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린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원제 ガラスの麒麟 /노블마인/2010년 9월)>은 표지가 참 인상적인 책이다. 연한 자주 빛 색상에 강렬한 붉은 넥타이를 맨 교복을 입은 소녀가 액자 모양의 유리 안에 갇혀 손을 유리에 대고 눈을 감고 서있다. 그 앞으로는 투명한 기린 세 마리가 수풀을 지나가고, 까마귀로 여겨지는 새 세 마리도 그려져 있어 표지만으로도 책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일본판 원서 표지도 봤는데 한국판이 더 좋다^^ - . 그런데 연한 파스텔 풍의 아름답고 몽환적 느낌의 이 표지에 출판사 홍보글 제목이었던 “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라는 글을 연상시켜보니 음산함과 함께 귀기(鬼氣)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하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책은 여고생의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최종 범인이 밝혀지기까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된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순서의 작품이자 표제작이기도 하며 첫 장면에서 충격적인 죽임을 당하는 안도 마이코가 지은 동화(童話) 제목이기도 한 <유리기린> 편에서는 앞서 말한 주인공의 처참한 죽음과 그녀의 친구이자 살인 사건 전날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나오코에게 죽은 안도의 영이 빙의(憑依)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줘 독자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그리고는 안도가 죽은 후 종업식날 무렵의 풍경을 묘사하고(<3월 토끼>), 놀이터의 불특정 대상의 아이를 노린 끔직한 사건이 벌어지고(<닥스훈트의 우울>), 이미 살인범에게 공격을 받은 안도, 나오키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속 나머지 친구가 죽은 안도의 유령을 보게 되고 이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는 안도의 죽음이 있기 3년 전 방화사건을 저지른 선배에게 죽은 안도가 편지를 보내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를 들려주고(<어둠의 까마귀>), 마지막 작품이자 안도의 또 다른 동화인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에서는 동화를 통해서 범인을 밝혀낸 진노 나오코가 살인범을 찾아가게 되고 마침내 범인이 체포되면서 살인사건은 해결된다. 매 편이 서로 다른 화자(話者)가 이야기를 진행하고 각각마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마치 독립된 단편소설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안도 마이코와 이 책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양호 선생 진노 나오코가 빠짐없이 등장하여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제시하여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사건 -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소개 글이 제격이다 - 하나하나의 이야기 구성이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게 만드는 몰입도가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도 마이코와 진노 나오코에 대해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우선 아름다운 미모, 부유한 가정, 우수한 성적으로 소위 “엄친딸”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안도 마이코가 사실은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외로운 소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저절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전개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또한 부족한 단서나 이야기만으로 여섯 편 모두의 사건을 해결해내는 진노 나오코의 추리 솜씨는 그녀가 등장하는 또 다른 추리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한다. 다만 작가가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서술 트릭”적 경향을 도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를 노린 연쇄살인범의 범행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안도 마이코의 살인 장면, 실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같은 사건을 당한 충격에 의한 정신착란 증상인지 모호한 나오코의 빙의 장면, 마치 연쇄 살인범이 또 다른 살인 대상을 쫓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 해결 등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미스터리 물로써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엄밀히 말하면 추리소설은 외형적 형식일 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십대 소녀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청춘소설로 보는 것이 맞을 수 도 있을 것이다 - 청춘 미스터리로 소개하는 홍보글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 도 있겠다 -.  

