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김탁환, 강영호 공저의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살림출판사/2009년 11월)>을 선물 받은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도 책장에 꼽아놓고는 오랫동안 읽지 않았었다. 처음 책을 받고서는 어떤 책인가 싶어 펼쳐보았더니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사진들에 섬뜩한 느낌이 들어 금새 책을 다시 덮고야 말았다. 공포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날 꿈자리가 사나운지라 괜히 이 책 읽고서 며칠 밤잠을 설칠 것 같다는 생각에 눈에 잘 안 뜨이는 책장 한 쪽 구석에 꼽아놓고는 애써 외면하고 읽기를 나중으로 미뤘었다. 그러다가 최근 서평을 써야할 급한 책들을 다 읽고 책읽기에 한결 여유가 생겨 무슨 책을 볼까 하고 책장의 책들을 고르던 중 이 책이 “나를 꼭 읽어주세요”하듯이 책장에서 약간 삐져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다 읽은 책들을 꼽아두던 곳에 숨겨 놓았었고, 일부러 눈길조차 안주던 구석진 곳에 꼽혀있는 터라 그 쪽 책들을 옮겼던 기억이 없었는데 이 책이 앞 쪽으로 살짝 빠져 나와 있다니......아내에게 물어봐도 책을 만진 적도 없다니 영문 모를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다시 밀어 넣고 외면할 까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손에 이 책이 들려 있었고, 나는 일요일 한 낮을 꼼짝없이 이 책을 읽는데 바쳐야 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소설가 “김탁환”과 우리나라 영화포스터 사진을 90퍼센트 이상 찍었고, 수많은 광고화보촬영을 도맡아한 대표적인 커머셜 사진작가인 “강영호”,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그동안 내가 만나본 책 들 중에서 가장 낯설고 이상한 “괴작(怪作)”- 종종 책을 폄하할 때 괴작이라는 말을 쓰던데 이 책은 단어 그대로 괴이한 책이라 이렇게 칭한다 - 을 만들어냈다. 이 책의 무대이자 실제 강영호 작가의 작업실이라는 “상상사진관”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책에서처럼 거무튀튀한 색깔과 대조적인 붉은 색깔의 송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벽면이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 들게 해 이 건물의 별칭인 “드라큐라 성”이 딱 제격인 그런 건물이었다. 이 책에는 “드라큐라 성”에서나 만나 볼 법한 괴이한 사람들, 드라큐라 성의 건축가이자 몸에 악마가 깃들어 있는 건축가 이야기인 <상대성인간>, 곧 죽을 사람의 얼굴이 배와 가슴에 나타나는 전철 기관사 이야기인 <사람 사람 사람>, 온 몸에 반짝이는 불빛이 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 이야기인 <반딧불이 인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 오히려 괴기스러운 웨딩 사진 촬영 이야기인 <웨딩인간>, 강영호 작가의 비밀스런 과거를 폭로하며 사진 촬영현장에서 죽어버린 남자 이야기인 <끈적 인간>, 절대 웃지 않는 한 아이를 위해 온 몸에 초콜릿 붇고 죽음의 판토마임 공연을 펼친 남자 이야기인 <아몬드 인간>,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자라는 조류 인간이자 강영호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알바트로스 인간> 등 지극히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인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 단편에 등장하는 “괴물인간”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강영호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사진들인데 강렬한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이야기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그런 장치로 제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제 홍대 앞에 있다는 사진관과 하늘공원 실제 장소들을 장소적 배경으로 하고 있고, 춤을 추는 사진 작가로 알려진 강영호 작가가 책 속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상상사진관 지하에는 실제로 건축가의 시신이 놓여진 관이 있지 않을 것만 같고, 작가의 어깨에는 날개가 돋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탁환 작가의 글솜씨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탁월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책 소개 글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신화나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허구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거대한 괴물과 같은 서울에서 흔히 보아온 모습들, 즉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두가 두려워서 외면하고 싶은 괴물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어두운 형상이라기보다는 그저 공포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괴기스러운 존재 정도로만 느껴졌다. 

