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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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모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수렵이야기를 꽤나 즐겨 읽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시베리아,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원시림(原始林)과 밀림(密林)에서 벌어지는 사냥꾼과 맹수들의 쫓고 쫓기는 스릴 넘치는 대결을 그린 이 연재소설은 왠만한 무협소설이나 액션 영화를 능가하는 짜릿한 긴장감과 액션을 선보이고 있어 신문을 계속 읽게 만드는 그런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수렵소설이라 부를만한 별다른 작품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는데, 드디어 본격 수렵 소설이라 부를만한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소설가 김탁환의 신작 <밀림무정(密林無情/2010년 11월/다산책방>은 이처럼 1940년대 초 조선 최고의 포수와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를 호령했던 백호(白虎)와의 긴박감 넘치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다루고 있는데, 개마고원과 백두산을 가로 지르는 장쾌한 스토리와 두 권 합쳐 8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재미와 몰입도로 “역시 김탁환!”이라는 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런 소설이었다.   

 일제의 대륙 침공과 수탈이 더욱 심해지던 1940년대 초, 7년 전 개마고원과 백두산 일대를 지배하는 백호(白虎) "흰머리"에게 포수였던 아버지 "웅"을 잃고 동생인 "수"의 팔마저 잃은 "산"은 복수를 위해 흰머리를 끈질기게 추적하지만 그 또한 턱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경성(京城)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를 마친 "산"은 동생 수에게서 흰머리가 나타났다는 전보를 받고는 열차를 타고 함흥으로 향하게 되고, 열차에서 호랑이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여인 "주홍"을 만나게 된다. 함흥에서 동생을 만난 산은 흰머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산하 "해수격멸대(害獸擊滅隊)"의 호랑이 사냥에 참여시키기 위한 거짓 전보임을 알게 되고, 군대와 별도로 흰머리 사냥에 나선다. 산은 함흥과 개마고원 일대의 일본군 분초소를 공격한 식인 호랑이가 흰머리의 암컷임을 알게 되고는, 부상 입은 암컷을 미끼로 흰머리를 유인해내지만 주홍의 방해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게 되고, 동생 수 또한 남은 한 팔 마저 잃게 된다. 산은 격멸대 대장 "히데오"와 주홍,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이자 역시 개마고원 포수인 "쌍해"와 함께 흰머리를 추적하게 된다, 쫓고 쫓기는 긴 여정 중에 산과 주홍은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고, 산과 주홍의 사랑을 눈치 챈 히데오는 자신 또한 그런 주홍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추적은 그들을 유인하는 듯한 흰머리의 뒤를 쫓아 감당할 수 없는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뚫고 개마고원을 가로질러 백두산에까지 이르고, 산과 흰머리는 백두산 천지(天地)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아버지의 유품인 엽총 "모신니강"을 놓쳐버린 산은 흰머리의 어깨에 역시 유품인 장도(粧刀)를 꼽게 되지만, 흰머리를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마침내 흰머리는 산을 죽일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는데, 그 순간 눈사태가 흰머리와 산을 덮치게 되고 흰머리는 생포되고야 만다.  생포된 흰머리를 경성으로 후송하여 치료 후 다시 개마고원에 풀어주겠다는 총독의 전언에 히데오는 흰머리를 열차로 수송하게 되고,  흰머리와의 7년간 쫓고 쫓기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한 산은 열차와 함께 이동하다가 경성에 다다르기 전 열차에서 탈출하고 몰래 경성에 잠입한다.  흰머리는 지금의 창경궁(昌慶宮) 자리에 있던 동물원(창경원)에서 장도 제거 수술을 마치고 일반인들에게 잠시 공개되는데, 이 자리에 모인 조선 백성들은 산신(山神)인 백호(白虎)가 우리에 갖힌 모습을 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폭동을 우려한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진압되게 된다. 그런데 흰머리를 치료하고 다시 개마고원에 풀어주겠다는 총독의 약속은 흰머리를 일본으로 후송한다는 계획으로 바뀌게 되고, 이 계획마저 사실은 부산에서 흰머리를 사살해서  가죽을 벗기려는 속임수임을 알게 된 산은 주홍의 도움으로 흰머리를 구출해내기로 결심하고, 이송 경로에 폭탄을 설치하고 잠복하지만 노름에 빠진 동생 수의 밀고로 그만 함정에 빠지게 된다. 경성 한복판에서 히데오의 일본군들과 일대 활극을 벌인 끝에 흰머리는 탈출하게 되고, 수는 그만 일본군의 총에 의해 사살되고 만다. 탈출한 흰머리는 경성을 벗어나지 않고 여기저기 출몰하다가 조선총독부 돔 옥상에까지 올라가 크게 포효하고, 산은 그런 흰머리가 끝내지 못한 승부를 벌이자고 자신을 불러내기 위한 행동임을 알고 흰머리를 다시 추적한다. 흰머리를 사살하려는 히데오와 일본군이 인왕산을 포위하고 포위망을 옭죄어 오는 가운데, 마침내 인왕산(仁王山) 깊은 골짜기에서 산과 흰머리는 맞닥뜨리게 된다(최종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소개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고막을 찢을 듯한 호랑이의 포효(咆哮)와 사냥꾼의 거친 숨소리가 귀청을 쩌렁쩌렁 울리는 듯 하고, 눈을 감으면 개마고원과 백두산의 장대한 설경(雪景)이 바로 펼쳐지는 것 같은 착시(錯視)가 느껴지며, 또한 살이 터져나갈 것 같은 혹독한 겨울 추위와 눈보라에 내 살갗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함이 단연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목숨과 동생의 팔마저 빼앗아간 백호 흰머리를 7년에 걸쳐 목숨을 걸고 추적하는 주인공 산의 광기 어린 집념은 과연 승부가 어떻게 결말지을지 궁금해서 개마고원에서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1권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게 만들고, 2권 초반부 조금은 어이없는 승부 끝에 흰머리가 생포되어 장소가 경성으로 바뀌게 되었을 때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가 설마 이렇게 결말이 나진 않겠지 하고 책을 계속 붙잡게 되고, 역시나 기대대로 2권 중반을 넘어 흰머리가 산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못 다한 승부를 결말짓자는 흰머리의 신호에 산이 다시 추적하는 장면부터는 다시 호흡이 가빠졌다가 마침내 흰머리와 산이 인왕산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는 흥분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이처럼 독자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쥐었다 폈다 하며 읽는 내내 재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김탁환 작가의 내공은 “15년 동안 소설을 쓰며 쌓은 공력을 모두 쏟아 부었다”는 홍보글처럼 가히 절정을 이루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탄이 나온다. 