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30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 / 살림Math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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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와 내신(內申) 성적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속칭 “중요 과목”인 “국영수(國英數)”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학(數學)”은 참 요상한(?) 과목이다. 국어(國語)야 우리나라 말이니 평생을 사용해야 한다니 그렇다 치고, 영어(英語)는 오늘날 글로벌 시대에서 국어 이상으로 중요성이 강조되는 과목 - 너무 지나친 영어 교육 광풍(狂風)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 이니 역시 그렇다 치는데 수학은 입시가 끝나면 더 이상 실생활에서 써먹을 데가 없는데도 중요 과목으로써 학생들을 괴롭혀오고 있다. 물론 이과(理科)라 불리우는 순수과학, 공학 계열 전공자들이나 수학적 논거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경제학(經濟學) 같은 사회과학 계열은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그 외 일반인들에게는 학창 시절 그렇게 괴롭히던 수많은 수학 공식들을 지금 당장 잊어먹는다 해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공부가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혹자는 수학이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 자라나는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고 치매예방에도 수학 공부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고 하며,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수학은 자연과학, 건축학, 공학, 인문 과학 등 모든 학문의 기본(基本)이자 출발점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하며, 심지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신(神)과 우주(宇宙)의 불가사의를 풀 중요한 열쇠가 바로 수학이라는 일종의 종교적 개념으로까지 비약시키는 사람들도 있기까지 하다.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참 중요한 학문인 것은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수학공식들이 실생활에서는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어보면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사이언스 엔터테인먼트’로 이미 수학과 관련된 많은 교양서를 집필했다는 사쿠라이 스스무(櫻井進)의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수학(살림Math/2010년 10월)>은 바로 수학을 공부해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씩 가져봤을 물음, 즉 "수학 시험 볼 때만 써먹는 수학 공식 대체 왜 배우는 걸까?”에 대한 해답서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수학이 어떻게 우리 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지를 알리기 위해 쓴 책이며 자신이 수학 공부하면서 우리는 수학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수학이 우리 마음을 뒤흔드는 강력한 힘이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더더욱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수학 공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수학 용어들과 공식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만화풍의 삽화와 수학자들의 일화를 곁들어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우선 싸인(SIN), 코사인(COS), 탄젠트(TAN)로 잘 알고 있는 “삼각함수”는 고대에서는 별의 운행과 지구 위의 거리를 계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가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지구 위의 거리를 재는 일에 활용되었다고 한다. 로그(log)함수는 복잡한 천문학 계산을 좀 더 빠르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영국 수학자 존 네이피어[John Napier, 1550~1617]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인간의 오감(五感)에 바로 로그의 개념이 사용된다고 한다. 즉 소리가 두 배로 커졌다고 느끼려면 실제로는 에너지를 10배로 올려야 하고, 4배 커졌다고 느끼려면 100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감각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을 따르며, 이것을 설명하는 법칙이 바로 '감각의 크기는 자극의 로그에 비례한다'는 “베버-페히너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리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데시벨(dB)와 지진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매그니튜드(Magnitude)등이 바로 로그로 계산된다고 한다. 요새 널리 보급되어 있는 차량용 네비게이션이 가능한 데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 덕분인데 GPS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을 적용하여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하는 번호나 비밀번호 등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를 암호화해 지키는 보안시스템 구성에 "주어진 합성수(合成數)를 소수(素數)의 곱의 꼴로 나누어 소인수들의 곱으로 나타내는 과정"인 “소인수분해(素因數分解, factorization in prime factors)를 사용하고 있으며, A3,A4,B3,B4 와 같은 인쇄용지 규격에 백은비(白銀比, SILVER RATIO,1:√2, 1:1.4 비율)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설명한다. 황금비(黃金比, Golden Ratio, 1:1.618, 5:8)는 익히 들어봤지만 백은비는 이 책에서 처음 들어봤는데, 작가는 황금비는 서양의 아름다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율, "나선"인데 반해 백은비는 일본의 아름다움, 인위적인 것, 정사각형 이라고 비교 설명한다.  1790년 프랑스 혁명시절 C.