 다행히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등장하는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사진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은, 여운이 제법 오래갈 것 같은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두 작가의 공동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니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놀라움과 충격을 줄런지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홍대 앞에 가게 된다면 “드라큐라 성”에 꼭 들려봐야겠다. 그래서 혹 사진관 복도나 층계에 핏자국은 없는지, 복도 그늘진 곳에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인간들이 서 있지는 않은지, 지하실에 시신을 담은 관들이 놓여있지는 않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버스데이 - 부모와 아이의 인연을 60억 분의 1의 기적
아오키 가즈오.요시토미 다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맞벌이 부부의 육아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들에서 결혼 전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인정받던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 문제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에 들어 앉아 상실감을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나라 고용 환경에 있어 여성은 약자일 수 밖에 없고, 그저 허울만 좋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는 육아정책과 변변한 육아시설 하나 없는 열악한 직장 환경, 아직도 육아는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사회 인식 때문에 눈물을 머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생각된다. 그런데 가끔 아이 때문에 꿈을 접고 우울증에 빠진 여성들이 아이에게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하고 학대하는 장면들이 나오면 눈살이 찌푸려지게 된다. 그만큼 절망스럽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겠지만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이 있을 수 있을까, 저런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가 입을 상처는 얼마나 클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그런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해대는 엄마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오키 카즈오, 요시토모 다미의 <해피버스 데이: 부모와 아이의 인연은 60억 분의 1의 기적(밀리언하우스, 2010년 11월)>은 이처럼 자신의 생일날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엄마의 독설을 들은 소녀가 실어증(失語症)이 걸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지만 주위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부모님 기대에 걸맞는 뛰어난 성적으로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간 오빠 나오토와 비교해 관심 밖에 머물러 있지만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는 11세 소녀 아스카는 그래서 늘 외롭다. 11번째 생일날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오빠와 엄마의 말을 듣게 된 아스카는 그만 충격으로 말을 못하게 된다. 아스카의 담임 하시모토는 '엄마에게 사랑받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스카에게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아스카의 어머니 시즈요와 상담을 하지만 시즈요는 아스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이며 가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하시모토 선생님께 아스카 이야기를 들은 오빠 나오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어머니께 아스카를 외갓집에 보내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어머니는 나오토의 고집에 못이겨 아스카를 시골 외갓집에 요양을 위해 보내게 된다. 시골 외갓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시는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아스카는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아물게 되면서 마침내 목소리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서 시즈요가 자신에게 유독 매몰찼던 이유가 자신이 오랜 병치레 끝에 돌아가신 엄마의 언니, 즉 이모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며 엄마 또한 앓고 있던 언니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 밖에 머무는 외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다시 건강해진 아스카는 직장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지만 급우들에게 따돌림 당해 괴로워하는 짝꿍 준코를 위해 용감히 맞서게 되고, 이웃 장애 학교의 친구를 보살피면서 사랑의 소중함을 아는 착하고 이쁜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연이은 장애 학교 친구의 죽음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지만 선생님과 친구의 부모, 그리고 오빠의 도움으로 슬기롭게 슬픔을 이겨내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가 된다. 12번째 생일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아스카를 위한 깜짝 파티가 열리고 아스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스카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곳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어머니 시즈요가 자신이 만든 삐뚤빼뚤한 케잌을 들고 오게 되고, 할아버지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읽은 아버지도 서둘러 출장을 마치고 곰인형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렇게 아스카의 생일 잔치는 기적과 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이 책은 1997년 아동서로 발행된 <해피 버스 데이-생명이 빛나는 순간>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주인공 뿐 아니라 다른 주변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갈등구조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추가한 확장완결판이라고 하는데, 이미 일본에서는 각종 매스컴에 의해 집중 조명을 받았으며 실제로 각 학교와 교육단체에서 왕따나 자살 방지를 위한 교육 자료로도 쓰이고 있고, 실제로 많은 부모님들과 선생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훈을 목적으로 한 그저 그런 성장소설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도대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더니, 같은 자리에서 2시간 여 만에 다 읽고 나서는 가슴 뭉클한 여운이 오래 갔던 그런 책이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주변 어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앞에서도 언급한 맞벌이 여성의 육아문제, 가정 학대, 왕따, 등교 거부, 청소년 자살 등 이웃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해법이 사회 기반시설 확충, 복지 정책 등의 어른 식의 접근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그리고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찌 보면 그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를 두 작가는 교육 카운슬러(아오키 가즈오)와 아동복지 심의회 위원(요시모토 다미)의 현장 경험을 십분 살려 어린 소녀가 상처받고 치유되는 과정,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과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들을 전혀 과장 없이 현실감을 최대한 살려 담백하게 그려내어 교훈적 이야기가 갖는 거부감을 일체 없애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스카의 성장 과정에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마지막 기적 같은 생일 잔치 장면에서는 저절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물론 아스카이지만 아스카의 상처를 치료하고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감동의 생일잔치를 있게 한 할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며 여느 아버지들처럼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인 아스카의 아버지 “유지”를 감동시킨 할아버지의 편지의 한 구절인, 

“60억 분의 1의 기적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연을 모쪼록 소중히, 간절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네.” 

