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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버스데이 - 부모와 아이의 인연을 60억 분의 1의 기적
아오키 가즈오.요시토미 다미 지음, 오유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맞벌이 부부의 육아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들에서 결혼 전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인정받던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 문제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에 들어 앉아 상실감을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만큼 아직도 우리나라 고용 환경에 있어 여성은 약자일 수 밖에 없고, 그저 허울만 좋을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는 육아정책과 변변한 육아시설 하나 없는 열악한 직장 환경, 아직도 육아는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사회 인식 때문에 눈물을 머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생각된다. 그런데 가끔 아이 때문에 꿈을 접고 우울증에 빠진 여성들이 아이에게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하고 학대하는 장면들이 나오면 눈살이 찌푸려지게 된다. 그만큼 절망스럽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겠지만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이 있을 수 있을까, 저런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가 입을 상처는 얼마나 클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그런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해대는 엄마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오키 카즈오, 요시토모 다미의 <해피버스 데이: 부모와 아이의 인연은 60억 분의 1의 기적(밀리언하우스, 2010년 11월)>은 이처럼 자신의 생일날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엄마의 독설을 들은 소녀가 실어증(失語症)이 걸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지만 주위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과 부모님 기대에 걸맞는 뛰어난 성적으로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간 오빠 나오토와 비교해 관심 밖에 머물러 있지만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는 11세 소녀 아스카는 그래서 늘 외롭다. 11번째 생일날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오빠와 엄마의 말을 듣게 된 아스카는 그만 충격으로 말을 못하게 된다. 아스카의 담임 하시모토는 '엄마에게 사랑받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스카에게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아스카의 어머니 시즈요와 상담을 하지만 시즈요는 아스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이며 가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하시모토 선생님께 아스카 이야기를 들은 오빠 나오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어머니께 아스카를 외갓집에 보내자고 강력히 주장하고, 어머니는 나오토의 고집에 못이겨 아스카를 시골 외갓집에 요양을 위해 보내게 된다. 시골 외갓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시는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아스카는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아물게 되면서 마침내 목소리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서 시즈요가 자신에게 유독 매몰찼던 이유가 자신이 오랜 병치레 끝에 돌아가신 엄마의 언니, 즉 이모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며 엄마 또한 앓고 있던 언니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 밖에 머무는 외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다시 건강해진 아스카는 직장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면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지만 급우들에게 따돌림 당해 괴로워하는 짝꿍 준코를 위해 용감히 맞서게 되고, 이웃 장애 학교의 친구를 보살피면서 사랑의 소중함을 아는 착하고 이쁜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연이은 장애 학교 친구의 죽음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지만 선생님과 친구의 부모, 그리고 오빠의 도움으로 슬기롭게 슬픔을 이겨내고 그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가 된다. 12번째 생일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아스카를 위한 깜짝 파티가 열리고 아스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스카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곳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어머니 시즈요가 자신이 만든 삐뚤빼뚤한 케잌을 들고 오게 되고, 할아버지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읽은 아버지도 서둘러 출장을 마치고 곰인형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렇게 아스카의 생일 잔치는 기적과 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이 책은 1997년 아동서로 발행된 <해피 버스 데이-생명이 빛나는 순간>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주인공 뿐 아니라 다른 주변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갈등구조의 묘사에 많은 부분을 추가한 확장완결판이라고 하는데, 이미 일본에서는 각종 매스컴에 의해 집중 조명을 받았으며 실제로 각 학교와 교육단체에서 왕따나 자살 방지를 위한 교육 자료로도 쓰이고 있고, 실제로 많은 부모님들과 선생님,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훈을 목적으로 한 그저 그런 성장소설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말이 궁금해서 도대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더니, 같은 자리에서 2시간 여 만에 다 읽고 나서는 가슴 뭉클한 여운이 오래 갔던 그런 책이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주변 어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앞에서도 언급한 맞벌이 여성의 육아문제, 가정 학대, 왕따, 등교 거부, 청소년 자살 등 이웃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해법이 사회 기반시설 확충, 복지 정책 등의 어른 식의 접근이 아니라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그리고 그런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찌 보면 그저 교훈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를 두 작가는 교육 카운슬러(아오키 가즈오)와 아동복지 심의회 위원(요시모토 다미)의 현장 경험을 십분 살려 어린 소녀가 상처받고 치유되는 과정,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과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들을 전혀 과장 없이 현실감을 최대한 살려 담백하게 그려내어 교훈적 이야기가 갖는 거부감을 일체 없애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스카의 성장 과정에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마지막 기적 같은 생일 잔치 장면에서는 저절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물론 아스카이지만 아스카의 상처를 치료하고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감동의 생일잔치를 있게 한 할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며 여느 아버지들처럼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인 아스카의 아버지 “유지”를 감동시킨 할아버지의 편지의 한 구절인,
“60억 분의 1의 기적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연을 모쪼록 소중히, 간절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네.”
라는 구절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은 없으며,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인종(人種), 국가(國家), 빈부(貧富)에 상관없이 모두가 소중하게 보살펴야 할 그런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사랑에 굶주려 하고 어른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과 폭력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괴로워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이 책 속의 아스카처럼 상처를 잘 이겨내고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