탈레랑의 제안에 의해 만들어진 단위법인 "미터법"에서 미터(Meter)는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기준으로 하며, 80년이 흐르고 난 뒤인 1875년에서야 겨우 세계 기준이 되었으며, 고등학교 수학에서 가장 어려웠던 개념인 “미적분(微積分)”은 실생활에서 움직임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는데 자동차 속도계에서 순간 속도는 위치를 "미분"한 것이고 가속도는 속도의 미분, 즉 가속도는 위치를 두번 미분한 것이며 자동차가 움직이거나 멈추면서 시시각각 변화한 속도를 합계한 양, 즉 이동거리가 적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맺음말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평소 수학에 품고 있던 생각이나 견해가 바뀐 사람도 있을 것이고, 특히 수학을 싫어했던 사람이라면 변화의 폭이 한결 클 듯 하며,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수학의 힘, 수학이 머무는 곳을 알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그저 입시과목으로 외우는 대상에 머무르던 수학 공식이 실제 생활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설명해주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을 개발한 사람들은 실제로 수학 공식을 이용해 시스템을 구성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전공자들일 수 밖에 없어 우리 같은 수학 문외한(門外漢)들이나 비전공자(非專攻者)들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사례들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매일 같이 사용하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이나 속도계에 상대성 원리와 미적분이 숨겨 있으며, 세탁기나 컴퓨터 등 가전제품 속에도 우리가 익히 들어온 삼각함수나 로그함수, 이진법 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리고 어린이들이나 수학이라면 끔찍이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읽을거리로 활용해볼만 할 가치 있는 책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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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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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어른이 되길....... 그 얼마나 무서운 주문이었던가” 

별다른 성장통(成長痛)을 겪지 않고 사춘기를 비교적 무난히 넘겼던 - 부모님은 별탈없이 사춘기를 넘긴 내게 아직도 고마워하고 계신다-  내가 실제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된 것은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서게 된 무렵이었다. 그 당시 괜한 감상에 빠져 화두(話頭)처럼 나를 괴롭혀 온 내 존재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남들처럼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틀에 박힌 과정을 겪는 것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가졌던 나는 졸업하고도 2년 가까이 취업을 포기하고 방황을 했었다.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오늘날 이 나이에 이르렀지만 지금 내 모습이 내가 꿈꿔왔던 그런 모습인가 하는, 성장통을 앓던 그 시절의 고민을 떠올려보면 자괴감(自愧感)까지 느껴진다. 어쩌면 성장통을 너무 늦게 앓게 되어서인지 그 때의 가슴 앓이는 훌쩍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의 나이에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가끔식 떠올리게 하는, 어쩌면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견작가 이상권의 <성인식(자음과 모음/2010년 10월)>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겪고 있는 성인 통과 의례와 아픔을 그린 소설로 나처럼 어른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중년의 “어른”들이 읽어도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성장소설이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에는 다섯 편의 성장 소설이 담겨져 있다. 다섯 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성인 통과 의례를 겪게 된다. 표제작이기 도한 "성인식"의 시우는 가족과 같은 개 칠손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서 누구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아픈 통과의례를 치러내고, "문자 메시지 발신"편의 중학생 소녀 "슬기"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다가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해 전학을 간 "정미"와 같은 따돌림을 당하면서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고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암탉"에서 왕따 문제로 도시 외곽으로 이사와 키우게 된 암탉과 오리를 벗 삼아 상처를 치유하던 "예분“은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이웃주민들의 "폭력"에 다시 한번 상처를 입게 된다.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에서 필분이는 조류 독감으로 살처분하라는 압력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키우던 "때까우(거위)"을 데리고 산으로 숨어버리는 자신의 '욕짱' 할머니가 영 이해가 되지 않아 "된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지막 편 "먼나라 이야기"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소 값이 폭락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축산농가의 아들 오연이가 우시장에 다녀온 아버지가 들고 들어온 농약병을 이웃주민처럼 자살하려고 그런다고 오해하고 그런 아버지를 온 몸으로 막아선다.  이처럼 작가는 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겪는 저마다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소중했던 무엇과의 작별의 아픔을 겪는 것이라고 성인식을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요즈음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리며 공부하는 기계로 살아가고 있는 도심 속 청소년들만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모습이 아니라 소외되고 있는 도심 밖 "농촌"의 아이들도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이며, 그들이 겪고 있는 성인 통과 의례의 아픔 또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단편 제목처럼 그저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조류 독감"이나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를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말보다도 더 가슴에 와 닿도록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나는 산다는 것이 먹고 움직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웅크리고 두려움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벌써 알아버렸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고, 웅크리고 두려움을 지켜내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는 너희가 앓고 있는 성장통은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만 어른들처럼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지 말고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미 훌쩍 어른이 되어 버려 성인식을 치루던 그 나이를 까맣게 잊고 사는 우리 어른들에게는 당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냐고,  그래서 되어버린 어른의 당신 모습은 당신이 꿈꿔왔던 그 모습이었냐고 질책하고 있는 것 같다. 짧은 분량의 단편소설들이니 단숨에 읽겠지 하고 별 기대 없이 읽은,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눈높이에 맞춘 여타의 성장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여겼던, 그저 애들 문제로나 알고 있었던 "왕따"나 마찬가지로 남의 이야기로나 알고 있었던 조류 독감이나 쇠고기 문제들을 담은 이 책이 이렇게 나에게 많은 생각꺼리와 큰 울림의 감동을 안겨 줄지는 몰랐었다. 