라는 구절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은 없으며,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인종(人種), 국가(國家), 빈부(貧富)에 상관없이 모두가 소중하게 보살펴야 할 그런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사랑에 굶주려 하고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과 폭력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괴로워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이 책 속의 아스카처럼 상처를 잘 이겨내고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민 투자학 - 대한민국 90%를 위한
이규성 지음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중산층 몰락'…가난 탈출 어려워져(MBN TV, 2010.11.2.)
6년간 중산층 5.1% 줄었다(내일신문, 2010.11.3.)

비록 지방 중소도시(천안)에서 대출을 받아 산 작은 평수의 아파트이지만 내 명의로 된 “내 집” 한 채가 있고, 비상장기업이긴 하지만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안에 드는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그래도 “중산층”에는 들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장바구니 물가가 사상 최고치로 오르면서 마트에 가기가 점점 두려워져 매주 가는 걸 한 달에 한번으로 줄여가게 되고,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상이 점쳐지면서 대출 금리가 얼마나 오를까 노심초사하고, 꼬박꼬박 부어온 국민 연금과 연금 보험은 내가 수령할 때 쯤 되면 기금이 고갈되서 손에 푼 돈 몇 푼 주어지고 말 거라는 보도에 노년이 영 불안하는가 하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주 안 되는 주식은 주가가 연일 최고점을 갱신하면서도 본전은 커녕 계속 손실만 커지고 있으니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출 이자에, 치솟는 물가에 삶이 더 팍팍해지고 곤궁해지는, 그렇다고 미래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할 수 없는, 이른바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말이 바로 지금 나에게 딱 맞는 그런 말 일 것이다. 아침 출근하면서 뉴스를 들어보니 지난 해(2009년 기준) 기준 일명 '부자세(富者稅)'로 불리는 종합 부동산세를 납부한 사람이 21만 2,600명이고, 그 중 상위 10%(2만 1,260명)가 납부한 세액이 종부세 전체 세액의 85.7% 를 차지하고 있다니 부자들 사이에서도 부의 편중이 심하다고 그러던데, 그래도 종부세를 납부하는 사람들은 "부자"라 칭한다면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은 그야말로 "서민(庶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필명 '카이사르21'로 이름을 날리던 -아쉽지만 아고라에서 이 작가의 글을 접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 이규성의 <90% 서민 투자학; 대한민국 90%를 위한(국일증권 경제연구소, 2010년 9월)>은 이 책만 읽으면 단박에 부자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는 그런 책이 아니라 출판사 소개글처럼 대한민국 90%에 속하는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재테크 방법, 특히 펀드나 주식에 대한 투자방법을 소개하는 일종의 투자 지침서이다.  

  투자 기술서 10권 보다 <삼국지>, <쇼펜하우어 인생론> 한 번 읽는 것이 투자에 더 도움이 되며, 경제 전쟁에 승리하는 자는 경제 지식과 함께 인간을 이해하고, 보이는 현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간파해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즉 지식은 통찰을 이기지 못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은 먼저 실질적인 투자의 기술에 앞서 투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서민이 알아야 할 투자의 맥을 짚어준다(1장). 그리고 나서 투자의 바로미터가 되는 경제 변수인 금리와 환율에 대해 언급하고, 종종 증권가의 격언인 “무릎에서 잡아서 어깨에서 팔아라”와는 정반대로 상투에서 잡았다가 발바닥에서 팔아 큰 손해를 보고야 마는 펀드와 주식에서의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 제대로 된 투자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다(2장). 마지막 장(3장)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경제 상황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 즉 경제 활동에 있어서의 삶의 지혜를 역설하며 끝을 맺는다.  