역사소설에서 보여주었던 치밀한 고증 또한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하는 데, 이제는 그저 문헌이나 영상으로나 접해볼 수 있는 북녘 땅 개마고원과 백두산 일대의 자연 풍광과 그 당시의 수렵 방식, 지역 풍속에 대한 묘사는 머리 속에 저절로 확연한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고 세세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수년간 수많은 역사서와 자료를 수집하고 탐문과 현장답사를 통해 실제 호랑이의 습성과 그 시절 개마고원에 서식했던 표범, 삵, 불곰 같은 맹수들의 생태 등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체득했다는 소개 글을 보면 얼마만큼 이 작품에 작가가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이 책의 결말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드는데 어떤 식으로는 산과 흰머리의 질긴 악연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끝내지 않고 의외의 결말을 보여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기회가 된다면 작가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있어 출판사 홍보글처럼 “생을 송두리째 걸 만한 목표에 대한 열망, 내 안의 강함을 확인시켜주는 최고의 맞수에 대한 갈망, 의리와 뜨거운 땀으로 뒤범벅된 세계에 한번쯤 몸담고 싶은 로망”이라는 뜨거운 열정이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비록 책과는 시대적·공간적 배경 뿐만 아니라 그 표현 방식과 정도가 전혀 다르겠지만 도심 속 회색 콘크리트 밀림(密林)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전쟁과 같지 않을까? 그 목적이 자신의 야망과 성공을 위해서든, 아니면 자신과 가족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든, 아니면 조금은 비현실적인 사회 정의와 도덕을 위해서든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좌절과 도전을 반복하는 그들 가슴 속에는 바로 호랑이의 영혼을 가진 “산”의 집념을 각자의 형상(形狀)대로 하나씩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품고 있는 열정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는 좀 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오랫만에 손에 땀이 절로 나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재미와 흥분을 만끽하게 하는 멋진 소설을 만났다. 역사 소설가라는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 독특하고 색다른 장르적 실험을 보여줬던 <99;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에 이어, 아직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SF 소설 장르에서 멋진 성취를 보여준 <눈먼 시계공>으로 놀라게 하더니, 이제 그 유래를 찾기가 어려웠던 “수렵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완성 - 물론 앞서 소개한 신문 연재 작품이 수렵 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장르의 완성은 이 작품에 이뤄냈다고 평하고 싶다 - 을 멋지게 이뤄낸, 매 작품마다 놀라운 진화(進化)를 거듭하는 작가의 성취가 과연 어디까지 이르게 될지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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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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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에 비해 문학상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문학계의 현실에서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권위 있는 문학상인 한겨레 문학상, 문학 동네 신인작가상, 신동엽 창작상, 이효석 문학상, 이상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들을 휩쓴 작가이자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박민규" 작가가 자신에게 부여된 온갖 수식어와 수상(受賞)이력을 쏙 뺀 채 책 표지 날개에 단지 "1968년生. 소설가"라고 딱 한줄 써서 책을 펴냈다. 첫 소설집 <카스테라>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이라는 <더블 Double Side A,B(창비/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인데, "명실 공히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는 출판사 홍보글처럼 여타의 수식어나 수상경력으로 굳이 그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선뜻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작가이며, 작가의 본연은 온갖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과잉 - 박민규는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란다 -이 아니라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는 그의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초창기 작품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지구영웅전설>에 이어 이번 작품이 세 번째인데,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 “역시 박민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너무 종잡을 수 없이 현란하고 화려한 그의 색깔에 일견 당황스럽기도 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지난 시절 나를 이끌어준 모든 <더블 앨범>에 대한 헌정”이라고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책은 오래전 LP판을 보듯이 SIDE A, SIDE B로 구성하여 각종 문학잡지에 발표했던 단편 18편을 수록하고, 원래는 단편마다 삽입하려고 했지만 사정상 별도로 구성하게 된, 앨범 속지를 연상시키는 화보들과 각 단편마다 헌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글들을 담은 일러스트 화보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의 발표 시기와 수록된 곳이 제각각이다 보니 일관된 경향이나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불가능하고, 그저 SF, 판타지, 미스테리, 스릴러,풍자, 휴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글솜씨 덕분에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첫 번 째 권인 <더블 A>에서는 암 선고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던 한 남자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 나무 밑에 묻어 두었던 “타임캡슐”을 캐내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 <근처>, 홍보용으로 띄운 비행선이 줄이 풀려 바람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그 비행선을 쫓는 두 남자와 주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굿바이 제플린>, 자신의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글이라는 <누런강 배한척>은 진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단편들인데 반해, 지각 변동에 의해 새롭게 생긴 해구(海溝)를 탐색하는 이야기인 <깊>과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또다른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크로만, 운>은 각각 아서 C.