기대 밖의 재미와 감동을 나에게 안겨준 이 책 덕분에 깊어가는 가을, 내가 어른이 되던 그 시절을 떠올려 보는 괜한 감상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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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
코넬리아 푼케 지음,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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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는 "거울"을 꽤나 무서워했다. 내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그 자체가 낯설었지만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거울에 얽힌 괴담(怪談), 즉 어두운 방에서 거울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거울 속에 비친 “나”가 거울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거울에 가두고는 현실에서 내 행세를 하고 다니고, 거울 속에 갖힌 나는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벽면이나 화장실에 걸려 있는 거울이 무서워서 행여 거울 속의 나와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거울에 대한 무서움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지금도 거울은 괜히 꺼림칙한 그런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유지태 주연의 공포 스릴러 영화 <거울 속으로(2003)>는 케이블 TV에서 방송할 때마다 서둘러 리모콘을 돌려대곤 했다 -. 그런데 영화로도 제작된 판타지 소설 <잉크하트(Inkheart)>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판타지 작가로 유명하다는 코넬리아 푼케의 신작 소설 <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원제 Reckless/ 소담주니어/2010년 9월)>는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울 저편에는 그림 형제가 들려주던 “동화 속의 세계”가 있으며, 그렇다고 결코 아름답거나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고 우리에게 들려준다.

 1년 전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12살 소년 제이콥 레크리스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 빌 몰래 아버지의 서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가 남긴 메모에서 "거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만 열린다” 라는 수수께끼의 글을 만나게 된다. 서재에 놓여 있던 거울을 들여다 보던 중 "거울 저편의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된 제이콥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비밀로 한 채 거울 속의 세계를 드나들게 된다. 거울저편의 세계는 바로 그림 형제가 우리에게 들려주던 동화 속 세계이지만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피부가 말라가며 죽어가고 있고, 헨젤과 그레텔을 유혹했던 “과자의 집”은 마녀가 떠난 채 덩그러이 비어 있지만 아직도 달콤한 냄새로 유혹하고 있으며, 동화속 아름다운 요정 "로렐라이"는 물 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뱃사람들을 잡아먹는 흉악한 요정이 되어 버린, 동화와는 사뭇 다른 그런 세계로 현실세계의 영향을 받아 증기 기관차가 돌아다니고 화승총을 들고 인간들과 돌로 된 피부를 가진 고일 족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런 세계였다.  제이콥은 그런 세계를 드나들며 보물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로부터 12년 후 형을 따라 거울 속 세계를 드나들던 동생 빌이 그만 고일족 발톱에 상처를 입으면서 온 몸이 비취옥으로 점점 뒤덮히게 되는 부상을 입게 된다. 빌의 피부를 비취옥으로 완전히 뒤덮히게 되면 인간으로서 기억을 잃고 고일족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제이콥은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고일족의 저주를 만든 "어둠의 요정"의 언니"붉은 요정"을 찾아 나서지만, 현실세계 속 빌의 연인 "클라라"가 거울 속 세계로 넘어 들어와 일행에 합류하게 되고, 고일족의 왕 카미엔은 자신의 충복 헨차우에게 고일족 전설에 등장하는 "왕을 무적의 왕으로 만들어주는 자" 비취 고일을 잡아오라는 명을 내리고, 헨차우는 부하들을 이끌고 제이콥과 빌의 일행을 추적하게 된다.  