 책은 목차만 새겨 읽어 봐도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변변한 주식이나 펀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해설들이라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어 하나하나 새겨 읽지 못하고 흘려 읽은 대목도 많았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빚내서 집 한 채 장만한 나로서는 2장에서 "부동산 불패신화의 불편한 진실" 챕터 만큼은 곱씹어 읽게 되는데, 작가는 먼저 산업역군이셨던 50,60대 아버지 세대와 지금 중년으로 90~2000년대를 살아온 30,40대 우리 세대(386세대), 그리고 지금 취업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20,30대 젊은 세대(88만원 세대)의 내 집 마련 세태를 비교하면서 도시 근로자가 아파트를 구매하기에는 이미 가격이 너무 올라버렸고, 또한 아파트를 살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사버렸으며, 향후 인구 증가는 둔화되고 머지않아 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이 예상되므로, 앞으로 시장의 무게 중심은 수요보다 공급 우위로 변해가고 있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한 후 더 높은 가격에 사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경제적 선택이며, 이제 아파트로 돈 버는 시대는 희미한 그림자만 남아 있을 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 대목은 비록 투기(投機) 목적이 아닌 실 거주 목적으로 산 집이지만 그래도 이자내고 있는 만큼은 좀 오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괜히 힘이 쭉 빠지는 그런 전망이라 할 수 있겠다.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실질적인 투자 전략을 주 목적으로 한 책이지만 이런 류의 투자 지침서들이 그러하듯 실생활에서 응용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역시나 이론서, 즉 "그림의 떡"에 불과할 수 도 있는 그런 책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주식이나 펀드를 설명하는 2장은 그렇더라도 투자의 마음가짐이나 "큰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지 말라", "현명한 노후대책은 무엇일까"와 같은 바람직한 경제 생활을 위한 충고들을 담고 있는 1장과 3장은 경제 에세이로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투자 전략이나 경제생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는 오로지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몫에 달려있다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 깨달음의 이야기
디팩 초프라 지음, 정경란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4대 복음서에 기술되어 있는 예수의 공생애(公生涯) - 예수가 30세에 이르러 복음을 선포하시다가 33세에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을 때까지의 3년간의 삶을 공생애라 부른다고 한다 - 야 굳이 크리스천(Christian)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성경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12세부터 30세까지의 예수의 삶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수 생존 당시 유대교 일파이자 금세기 최대의 발견(1945)의 하나라는《사해문서(死海文書)》의 소유자였던 쿰란 교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에세네파(Essenes)"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 의 일원으로 수행(修行)을 했다는 이야기와 멀리 인도(India)북부 히말라야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포탈라 궁전에 있는 라싸 사원에서 불법(佛法)을 수행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수십 건이 검색될 정도로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한 두 번 쯤은 들어봤을 이 두 가지 설(說)은 그 진위(眞僞)를 떠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불경(不敬)스러운 이야기겠지만 나처럼 비신자(非信者)들에게는 흥밋거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 뉴델리 출신의 의학자이자 영적 지도자라는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는 이처럼 온갖 설이 분분한 예수의 12세부터 29세까지의 숨겨진 삶을 그린 소설 <예수 깨달음의 이야기(문예출판사/2010년 5월)>에서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즉 인간(人間)이었던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신성(神聖)을 지녔던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 "메시아(Messiah)"로서의 소명(召命)을 "깨달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어느 고산 지역 사원에 거주하며 글을 쓰며 수행하고 있는 "나"에게 어느날 아침 사원의 아이가 숨을 몰아쉬며 뛰어와 눈 속에 말이 묻혀 있다고 알려온다. 단순히 말 한 마리가 아니라 말에서 떨어진 외지인이 있음을 직감한 "나"는 아이를 앞장 세워 그 장소로 가보게 된다. 마치 무덤 봉분 위에 눈이 쌓인 듯 볼록하게 솟아 있는 눈더미를 걷어내니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턱 밑에 고인 채로 얼어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그가 바로 오늘날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세주(救世主)로 잘 알려져 있는 "예수"였다. 아직 메시아로서의 존재를 각성(覺性)하지 못했던 예수는 고산 지역에 자신을 깨우쳐 줄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머나먼 구도(求道) 여행 끝에 도착했지만 폭설을 만나 말에서 실족한 것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예수는 자신의 이름을 대번 말하는 "나"가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사람임을 알고 그동안 그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예수는 동생을 따라 혁명당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들의 은신처에까지 끌려가게 되는 위험을 겪게 되지만 다행히 빠져나오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혁명당원 "유다" - 훗날 예수를 배신한 바로 그 가롯 유다다 - 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예루살렘 유대인 성전의 제사장 중 한 명을 암살하려는 음모에 우연찮게 가담하게 된다. 일종의 사기극을 벌이는 걸로 계획했지만 또 다른 혁명당원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자 예수와 유다는 거리의 "성녀(聖女)" - 실제로는 창녀를 비꼬는 말 - 막달아 마리아의 도움으로 로마 군인들을 피해 달아나게 된다. 결국 예수와 유다는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비좁은 감옥에 갖히게 되지만 누군가 잠금장치를 풀어놓은 덕분에 예수는 홀로 탈출하게 된다. 그곳에서 로마인이면서도 유대교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의문의 사내에게서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고, 예수는 그 사람의 안내로 그의 집에서 머물면서 그의 인생사를 전해듣고, 자신을 구세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마을에서 머무르던 예수는 큰 불길에 휩싸인 마을 주민의 집에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 조금씩 자각하게 된다.  