클라크와 스티븐 호킹에게 주기 위해 썼다는 말처럼 SF 장르 소설로서의 그의 재주를 맘껏 뽐내기도 한다. 그의 기존 작품 경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행성 충돌 하루 전날, 즉 지구 종말의 날을 앞두고 아래층 남자와 위층 남자가 층간 소음 문제로 만났다가 서로 진한 동지의식을 확인하는 <끝까지 이럴래?>와 먼 훗날 인공동면(人工冬眠)에서 깨어나 시대적인 부름에 응해야 한다고 착각을 하는 각하(閣下)와 사모님, 먼 미래까지 그들을 수행하는 충신(忠臣)이 결국 남아있는 인류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굿모닝 존웨인>을 들 수 있는데, 여전한 박민규식 유머와 풍자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가장 기괴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양을 만드는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인데 <선인장 포자>란 연작 소설의 일부라는 작가의 설명대로 앞으로 출간될 연작소설을 다 읽고서야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권인 <더블 B>도 앞 권처럼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이는데,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폭풍 눈물을 쏟을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호평 속에 성황리에 공연했던 허진호 감독의 연극의 원작 - 작가도 연극 관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글을 남기고 있다 - 이자 어머니에게 주는 글이라는 <낮잠>, 잘 나가던 미국 금융회사 부사장이 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만난 초자연적인 연쇄 살인범과의 동행을 그린 스릴러 <루디>, 현대판 무협 소설인줄 알았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민주"와 "경제"라는 말에 괜히 한번 더 곱씹어 보게 만드는 <절 (용(龍) 네 글자로 이뤄진 말 많을 "절")>, 4명이 동시 입대해서 화제가 되었던 가수의 이름이자 같이 입대하는 친구들을 의미한다는 별칭인 "크라잉 넛"으로 불리우는 젊은이들이 입대 전 해변에서 겪는 이야기인 <비치보이스>,  어느 날 서울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하얀색의 원형 물체가 알고 보니 아스피린이었다는 기묘한 이야기인 <아스피린>,  제목만큼이나 독특하면서도 황당한 성적농담이자 오늘날 가장들의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을 그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이 단편은 마치 장정일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  알퐁스 도데의 동명 소설을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비틀어버린 <별>, 한강 다리 아치에 올라 자살 소동을 벌이는 남자와 그를 말리는 순경의 이야기인 <아치>, 몇 만년 전 빙하기 시절 굶주린 가족을 위해 사냥을 떠난 남자 이야기인 <슬(膝)> 등 9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처럼 그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단편들도 있는가 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면서 진한 휴머니티를 맛볼 수 있는 작품도 있고, 한편으로는 훌륭한 단편 SF소설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하는가 하면, 어떤 이야기들은 불쾌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성적(性的) 농담과 구토를 유발하는 이야기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이라면 어느 한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마치 성찬(盛饌)과도 같은 이 책의 다채로운 글들에 환호를 하겠지만, 왠지 박민규식 풍자와 유머가 불편한 독자들은 더욱 음울해지고 괴이해진 그의 글들에 영 마땅치가 않은 그런 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재미와 불편함을 함께 맛볼 수 있었던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지 않아 그의 색깔이나 경향이 어떻다고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문학적 열망으로 "후끈 달아오른" 그가 앞으로 보여줄 작품들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좀 더 지켜본 후에야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뭏튼 작가 박민규는 뭐라 정형화된 틀로 평가하기 어려운, 참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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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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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대표적 논객이자 진보주의 역사학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 2001년 귀화(歸化)해서 이제 이 별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 박노자 교수의 글은 참 불편하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박노자 교수의 말이 옳아요. 다 옳은데, 그분 글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질 때가 있어" 라고 했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금기로 통하는 사대주의, 군대, 종교, 대학,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어찌 그리 콕콕 집어내어 적나라하게 비판을 하는지 정말 우리가 이렇게까지 후진적이고 잘못되어 있을까 하는 괜한 반발심이 들 정도로, 즉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그런 글들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의 글은 대표적인 저서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1,2>와 한겨레 출판사의 <21세기는 바꿔야할 ~> 시리즈에서의 강연 글들과 인터뷰 글들, 그리고 한겨레 <박노자 글방> 글들을 읽어봤는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생각과 문화들이 사실은 전근대적인 폭력성이나 배타주의, 전체주의, 차별주의, 순혈주의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그의 지적이 가슴 아픈 이유는 그러한 지적이나 비판이 우리를 감정적으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혐한론(嫌韓論)"처럼 그냥 무시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엿볼 수 있기에, 그래서 더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가의 아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박노자의 일갈이 