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김탁환.강영호 지음 / 살림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김탁환, 강영호 공저의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살림출판사/2009년 11월)>을 선물 받은 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도 책장에 꼽아놓고는 오랫동안 읽지 않았었다. 처음 책을 받고서는 어떤 책인가 싶어 펼쳐보았더니 책 곳곳에 실려 있는 사진들에 섬뜩한 느낌이 들어 금새 책을 다시 덮고야 말았다. 공포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날 꿈자리가 사나운지라 괜히 이 책 읽고서 며칠 밤잠을 설칠 것 같다는 생각에 눈에 잘 안 뜨이는 책장 한 쪽 구석에 꼽아놓고는 애써 외면하고 읽기를 나중으로 미뤘었다. 그러다가 최근 서평을 써야할 급한 책들을 다 읽고 책읽기에 한결 여유가 생겨 무슨 책을 볼까 하고 책장의 책들을 고르던 중 이 책이 “나를 꼭 읽어주세요”하듯이 책장에서 약간 삐져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다 읽은 책들을 꼽아두던 곳에 숨겨 놓았었고, 일부러 눈길조차 안주던 구석진 곳에 꼽혀있는 터라 그 쪽 책들을 옮겼던 기억이 없었는데 이 책이 앞 쪽으로 살짝 빠져 나와 있다니......아내에게 물어봐도 책을 만진 적도 없다니 영문 모를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다시 밀어 넣고 외면할 까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손에 이 책이 들려 있었고, 나는 일요일 한 낮을 꼼짝없이 이 책을 읽는데 바쳐야 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소설가 “김탁환”과 우리나라 영화포스터 사진을 90퍼센트 이상 찍었고, 수많은 광고화보촬영을 도맡아한 대표적인 커머셜 사진작가인 “강영호”,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그동안 내가 만나본 책 들 중에서 가장 낯설고 이상한 “괴작(怪作)”- 종종 책을 폄하할 때 괴작이라는 말을 쓰던데 이 책은 단어 그대로 괴이한 책이라 이렇게 칭한다 - 을 만들어냈다. 이 책의 무대이자 실제 강영호 작가의 작업실이라는 “상상사진관”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책에서처럼 거무튀튀한 색깔과 대조적인 붉은 색깔의 송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벽면이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 들게 해 이 건물의 별칭인 “드라큐라 성”이 딱 제격인 그런 건물이었다. 이 책에는 “드라큐라 성”에서나 만나 볼 법한 괴이한 사람들, 드라큐라 성의 건축가이자 몸에 악마가 깃들어 있는 건축가 이야기인 <상대성인간>, 곧 죽을 사람의 얼굴이 배와 가슴에 나타나는 전철 기관사 이야기인 <사람 사람 사람>, 온 몸에 반짝이는 불빛이 달려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 이야기인 <반딧불이 인간>,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 오히려 괴기스러운 웨딩 사진 촬영 이야기인 <웨딩인간>, 강영호 작가의 비밀스런 과거를 폭로하며 사진 촬영현장에서 죽어버린 남자 이야기인 <끈적 인간>, 절대 웃지 않는 한 아이를 위해 온 몸에 초콜릿 붇고 죽음의 판토마임 공연을 펼친 남자 이야기인 <아몬드 인간>,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자라는 조류 인간이자 강영호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알바트로스 인간> 등 지극히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인간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 단편에 등장하는 “괴물인간”들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강영호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사진들인데 강렬한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이야기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그런 장치로 제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제 홍대 앞에 있다는 사진관과 하늘공원 실제 장소들을 장소적 배경으로 하고 있고, 춤을 추는 사진 작가로 알려진 강영호 작가가 책 속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 상상사진관 지하에는 실제로 건축가의 시신이 놓여진 관이 있지 않을 것만 같고, 작가의 어깨에는 날개가 돋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김탁환 작가의 글솜씨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탁월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출판사 책 소개 글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신화나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허구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거대한 괴물과 같은 서울에서 흔히 보아온 모습들, 즉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두가 두려워서 외면하고 싶은 괴물들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어두운 형상이라기보다는 그저 공포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괴기스러운 존재 정도로만 느껴졌다. 

 다행히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책에서 등장하는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사진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은, 여운이 제법 오래갈 것 같은 인상적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두 작가의 공동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니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놀라움과 충격을 줄런지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홍대 앞에 가게 된다면 “드라큐라 성”에 꼭 들려봐야겠다. 그래서 혹 사진관 복도나 층계에 핏자국은 없는지, 복도 그늘진 곳에 이 책에 등장하는 괴물인간들이 서 있지는 않은지, 지하실에 시신을 담은 관들이 놓여있지는 않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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