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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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아이돌(Idol) 스타 팬클럽에 요새 30대의 “아저씨” 넥타이 부대들의 가입이 부쩍 늘어나고, 콘서트 현장에 가보면 아이돌 스타들 나이 또래의 자녀를 둔 머리가 희끗 희끗하신 중년 남성들이 자녀들과 함께 야광봉과 피켓을 흔들며 열광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멋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에게 연일 아주머니들의 선물 공세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주책 맞다고 핀잔을 들었을 이런 청장년 팬들이 더 이상 낯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아이돌 스타는 모든 세대들이 좋아하는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이돌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이루었지만 기복 없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에 푹 빠져 열광하던 젊은 날의 그런 열정을 다시 찾고 싶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표현에 적극적인 10대들처럼 콘서트 현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질러보고 싶고, 빠른 비트의 음악에 잘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손과 발을 땀이 흠뻑 나도록 열심히 흔들어보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이들과의 공감을 통해서 자신들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열정을 되살려낸 그들의 삶은 그래서 더욱 활기차고 즐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전아리의 “팬이야”(노블마인, 2010년 7월)는 이렇다 할 꿈과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이제 삼십을 바라보던 여성이 열성적인 팬이 되면서 겪게 되는 삶에 있어서의 변화와 사랑을 재미있게 그린 소설이다. 

  스물아홉 살 계약직 회사원 김정운은 이렇다 할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다. 어느날 사귀던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서 모험의 부재가 문제였다는 것을, 삶에 있어 열정의 증거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인기 아이돌 그룹인 “시리우스” 콘서트에 지원하러 나갔다가 받게 된 음악 CD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리우스 멤버들과 짜릿한 포옹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팬이 된다. 무미건조하고 소극적인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열정을 바치는 경험을 하게 된 그녀는 시리우스에 더욱 열광하게 된다. 팬클럽 활동하면서 공연장과 촬열장을 누비고 다니던 정운은 정운에게 위조 티켓을 팔아먹은 10대 소녀 차주희와 그의 사촌오빠이자 방송국 직원인 장우연, 냉소적이지만 계속 끌리게 되는 매력적인 남자 오형민 PD 등등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정운은 자신을 좋아하는 연하남 장우연과 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오 형민 PD에게 계속 끌리면서 우연과 형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한편 회사 구조 조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정운은 자신의 기획서를 계속 퇴짜 놓던 팀장이 사실은 자신과 닮은 정운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팀장이 새로 차린 회사에 입사하여 이제는 정직원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형민을 좋아하는 정운의 마음을 알게 된 우연은 일본으로 연수를 가기로 결심하고 정운에게 작별을 고하고, 정운은 해외로 떠나 버리는 형민에게 - 사실은 해외 로케를 위해 며칠 출장을 가는 것이었지만 -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이십대 후반 여주인공이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마치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은 이 책이 과연 나에게 맞을 까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이렇다 할 꿈도 열정도 없던 정운이 시리우스에게 열광하면서 자신의 삶이 하나 둘씩 바뀌면서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절로 응원을 하게 되고, 멋진 남자들인 우연과 형민과의 로맨스가 과연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히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시리우스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정운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소동이 참 재미가 있는데, 담을 넘어 방송 촬영 현장으로 숨어 들어가지 않나, 정운이 좋아하는 멤버를 퇴출시키려는 기획사로 쳐들어가 일대 소동을 벌여 주동자로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 시리우스 멤버와의 일일 데이트 상대로 뽑혀 방송에 출연하고 쏟아지는 악플과 주변 동료들의 시선에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모습, 마지막에 사랑을 확인한 남자를 앞에 두고 시리우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향해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뛰어가는 장면들은 읽는 내내 킥킥거리며 웃게 만든다. 