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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순간이었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마 깨닫지 못했을 뿐 꽤 오래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나 끄적끄적 무언가를 쓰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언제나 같은 내용의 일기와 같은 그런 이야기였을 뿐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할 말이 마음 속에 차오르는 요즘, 글쓰기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었다. <라이팅 클럽>을 만난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방황하고 있는 순간.
제목부터 보고 사실 글쓰기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다.
주인공 ‘나’는 17살 소녀로 ‘김작가’라 불리는 엄마와 함께 계동에 살고 있다.
엄마란 사람은 작가랍시고 언제나 글쓰기에만 파묻혀 있었고, 딸인 그녀는 언제나 집안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보통의 엄마와 딸 관계와는 좀 다르게 어쩌면 둘은 그저 ‘동거인’ 정도의 의미로만 한 집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도록 한 것은 그녀가 ‘쟝'이라는 예명을 붙여준 글쓰기를 배우러온 남자에 의해서였다. 김작가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딸인 그녀 역시 그에게 빠졌다. 그에게 스무장이 넘는 편지를 건넸지만, 그의 반응은 묵묵부답일뿐.
그러던 어느날 그가 거짓말쟁이에 사기꾼같은 남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
김작가는 남자와 헤어지고 난 뒤 한바탕 앓고 일어나고 그녀가 아이들을 상대로 해오던 글쓰기 교실을 지역 주부들을 상대로 바꾸고 ‘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인들의 모임’을 이끌게 된다. ‘나’인 그녀는 엄마가 그렇게 홍역을 치르는 사이 가출도 했다가 동거도 했다하며 글쓰기를 계속해 가고 있었다. 글쓰기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생활전선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못한다. 엄마인 김작가는 오히려 아줌마들과 수다 떨며 놀면서도 글을 계속 쓰고 있어 문집까지 발간을 하게 되고. 17살이었던 ‘나’는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다. 친구인 K와 R도 결혼을 했다 이혼하거나 정신 병원에 다녀오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한 남자를 따라 미국에 가게 된다. 그리고 네일 아트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김작가와 그녀의 딸인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나’의 곁에는 항상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책이 있었고, 김작가의 곁에는 항상 글쓰기가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는 이렇게 그들의 삶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j작가에 의한 문학 수업은 제 1강으로 끝났다. ‘설명을 하려 들지 말고 묘사를 하라’
하지만 그들이 살면서 깨닫게 되는 글쓰기 강의는 계속 이어진다.
“ 생활과 글쓰기는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 ”
“ 과도한 열정도 과도한 복수심도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
“ 간결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 반드시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이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묘사와 진술 그 두가지가 적절히 섞여야 해.”
“ 글을 쓰겠다는 열망을 품게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
기록의 중요성, 다독의 중요성, 경험의 중요성... 글쓰기와 관련된 그 모든 이야기들은 문장 곳곳에 숨어 있어서 잘 찾아야 했다. 독자 스스로 찾아내고,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독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맞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존재인 ‘나’는 언제나 구질구질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토록 원하는 글쓰기는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진정 그녀가 원하던 일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몇몇 문장들이 마음에 다가왔지만 살짝 스치고 지나가버려 큰 파문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게 중요한 건가? 생각하는 사이에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정말 잘 읽히고 그녀들이 품고 있을 열정을, 풀어지지 않는 실타래같은 그 열정을 이해는 가는데 뭐랄까, 그게 풀리면서 후련해지는, 정확히 핵심을 뚫고 지나가는 어떤 통쾌함같은 느낌이 없었다. 2% 부족한... 그 느낌이랄까.
김작가가 이끌던 글쓰기 모임과 그들의 공간이었던 계동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 흔적을 남긴다. 차라리 그 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더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오죽하면 내가 계동, 헌법 재판소, 공간 사옥이 있는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어쩌면 작가는 글쓰기의 고단함과 고통 등의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피엔딩만을 바라고 있는 우매한 독자로서 ‘나’가 현실에 붙들려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중시하여 전체의 큰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현실의 벽에 막혀 작가가 되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를 보는게 두려운지 모르겠다.
나는 아마 그저 장밋빛 미래, 혹은 희망만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각종 트릭이 아니라 글쓰기의 첫마음을 다시 느끼고픈 당신에게, 글쓰기를 통해 ’등단‘이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문학 평론가의 이 말은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