  추리소설과 청춘소설, 두 가지 장르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성취를 보여준 가노 도모코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하는 - 검색을 해보니 코지 미스터리물인 <무지개 집의 앨리스>와 <나선계단의 앨리스>가 출간되어 있다 -, 대형서점 추리 코너를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일본 추리작가들 중에서 분명히 주목할 만한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다만 일본 추리소설 덕분에 읽을 꺼리가 풍성해지는 것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분명히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우리 작가 작품들도 그들처럼 다양한 소재와 현대적 감각의 소설들이 많아져 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괜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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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
조병식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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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드니 느는 것은 한숨(걱정)이요 줄어드는 것은 통장 잔고다”   

라는 친구의 푸념처럼 중년에 접어드니 걱정거리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중 "건강"에 대한 걱정이 꽤나 큰데, 쉬이 피로해지고 하루 이틀이면 나을 감기도 일주일 이상 달고 사는 것은 보면 건강이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특히 매년 회사에서 시켜주는 종합검진 때면 불안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데, 검진 결과표를 받을 때는 무슨 대학 입시 합격자 통지서를 받는 것처럼 불안 불안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검진표를 열어보고 다행히 큰 이상 없다는 소견 - 솔직히는 큰 병이 없다 뿐이지 수치들은 성인병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 에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이제부터라도 금연금주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자 하고 굳게 다짐하건만 그것도 한 때 뿐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쉽게 포기하고 일 년을 허송세월하다가 건강검진 시즌이 돌아오면 또 긴장하기를 반복하고야 만다. 최근에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회사 선배 사원이 검진결과 위암이 걸렸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얼굴이 10년을 늙어버리게 버리는 모습 - 다행히 위암 초기라 위(胃)의 2/3를 절제하는 수술로 치유가 되었다 - 을 보고는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와 운동을 시작하고 먹는 것에 다시 신경 쓰기 시작하던 무렵에 마침 여러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건강교양서적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치유"라는 대체 의학으로 암과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창하고 나선 <조병식 원장의 자연치유(왕의 서재, 2010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의사로 근무했던, 이른바 "현대의학"을 전공한 현직 의사가 한의학이나 민간치료법에나 볼 법한 "대체의학"이라니 조금은 엉뚱하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병원에 재직하면서 만났던 암환자들이 현대식 항암치료에 고통 받으면서 치유는 커 하나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회의감을 느껴 결국 독학으로 2년 동안 그동안 알려진 수많은 대체요법들을 연구하고, 운영하던 병원마저 문을 닫고 산으로 올라가서 독학한 대체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말한다.  그러기를 5년, 드디어 미신이나 기적으로 치부되어온 자연 치유법을 완성하여 암이나 난치병 환자들에게 적용해보니 놀랄만한 치료 효과를 거두었고, 처음 산골 집을 개조해 10 여명의 환자 밖에 거둘 수 밖에 없었던 초라한 의원이 수십명이 함께하는 시설로, 환자들이 자기 집처럼 살며 치유할 수 있는 병원이자 마을인 "자연치유마을"을 개원하기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바로 조병식 원장이 운영하는 자연치유마을에서 실제 행해지는 치료법과 그 곳에서 치료받고 있는 많은 환자들의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이다.    

   책 첫 페이지에 실려있는 추천의 글을 보면   동양의학은 "건강(健康)"에, 서양의학은 "병(病)"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건강하지도, 병에 걸리지도 않은 "불건강(不健康)" 또는 "미병(未病)"한 상태인 75%의 사람들은 어느 쪽의 관심도 받지 않은 회색 지대에 놓여 있으며 이 불건강을 다스려 보겠다고 회색지대에 용감하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대체의학이라고 말한다.그러한 대체의학의 일환으로 신체를 스스로 낫게 하는 능력인 "자연치유"가 바로 현대 의학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이 책에서 그렇다면 자연치유란 과연 무엇일까?  

 “암이나 난치병 치료가 어려운 것은 아니며, 그 기전과 원인을 알고 이를 바로 잡으면, 우리 인체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재생 시스템을 재가동하게 된다. 즉 병을 만들고 암이 생긴 반대 과정으로 가는 것이다. 거꾸로 암세포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암세포는 억제된다. 이것이 자연치유다.” 

  즉 그는 우리 몸에는 세포의 DNA 단계에서 시작하여 생물학적인 조직의 모든 단계에 자기 진단, 자기 회복, 재생이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필요한 경우에 언제나 작동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감기가 대부분 나을 때가 되면 저절로 낫듯이 암이나 난치병들도 자연 치유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게 되면 스스로 낫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자연 의원에는 암 뿐만 아니라 당뇨병, 백혈병, 간경화, 아토피 등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입원해서 치료 중인데 자연치유법을 적용하자 놀랍게도 두 세 달 사이에 대부분 그 수치가 좋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으며, 많은 임상사례들과 환자들의 실제 경험담을 소개한다.  

