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
코넬리아 푼케 지음, 함미라 옮김 / 소담주니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는 "거울"을 꽤나 무서워했다. 내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그 자체가 낯설었지만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거울에 얽힌 괴담(怪談), 즉 어두운 방에서 거울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거울 속에 비친 “나”가 거울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거울에 가두고는 현실에서 내 행세를 하고 다니고, 거울 속에 갖힌 나는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벽면이나 화장실에 걸려 있는 거울이 무서워서 행여 거울 속의 나와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거울에 대한 무서움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지금도 거울은 괜히 꺼림칙한 그런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유지태 주연의 공포 스릴러 영화 <거울 속으로(2003)>는 케이블 TV에서 방송할 때마다 서둘러 리모콘을 돌려대곤 했다 -. 그런데 영화로도 제작된 판타지 소설 <잉크하트(Inkheart)>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판타지 작가로 유명하다는 코넬리아 푼케의 신작 소설 <레크리스 - 거울 저편의 세계(원제 Reckless/ 소담주니어/2010년 9월)>는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울 저편에는 그림 형제가 들려주던 “동화 속의 세계”가 있으며, 그렇다고 결코 아름답거나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고 우리에게 들려준다.

 1년 전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12살 소년 제이콥 레크리스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 빌 몰래 아버지의 서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가 남긴 메모에서 "거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만 열린다” 라는 수수께끼의 글을 만나게 된다. 서재에 놓여 있던 거울을 들여다 보던 중 "거울 저편의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된 제이콥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비밀로 한 채 거울 속의 세계를 드나들게 된다. 거울저편의 세계는 바로 그림 형제가 우리에게 들려주던 동화 속 세계이지만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피부가 말라가며 죽어가고 있고, 헨젤과 그레텔을 유혹했던 “과자의 집”은 마녀가 떠난 채 덩그러이 비어 있지만 아직도 달콤한 냄새로 유혹하고 있으며, 동화속 아름다운 요정 "로렐라이"는 물 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뱃사람들을 잡아먹는 흉악한 요정이 되어 버린, 동화와는 사뭇 다른 그런 세계로 현실세계의 영향을 받아 증기 기관차가 돌아다니고 화승총을 들고 인간들과 돌로 된 피부를 가진 고일 족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런 세계였다.  제이콥은 그런 세계를 드나들며 보물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로부터 12년 후 형을 따라 거울 속 세계를 드나들던 동생 빌이 그만 고일족 발톱에 상처를 입으면서 온 몸이 비취옥으로 점점 뒤덮히게 되는 부상을 입게 된다. 빌의 피부를 비취옥으로 완전히 뒤덮히게 되면 인간으로서 기억을 잃고 고일족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제이콥은 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고일족의 저주를 만든 "어둠의 요정"의 언니"붉은 요정"을 찾아 나서지만, 현실세계 속 빌의 연인 "클라라"가 거울 속 세계로 넘어 들어와 일행에 합류하게 되고, 고일족의 왕 카미엔은 자신의 충복 헨차우에게 고일족 전설에 등장하는 "왕을 무적의 왕으로 만들어주는 자" 비취 고일을 잡아오라는 명을 내리고, 헨차우는 부하들을 이끌고 제이콥과 빌의 일행을 추적하게 된다.  제이콥 일행은 헨차우 일행을 피해 붉은 요정을 만나게 되지만 빌은 그만 헨차우 일행에게 잡혀가게 되고, 제이콥은 붉은 요정에게서 암흑의 요정의 숨겨진 비밀과 이름을 알아내고는 암흑의 요정을 죽이기 위해 카미엔 왕성으로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잡히게 되고, 이미 완전히 고일족으로 변해버린 동생을 보고 절망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가 남긴 복엽 비행기를 몰고 카미엔 왕성에서 탈출한 제이콥 일행은 카미엔 왕과 그 일행이 인간국 여제(女帝)의 딸인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암흑의 요정을 죽이기 위해 여제의 궁전으로 잠입하게 되고 제이콥은 마침내 암흑의 요정과 맞닥뜨리게 된다. 다음날 고일족 왕 카미엔과 인간국 공주와의 결혼식은 아수라장이 되고, 왕의 경호원인 된 빌은 왕을 암살하려는 인간 군대를 맞아 처절한 싸움을 벌이지만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판타지 작가라는 코넬리아 푼케의 작품은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472쪽의 두꺼운 분량이지만 큼직큼직한 활자체, 책 매 쳅터마다 그려져 있는 삽화로 읽는 데 부담이 없는 이 책은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지만 독특하면서도 참신한 세계관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으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전 세대를 아우르는 그런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성(性)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레크리스(reckless)"는 사전을 찾아보면 “무모한, 신중하지 못한” 이라는 뜻인데 고일족으로 변해가는 동생을 위해 생사를 건 제이콥과 사랑하는 빌을 찾아 거울 저편의 세계로 넘어 들어온 “클라라”, 제이콥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여우, 제이콥의 협박에 의해 강제로 합류하여 끊임없이 제이콥의 돈을 노리는 난장이 등 일행들이 벌이는 모험 그 자체가 도대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무모한 모험이라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단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동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낯설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새로운 세계로 창조해내고, 무한정 자라나는 "라푼젤의 머리", 바르면 투명인간이 되지만 중독되면 마비가 오는 "도둑 달팽이의 점액질", 저주에 걸린 개구리 왕자 이야기에 나오는 "황금공"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아이템을 새롭게 해석하여 마치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에서 볼 수 있는 "아이템"처럼 등장시키는가 하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대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나 증기기관차, 랜턴(손전등), 소총, 비행기 등을 전혀 이질감 없게 어우러지게 한 점들은 그녀가 왜 판타지 작가로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소설적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 시각적인 묘사가 꽤나 두드러지는 데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책 속 삽화를 떠올리면서 읽게 되면 금새 머릿 속에서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탁월하다. 또한 제이콥과 붉은 요정, 카미엔과 어둠의 요정, 빌과 클라라, 제이콥과 여우, 제이콥과 클라라 등 각자에게 느끼는 복잡 미묘한 애정 심리 묘사, 책 곳곳에 등장하는 권력의 속성과 무상함을 묘사하는 문구들은 결코 이 책이 단순히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용 판타지 소설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아직 제이콥보다 먼저 거울 저편의 세계에 들어온 아버지의 구체적인 행적이 드러나 있지 않고, 제이콥에게 내려진 요정의 저주를 풀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한 결말을 보면 제이콥의 모험은 후속권에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거울 저편의 세계의 새로운 이야기가 어서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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