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조용호 지음 / 문이당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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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수 년 만에 가본 모교 축제에서 요새 인기를 끄는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서 우리시절과는 참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격세지감을 느꼈었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축제 - 그때는 명칭이 대동제(大同際) 였었다 - 단골 가수가 기타 하나 둘러메고 민중가요와 서정적인 발라드를 부르던 “안치환","김광석","신형원","한동준" 등이었는데, 지금처럼 화려한 조명과 퍼포먼스, 학교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운드는 없었지만 그들의 기타 선율과 노랫소리에 숨 죽여 귀 기울이고, 그들이 부르는 민중가요를 어깨동무하고 따라 부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특히 김광석은 학교 축제에서도 여러 번 봤었고, 장기 공연 중이었던 대학로 학전 소극장 공연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그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이제 학전에 가도 그를 만날 수 없겠구나”였었다. 조용호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2010년 7월)에서 주인공인 "가객(歌客)" 연우에게서 계속 김광석이 오버랩되었던 이유가 바로 대학시절 축제와 소극장에서 만났던 그의 노래 때문이었을 것이다. 

 꾸준한 음반 출시와 노래 공연으로 인지도가 있던 민중가수 "가객" 연우가 자취를 감춘 지 몇 개월 후 신문기자인 "나"에게 연우가 작성한 비망록이 도착한다.  그리고 연우의 아내인 승미가 나에게 남편으로 의심되는 시신을 확인하러 가자고 전화해와 나는 승미의 아내와 시체 안치소로 찾아간다. 나와 연우, 승미는 대학시절 같은 노래패 활동을 했던 오래된 친구와 후배로 승미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승미는 연우와 결혼하고 내 사랑은 그렇게 가슴 속 깊은 곳으로 감춰버렸던 그런 사이이다. 시신은 다른 사람으로 밝혀지고 나는 승미에게 연우의 비망록을 건네고 비망록 속의 연우의 추억을 따라 찾아 나서게 되고 책은 연우의 비망록과 나와 승미의 추적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 연우가 "에덴"이라 불렀던  어린 시절의 마을에서부터 시작된 나와 승미의 추적은 매번 최근에 그가 다녀간 사실만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그치고, 그의 발걸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하게 된다. 비망록과 그의 흔적에서 연우가 대학시절 잠깐 같이 활동했었던 후배 “선화”라는 여인을 만나왔고, 그녀와 아내 승미 사이에서 고민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화의 집에까지 찾아가지만 연우는 선화를 찾아 남미 칠레로 떠나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와 승미는 칠레로 연우와 선화를 찾아 떠나게 된다.

   이 책은 김광석의 학전 소극장 공연에서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해 객석을 서성거리던 것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도 쉽게 책을 덮어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앞의 페이지들을 펼쳐보게 만드는 진한 여운이 남는다. 읽는 내내 연우에게서 김광석을 떠올렸고 - 책 초반 대학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연우가 학내 공연에서 민요풍의 민중가요를 부르는 장면은 김광석이 87년 노찾사 첫 공연에서 앵콜 곡으로 불렀다던 “이 산하에” 영상이 생각났다. 유투브로 본 그 영상에서 김광석은 마이크 앞에서 시종일관 두 손을 모으고 수줍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데 애잔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그 목소리에 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 연우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끝이 혹시 그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읽는 내내 괜한 불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졌었지만 모든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른 뒤 희망을 암시하는 결말에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화 어머니와 선화, 연우 아버지와 연우로 이어지는 대(代)를 이은, 어쩌면 파격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 연우의 "기타"와 노래가 선화의 “해금"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귓전에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애절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마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애절하게, 때로는 격정을 토로하는 거친 음성으로 연우, 선화, 승미 그리고 “나”, 네 사람으로 대변하는 그 당시의 젊음들의 깊은 슬픔과 아픈 사랑을 우리에게 다양한 음색으로 들려주는 듯하다. 아마도 이 책은 나에게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그들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음악의 이미지로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 그 당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숱하게 지샜던 불면의 밤들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목청껏 노래 불렀던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내 오랜 친구들, 좋아한다는 말 제대로 못해보고 가슴 앓이하며 지켜만 봤던 내 풋풋했던 첫사랑,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가수 김광석을 다시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에서도 소개된, 칠레 민중 운동가이자 가수인 빅토르 하라가 칠레 피노체트 쿠테타 군의 총칼 앞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렀다던 “벤세레모스(우리 승리하리라)”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르헨티나 민중 가수 메레세데스 소사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를 들었다. 사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낯선 가수들과 노래들인데 남미풍의 다소 이국적인 노래여서 쉽게 와 닿지는 않지만. 노래 듣는 내내 우리네 정서인 “한(恨)”이 배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와 지구 정반대 국가인 칠레와 아르헨티나도 우리처럼 독재정권의 폭압과 민주화를 위한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중가요들처럼 힘없고 핍박받던 민중의 절규와 염원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빅토르 하라의 삶과 노래를 담아냈다는 소설과 영화를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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