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나랜스”(한혜원 지음, 살림출판사)라는 책에서 스토리텔링 분야에서의 우리나라의 저력에 관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작가는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축적해온 우리의 구비문학(口碑文學) 전통은 과정 추론적, 참여적, 비선형적, 백과사전적인 디지털 기술과 궁합이 잘 맞고, 디지털 콘텐츠와의 호환가능성이 용이하여 우리도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동아시아의 설화들을 디지털 자산으로 개발하는 한편, 한반도 내에 잠재되어 있는 다양하고 특수한 설화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의 신화나 전설, 만담 못지 않은 풍부한 상상력과 이야기를 갖춘 우리나라의 구전 설화나 전래동화를 잘 가꾸고 발전시킨다면 우리도 스토리텔링 강국으로서 충분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Story)를 도발적이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한국의 “온다 리쿠”로 불리우는 조선희 작가(Teller)의 탁월한 글솜씨로 새롭게 창조해 낸 “모던팥쥐전(노블마인, 2010년 6월)”은 앞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특유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성공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대개의 전래동화는 나쁜 누구는 벌을 받고 착한 누구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권선징악”의 뻔한 결말로 끝을 맺어 왔으며,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현대까지 계속된다면 어떠했을까 라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작가는 우리에게 전래동화로 널리 알려진 "콩쥐팥쥐전", "우렁각시", "선녀와 나뭇꾼", "여우누이” 등 6편의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현대적인 감성과 판타지적인 상상력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착해냈다. 6편의 작품 중에서 “서리, 박지[콩쥐팥쥐]", "자개함[여우누이]", "시시[우렁각시]”는 작품을 읽다 보면 원작인 전래동화가 확연히 연상되지만, “개나리꽃[개나리꽃]", "죽이거나 살리거나[선녀와 나무꾼]", "지팡이[십 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는 각 단편 첫 페이지에 원전의 언급이 없었으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전래동화와는 완전히 색다른 이야기 - “개나리꽃”과 “십 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은 우리 전래동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게는 낯선 이야기여서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 로 느껴지며, 한편 한편이 속도감과 마지막 반전이라는 단편 소설 특유의 맛을 잘 살려내고 있어 재미와 몰입도가 빼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원색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삽화들은 이야기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한편 한편 줄거리를 소개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죽은 남자친구와 함께 죽은 이복동생의 영혼 결혼식을 막기 위해 초혼 의식을 벌여 남자친구의 영혼을 불러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보여주는 “서리, 박지”와 혼수 상태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환자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현실로 되돌아 오게 하는 일을 하는 병원 내 비밀조직원인 두 남자가 꿈의 세계에서 벌이는 이야기인 “개나리꽃”이 가장 인상에 깊었다. 

  조선희 작가의 작품은 그녀의 데뷔작이자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세발 까마귀상) 수상작인 “고리골(북하우스, 2001년)”에 이어 이번에 읽은 “모던팥쥐전”이 두 번째 작품이었다. “고리골”이 도교(道敎)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참신한 상력으로 그려낸 판타지 소설이었다면, “모던팥쥐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전래 동화를 모티브로 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우연찮게도 내가 읽은 작품 둘 다 동양 문화와 감성을 소재로 한 책이어서 이채롭게 느껴진다. - 물론 두 작품 이외에도 읽어보지 못한 여러 작품들이 있어 동양적 감성을 작가의 작품성향으로 단정 지을 수 는 없을 것이다. 다만 두 작품에서는 사학(史學), 특히 중국사를 전공했던 작가의 경력이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 두 작품 다 그녀만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신인작가의 데뷔작으로써 조금은 풋풋하고 설익은 듯한 느낌의 “고리골”보다는 이제는 중견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자신만의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세계를 맘껏 보여준 이번 작품 “모던 팥쥐전”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장르에서의 독특하고 참신한 성취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후속 작품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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