. 17살이었던 ‘나’는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다. 친구인 K와 R도 결혼을 했다 이혼하거나 정신 병원에 다녀오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한 남자를 따라 미국에 가게 된다. 그리고 네일 아트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김작가와 그녀의 딸인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나’의 곁에는 항상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책이 있었고, 김작가의 곁에는 항상 글쓰기가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는 이렇게 그들의 삶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j작가에 의한 문학 수업은 제 1강으로 끝났다. ‘설명을 하려 들지 말고 묘사를 하라’

하지만 그들이 살면서 깨닫게 되는 글쓰기 강의는 계속 이어진다.

“ 생활과 글쓰기는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 ”

“ 과도한 열정도 과도한 복수심도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

“ 간결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 반드시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이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묘사와 진술 그 두가지가 적절히 섞여야 해.”

“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게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

기록의 중요성, 다독의 중요성, 경험의 중요성... 글쓰기와 관련된 그 모든 이야기들은 문장 곳곳에 숨어 있어서 잘 찾아야 했다. 독자 스스로 찾아내고,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독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맞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존재인 ‘나’는 언제나 구질구질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토록 원하는 글쓰기는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정 그녀가 원하던 일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몇몇 문장들이 마음에 다가왔지만 살짝 스치고 지나가버려 큰 파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게 중요한 건가? 생각하는 사이에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정말 잘 읽히고 그녀들이 품고 있을 열정을, 풀어지지 않는 실타래같은 그 열정을 이해는 가는데 뭐랄까, 그게 풀리면서 후련해지는, 정확히 핵심을 뚫고 지나가는 어떤 통쾌함같은 느낌이 없었다. 2% 부족한... 그 느낌이랄까.

김작가가 이끌던 글쓰기 모임과 그들의 공간이었던 계동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 흔적을 남긴다. 차라리 그 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더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오죽하면 내가 계동, 헌법 재판소, 공간 사옥이 있는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어쩌면 작가는 글쓰기의 고단함과 고통 등의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피엔딩만을 바라고 있는 우매한 독자로서 ‘나’가 현실에 붙들려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중시하여 전체의 큰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현실의 벽에 막혀 작가가 되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를 보는게 두려운지 모르겠다.

나는 아마 그저 장밋빛 미래, 혹은 희망만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각종 트릭이 아니라 글쓰기의 첫마음을 다시 느끼고픈 당신에게, 글쓰기를 통해 ’등단‘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문학 평론가의 이 말은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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