더욱더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그가 원래 "가야사(伽倻史)"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의 역사학자로서의 전공을 바탕으로 아직도 민족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논란이 많은 우리 고대사(古代史)에 대해 그동안 보아왔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의 역사 인식을, 역시나 우리에게는 지극히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역사 이야기를 선보였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한겨레출판사/2010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우리 역사의 시대 분류에 있어 "고대(古代)"라면 단군조선에서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를 일컬으며 우리 역사학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박노자 교수는 서문인 "들어가며"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 인정, 사상적 흐름, 국가가 아닌 민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의 다양한 계층, 집단이 서술 대상이며 광개토왕의 '칼'보다 고대 한반도 젊은 남녀들의 '야합(중매 없는 자유결혼)'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책이 불러일으킬 논란을 의식했는지 "이와 같은 탈 민족, 탈 국가적 고대사 저술이 나온다고 해서 이미 '위대성' 위주로 굳어진 우리의 통상적 고대사관이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역사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보다 민중이 하루하루 사는 일상을 더 주목하는 사회를 그려본다고 자신의 바램을 털어놓는다.  

 책의 본문에 들어가면 그동안 학창시절 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또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각종 책이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우리의 당연하고 분명한 역사라고 알고 있는 상식들, 즉 만주는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의 고토(故土)이며, 그래서 외세(外勢)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 국가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드넓은 만주를 져버리고 한반도 한쪽 구석으로 찌그러진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이고, 이웃 "왜(倭)"는 우리가 문명사회로 교화(敎化)시킨 야만인에 불과했다는 역사적 상식들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의 몇몇 책이나 인터뷰에서 이미 비판한 바 있는, 우리의 국조(國祖)이자 반만년 역사의 시원(始原)인 단군(檀君) 신화에 대하여 책에서는 단군 신화는 고대에는 한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신화가 아니라 북방계통인 고구려, 발해에서 전해진 일종의 지역 신화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5세기 후반부터 신라와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던 고구려와 발해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통일 신라 말기까지 신라 금석문이나 문서에서는 단군에 대한 글을 한마디로 찾아볼 수 없었다가, 평양 지역을 영토화해 신라와 고구려 양쪽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졌던 고려의 건국으로 사정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고려 건국의 주인공들인 왕(王)씨 문중 전승자체에 백두산, 범이나 호랑이 모습을 띤 여신과 결합, 산신이 돼 산속으로 사라졌다 등 왕씨 일부 측면에서 단군 이야기와 상통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10세기가 되어야 비로소 단군 이야기가 구전에서 필기의 형태로 그 모습을 바꿨고, 대몽항쟁에 이르러 국가 통합의식이 절실해지자 일연과 이승휴가 잘못하면 영원히 잃을 지도 모를 평양지역의 단군 전승을 '해동 전체"의 기원 신화로 부각시킨 것이며, 그 신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불교 신중(神衆)인 제석환인(帝釋桓因)을 차용해오고,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도 보살도(菩薩道) 정신의 요체인 요익(饒益;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단군 신화가 일제 말기 항일(抗日)을 위한 방편이자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개념으로 승화되면서 단군 신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즉 일부 지방 설화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해석되면서 우리 민족 전체의 신화로 격상되었다는 말인 셈이다. 그렇다면 일개 부족 국가에 불과한 고조선이 만주를 지배한 제국이라던가,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국경이 확정되지 않았고 느슨한 영역개념에 불과했던 고대에 고구려가 만주를 통치했던 위대한 제국으로 묘사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며 그런 역사적 인식을 배경으로 만주가 우리 영토이니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성경을 바탕으로 한 위대한 이스라엘식 역사서술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 오늘날 이스라엘이 2천년을 넘게 살아온 팔레스타인들을 내쫓은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한편 당시 중국인들 입장에서야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같은 민족인 삼한(三韓)의 후예로 간주했지만, 삼국 간에는 전혀 그런 민족적 동질성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신라인들에게 고구려와 백제는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할 적국(敵國)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즉 중국 왕조와 동맹을 맺은 신라의 선택은 자신을 위협하는 적국을 무너뜨리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하고 주장한다. 