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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 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쿰부 트레킹
법상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최근 사하라 사막 횡단, 히말라야 트레킹, 아마존 밀림 탐험, 남극 대륙 횡단 등 “오지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 탐험가들이나 방송사 다큐멘터리 제작진이나 시도해볼 만한, 즉 먼 나라 사람 이야기들로만 들렸던 그런 오지 여행이 색다른 여행을 해보고자 하는 일반 사람들의 참여가 늘어가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전문 여행사 리스트나 여행 체험담들이 몇 십개 씩 검색될 정도로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돈만 들이면 편하고 쉬운 여행들이 신문 일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고, 베니스, 비엔나, 파리, 시드니 등 각종 여행서적이나 방송에서 그렇게 좋다고 선전하는 가볼만한 세계 유명 관광지가 얼마나 많은데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불편함 투성의 저 오지 여행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아마도 패키지대로 움직이는 판에 박힌 여행보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 어울림 속에서 세상에 찌든 지나온 삶을 반추해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기 위함은 아닐까? 히말라야의 위대한 설산을 직접 눈으로 대하니 가슴에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느낌은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세상 명리에 대한 욕심, 즉 명예, 돈, 권력들에 대한 탐욕들이 드디어 자신의 몸에서 툭 떨어져 내려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직 가슴에는 위대한 자연만이 하나 가득 들어오는, 자연과 내가 오롯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느꼈다는 어느 여행 소감처럼 오지 여행의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일반인들도 마치 해탈의 경지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경지를 비록 찰나지만 체험해볼 수 있는 데 수행과 명상을 업으로 삼고 있는 불교의 스님이라면 그 감회가 더욱 새롭고 좀 더 명징한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생활수행도량 ‘목탁소리’의 지도법사로서 쉽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법상스님의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불광출판사, 2010년 7월)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어우러진 수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관조를 오롯이 담아낸 명상 순례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법상스님이 14일 동안 히말라야 쿰부 일대를 트레킹(Trekking)하면서 보고 느낀 자연 풍경과 그 속에 얻은 깨달음을 기록해놓은 일종의 여행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님은 이 책을 단순한 여행기로 보는 것을 경계하면서 머리말에서 이 책을 내면의 히말라야로 떠난 여행이며, 자신에게 있어 히말라야는 단순한 설산이 아니라 속 뜰의 깊고 드넓으며, 높고도 웅건한 지고의 지향점이기에 이 여행은 내면으로 떠나는 나를 찾는 하나의 구도의 과정이자 수행이요, 만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책이 여타의 여행서적처럼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여행 안내서가 아니라 자기 안의 히말라야를 찾아가는 삶의 안내서로 봐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내가 확장되는 즐거움'에 빠져 살지만. 여행을 떠나 삶을 관조하게 되면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즉 정신적 차원의 무한한 확장이 주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될 수 있으며, 이 책이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 안에 잠재해 있던 구도의 향기를 꽃피우고, 순례의 여정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또한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일상에 갇힌 이들에게 한번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스님은 14일 동안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히말라야 곳곳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한번쯤은 귀담아 둘 필요가 있을 말씀들을 들려주고 있다. 스님은 행복에 대하여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삶의 조건을 누리고 만끽하는 것이며, 그 무엇도 바랄 것이 없고,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주어진 삶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작은 행복의 조각글 속에서 큰 행복의 감각을 누리는 데 있다고 행복의 비결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느릿느릿 발걸음으로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산행하는 것이 좋다면서, 아무것도 할 것 없고, 애써 할 필요도 없는 텅빈 우주 공간과도 같은 이 시간이 얼마나 그윽하고 평화로운지 모르며 산을 찾는 즐거움이 이런 여유와 고요함을, 할 일 없음의 무위를 충분히 누리는 것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좋은 말씀들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의 위대한 풍광에 대한 감탄사도 곳곳이 등장하는 데, 남체바자에서 텡보체까지의 첫번째 구간을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웅대한 파노라마라고 감탄하면서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엄한 예술 작품이요 엄중한 오케스트라이고, 설산의 대서사시이며, 자신의 발걸음과 호흡과 눈에 비친 대자연이 영령한 조화를 이루며 이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어 걷는 자연과의 하나 되는 조화이자 교감이고, 우주적인 근원과 연결되는 기도요, 수행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별이 쏟아지는 듯한 히말라야의 밤하늘을 보면서 투명한 아름다움 앞에 도저히 내 존재를 마주 세워 두기가 부끄러울 만큼, 그 어떤 표현도 이 앞에서 누가 될 만큼 어둠 속에 저절로 빛이 나고 침묵 속에 연주되는 내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경탄하기도 한다.
스님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무릎 통증이 트레킹을 하면서 씻은 듯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면서, 자연 치유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자연 식품을 먹거나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우리 안에 충분히 느끼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 깃들어 살아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인위적이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으며 순리대로 사는 것,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또한 무소유와 청빈은 그저 하나의 선택일 뿐이며. 무소유와 청빈을 선택하되 그것만이 옳은 길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집착과 무집착의 경계마저 벗어던지는 즉, 옳고 그르며, 맞고 틀리다는 그 판단 너머에, 무분별의 지켜봄 속에 참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특히 스님은 앞에서도 언급한 '지금 여기', 현재의 삶에 대한 최선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가 모든 미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자각과 깨어있음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느냐에 미래가 전적으로 달려 있으며, 내 삶의 창조자는 '지금 여기'라고 강조한다. 미래가 실현되는 순간은 언제나 현실일 뿐이기 때문에 더나은 미래는 없고, 환상적으로 부풀려지고 꾸며진 미래는 우리 생각과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며 우리가 부푼 기대와 추구로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결코 지금 이순간보다 더 아름답거나 신비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기다림의 끝에는 언제나 현재밖에 없기 때문에, 긴긴 기다림의 끝에 얻을 수 있는 현재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당장에 기다림이라는 중간 과정을 없애고 바로 지금 당장에 그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냐고 충고한다.
스님은 여행을 마치면서 여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삶의 여행이기 때문에, 인생의 여정을 경건한 순례의 길로 여기는 자에게는 매 순간의 삶이 바로 거룩한 순례의 길이며, 그러한 이가 바로 구도자이자 또한 순례자이며 스님의 순례는 히말라야에서 끝나지 않고 이제부터 삶의 진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끝을 맺는다.
스님은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삶의 안내서로 봐달라고 당부하고 계시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읽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질 것 같다. 스님의 트레킹 일정에 따라 책 곳곳을 수놓은 히말라야 풍광 사진을 감상해보는 일종의 포토 에세이로 읽어도,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히말라야 트레킹 지도”와 “법상 스님께 묻는 트레킹 Q&A”를 참조하여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기 위한 여행 안내서로 읽어도, 아니면 히말라야 트레킹은 일종의 형식일 뿐 불교의 수행자로서 대중에게 설파하는 가르침을 담은 일종의 명상집으로 읽어도 자신이 어떤 식으로 읽느냐에 따라 받아들임이 서로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규정지어 분류하는 것도 스님의 말씀처럼 집착과 분별이라는 경계지음과 같지 않을까? 히말라야나 사하라 사막 같은 거창한 오지 여행은 할 수 없겠지만 “걷기 그 자체로 걸으면 되며,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라. 다만 걷되 생각에 지배되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끌려가지 않으며 오직 텅 빈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쉽게 갈 수 있는 가까운 산과 들이라도 온 세상 시름과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으면서 자신의 가슴 속에 자연을 하나 가득 담아본다면 그것이 곧 명상 순례가 아닐까 생각해 보며, 올 여름 휴가때는 그런 여행을 계획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