소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정운이 일과 사랑에서 멋지게 성공을 거두게 만든 건 바로 어쩌면 모험일 수 도 있었던 아이돌 그룹 시리우스에 열광하면서부터였다는 설정은 소설적 비약일 수 도 있겠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언가에 열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대상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처럼 꼭 아이돌 그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보다는 오랫동안 익숙한 것들이, 변화보다는 평온한 삶을 더 좋아하게 된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나도 정운처럼 열광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봐야겠다. “소녀시대” 콘서트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악을 써대며 야광봉과 피켓을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을 지도 모를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피식 웃음이 나고 괜시리 낯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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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어드 1 - Call me Transer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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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으로부터 10 여 년 전인 1999년, 도서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판타지 장르 소설들이 처음 태동하던 그 시절 놀라운 소설을 만났었다. 22세기 미래 시대의 프로게이머 이야기와 영혼이 에뮬레이터된 존재가 들려주는 가상의 이야기가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되었던 이 책은 독특한 세계관과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혀 어색함이나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룬 짜임새 있는 전개,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이 책은 사람의 말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라는 독특한 설정 때문에 “철학 판타지”라 불리울 정도로 높이 평가를 받아 판타지 장르소설 1세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바로 김상현의 “탐그루”(전 12권, 명상, 1999년)가 그 책인데, 꽤나 인상 깊었던 작가의 후속 작품들은 그 후로 아쉽게도 접해보지 못했다가 최근에 역사 팩션 소설인 “이완용을 쏴라”(우원북스, 2010년 4월)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를 다시 만나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탐그루 출간 이후 판타지에 한정되지 않고 SF, 추리, 역사물 등 다양한 장르로 작품의 외연을 넓혀온 점이 놀라왔고, 생경한 역사 팩션 장르에서도 한층 진일보한 필력과 스토리 구성으로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역시 놀라웠다. 그의 작품을 이렇게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그동안 소식이 없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아 절로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탐그루”에서 느꼈던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게 된 걸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초창기 장르 소설 중 가장 인기가 있었고, 재출간 요청이 가장 많이 쇄도했었다는 SF소설 “하이어드”가 재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기쁜 마음에 읽게 된 “하이어드”(시공사, 2010년 7월) 1,2권에 대한 첫 소감은 아직도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SF소설 장르에서 이렇게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작품이 이미 10년 전에 선보였었다는 것에 대한 경탄이었다.  

   작품의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인 지구를 연상케 하는 "어스(Earth)”를 무대로 하고 있다. 대기권을 탈출하는 기술보다 자신들의 별을 100번 박살낼 수 있는 기술을 먼저 만들어낸 어스의 종족 “휴먼 레이스”들은 결국 “최종 전쟁”이 일으키고 결국 종말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동안 어스 주변에서 휴먼레이스들을 지켜보고 있던 외계종족들이 어스에 나타나고, 휴먼레이스를 용병으로 고용하여 종족간의 우주전쟁에 내모는 한편, 행성 어스를 중립지역으로 선포하여 온갖 외계 종족들의 망명지이자 피난처로 만들어 놓는다. 어스 행성의 돔형 도시 “푸우순”시의 돔 밖 마을에 살고 있는 메이런과 아이란은 16세가 되어 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제 진로를 결정하는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 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란은 도시로의 입성을 원하지만 평범한 능력의 메이런은 농사꾼으로 마을에 남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지만, 메이런이 외계종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대화를 하는 능력인 “트랜스”능력이 있다는 것을 선생에게 발각되어 트랜서로 추천을 받지만 어머니의 바램대로 능력을 감추어서 마을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외계 종족에 의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서 그의 바램은 물거품이 되고 외계 종족들이 