그렇게 때문에 통일신라 이후를 발해와 신라, 남북조시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 당시 신라가 발해에게 느꼈을 적대감과 이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근대적인 역사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오늘날 쇠고기 수입 등 내줄 것은 다 내주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현 정권의 편집증적 친미 일변도 외교를 "조공외교(朝貢外交)"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고대의 조공외교를 폄하하는 그런 발언이라고 비판하는데, 중국 교과서에서 중국의 역대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동북아 국가들을 지방정권 또는 할거 정권이라 부르며 마치 종속 정권이었던 양 서술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며,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왜곡이라기보다는 전통시대 역사의 부적절한 근대주의적 해석이라고 봐야할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근대적 주권 국가론 입장에서야 조공이나 책봉이 독립포기처럼 보이지만 중원 국가와 비 중원 국가 사이의 모든 외교관계가 조공으로 인식됐던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조공과 국가적 자주성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호혜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죽 중원 바깥의 국가들이 중원 국가의 중심적 위치를 인정해주는 대가로 문명적 국제사회의 멤버로서 인정을 받았는가 하면 공물을 바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희사품을 듬뿍 얻어가곤 했으며, 사실 조공 과정에서 이루어진 물물 교환의 차원에서 보면, 조공 외교는 관무역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으며, 오늘날 국제 교류라는 범주에 드는 거의 모든 행위를 총망라했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맺음말인 "나가며 -'고여 있는' 민족사 대신 '흘러가는 고대사' ”에서 '민족 국가'의 기원과 발전, '정신·주체성'을 조명 확립시킴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강압적으로 민족 또는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자아 인식을 갖게 하는 오늘날의 고대사 대신 다양성과 상호연관성, 비판적 인식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고대사 패러다임을 제안하려는 게 이글의 요지라고 다시 한번 책 집필 동기를 밝히며 “국방사관”을 극복하고, "동질성"에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서로 스며듦", "흐름"으로서의 고대사 인식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 영구 불변의 주제로서 '민족'신화를 버리고 수많은 이질적 요소들을 내포한 여러 '흐름'들의 중첩으로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오늘날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실제 대한민국은 상호 갈등을 손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계급, 계층, 연력, 지역 집단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동질적인 단수의 '우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일단 인정해야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해결에 착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권이 보이는 행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주류"는 다양성의 인정과 비폭력적 갈등 해결보다 늘 '불도저"식의 폭력적인 '진압'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다양성의 인정과 소통문화의 정착이란 아직도 멀고 먼 과제라고 한탄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아마도 만주와 내몽고지역, 북경까지 아우르는 찬란한 고대 제국 “고조선(古朝鮮)”과 "수(隋)", "당(唐)"의 대군을 무찌른 "을지문덕(乙支文德)",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느껴질 이 책은 그러나 자칫 배타적 국수주의(國粹主義)로 흐를 수 있는, 이웃 국가들과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인식의 위험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영토와 민족의 틀에 얽매이는 우리만의 고대사를 보다 넒은 의미로써의 동(東)아시아 역사로 관점을 확대하여 지역공동체로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읽어볼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이 책 한 권으로 이미 위대함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역사인식이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강조하는 그런 역사관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시절 민중의 하루하루 삶을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다루는 그런 역사적 시각이,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역사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희망해본다. 그래서 "한류(韓流)"라며 우리를 치켜세우는 칭찬보다도 우리에게 불편하기만 한 이런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박노자 교수가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하고 소중한 그런 존재일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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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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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을 즐겨하지 않았었다. 여성 특유의 감상적(感傷的)인 문체가 별로 와 닿지 않았었고 여성 인권이나 차별 문제에 집착하는 주제의식에도 선뜻 동의 - 어쩌면 나의 몰이해(沒理解)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중견작가인 <님>,<고삐>의 윤정모, <원미동 사람들>의 양귀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의 박완서, <숲속의 방>의 강석경 등의 작품들은 챙겨 읽었는데, 그분들 외에는 딱히 참 좋았다 싶을 작품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여성 작가들에게 무관심했었다. 최근 읽은 책 권 수가 많아지면서 20대의 신인 여성작가들 작품도 여러 권 읽을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녀들의 재기발랄하고 재치 있는 글들에 참 재밌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눈길을 확 끌어당길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이미 데뷔한지가 20년이나 된 중견작가로 그녀가 쓰거나 참여한 책이 50 여권이 검색될 정도로 많은 작품을 선보였으며,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던 “공선옥”의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 “우리 시대의 여성 작가들 중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5월 광주'를 통찰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라는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우리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글로써 치유하고자 했던 작가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작년에 선물로 받은 그녀의 작품 <나는 죽지 않겠다>도 오랫동안 그저 책장 한 쪽에 꽂혀 먼지만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신작 <영란(뿔/2010년 10월)>로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인터넷 연재를 시작하며 “제 슬픔이든, 남의 슬픔이든, 슬픔을 외면하려는 시선이 팽배한 시대에 나는 슬픔을 가만히 오래, 깊게 바라보고 싶었다. 