제이콥 일행은 헨차우 일행을 피해 붉은 요정을 만나게 되지만 빌은 그만 헨차우 일행에게 잡혀가게 되고, 제이콥은 붉은 요정에게서 암흑의 요정의 숨겨진 비밀과 이름을 알아내고는 암흑의 요정을 죽이기 위해 카미엔 왕성으로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잡히게 되고, 이미 완전히 고일족으로 변해버린 동생을 보고 절망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가 남긴 복엽 비행기를 몰고 카미엔 왕성에서 탈출한 제이콥 일행은 카미엔 왕과 그 일행이 인간국 여제(女帝)의 딸인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암흑의 요정을 죽이기 위해 여제의 궁전으로 잠입하게 되고 제이콥은 마침내 암흑의 요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다음날 고일족 왕 카미엔과 인간국 공주와의 결혼식은 아수라장이 되고, 왕의 경호원인 된 빌은 왕을 암살하려는 인간 군대를 맞아 처절한 싸움을 벌이지만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작가라는 코넬리아 푼케의 작품은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472쪽의 두꺼운 분량이지만 큼직큼직한 활자체, 책 매 쳅터마다 그려져 있는 삽화로 읽는 데 부담이 없는 이 책은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지만 독특하면서도 참신한 세계관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전 세대를 아우르는 그런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성(性)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레크리스(reckless)"는 사전을 찾아보면 “무모한, 신중하지 못한” 이라는 뜻인데 고일족으로 변해가는 동생을 위해 생사를 건 제이콥과 사랑하는 빌을 찾아 거울 저편의 세계로 넘어 들어온 “클라라”, 제이콥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여우, 제이콥의 협박에 의해 강제로 합류하여 끊임없이 제이콥의 돈을 노리는 난장이 등 일행들이 벌이는 모험 그 자체가 도대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무모한 모험이라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단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동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낯설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세계로 창조해내고, 무한정 자라나는 "라푼젤의 머리", 바르면 투명인간이 되지만 중독되면 마비가 오는 "도둑 달팽이의 점액질", 저주에 걸린 개구리 왕자 이야기에 나오는 "황금공"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아이템을 새롭게 해석하여 마치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에서 볼 수 있는 "아이템"처럼 등장시키는가 하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나 증기기관차, 랜턴(손전등), 소총, 비행기 등을 전혀 이질감 없게 어우러지게 한 점들은 그녀가 왜 판타지 작가로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소설적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 시각적인 묘사가 꽤나 두드러지는 데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책 속 삽화를 떠올리면서 읽게 되면 금새 머릿 속에서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탁월하다. 또한 제이콥과 붉은 요정, 카미엔과 어둠의 요정, 빌과 클라라, 제이콥과 여우, 제이콥과 클라라 등 각자에게 느끼는 복잡 미묘한 애정 심리 묘사, 책 곳곳에 등장하는 권력의 속성과 무상함을 묘사하는 문구들은 결코 이 책이 단순히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아직 제이콥보다 먼저 거울 저편의 세계에 들어온 아버지의 구체적인 행적이 드러나 있지 않고, 제이콥에게 내려진 요정의 저주를 풀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한 결말을 보면 제이콥의 모험은 후속권에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거울 저편의 세계의 새로운 이야기가 어서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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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배신 - 질병을 키우는 식품첨가물과 죽음의 온도 120도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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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릴 확률도 수억 분의 일이라고 그러고 무엇보다 그렇게 걱정되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 뭐 저렇게 난리들이야!”

“수억 분의 일이라지만 그 하나가 바로 제가 된다면 그건 100%가 되는 거잖아요. 안 먹고 싶다고 안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각종 가공 식품에, 조미료며 패스트푸드며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들어간다는데 거기에 그거 들어가 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먹게 되잖아요!”