조병식 원장은 자연치유법으로 첫째, 산소와 물, 땅과 숲, 햇빛, 소금 등 자연 그 자체를 활용하는 “자연치유법". 둘째, 암의 첫 번째 원인인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매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정신요법", 셋째, 단식, 관장, 포도-노니요법, 숯 등 몸 속에 쌓인 각종 독소를 해독하여 배출하는 "해독요법", 넷째. 육식과 가공식품을 먹지 말고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며 소화와 연소 과정에도 신경 쓰는 "식이요법", 마지막으로 잘못된 식생활을 바로잡고 온열요법, 단전호흡 및 기공, 면역증강 물질 등을 통해 면역력을 높여 암과 난치병을 치료하는 "면역요법" 등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일반인들을 위해 생활 속에서 명심해야 할 자연치유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4가지를 제시하는데, 오염 물질을 피해 공기와 물 좋은 곳에서 “자연생활”을 하고,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이 풍부한 자연 영양식을 규칙적으로 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적당히 운동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책에서는 일반인들에게도 건강지침서로 활용할 만한 사례들도 많은 데, 예를 들어 다이어트가 건강산업의 총아로 떠오르면서 여기저기 우후 죽순격으로 늘어가고 있는 각종 단식원에 대하여 단식이 자연의원에서도 "해독요법"의 방법으로 이용될 정도로 분명 좋은 방법이지만 저혈당이 우려되는 당뇨병 환자, 간기능 저하가 심한 환자, 빈혈 ·영양실조, 기력 저하가 심한 환자에게는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성인병의 원흉으로까지 여겨지는 소금에 대한 지나친 억제가 신진대사의 균형을 깨뜨리고, 심장건강에 오히려 더 나쁘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산성 식품으로 잘못 알려진 달걀이 사실은 오히려 해독작용에 좋은 유황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라 하는 어른들 말씀처럼 실제로 암세포는 열에 약해 42.5℃만 되면 죽으며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온열요법은 인체에 여러 유익한 효과를 주며 , 암을 치료를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며 실제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즐겁게 생활하면 면역세포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말하고 있어 일상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건강 상식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런 류의 건강 서적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현대의 주류 의학을 전면 부정하고 자신의 치료법만이 최선이라는 아집과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나 "기적의 치료법"  같은, 일종의 종교적인 광신(狂信)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오류에 빠져들지 않고 현대의학을 전공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 치유 사례를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필치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자연 치유법이 주류 의학계에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체의학이라는 점 - 최근 침 뜸으로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유명 침술사도 결국 주류 의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것이 좋은 예다 - ,  또한 전혀 새롭거나 독창적이기 보다는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치료법들이라는 점들은 한계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비전(秘傳)의 치유법이나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그런 치료법이 아니라 책에서는 작가가 수년 동안 기존의 수많은 대체 의학들을 체계화하고 과학화하며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임상 사례와 경험담 또한 단숨에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월간 꾸준한 치료와 노력으로 증세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고, 또는 실제 수치가 호전되는 수준의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논란에 대한 충분한 반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이 최상의 치료제이며, 자연 치유에 길이 있다." 