슬픔 가득한 시선으로, 고요히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나의 그런 바람을 ‘영란’이 대신 해줄 것이다” 라고 말한 작가의 말처럼 자식과 남편을 잃고 큰 슬픔에 잠겨 있던 한 여인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그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가는 과정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로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그런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아들을 물놀이 사고로,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어 버린 "나"는 그 슬픔과 충격에 하루하루를 막걸리와 빵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들어와 살았고, 결혼해서도 계속 살고 있었던 집을 의붓오빠에게서 이제 그만 비워달라는 소리를 듣고는 남아 있는 짐들을 정리하다가 출판사를 꾸려나가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세를 지급하지 못했던 남편 선배의 친구 "이정섭"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게 된다. 외도로 이혼당하고 아내와 딸을 독일로 보내고 외로움을 앓고 있는 정섭은 그런 "나"가 안쓰러워 친구의 부음을 듣고 급하게 목포로 내려가는 길에 "나"를 데리고 간다. "나"는 정섭의 친구들과 영안실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들과 헤어져 얼떨결에 선착장에 있는 "영란여관"에 하루 묵게 되고, 오갈 데가 없는 "나"를 여관 식구들은 따뜻하게 맞아들여 주고, 이름조차 가물가물했던 "나"는 "영란"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여관에 머무르게 된다. 그 여관에서 영란은 가슴 따뜻한 사람들과 부대껴 살면서 가슴 속 슬픔을 서서히 치유해나가고, 그런 그녀가 좋아 가슴 두근거리던 철공소 젊은 총각 "완규"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 가슴 속에 묻어둔 남편과 아이에 대한 슬픔이 가시지 않은 그녀는 결국 완규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관을 떠나게 되지만, 죽은 자신의 아이 또래인 완규의 조카가 영 눈에 밟혀서 조카가 다니는 초등학교 근처 슈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한편 장례식 후 서울로 혼자 돌아간 정섭은 여행 서적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영란이 못내 걱정되어 책의 첫 소개 도시를 목포로 정하고 내려와 살게 되고, 정성 또한 한없이 따뜻한 주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서서히 치유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머물렀던 영란여관 식구들과 완규 등을 만나지만 그들이 말하는 서울 사람이 영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책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영란은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가 버린 슈퍼 주인 "인자"의 치매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게 되면서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고, 
남자에게 버림받았지만 모질지 못하고 치매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인자가 어딘지 자신과 비슷한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마음을 연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엄마랑 내가 독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쉽고 속상하드라고. 근데, 이제 안 그래. 안 그런당게. 울 엄마가 그래도 참 좋게 살아왔구나. 한 번쯤, 독한 맘먹고 험한 말이라도 한번 하고 패악질이라고 해도 좋고 하여간. 악이라도 한번 써봤으면 싶다가도, 결국은 아무한테도 해 끼치지 않은 우리 엄마가 잘 살았구나 싶어. 나도 다른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그래도 잘 살았구나, 싶은 게, 내가 남한테 당하긴 했어도 남한테 해 끼친 것은 없구나, 싶어서, 내가 바보 같긴 해도 참 고운 사람이다, 생각하기로 했지. 그러니까, 그제사 내가 나한테 고맙고 네가 막 이뻐지고......그러더라고." - P.200

그리고 다시 한번 남자를 따라 집을 나섰지만 새 생명을 배에 품고 돌아온 인자를 보면서 생명이 주는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고는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인자가 가졌는데 내가 힘이 나는 이유를. 그러나 나는 또 알고 있었다. 그것이 생명이 가진 힘임을.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 지도 모른다. 눈물이 없이는, 그 어떤 생명도 생겨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고 소멸되지 않을 것 같다. 복숭아 꽃잎이 뚝 떨어져 내릴 때, 화들짝 놀라는 것이 실은 눈물이 출렁하는 순간임을 나는 알겠다. 바람이 건듯 불 때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실은 내 눈물이 흩날리는 순간임을. 내 사람들이 남긴 눈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듯이, 인자의 배 속에 둥지를 튼 생명을 이룬 눈물이 인자에게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P.261

 영란과 인자는 슈퍼 자리에 음식점을 내고, 서울로 돌아갔다가 목포에 다시 내려온 정섭은 자신의 집 주변에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친구와 함께 영란이 운영하는 가게로 향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는 한 슬픔의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가에 관한 것이며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고 외면하지 말며,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며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책에서는 영란과 정섭의 가슴 속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장소를 "목포"로 설정하고 있는데, 작가는 그 장소가 어느 곳이라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슬픔의 사람 - 작가 본인일 수 도, 아니면 작품 속 정섭과 영란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에게 그 따스한 품을 내준 목포가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어울려 참 많은 사랑을 만나고 헤어지는 데 연애소설 속에나 볼 법한 그런 거창하고 구구절절한 사랑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사랑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짝사랑하던 남자가 떠나 눈물 흘리는 딸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딸의 처지가 가엾어 소리없이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또한 5월 광주를 화두로 삼아 우리 시대의 상실과 아픔을 그려온 그녀의 사회 인식도 영란과 정섭의 첫 만남 장소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광화문 분향소였고 연이어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부자감세에 대한 다음 대화를 통해서 엿볼 수가 있었다. 