 

대화 내용만으로 짐작이 가겠지만 촛불시위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던 지난 2008년 아버지와 내가 나눈 실제 대화이다. 인터넷 괴담(怪談)이나 방송사 프로그램에 선동되어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걱정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먹지 않겠다고 먹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를 매번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그런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각종 뉴스를 들어 보면 그 당시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우리가 하루 세끼 먹는 모든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중국산 농산물들을 국산으로 속여 팔았다가 적발되었다는 뉴스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고, 제철을 맞은 해산물 머리와 내장에서 중금속이 나왔다고 난리 - 결론적으로는 중국에서 수입해온 해산물에서 나온 걸로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했지만 경제적 손실 이상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어민들이 강력히 항의를 하고 있다 -가 났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멜라닌 분유 파동이 재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뉴스도 들리고, 유명한 가공식품 회사 제품에서 이물질이나 벌레가 나왔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듣다보면 무엇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이야 말로 현대인의 스트레스 상승에 단단히 한 몫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전작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원제 Toxic/랜덤하우스 코리아/2008년 5월)>에서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병을 키우는 것이 바로 독소 덩어리인 “음식”에 있다고 밝혀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유명 프리랜서 시사 전문기자이며 다큐멘터리 기획자이자 도서툴판 기획자인 "윌리엄 레이몽"의 신작 <식탁의 배신(원제 Toxic Food/랜덤하우스코리아/2010년 10월)>은 그러한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며, 오늘도 우리 식탁에 오르는 80%의 가공식품이 바로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독소음식(Toxic Food)"라고 다시 한번 경고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한 음식이 지천에 깔려 있으며 그러한 위험을 무마하기 위해 거대 식품 회사의 로비세력들은 정치인과 결탁하고 온갖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비만을 조장하는 식품업계의 교묘한 술수”로 한 육류업체가 고기의 섬유조직이 없어지도록 곱게 이유는 고기를 더 쉽게 씹도록 하기 위해서, 즉 자연적인 씹는 횟수를 줄여 음식을 더 먹게 할 목적이며 이처럼 식품업계가 우리를 속이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은 실로 다양하다고 밝히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면 작가는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입부에서 작가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만들어진 개념인 “저질 먹을거리(Mallbouffe)"라는 말이 처음에는 ”지나치게 기름지고 달아서 고혈당증과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높은“ 음식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가 "패스트 푸드(Fast Food)"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지만 지금은 우리 식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가공식품, 즉 ”독소식품(Toxic Food)"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주장하는 독소식품이란 무엇일까? 책에서는 과거보다 비타민, 항산화물질, 미네랄이 크게 감소한 야채와 과일 - 1960년대 사과 1개를 먹어 섭취할 영양소를 오날날에는 3개를 먹어야 한다고 한다 -, 햄버거, 감자튀김, 포테이토칩 등 트랜스지방과 당분, 염분 범벅인 패스트 푸드, 공장식 축산방법으로 생산되는 육류나 우유, 각종 화학 식품 첨가물이 들어있는 조리 식품 등 우리가 쉽게 대하는 모든 가공식품을 말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가장 증가한 암인 전립선암, 대장암, 유방암의 원인이 공업화된 육류와 우유(전립선암), 적색 육류와 가공육(대장암), 트랜스지방(유방암), 즉 쓰레기 음식(독소식품)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암의 원인이 기껏해야 2~3% 에 불과한 유전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1980년 대 중반 들어 미국인들이 몸무게만 급격히 늘어난 것이 아니라 암 발병률 역시 급상승 했던 통계로 알 수 있듯이 바로 그 무렵 급성장한 식품회사들의 독소 음식이 비만과 암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감자처럼 전분과 당분 등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품을 고열(120도)에서 조리할 경우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미드가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식품회사들이 어떻게 “혼란시키고, 파괴시키고, 진정시켰는지” 그 속임수를 낱낱이 소개하면서 그들이 건강을 담보로 하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책 말미에 가공식품은 “21세기의 담배”라고 부를 정도로 중독과 폐해가 심하며, 식품의 진화가 인간의 진화 속도를 앞지르면서 지방과 소금, 당분, 화학 첨가물 덩어리인 오늘날의 식품은 이제 우리를 살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되고 말았으며, 이런 음식을 한입 한입 먹으면서 ‘호모 알리멘투스 모데르누스(Homo alimenntus modemus(먹는 현대인)’은 조금씩 중독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독소식품의 위험을 줄이고 식품회사들의 속임수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머리말에서 개인들이 이러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이러한 지식들을 모두에게 널리 알려 독소식품업체들의 전략을 좌절시켜야 하며 이러한 것은 일종의 시민저항을 시작하는 일이며, 그 싸움에 세계 각국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하고 있는 전작인 <독소(Toxic)>에서 워낙 충격적인 사실들을 폭로한 탓인지 -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 , 아니면 전작의 반향으로 후속편인 이 책이 나오는 기간 동안 많은 연구와 의식개혁이 일어난 것인지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관련 서적이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한번 씩은 들어봤을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공식품의 위험성과 식품회사의 속임수는 다시금 우리의 경각심을 충분히 일깨워줄 수 있는, 여전히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릴 적 그렇게 조심하라던 불량식품들이 이제는 버젓이 식탁에 