마을을 떠나 다시 여행 길에 나서던 중 간음죄로 돌팔매질을 당할 뻔한 마리아를 구해내고,  그녀에게 남자로서의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를 찾아온 젊은이의 손에 이끌려 에세네파의 은거지로 향하게 된다.  에세네파 예배당 백색 벽에는 아무도 그린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하룻 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메시아의 생애를 담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예수는 그 그림들이 자신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먼 훗날 미래 모습일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자신이 완성해야 할 그림임을 깨닫게 된다.  에세네파에서 5년을 머물렀던 예수는 에세네파 교인들 앞에서 자신은 유대인들이 바래왔던 정복 군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떠나온다. 아직 자신의 소명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예수는 상인들에게서 고산 지역에 구도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그들을 찾아나서는 구도 여행을 시작한다. 

  예수의 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예수에게 자신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악마를 보여주며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예수는 공생애로 잘 알려져 있는 자신의 운명의 길을 걷기 위해 고산 지역을 떠난다. "나"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 이후로의 예수의 삶 몇 장면과 예수의 제자였던 도마와의 만남,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의 영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소설이 다 끝나고 말미에 실은 “디팩 초프라가 독자들에게 : 예수와 깨달음의 길”라는 글에서 작가는 신약성서 바깥에 존재하는 예수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주는 예수이며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책에서 소개한 예수의 깨달음의 과정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것이며 각 개인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신적 존재의 예수가 아닌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독특하게 해석한 이 책은 이야기 자체는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작가의 생각에 올곧이 공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특히 마지막 글은 한 때 유행했던 크리슈나 무르티 스타일의 명상 서적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인도 출신인 작가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이나 그가 운영하고 있다는, 마음 수련법 단체이자 뉴에이지 성향 단체로 보이는 '초프라 행복 센터(Chopra Center for Well-Being)'에서 기인한 것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를 신성(神聖)을 지니고 태어난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구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한 점 -  마치 유교나 천도교에서의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를 일컫는 말처럼 느껴졌다 - 막달라 마리아에게 남성으로서 사랑을 느끼고 그 충동에 휩싸여 잠시나마 사명을 망각한다는 인간적인 고뇌를 그린 점, 악마도 신(神)의 일부분이라고 언급하는 것들은 바로 영지주의(靈智主義)적 해석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예수의 신성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이단(異端) 서적이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해석은 기존 종교계의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르지만 예수의 존재나 하느님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의심, 절망을 딛고 마침내 자기 멸각과 ‘세상의 빛’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한 인간의 여정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 라는 "에크하르트 톨레(<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저자)"의 평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마침내 인류의 구세주가 된 예수의 삶을 통해 우리들도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의 큰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비신자들에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정신적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색다른 면 - 비록 소설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모습이겠지만 - 을 만나 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예수님과는 다른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은 그런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놀 천사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장 이름이 생각나는 일본 작가가 10여 명이 넘는 것을 보면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나도 참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책들을 접해본 것 같다. 그중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작가를 하나 꼽아본다면 누굴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아사다 지로(淺田次郞)”이다. 그의 작품은 <칼에 지다>,<사고루 기담>,<철도원>,<슬프고 무섭고 아련한>등 네 편을 읽어 봤는데 모두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은 여운에 책을 바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그의 글은 솔직히 편하게 읽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책을 펼쳐 들면 책 첫머리부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한 자리에서 꼼짝없이 벌을 서야 하고, 다 읽고 나서도 조용히 물들어 오는 아련한 슬픔에 한 참을 멍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나에게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그런 작가이기도 한 것 같다. 이번에 만난 그의 단편집 <저녁놀 천사(원제 夕映え天使/노블마인/2010년 5월)>도 이 책을 읽으면 분명히 가슴 아플 것을 알기에 받고 서도 한참을 책장에 꼽아두고 몇 번을 꺼냈다 다시 꼽아두게 되었던, 결국 망설임 끝에 읽고 나서는 역시나 가슴이 아파오고 멍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 그런 책이었다.  