"대중들이 무력한 현실을 신파성 노래에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 그럼 넌 어떡해야 한다고 생각하냐?"
"부자들이 세금 많이 내야지."
전혀 엉뚱하다 싶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부자들이 세금 많이 내면 되는 거냐? 그뿐이야?"
"있는 놈들한테 돈 많이 걷고 걷은 돈 어만 데다 쓰지 말고 제대로 쓰면 된당게. 그래야 노래도 좀 다양하게 나올 거고, 우리들 정서도 좀 다양해질 거고, 기부도 잘하지 않느냐고? 쌩쑈 하느라 자빠지지 말고 세금이나 잘 내라고 허씨요. 그래야, 우리 같은 가난뱅이도 음악회 같은데도 구경 가고 할 거 아냐." -p.211 

참 좋은 작품을 만났다. 여성 작가라면 즐겨하지 않았던 터라 별 기대 없이 읽어서 더 큰 감동을 받았을 수 도 있었겠지만, 영란과 정섭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어느새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가슴 속 깊은 상처가 함께 치유되는 것 같은 그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는 없음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임을, 아직도 우리 곁에는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따뜻한 사랑을 한없이 나눠줄 수 있는, 어쩌면 혈육보다도 더 살가운 그런 "부자" 이웃이 살아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목포"에 꼭 가보고 싶어졌다.  목포는 고등학교 시절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면서 잠깐 들려보고는 그 후로 한 번도 가보질 못했는데 지금 가게 되면 선착장 근처의 "영란여관" - 책에서는 나중에 없어졌지만 - 근처에는 아직도 시(詩)를 쓰며 아버지와 조카와 살고 있을 "완규"를,  유달산 산동네 마을에서는 아코디언과 풍금을 멋지게 연주하며 말 못하는 딸과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그리고 목포 도심 어느 초등학교 근처 골목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난 영란의 식당 또한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술만 취하면 "목포는 항구다!"하고 소리 질렀던 대학시절 하숙집에서 같이 뒹굴었던, 만나본지 벌써 오래된 그리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목포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흐뭇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그런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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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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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대적자(大敵者)이자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마 "사탄(Satan)"의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는 "루시퍼(Lucifer)" - 악마의 계보를 소개하는 몇몇 오컬트(Occult) 서적에서는 사탄과 루시퍼를 별개의 존재로 설명하기도 한다 - 는 원래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도록 허락받은,“빛(lux)을 가져오는(ferre) 것"이라는 이름처럼 다른 천사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움과 용기, 기품으로 가득 찬 천사장(天使長)이었지만 교만함이 지나쳐 하느님의 권좌를 탐내다가 하늘에서 추방당하고 말았고, 그와 함께 추방당한 타락천사(墮落天使)들을 이끌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며 죄를 범하게 하고, 유혹을 멈추지 않지만 최후의 심판에 이르러 영원한 불의 연못에 던져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타락천사나 악마의 개념은 신화학자나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기독교가 원류(源流)가 아니라 역시 하늘에서 추방된 공작(孔雀)새 천사“멜렉 타우스(Melek Taus)” - 마코토 오기노의 만화 "공작왕(孔雀王)"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를 신봉하는 중동지방의 고대 종교인 “예지드(Yezidi)”교나 세상을 선(스펜타 마이뉴)과 악(앙그라 마이뉴)이 싸우는 투쟁의 현장으로 해석하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와 신화에서 차용해 온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가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어 이슈가 되었다는 <요한 기사단의 황금상자>의 저자이자 노르웨이의 국민작가 톰 에겔란은 그의 신작 <루시퍼의 복음(Lucifers Evangelium/랜덤하우스 코리아/2011년 11월)>에서 루시퍼의 기원에 대하여 전혀 색다르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서기 325년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와 같은 오늘날 기독교 교리(敎理)와 성경(聖經)을 확정했던 첫 종교회의인 니케아(Nicaea) 공의회에서 "루시퍼의 복음"이라 불리우는 이단 문서를 폐기하기로 결정하지만 문서 폐기를 담당한 세 수도사는 문서를 셋으로 나누어 감춰두기로 약속한다. 그로부터 1,600년 후 문서의 한 조각이 사해문서(死海文書)로 유명한 이스라엘 쿰란에서 발견되고, 1970년에는 두 번째 조각이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되어 로마의 신학자이자 악마연구가인 지오반니 노빌레 교수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사탄을 숭배하는 이단 종파인 "드라큘(Dracule) 기사단"은 노빌레 교수의 딸을 납치해서 교수에게 문서를 가져오라고 협박하고, 노빌레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기사단의 수장을 총으로 쏘고는 딸과 함께 종적을 감춘다.  