의뢰한 일을 해결해주는 ‘하이어드’ 쿨란과 함께 트랜서로 일하게 된다. 1권에서는 만티드 레이스(곤충형 외계 종족) ‘시크사’가 ‘갈색의 여왕’이라는 비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왕가의 보물을 훔쳐 행성 어스로 오게 되고 사라져버린 그를 찾기 위한 쿨란과 메이런의 활약이 펼쳐지고, 2권에서는 1권의 사건이 종결된 지 3년 후 웨이팅 하우스 시의 경찰이 된 아이라가 라디오 방송국 회장 포레스트의 명령에 따라 직할반 특임조에 차출되어 도난당한 비밀문서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게 되고, 트랜서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트랜스로 인한 부작용인 “미싱”의 위기에 직면해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메이런이 연방 수사국의 의뢰로 쿨란과 함께 웨이팅하우스 시로 파견되어 아이라와 만나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음모로 인해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권과 2권, 각 권마다 사건이 일단락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서는 이 작품의 배경인 어스 행성의 역사가 소개되고 이제 막 트랜서로 첫발을 내딛은 메이런의 활약이 펼쳐지고, 2권에서는 친구였던 아이라와 메이런이 서로 다른 도시에서 활동하다가 사건 때문에 같은 곳에서 만나 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을 그리고 있다. 지구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지구임에 분명한 행성 어스에 대한 설정, 시각적 이미지로 명확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외계 종족, 그리고 일종의 해결사인 “하이어드”란 직업과 텔레파시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인 “트랜스”에 대한 묘사 등 SF로서의 전혀 손색없는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을 연상케 하는 “로즈웰형 외계인”, 베트남을 연상케 하는 “락벳 행성”이나 흑백 차별을 떠올리게 하는 “만티드 레이스”의 해방운동과 같은 사건과 배경들은 작가가 탐그루에서 보여줬던 정치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이미 “철학 판타지”라 평가받았던 탐그루를 통해서 묵직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던 것처럼 이 책에서도 주인공인 메이런과 아이라가 성장하면서 겪는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들을 밀도있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위주의 가벼운 장르소설의 한계를 벗어나 품격 있는 SF소설로서의 풍취를 한껏 나타내고 있다. 장르소설로서의 재미, 그리고 진지한 고민과 현실에 대한 풍자가 잘 어우러진 이 책이 10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비록 출간 당시 접하지 못하고 10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토리와 재미, 그리고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는 이 책을 놓치지 않게 된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8월에 출간 예정이라는 메이런의 전쟁이 다뤄질 3,4권에서는 어떤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결말을 맺게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작가 김상현, 아무래도 그의 작품들은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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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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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들에게 기혼자들 백이면 구십구 꼭 하는 충고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그냥 혼자서도 살만 하다면 결혼 하지 마라”이다.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냥 아이 낳으면 그 다음부터는 좋은 시절 끝난다느니 빚내서 집사놓고는 빚과 이자 갚느라 허리가 휜다느니, 마누라 바가지 때문에 좋아하는 술도 한잔 못하고 왕따가 되었다는 등 자신의 암울한(?) 결혼 생활 사례들을 침을 튀겨가며 상세히 늘어놓고는 이래도 결혼하구 싶냐 하는 표정으로 노려본다.  그래도 결혼하고 싶다 그러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저것이 직접 경험해봐야 그때 가서 선배 말 들을 껄 후회를 하지 읖조리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저승사자는 뭐하나 몰라 우리 마누라(또는 남편) 안 잡아가고 라는 위험한(?) 소리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기혼자들의 푸념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오늘날 - 물론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 중의 하나가 “결혼”이라는 것을 꼽는 걸 보면 딱히 오늘날에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인류의 역사 이래로 꾸준히 들어왔을 그런 푸념들일테다 - “마누라(또는 남편)가 죽었으면”하는 상상은 어쩌면 귀가 솔깃할 그런 상상일 것이다.  아카가와 지로의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살림출판사, 2010년 7월)은 이처럼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마누라 죽이기’라는 상상을 한번쯤은 꿈꿔봤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전제를 바탕으로 그런 상상이 현실에서 착착 이뤄지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소동을 소재로 한 재밌고 유쾌한, 그러면서도 묘한 감동을 주는 그런 소설이다.  