고 말하는 조병식 원장의 믿음처럼 최종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그의 자연치유법을 담은 이 책이 널리 읽혀져서 암과 난치병으로 절망하고 있을 수많은 환우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 건강을 염려하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몸 속에서 키워가고 있을지 모르는 병원(病原)을 없애고 더 건강해 질 수 있는 생활 예방법으로 자리 매김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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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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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토머스 크롬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절 아들이 낳지 못한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려 하지만 로마 교황이 이를 반대하자 가톨릭 교회와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의 충복으로 왕의 이혼문제를 전면에 나서 해결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 이 결혼이 파탄이 나면서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권력가이자 정치가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가 남겼다는 “정치가는 아무도 모르게 왕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최고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는 권력의 하수인들의 생리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 뒤에 밝히겠지만 사실 나는 토머스 크롬웰과 철권통치로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이 같은 인물로 혼동했었다 - . 워낙 이 헨리 8세의 이야기가 기가 막히고 드라마틱한 탓인지 이 시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들 중 내가 들어본 것만도 여러 편들인데,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케이블 TV에서 방송할 때도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다만 크롬웰과 반대의 삶을 살았던 그 당시의 정치가이자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박원순 변호사의 세기의 재판 이야기인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한겨레 신문사/1999년 19월)>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를 본격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소설이나 영상물을 막론하고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2009년 맨부커상을 수상작품이라는 힐러리 맨틀의 <울프홀(원제 Wolf Hall/도서출판 올/ 2010년 10월)>이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책은 서기 1500년 난폭한 아버지의 폭력으로 초주검이 되어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어가던 소년 크롬웰이 그런 아버지를 떠나 달아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로부터 27년 후 핸리 8세의 고문이자 절대 권력자였던 또 다른 토머스 - 이 시기에는 세 명의 토머스가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크롬웰, 앞에서 언급한 토머스 모어, 그리고 크롬웰을 거둔 추기영 토머스 울지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세사람 모두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지만 최후는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 울지 추기경의 충직한 수하로 두각을 나타낸다. 보잘것 없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생일조차 모르던 비천한 신분의 크롬웰은 천재적인 두뇌와 각고의 노력으로 법률가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과 교역에 능통한 경제 전문가로, 그 당시 외교 언어였던 프랑스어나 이태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각종 언어에도 능통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여 울지 추기경의 단단한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1530년 20년 동안 헨리 8세의 총신으로 군림했던 자신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울지 추기경이 왕의 애인인 앤 불린의 미움을 사고 실권하게 되고 그런 추기경의 복권을 위해 크롬웰은 동분서주해 보지만 결국 추기경은 반역죄까지 뒤집어 쓰고 병사하고야 만다. 울지 추기경도 해결해내지 못한 왕의 이혼문제에 전면으로 나선 크롬웰에게 비천한 출신이라고 비웃는 권력자들의 멸시와 질시 속에서도 갈수록 왕의 총애가 더해지고 결국 크롬웰은 수도원의 해산과 재산 몰수를 통한 교회 권력의 악화를 주도하고 마침내 1534년 국왕이 영국국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the only Supreme Head)>이라고 규정하는 법령인 수장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캐서린 왕비의 이혼과 앤 블린과의 결혼을 합법화시킨다. 그러나 국왕의 절친한 친우이자 총신으로 전대법관이었던 또 다른 토머스인 “토머스 모어”는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4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 그가 단두대에 올라 처형되는 장면에서 책은 끝을 맺는다.  