그로부터 40년 후 인 2009년 노르웨이 고고학자이자 이미 몇 편의 기독교계 희귀문서를 발굴해내어 유명세를 탔던 비외른 벨토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원에서 발견된 고대 문서의 연구를 부탁받아 문서를 비밀리에 영국의 고고학팀에 보내어 해독을 의뢰한다. 루시퍼의 복음 마지막 조각으로 추정되며 사탄의 정확한 재림일이 예언되어 있다는 이 문서를 추적하고 있던 드라큘 기사단의 기괴한 사탄 제례에 의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지인과 여교수가 연이어 희생을 당하자 벨토는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루시퍼 복음의 실체를 부인했던 노빌레 교수를 알게 되고 그의 제자를 만나기 위해 로마로 오게 되지만 그만 기사단에게 붙잡혀 역시 사탄 제례의 희생양이 될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드라큘 기사단의 반대 세력이자 루시퍼의 복음을 연구하는 다국적 단체 “루시퍼 프로젝트”팀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벨토는 그들에게서 프로젝트에 동참하라는 권유와 함께 문서에 담긴 비밀과 프로젝트의 실체에 대해 듣게 되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프로젝트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문서를 그들에게 건넨다. 마침내 루시퍼의 복음 세 조각이 완전하게 합쳐지고, 문서를 해독한 결과 구약성서 <창세기> 제11장에 나오는 벽돌로 하늘 높이 피라미드형으로 쌓아올렸다는 탑으로 신의 분노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는 바벨탑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벨토는 과거 바빌로니아 제국이 위치했던 이라크로 날아가 프로젝트 발굴팀에 동참하여 마침내 신화 속의 바벨탑을 발굴해내고, 바벨탑의 지하 봉인이 풀리면서 인류의 진화와 신과 악마, 최후의 심판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접하고 경악하게 된다(결론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루시퍼의 복음>은 사실과 픽션의 회색지대에 있다. 나는 상상력만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실만으로 이 책을 쓰지도 않았다. 자신의 믿음을 회색지대 위에 둘 것인지, 흑과 백의 명확한 경계 안에 둘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톰 에겔란 

이 책을 처음 받아 들고는 560 페이지라는 분량에 꽤나 부담을 느꼈었지만 막상 책읽기를 시작해서는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흥미로운 소재와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 그리고 스피디한 전개로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다 읽는 데 하루 나절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몰입감과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책에는 오컬트나 미스테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각종 음모론과 미스테리, 즉 판타지 소설에 종종 인용되는 악마의 계보와 각 종교에서의 악마들의 명칭, 대표적 악마 숭배 단체인 사탄 교회(The Church of Satan)와 대사제 안톤 라베이,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거인족 “네피림” 신화, 요한계시록의 최후 심판의 날인 하르마겟돈(아마겟돈), 고대 마야문명이 예고했다는 2012년 지구 종말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종종 예수가 젊은 시절 몸담았던 단체로 언급되는 “에세네파”, 앞에서도 언급한 비밀 종파 예지드교와 멜렉 타우스 신화, 히브리 성서의 행과 열을 특정한 방향으로 읽으면 미래에 대한 예언을 알 수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바이블 코드(Bible Code)", 미 공군이 1952년부터 1970년까지 다양한 형태로 운영한 UFO에 대한 가장 중요한 연구기관이자 연구기간 동안 1만 3000건이 넘는 UFO 관찰 사례를 모으고 분석하고 기록했다는 “블루북 프로젝트”, 외계 문명 기원설로 유명한 “에리히 폰 데니켄”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마치 음모론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처음에는 1970년 노빌레 교수와 2009년 베토 교수의 사건을 교차 편집되어 있어 개별 사건별로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다소 애를 먹었었는데, 결말에 이르러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고 두 사건이 하나로 귀결되는 퍼즐식 구성에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 책의 결말에 대해서는 충격적이고 신선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유치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로 호불호(好不好)가 나뉠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책의 결말을 이미 다른 책들에서 여러 번 접해본 이야기인지라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고, 약간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책의 결말과는 다른, 좀 더 신비주의적 결말을 맺었으면 어땠을 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번 손에 잡으면 금새 정신없이 책에 몰입하게 하는 매력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훌륭한 재미를 갖춘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과연 스포일러 때문에 밝히지 못한 결말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두꺼운 분량에 겁먹지 말고 어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러면 나처럼 한나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그런 재미와 즐거움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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