  전직 신문기자로 정보 수집과 취재를 담당하는 가게야마, 방송 드라마 작가로 스토리를 담당하는 고지, 실제 집필을 담당하는 소설가 니시모토, 그리고 글을 다듬고 최종 완성을 담당하는 시인 가가와, 이렇게 네 명은 ‘니시코지 도시카즈’라는 필명으로 공동 집필을 하여 몇 몇 작품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유명 작가 그룹이다. 어느날 “마누라 죽이기”라는 발칙한 소재로 그동안의 공동 창작에서 벗어나 각자 이야기를 써보고 그 이야기를 서로 평가해보기로 한다. 인세 수입의 공동 배분 비율을 조정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돈만 밝히는 아내 때문에 힘든 니시모토, 해외여행과 명품에 빠져있는 아내에게 질려 바람을 피는 가게야마, 혈기왕성한 젊은 아내 때문에 밤이 곤혹스런 가가와, 결혼 사실을 숨기고 아내와 아이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삶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가와, 각자에게는 이처럼 아내를 죽이고 싶은 나름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을 소재로 소설을 써나간다. 초안이 완성되고 서로 발표하고 난 후 이야기를 좀 더 다듬고 보완하기로 한 후 그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자기들이 작성한 소설 초안 그대로 현실에서 그대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상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어 버린 작가들은 예기치 않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4명이 각자 아내에게 살의를 품게 되는 과정과 소설로 시작되는 마누라 죽이기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황당하면서도 예측 불허의 흥미진진한 상황 전개,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조금은 뻔한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이야기를 쥐락펴락 하는 글 솜씨가 정말 예사롭지 않은, 책 읽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다. 초반부와 중반부까지는 기발한 미스터리로 출발하지만, 긴박한 사건이 결말에 이르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그러면서도 묘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로맨스 시트콤을 본 느낌이 들었다. 사실 네 명의 아내 모두 다 악처라 불리울 정도로 못된 아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그런 모습의 아내들이다. 다만 그걸 못 견디어 하고 그녀들을 죽이고 싶다는 발칙한 상상들을 하는 네 명의 남편들이 어쩌면 속 좁고 옹졸한 인간 군상을 대표한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지금 내 곁의 아내는 저 네 명의 아내 중 어디에 해당할까 하며 비교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처럼 아내를 죽이는 상상은 절대 하지 않고 말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말대로 나는 콩트는 콩트일 뿐 절대 오해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과연 이 책에서 “왜 부인을 죽이고 싶냐고? 결혼하면 알아. 그게 답이야” 라고 말한 대로 모든 결혼한 남성들과 여성들 - 이런 상상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악처 못지 않게 악부(惡夫)라 불릴 만한 못된 남편들도 많을 테니 -은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까? 아마도 대부분 기혼자들은 물어보면 “에이 설마” 하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러나 말 끝에 감지되는 묘한 여운의 의미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책을 읽은, 또는 읽고 싶은 기혼자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정말로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고 싶었던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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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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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내가 선호하는 장르인지라 많은 작가의 다양한 추리 소설들을 읽었는데 최근 들어  추리소설 장르 중의 하나인 “코지미스터리” 몇 몇 작품을 읽게 되었다.전통적인 추리소설의 특징인 절묘한 플롯과 뒤통수를 때리는 강한 반전이 주는 쾌감은 다소 부족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굳이 끔찍하거나 공포스러울 필요가 없는,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반전을 보여주는 소설로써 꽤나 매력적인 장르라 생각이 된다.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운다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소설은 이번에 읽은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01 -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작가정신, 2010년 7월)이 처음이었는데 코지 미스터리 특유의 유쾌함과 즐거움, 그리고 마지막 의외의 반전이 꽤나 인상 깊은 그런 추리소설이었다. 