오르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아내가 맛있게 요리해준 음식에 불안감마저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제는 그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먹을거리를 위하여 거리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참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 책이 작가의 말대로 먹을거리만큼은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개인들의 결단과 모두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시민저항의 텍스트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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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대형 서점 추리소설 진열대는 일본 작가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즘 “일본 추리소설”이 대세(大勢)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수많은 일본 작가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를 한 명 꼽는다면 과연 누구일까? 독자들 취향에 따라 여러 작가들 이름이 물망에 오르겠지만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가장 많이 거론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추리소설 애독자들이라면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더라도 이름만큼은 한번 씩 들어 봤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는 한국에 출간된 작품 수만 해도 45권(네이버 기준, 외서(外書)제외)에 이를 정도 - 이 정도라면 한국에 가장 많은 작품을 출간한 일본 작가가 아닐까? - 이니 그 인기에 걸맞게 참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나도 덕분에 그의 작품 몇 몇 권들을 읽어 봤었는데 어떤 책은 과대 포장된 느낌도 있고, 어떤 책은 이래서 그에게 열광을 하는구나 할 정도로 감탄을 절로 나오는 책도 있었다. 워낙 다작(多作) 작가인 만큼 작품마다 편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는데, 몇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어떤 작품을 선택해도 “재미있다”라는 것이 그에게 열광하는 독자들의 공통된 평이며 나또한 그러한 평에 공감하고 있다. 작가에 대한 평에 있어서 “재미” 그 이상의 호평(好評)이 과연 있을까? 그런 “재미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을 만났다. “왜 히가시노 게이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이라는 홍보글에 절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탐정클럽(노블마인, 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원래 탐정시리즈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그이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도 유명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있는데, 바로 본명보다는 탐정 갈릴레오로 유명한 "유카와 마나부" 교수와 "가가" 형사가 그들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들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탐정 콤비가 등장한다. 그들은 검은 색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미모의 젊은 남녀라는 것과 정·재계의 VIP들만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 "탐정 클럽"의 조사관들이라는 것 외에는 이름도 경력도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들이다.  평소에는 VIP의 의뢰를 받아 부하 직원의 비리나 배우자의 불륜을 캐는 일종의 "흥신소(興信所)" 역할을 하다가 클럽 회원이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의뢰를 받아 탐정으로서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 솔직히 탐정은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르처럼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오해로 사설탐정 사무소들은 배우자 뒤를 캐고 다니거나 몰래 감시하는 지저분한 일들을 주로 하는 "흥신소"가 대부분이라니 이 둘이 하는 사생활 조사도 탐정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볼수 있겠다 - "불필요한 짓은 안하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라는 탐정의 말처럼 이들의 사건 해결 방식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 그 자체다. 철저히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감정을 일체 배제한 채 사건을 수사한 후 결과를 의뢰인에게 통보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사건 해결 솜씨나 그들의 철저한 프로의식은 이런 탐정들이라면 의뢰비용에 상관없이 꼭 고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다.  

 책에서는 갑작스런 사장의 자살을 은폐하려는 음모를 밝혀내는 <위장의 밤>, 살인을 사고사로 위장하려는 <덫의 내부>, 아내의 자살을 불륜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딸에게만은 감추고 싶어하는 <의뢰인의 딸>, 남편들을 살해하는 엽기적인 아내들 이야기 <탐정활용법>, 가족에 얽힌 비극과 놀라운 반전을 그린 <장미와 나이프> 등 다섯 건의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클럽의 두 남녀 탐정은 의뢰인의 요구에 철저히 부합하여 하나같이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교묘한 트릭의 사건들을 멋지게 해결한다. 짧은 분량의 단편들이라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황이나 배경, 추리 과정들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밀실 트릭, 변장 트릭, 알리바이 조작, 살인방법 조작 등 추리소설 요소들은 다 보여주고 있고, 범인들의 교묘한 트릭들을 멋지게 간파해내는 탐정들의 추리 솜씨,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인 반전의 묘미까지 한껏 담아내고 있어 한편 한편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 단숨에 책을 읽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탐정클럽의 탐정들마저 속아 넘기려는 두 아내를 그린 <탐정활용법>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동안 읽어 본 그의 작품에서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 이 작품 때문에라도 히가시노의 명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일본에서의 발간년도가 1990년도이고 그 후로 탐정클럽이 등장하는 작품이 없는 것으로 보면 매력적인 캐릭터인 두 탐정은 일회성 단명(短命) 캐릭터로 보여진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어서 히가시노가 이 둘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면 이번에는 단편이 아닌 장편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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