  사실 헨리8세 시대의 영국 역사에 대해 띄엄띄엄 단편적인 지식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청교도 혁명으로 공화정을 수립한 혁명가이자 철권통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또 다른 크롬웰이자 후대 인물인 “올리버 크롬웰(1599~1658)”과 동일인물로 착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고, 책 페이지가 계속 더해가면서야 결국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그 시대의 역사적 상식이 부족하다보니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들 때문에 몇 번을 앞 페이지를 펼쳐봐야 했고 1권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계도를 들여다 보는 등 책 진도를 나가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당시 역사를 검색해본 후에야 비로소 읽히기 시작했고 2권 크롬웰이 권력을 잡아나가는 장면부터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1권 472 쪽, 2권 620 쪽 총 1,000 쪽이 넘는 분량을 다 읽어내는 데는 꽤나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었다. 그동안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이 벌이는 스캔들이 주였던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비천한 신분에서 일약 최고 권력자로 성장한 크롬웰의 시각에서 그 당시의 역사를 그려낸 이 작품은 음험한 모략가 정도로만 알고 있던 크롬웰의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를 담아내 크롬웰에 대한 재해석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그 당시의 궁정은 주인공이 인용하는 “호모 호미니 루푸스(Homo homini lupus),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라는 말 - 사실 이 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집 <인간(열린책들/2009년 8월>에서 처음 들었었다 - 처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온갖 모략과 권모술수가 점철되어 있는 “늑대들의 소굴(Wolf Hall)"이 그 자체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크롬웰은 결국 자신이 성사시켰던 헨리8세와 앤 블린의 결혼이 결국 파경을 맞으면서 몰락 - 헨리 8세가 앤 불린과 결혼하는데 성공하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법을 바꾸고 종교를 개혁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한 그 결혼 생활은 결국 3년 만에 헨리 8세는 앤 불린을 근친상간의 누명을 씌워 참수시키면서 끝나게 된다. 결혼 생활 기간이 1,000일 남짓 되었기에 “천일의 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 하기 시작하고 결국 결혼을 반대했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토머스 모어처럼 1540년에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만다고 하니 서로에게 늑대일 수 밖에 없는 정치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잘 씌여진(Well-Made) 역사 소설을 읽었다. 힐러리 맨틀의 약력에는 현재 이 작품의 후속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읽어 책의 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헨리 8세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를 챙겨본 후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는 나에게 크롬웰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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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저격수의 고백 2 - 탐욕스러운 기업들의 속임수 경제 저격수의 고백 2
존 퍼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 민음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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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제저격수(Economic Hitman)"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지난 9월 26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였다. UFO, 유령, 버뮤다 삼각지, 음모론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테리 사건들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자주 챙겨보는 애청 프로그램이었기에 그날도 편안하고 느긋한 일요일 오전을 즐기면서 경제 저격수에 대한 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Extreme SurpriseⅠ.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그 방송에서는 1981년 에콰도르 하이메 롤도스 아길레라 대통령, 파나마 오마르 토리호스 대통령의 연이은 항공사고에 의한 죽음이 사실은 두 나라의 경제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의한 것이며, 이처럼 미국의 기업과 국가의 이권을 위하여 세계 각국의 경제 시장에 투입돼서 ‘작전’을 펼치는 비밀요원인 “경제저격수”가 실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에서는 실제 에콰도르 작전에 투입된 전직 경제저격수 ‘존 퍼킨스’가 등장하여 작전의 전말을 폭로하는 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에콰도르가 석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겠다고 부추긴 뒤 그 조건으로 석유에 관한 운영권 및 각종 이권을 미국이 갖기로 협상을 했지만 아길레라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거부하자 미국이 암살자 “자칼”을 투입해서 암살했다고 밝히고 있고, 이러한 그의 폭로는 이미 책 - 국내에서는 <경제저격수의 고백(황금가지/2005년 4월)>로 출간되었다 - 과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니 어쩌면 이번 방송은 시점이 한참 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저런 류의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종종 들었던 터라 크게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여타의 음모론과 다를 바가 없어 그리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금새 잊었었다. 