 어느날 가상의 해안 도시인 하자키 시에 있는 빌라 매그놀리아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입주자가 없어 빈 상태였던 3호실에서 발견된 이 시체는 얼굴과 손가락이 짓뭉개져 있어 신원을 금새 확인하기가 어려운 그런 상태였다. 죽은 지 며칠 안 되었고 위 송곳니가 빠져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사망 추정 시간에는 태풍이 불었던 터라 외부 사람의 왕래가 불가능해서 범인은 빌라 내부 사람 중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마지 형사반장과 신참 히토쓰바시 형사의 탐문 수사가 진행되고, 총 10채로 이루어진 빌라 주민들의 사연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전 주민이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용의자가 너무 많은 그런 상황에 빠져 버린다. 온갖 추문과 풍문이 사실처럼 떠돌면서 이웃 간의 반목이 점점 더 심해질 무렵,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로 수사망이 좁혀지고 사건은 뜻밖의 결말로 해결되고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의외의 반전이 드러난다. 

 “작은 동네를 무대로 하여 누가 범인인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폭력행위가 비교적 적고 뒷맛이 좋은 미스터리”라는 작가의 코지미스터리에 대한 정의처럼 책은 읽는 내내 그리 끔직하거나 공포스럽지 않고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고 재미있다. 특히 빌라 주민들 각각의 독특한 개성과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용의자가 될 수 있는 복잡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점층적으로 사건의 결말에 다다르는 전개가 여느 추리 소설 못지 않게 치밀하면서도 당위성있게 묘사되어 있다.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드러나는 몇 몇 반전들은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기막힌 맛은 없지만 나름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의외성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특히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참 재미가 있는데, 여러 등장인물 중 사건 해결의 주인공들, 즉 경찰서장의 장황한 연설과 권위적인 행동에 시니컬한 모습을 보여주고 동료인 히토쓰바시를 골탕 먹이는 다소 괴짜 스타일의 캐릭터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놀라운 추리력은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하는 고마지 반장과 늘 반장에게 당하면서도 성실하고 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빌라 주민 중 한명과의 숨겨진 로맨스에 가슴 떨려하는 히토쓰바스 형사 콤비의 활약은 여느 추리소설의 명콤비에 못지 않는 독특하면서고 재밌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사건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말썽꾸러기들이자 히토쓰바스의 오래된 연인의 딸인 쌍둥이들의 기상천외한 활약 또한 입가에 웃음이 절로 짓게 하는 유쾌함과 색다른 재미를 주는 인상깊은 캐릭터들이라 할 수 있겠다.  기막힌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일상 미스터리의 참맛을 보여준 이 소설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로 계속 나온다니 멋진 콤비인 고마지와 히토쓰바시는 또 어떤 유쾌하고 즐거운 모험을 선사해줄지 후속권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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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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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국문학자로서, 민속학자로서 널리 알려지신 김열규 교수님는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독서> 등의 책은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고 신문이나 잡지 기고 글 몇 편을 읽어본 게 전부였다. 이번에 읽은,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생각과 후학들에 대한 당부말씀을 담으신 “공부; 김열규 교수의 지식탐닉기”(비아북, 2010년 7월)이 사실상 첫 책인 셈이다. 

 교수님은 서문에서 공부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한번쯤 공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야 하며 공부에 대한 정의와 “캐기”,“짓기”로 나눌 수 있는 공부의 방법들과 “읽기”와 “쓰기”의 글 공부와 살면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인생 공부, 21세기 IT와 글로벌리즘 시대가 공부에 끼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살펴보겠다고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이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면서 공부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들의 글 동부 인생 공부에 작은 버팀목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책은 공부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보다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노 교수의 공부에 대한 단상들을 담은 일종의 에세이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부담 없이 쉽게 읽힌다.