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0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아이돌(Idol) 스타 팬클럽에 요새 30대의 “아저씨” 넥타이 부대들의 가입이 부쩍 늘어나고, 콘서트 현장에 가보면 아이돌 스타들 나이 또래의 자녀를 둔 머리가 희끗 희끗하신 중년 남성들이 자녀들과 함께 야광봉과 피켓을 흔들며 열광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멋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들에게 연일 아주머니들의 선물 공세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주책 맞다고 핀잔을 들었을 이런 청장년 팬들이 더 이상 낯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는 아이돌 스타는 모든 세대들이 좋아하는 일종의 문화 아이콘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이돌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이루었지만 기복 없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에 푹 빠져 열광하던 젊은 날의 그런 열정을 다시 찾고 싶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표현에 적극적인 10대들처럼 콘서트 현장에서 마음껏 소리도 질러보고 싶고, 빠른 비트의 음악에 잘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손과 발을 땀이 흠뻑 나도록 열심히 흔들어보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젊은이들과의 공감을 통해서 자신들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열정을 되살려낸 그들의 삶은 그래서 더욱 활기차고 즐거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전아리의 “팬이야”(노블마인, 2010년 7월)는 이렇다 할 꿈과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이제 삼십을 바라보던 여성이 열성적인 팬이 되면서 겪게 되는 삶에 있어서의 변화와 사랑을 재미있게 그린 소설이다. 

  스물아홉 살 계약직 회사원 김정운은 이렇다 할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다. 어느날 사귀던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서 모험의 부재가 문제였다는 것을, 삶에 있어 열정의 증거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인기 아이돌 그룹인 “시리우스” 콘서트에 지원하러 나갔다가 받게 된 음악 CD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시리우스 멤버들과 짜릿한 포옹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팬이 된다. 무미건조하고 소극적인 삶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열정을 바치는 경험을 하게 된 그녀는 시리우스에 더욱 열광하게 된다. 팬클럽 활동하면서 공연장과 촬열장을 누비고 다니던 정운은 정운에게 위조 티켓을 팔아먹은 10대 소녀 차주희와 그의 사촌오빠이자 방송국 직원인 장우연, 냉소적이지만 계속 끌리게 되는 매력적인 남자 오형민 PD 등등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정운은 자신을 좋아하는 연하남 장우연과 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오 형민 PD에게 계속 끌리면서 우연과 형민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한편 회사 구조 조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정운은 자신의 기획서를 계속 퇴짜 놓던 팀장이 사실은 자신과 닮은 정운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팀장이 새로 차린 회사에 입사하여 이제는 정직원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형민을 좋아하는 정운의 마음을 알게 된 우연은 일본으로 연수를 가기로 결심하고 정운에게 작별을 고하고, 정운은 해외로 떠나 버리는 형민에게 - 사실은 해외 로케를 위해 며칠 출장을 가는 것이었지만 - 더 늦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이십대 후반 여주인공이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마치 하이틴 로맨스 소설 같은 이 책이 과연 나에게 맞을 까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이렇다 할 꿈도 열정도 없던 정운이 시리우스에게 열광하면서 자신의 삶이 하나 둘씩 바뀌면서 적극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에 절로 응원을 하게 되고, 멋진 남자들인 우연과 형민과의 로맨스가 과연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히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시리우스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정운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소동이 참 재미가 있는데, 담을 넘어 방송 촬영 현장으로 숨어 들어가지 않나, 정운이 좋아하는 멤버를 퇴출시키려는 기획사로 쳐들어가 일대 소동을 벌여 주동자로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 시리우스 멤버와의 일일 데이트 상대로 뽑혀 방송에 출연하고 쏟아지는 악플과 주변 동료들의 시선에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고 다니는 모습, 마지막에 사랑을 확인한 남자를 앞에 두고 시리우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향해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뛰어가는 장면들은 읽는 내내 킥킥거리며 웃게 만든다. 소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정운이 일과 사랑에서 멋지게 성공을 거두게 만든 건 바로 어쩌면 모험일 수 도 있었던 아이돌 그룹 시리우스에 열광하면서부터였다는 설정은 소설적 비약일 수 도 있겠지만,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언가에 열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대상만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처럼 꼭 아이돌 그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들보다는 오랫동안 익숙한 것들이, 변화보다는 평온한 삶을 더 좋아하게 된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나도 정운처럼 열광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봐야겠다. “소녀시대” 콘서트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악을 써대며 야광봉과 피켓을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을 지도 모를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피식 웃음이 나고 괜시리 낯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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