그런데 최근 그 방송에서 나왔던 존 퍼킨스의 책을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 2005년에 출간된 책의 후속편 격인 <경제저격수의 고백2(민음인, 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편에서는 196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경제저격수들의 활동을 폭로하는 형식이라면 이 책은 최근 불어닥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느낀 후일담과 현 경제상황의 문제점, 그리고 자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경제저격수였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과 같은 경제 저격수들이 해외 곳곳에서 활약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번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형태의 자본주의며 이번 위기는 세계적인 쓰나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에 숨겨진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7년 일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 등극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자 이권을 노리고 경제저격수들이 속속들이 아이슬란드에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콜롬비아를 착취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델들을 똑같이 적용하여 많은 빚을 쓰도록 아이슬란드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했고, 작전은 먹혀들어 아이슬란드는 헐리우드나 어울릴 법한 엄청난 소비패턴을 받아들여 흥청망청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었던 미국의 베텔이 지은 알코아 알루미늄 공장을 환경 관련 법안을 포기하면서까지 승인했고 전 국민의 축하 속에서 공장은 건립되고야 만다. 사실 아이슬란드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수력전기에너지와 지열에너지를 착취하기 위한 경제저격수들의 "작전"이었던 이 알코아 공장은 설비를 가동하는 동안 시간당 수만달러의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그 기쁨은 사라지고, 결국 2008년 10월 아이슬란드는 도산하고야 만다. 그는 선진국을 향한 첫 번째  '저격'에 관한 구체적인 상황들을 파악하고 싶어 국가 부도의 아이슬란드에 방문하였다고 밝히면서 아이슬란드의 비극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결과를 마주하고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국가 부도 이유를 밝히고 있는 흥미로운 서문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인 본론에 들어가면 작가는 세계 경제 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경제저격수라는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수석경제학자"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한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작가는 지금의 세계 경제 위기가 케인즈에 반대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호도된 미국의 지배 계층의 변질된 자본주의, 즉 “얼마나 많은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발생하든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유주의의 맹신은 무분별한 규제 철폐와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지고,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용병이 되어 전 세계가 그들의 탐욕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되고 말았으며, 한때는 선량했던 소시민들이었지만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소말리아의 해적들이나 콜롬비아 반군들도 바로 이러한 실패한 경제 모델의 부작용이었으며, 그런 내막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그들을 테러 행위만 지나치게 강조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변질된 자본주의 탐욕의 사례로 에콰도르의 석유시추를 둘러싼 미국 석유회사의 음모와 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사건인 '엔론' 사태를 예로 든다. 그리고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자 자선가로 존경받는 빌게이츠 또한 독점적인 위치를 악용하여 수많은 경쟁업체와 신생업체들을 망하게 하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제3세계의 빈곤 완화를 목표로 하는 자선 단체도 사실은 빈곤악화에 일조하고 있는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등 현대판 악덕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는 기업들의 착취와 탐욕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진앙지인 월가와 투자회사, 은행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해악에 전혀 반성 하나 없이 아직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한 결국 미국 기업정치는 그들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의해 몰락하게 되고 시장은 붕괴될 것이며 최후의 승자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란을 수습할 대안은 없을 것인가? 작가는 위기 상황의 원인은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으므로 '지속 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소비자 책임 수용", "신경제 건설", "선한 청지기의 삶을 장려하는 태도 수용 및 새로운 유형의 영웅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기업과 정부를 위한 새로운 규칙 실행", "개개인의 열정 존중" 등 다섯 가지 해법을 제시하며 책을 끝맺는다.  

  앞에서 본 TV 프로그램이나 전편에서 폭로한 놀라운 사례들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실망하게 될 이 책은 최근 세계 경제 위기 때문에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는 경제 서적들과 비교하면 큰 차별성은 없는 그런 책으로 그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해법도 교과서에나 볼 법한 막연하고 관념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원인과 경제 시스템적인 해법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닥터 둠 "루비니" 교수나 폴 크루드먼 교수의 서적들이 좀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유수의 경제 석학들의 딱딱한 경제 이론 서적이 아닌 미국 기업과 국가의 경제 사냥의 첨병으로서 일선에서 활약했던 전직 경제저격수로서의 경험과 안목이 녹아 들어 있어 그의 주장들이 좀 더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음모론에 대한 호기심에, 아니면 경제위기에 대한 관심에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나는 미국의 치부를 폭로하는 이런 책들이, 그리고 "식코", "화씨 911" 등 미국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가득한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이 적대국가가 아닌 바로 그 당사자인 미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몹시 부럽다. 