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라는 자신의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첫 마디로 하셨다는 일종의 추임새인 이 단어가 자신의 공부의 첫 장이라는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겹게 들어온 “공부”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교수님은 한자로 工夫 라고 쓰는 이 말을 한자 한자 풀이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공(工)은 원래 물건 만드는 연장을 의미하는 한편 사람이 연장을 들고 있는 모습을 의미하는 뜻으로 도구와 연장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손질하고 짓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글 공부니 학교 공부니 하는 뜻으로 쓰게 되면 그때는 손이 아닌 머리를 도구처럼 써서 좋은 생각을 익히고 빚어내는 것이야말로 공(工)의 의미가 될 것이다. 부(夫)는 두건, 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니 공(工)과 어울려 써서 공부란 ‘머리를 써서 일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애를 쓰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머리를 싸매고 짜면서 머리를 쓰는 것으로도 정의할 수 있는 공부의 원칙에는 노력과 땀으로만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짜는 없다”와 꼭 노력한 만큼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배신은 없다”를 들 수 있고, 고통과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는 공부는 그 고통을 견뎌내고 즐겨야먄 보람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므로 “카르페 파시오 carpe passio, 고통과 함께 살면서 고통을 즐기라”를 명심하라고 당부한다. 이러한 공부의 정의를 시작으로 책에서는 머리, 가슴, 손, 몸과 다리 등 신체기관 및 책가방, 책꽂이, 책상, 책 등 공부의 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부의 모습을 소개하고 글 읽기와 글쓰기의 방법 및 단상들, 공부하는 직장인이라는 신조어인 “샐러던트saladent(샐러리맨salaryman 과 스튜던트student의 합성어)”의 시대에서 마이스터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와 21세기 정보화시대에서의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수님의 여러 글 중 어릴 적 나도 자주 들었던 “소설 읽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하는 ‘ 설을 못 읽게 하는 어른들에게’ 편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신이 개발한 숨어 읽기의 비법, 즉 ‘몰래 읽기’, ‘바깥 읽기’, ‘도둑 읽기’ 세가지 비법 - 누구나 다 한번쯤은 사용했던 방법이라 비법이라 하기는 좀 그렇다. 다만 대상이 소설만이 아니라 만화책일 수 도, 성인 잡지일수도 있었던 것이 다르지만^^ - 을 소개하고 재미를 곁들여서 문리(文理)를 터득하는 데는 소설만 한 것이 없으며 소설을 읽지 말라는 건 글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 가장 인상 깊었다. 또한 교수님이 바라는 삶인 “책만장자” 삶, 즉 돈이 많은 억만장자가 아니라 책읽기로 살아가는 한평생, 서가 앞에, 거기 꽂인 책들 앞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앉아서 그 하고 많은 낯익은 구면들이 던지는 정겨운 눈짓을 즐거이 받아내는 삶, 이렇게 또 저렇게 10년, 20년, 아니 40~50년에 걸쳐서 책이라는 지기지우(知己之友)들, 이를테면 나를 알아주는 친구들과의 사귐이 지켜지는 삶을 다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교수님의 바램은 바로 내가 꿈꾸는 바로 그런 삶인지라 꽤나 인상 깊었다.

학문적 성취를 이루신 노학자(老學者)의 공부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인 묵직한 사유(事由)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이 책은 쉽고 재밌게 풀어쓴 교수님의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좋았던 책이었다. 한참 공부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청소년들이 공부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로서, 이제는 더 이상 공부해라 라는 말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평생 공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계기로서,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지 않고 공부라는 말에 정색을 하지 않고 가볍게 읽어보는 수필집으로 읽어본다면 좋을 그런 책이다.

지난 91년 이순(耳順)의 나이로 고향으로 내려가신 후에도 해마다 한 권 이상 책을 집필하고 계속 강연을 해오시던 교수님이 고향 인근 고등학교에서 지난 3년 동안 논술 및 글짓기 강의를 하신다는 근황을 전하는 최근 뉴스((MBN TV 2010.7.31.) 인터뷰에서 
 

“소년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내 나이를 깜빡 잊어버리니까, 78살의 고등학교 교사는 나밖에 없을 거예요. 그게 큰 자랑거리죠."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제는 편히 쉬셔도 좋을 연세이신데도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시는 교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내게 공부란 그런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로, ‘타자’의 보호없이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하나 나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 그렇게 자연과 세계와 사물들을 이해하며 전인(全人)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나의 공부이다.

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죽는 날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공부를 멈추지 않으실, 죽음마저도 다시없는 공부의 기회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하신다는 교수님의 공부하는 삶이 감히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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