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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저격수의 고백 2 - 탐욕스러운 기업들의 속임수 ㅣ 경제 저격수의 고백 2
존 퍼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 민음인 / 2010년 10월
평점 :
내가 "경제저격수(Economic Hitman)"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지난 9월 26일 방송된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였다. UFO, 유령, 버뮤다 삼각지, 음모론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테리 사건들을 소개하는 이 프로그램은 자주 챙겨보는 애청 프로그램이었기에 그날도 편안하고 느긋한 일요일 오전을 즐기면서 경제 저격수에 대한 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Extreme SurpriseⅠ.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그 방송에서는 1981년 에콰도르 하이메 롤도스 아길레라 대통령, 파나마 오마르 토리호스 대통령의 연이은 항공사고에 의한 죽음이 사실은 두 나라의 경제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의한 것이며, 이처럼 미국의 기업과 국가의 이권을 위하여 세계 각국의 경제 시장에 투입돼서 ‘작전’을 펼치는 비밀요원인 “경제저격수”가 실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에서는 실제 에콰도르 작전에 투입된 전직 경제저격수 ‘존 퍼킨스’가 등장하여 작전의 전말을 폭로하는 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에콰도르가 석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겠다고 부추긴 뒤 그 조건으로 석유에 관한 운영권 및 각종 이권을 미국이 갖기로 협상을 했지만 아길레라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거부하자 미국이 암살자 “자칼”을 투입해서 암살했다고 밝히고 있고, 이러한 그의 폭로는 이미 책 - 국내에서는 <경제저격수의 고백(황금가지/2005년 4월)>로 출간되었다 - 과 방송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니 어쩌면 이번 방송은 시점이 한참 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저런 류의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종종 들었던 터라 크게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여타의 음모론과 다를 바가 없어 그리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금새 잊었었다. 그런데 최근 그 방송에서 나왔던 존 퍼킨스의 책을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 2005년에 출간된 책의 후속편 격인 <경제저격수의 고백2(민음인, 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편에서는 196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경제저격수들의 활동을 폭로하는 형식이라면 이 책은 최근 불어닥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느낀 후일담과 현 경제상황의 문제점, 그리고 자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경제저격수였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과 같은 경제 저격수들이 해외 곳곳에서 활약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번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형태의 자본주의며 이번 위기는 세계적인 쓰나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에 숨겨진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7년 일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 등극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자 이권을 노리고 경제저격수들이 속속들이 아이슬란드에 몰려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콜롬비아를 착취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델들을 똑같이 적용하여 많은 빚을 쓰도록 아이슬란드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했고, 작전은 먹혀들어 아이슬란드는 헐리우드나 어울릴 법한 엄청난 소비패턴을 받아들여 흥청망청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었던 미국의 베텔이 지은 알코아 알루미늄 공장을 환경 관련 법안을 포기하면서까지 승인했고 전 국민의 축하 속에서 공장은 건립되고야 만다. 사실 아이슬란드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수력전기에너지와 지열에너지를 착취하기 위한 경제저격수들의 "작전"이었던 이 알코아 공장은 설비를 가동하는 동안 시간당 수만달러의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그 기쁨은 사라지고, 결국 2008년 10월 아이슬란드는 도산하고야 만다. 그는 선진국을 향한 첫 번째 '저격'에 관한 구체적인 상황들을 파악하고 싶어 국가 부도의 아이슬란드에 방문하였다고 밝히면서 아이슬란드의 비극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결과를 마주하고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국가 부도 이유를 밝히고 있는 흥미로운 서문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인 본론에 들어가면 작가는 세계 경제 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경제저격수라는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수석경제학자"로서의 식견을 바탕으로 한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작가는 지금의 세계 경제 위기가 케인즈에 반대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호도된 미국의 지배 계층의 변질된 자본주의, 즉 “얼마나 많은 사회적, 환경적 비용이 발생하든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유주의의 맹신은 무분별한 규제 철폐와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지고,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용병이 되어 전 세계가 그들의 탐욕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되고 말았으며, 한때는 선량했던 소시민들이었지만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소말리아의 해적들이나 콜롬비아 반군들도 바로 이러한 실패한 경제 모델의 부작용이었으며, 그런 내막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그들을 테러 행위만 지나치게 강조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변질된 자본주의 탐욕의 사례로 에콰도르의 석유시추를 둘러싼 미국 석유회사의 음모와 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사건인 '엔론' 사태를 예로 든다. 그리고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자 자선가로 존경받는 빌게이츠 또한 독점적인 위치를 악용하여 수많은 경쟁업체와 신생업체들을 망하게 하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제3세계의 빈곤 완화를 목표로 하는 자선 단체도 사실은 빈곤악화에 일조하고 있는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등 현대판 악덕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는 기업들의 착취와 탐욕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진앙지인 월가와 투자회사, 은행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해악에 전혀 반성 하나 없이 아직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한 결국 미국 기업정치는 그들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의해 몰락하게 되고 시장은 붕괴될 것이며 최후의 승자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란을 수습할 대안은 없을 것인가? 작가는 위기 상황의 원인은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으므로 '지속 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소비자 책임 수용", "신경제 건설", "선한 청지기의 삶을 장려하는 태도 수용 및 새로운 유형의 영웅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기업과 정부를 위한 새로운 규칙 실행", "개개인의 열정 존중" 등 다섯 가지 해법을 제시하며 책을 끝맺는다.
앞에서 본 TV 프로그램이나 전편에서 폭로한 놀라운 사례들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실망하게 될 이 책은 최근 세계 경제 위기 때문에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는 경제 서적들과 비교하면 큰 차별성은 없는 그런 책으로 그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해법도 교과서에나 볼 법한 막연하고 관념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원인과 경제 시스템적인 해법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닥터 둠 "루비니" 교수나 폴 크루드먼 교수의 서적들이 좀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유수의 경제 석학들의 딱딱한 경제 이론 서적이 아닌 미국 기업과 국가의 경제 사냥의 첨병으로서 일선에서 활약했던 전직 경제저격수로서의 경험과 안목이 녹아 들어 있어 그의 주장들이 좀 더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음모론에 대한 호기심에, 아니면 경제위기에 대한 관심에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좀 엉뚱한 생각이지만 나는 미국의 치부를 폭로하는 이런 책들이, 그리고 "식코", "화씨 911" 등 미국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가득한 마이클 무어의 영화들이 적대국가가 아닌 바로 그 당사자인 미국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몹시 부럽다. 국격(國格)을 떨어뜨렸다거나, 이적행위를 했다는 등, 국가 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했다는 등의 이유로 법에 의해 처벌받거나 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기존 백인 대통령과 별다를 바 없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라지만 변화를 위해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인 "미국"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작가의 바램대로 미국은 구원받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