국격(國格)을 떨어뜨렸다거나, 이적행위를 했다는 등, 국가 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했다는 등의 이유로 법에 의해 처벌받거나 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기존 백인 대통령과 별다를 바 없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라지만 변화를 위해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인 "미국"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작가의 바램대로 미국은 구원받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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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길고양이 행복한 길고양이 1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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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아파트 단지나 길거리에선 "들고양이”,"도둑고양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고양이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도로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고양이 배설물, 찢어놓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악취, 한 밤에 들으면 마치 아이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섬뜩한 고양이 울음소리들 때문에 골칫거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이 삭막한 회색빛 도시 숲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다. 고양이 마니아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인기 블로거라는 ‘종이우산’의 <행복한 길고양이(북폴리오, 2010년 9월)>은 이처럼 우리와 더불어 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PROLOGUE>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키웠던 늙은 고양이 "할매"가 죽고 나서 길고양이들에게서 할매의 모습을 찾으려 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렇게 길고양이 사진을 모으던 중 자신처럼 고양이 사진을 찍는 분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사진 너머에 숨겨져 있는 고양이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작가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작가와 같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그리고 고양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분들도 '아, 고양이도 괜찮구나', '길고양이도 예쁘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사진에 '행복한' 이라는 단어를 붙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올린 한 사진이 어느덧 600장을 넘었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책 매 페이지마다 작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귀엽고 예쁜 사진들을 실어 놓았고, 거기에 절묘하게 들어맞는 재치만점의 제목들을 달아 놓아 마치 유머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든다.  또한 자신들을 분양한다는 말을 듣고 새끼를 데리고 가출해버린 봉정암 "귀넷고양이”,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돌보고 독립할 때까지 자신의 영역의 일부를 내어준 "대부고양이", 사람을 엄청 잘 따라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던 유명한 녀석이었는데 알고 보니 집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외출 고양이었다는, 주인을 따라 멀리 이사가버리니 골목에 허전함마저 감돌았다는 구산동 "무는 고양이" 등 다양한 길고양이들의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 중 독립문 상가에서 만났다는 늙은 고양이 "둘리" 의 사연이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다. 치주염을 앓고 있는지 항상 혀를 반쯤 빼어 물고 있어 둘리라고 불리게 된 그 고양이는 걸음걸이가 굼뜨고 기관지가 상했는지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고, 종종 기침을 했을 정도로 늙었지만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시면서 항상 따로 챙겨주신 구멍가게 할머니 덕분에 길거리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둘리가 뒷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가게 앞으로 찾아와서 울고 있자, 할머니는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상처라도 치료해줄 요량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둘리는 절뚝거리며 그 손길을 피하더니 할머니를 물끄러미 올려보고는 할머니 다리에 몸을 한차례 스윽 비비고 아픈 다리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한다. 자신이 죽을 때를 알고서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께 고마웠다고 인사하러 온 둘리의 마지막 인사에 뭉클한 감동마저 느껴졌다. 
 

  작가는 간혹 사람들이 고양이를 강아지와 비교하면서 주인도 몰라보는 '버릇없는 것들' 혹은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고양이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한 녀석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강아지들이 예쁜 교생 선생님에게 반한 남자 중학생 같다면, 고양이들은 소심한 여고생 같아서 좋아하는 선배가 한번 더 자신을 봐주길 바라며 주위를 기웃거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며 마치 다른 곳을 보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친 거라는 듯,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상대를 보면서 좀 더 함께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쑥스러워 먼저 매달리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고양이이며, 그런 마음을 이제라도 조금 알았다면 고양이들을 이해해주기를 우리에게 당부한다. 그래서 조금만 너그럽게 그들을 바라보면 당신을 바라보면서 홍조를 띠는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해하고 너그러이 바라보면 고양이가 사랑하는 법이 보이며, 이해하는 만큼 사랑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이 어떤 묘생을 살았든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작가의 바램처럼 책 읽는 동안 내내 예쁘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들과 가슴 뭉클한 사연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일보 8월 14일자 [길 위의 이야기] “도둑고양이라 부르지 마라”에서 "도둑고양이가 어디 있느냐? 사람이 버린 음식 주워 먹고 사는 것이 도둑이냐? 도둑질하는 것을 봤느냐? 세상에 도둑고양인 없다. 사람에게 버려진 고양이가 있을 뿐”라는 글처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길 위에서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행복한"이라고 이름 붙인 작가의 소망대로 그들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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