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린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원제 ガラスの麒麟 /노블마인/2010년 9월)>은 표지가 참 인상적인 책이다. 연한 자주 빛 색상에 강렬한 붉은 넥타이를 맨 교복을 입은 소녀가 액자 모양의 유리 안에 갇혀 손을 유리에 대고 눈을 감고 서있다. 그 앞으로는 투명한 기린 세 마리가 수풀을 지나가고, 까마귀로 여겨지는 새 세 마리도 그려져 있어 표지만으로도 책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일본판 원서 표지도 봤는데 한국판이 더 좋다^^ - . 그런데 연한 파스텔 풍의 아름답고 몽환적 느낌의 이 표지에 출판사 홍보글 제목이었던 “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라는 글을 연상시켜보니 음산함과 함께 귀기(鬼氣)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하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책은 여고생의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최종 범인이 밝혀지기까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된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순서의 작품이자 표제작이기도 하며 첫 장면에서 충격적인 죽임을 당하는 안도 마이코가 지은 동화(童話) 제목이기도 한 <유리기린> 편에서는 앞서 말한 주인공의 처참한 죽음과 그녀의 친구이자 살인 사건 전날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나오코에게 죽은 안도의 영이 빙의(憑依)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줘 독자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그리고는 안도가 죽은 후 종업식날 무렵의 풍경을 묘사하고(<3월 토끼>), 놀이터의 불특정 대상의 아이를 노린 끔직한 사건이 벌어지고(<닥스훈트의 우울>), 이미 살인범에게 공격을 받은 안도, 나오키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속 나머지 친구가 죽은 안도의 유령을 보게 되고 이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는 안도의 죽음이 있기 3년 전 방화사건을 저지른 선배에게 죽은 안도가 편지를 보내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를 들려주고(<어둠의 까마귀>), 마지막 작품이자 안도의 또 다른 동화인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에서는 동화를 통해서 범인을 밝혀낸 진노 나오코가 살인범을 찾아가게 되고 마침내 범인이 체포되면서 살인사건은 해결된다. 매 편이 서로 다른 화자(話者)가 이야기를 진행하고 각각마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마치 독립된 단편소설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안도 마이코와 이 책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양호 선생 진노 나오코가 빠짐없이 등장하여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제시하여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사건 -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소개 글이 제격이다 - 하나하나의 이야기 구성이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게 만드는 몰입도가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도 마이코와 진노 나오코에 대해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우선 아름다운 미모, 부유한 가정, 우수한 성적으로 소위 “엄친딸”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안도 마이코가 사실은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외로운 소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저절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전개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또한 부족한 단서나 이야기만으로 여섯 편 모두의 사건을 해결해내는 진노 나오코의 추리 솜씨는 그녀가 등장하는 또 다른 추리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한다. 다만 작가가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서술 트릭”적 경향을 도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를 노린 연쇄살인범의 범행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안도 마이코의 살인 장면, 실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같은 사건을 당한 충격에 의한 정신착란 증상인지 모호한 나오코의 빙의 장면, 마치 연쇄 살인범이 또 다른 살인 대상을 쫓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 해결 등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미스터리 물로써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엄밀히 말하면 추리소설은 외형적 형식일 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십대 소녀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청춘소설로 보는 것이 맞을 수 도 있을 것이다 - 청춘 미스터리로 소개하는 홍보글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 도 있겠다 -.  

  추리소설과 청춘소설, 두 가지 장르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성취를 보여준 가노 도모코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하는 - 검색을 해보니 코지 미스터리물인 <무지개 집의 앨리스>와 <나선계단의 앨리스>가 출간되어 있다 -, 대형서점 추리 코너를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일본 추리작가들 중에서 분명히 주목할 만한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다만 일본 추리소설 덕분에 읽을 꺼리가 풍성해지는 것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분명히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우리 작가 작품들도 그들처럼 다양한 소재와 현대적 감각의 소설들이 많아져 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괜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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