   책에는 아사다 지로 아니면 누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까 싶은, "아사다 지로 다운"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저녁놀 천사>는 쇠락해가는 도쿄 뒷 골목 시장 작은 라면집에 찾아온 어느 여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팔십 세가 넘는 노인과 중년의 아들 “이치로”, 두 홀아비가 운영하는 작은 라면집 “쇼와 식당”에 재작년 여름 초라한 행색의 한 여인인 “준코”가 찾아와 의탁하게 된다. 아버지는 그녀를 홀로 사는 아들의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고, 아들 또한 가슴 한 켠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지만 그녀는 6개월 지난 새해 벽두에 쪽지 한 장 남겨놓지 않고 잘 있으라는 인사 한마디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로부터 일년 후 왠지 헛헛한 정월 연휴를 보내던 중 아들은 지난해 11월 30일 발견한 신원불명자의 시체에서 쇼와 식당의 성냥이 발견되었으니 경찰서로 와서 신원을 확인해달라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경찰이 들려주는 인상착의가 바로 사라지기 전 “준코”의 모습임을 알게 된 아들은 아버지께는 고등학교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에 빠져 병문안 간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경찰서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를 아는 또다른 남자를 만난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함께 타고 돌아가던 이치로와 그 남자는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놀을 보면서 마치 천사같았던 그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마치 최민식 주연의 영화 "파이란"의 원작소설이었던 <러브레터>가 오버랩되는 이 단편으로 인해 누워서 읽기 시작했던 자세가 어느새 똑바로 앉게 되고, 그러고 두 시간 넘게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하고 나머지 단편, 즉 부모가 이혼한 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히로시의 이야기인 <차표>, 정년을 맞이한 회사원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하루를 담은 <특별한 하루>, 역시 정년을 앞두고 강제 휴가를 떠나 여기저기 여행하는 노년의 형사 이야기인 <호박(琥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던 하얀 집의 소녀와 자신의 친구와의 만남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 훈련 중 깊은 한속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나무바다의 사람>을 내처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여운에 앉은 자세를 풀지 못하고 멍하니 책 표지와 안의 페이지들을 들여다 보다가 발끝이 저려오는 걸 느끼고서야 그만 자세를 풀게 되었다. 한 편 한 편이 참 잘 쓴 글들이라 딱히 어느 것이 뛰어나다를 말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녁놀 천사>와 <차표>가 가장 좋았고, <특별한 하루>의 반전도 왠지 그답지는 않지만 꽤나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다만 자전적 소설이라는 <나무바다의 사람>은 괴이하기까지 한 이야기로 결말이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역시 그다운 글솜씨를 맛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아사다 지로가 벌써 머리가 반 이상 빠지고 귀밑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60세의 노년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니 그런 분이 이렇게 가슴 한 켠이 뻐근해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느 여성작가나 젊은 작가 이상으로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지 영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가 요미우리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그런 변화는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겠죠. 왈칵 감동하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에게 ‘왠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은근한 소설’이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처럼 이 책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단편은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들지는 않지만 다 읽고 나서 쉽사리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책을 다시금 처음부터 열어보게 만드는, 그리고 앞으로 이 작품을 문득문득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아파오는 기분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그런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사다 지로, 내가 아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평가는 이 작품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해질까봐 읽지 않았던 그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 하나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