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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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대표적 논객이자 진보주의 역사학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 2001년 귀화(歸化)해서 이제 이 별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 박노자 교수의 글은 참 불편하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박노자 교수의 말이 옳아요. 다 옳은데, 그분 글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질 때가 있어" 라고 했던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금기로 통하는 사대주의, 군대, 종교, 대학,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어찌 그리 콕콕 집어내어 적나라하게 비판을 하는지 정말 우리가 이렇게까지 후진적이고 잘못되어 있을까 하는 괜한 반발심이 들 정도로, 즉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그런 글들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의 글은 대표적인 저서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1,2>와 한겨레 출판사의 <21세기는 바꿔야할 ~> 시리즈에서의 강연 글들과 인터뷰 글들, 그리고 한겨레 <박노자 글방> 글들을 읽어봤는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생각과 문화들이 사실은 전근대적인 폭력성이나 배타주의, 전체주의, 차별주의, 순혈주의 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그의 지적이 가슴 아픈 이유는 그러한 지적이나 비판이 우리를 감정적으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혐한론(嫌韓論)"처럼 그냥 무시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엿볼 수 있기에, 그래서 더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가의 아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박노자의 일갈이 더욱더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 그가 원래 "가야사(伽倻史)"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의 역사학자로서의 전공을 바탕으로 아직도 민족사학이니 식민사학이니 논란이 많은 우리 고대사(古代史)에 대해 그동안 보아왔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의 역사 인식을, 역시나 우리에게는 지극히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역사 이야기를 선보였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한겨레출판사/2010년 9월)>이 바로 그 책이다.  

  우리 역사의 시대 분류에 있어 "고대(古代)"라면 단군조선에서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를 일컬으며 우리 역사학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박노자 교수는 서문인 "들어가며"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 인정, 사상적 흐름, 국가가 아닌 민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의 다양한 계층, 집단이 서술 대상이며 광개토왕의 '칼'보다 고대 한반도 젊은 남녀들의 '야합(중매 없는 자유결혼)'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책이 불러일으킬 논란을 의식했는지 "이와 같은 탈 민족, 탈 국가적 고대사 저술이 나온다고 해서 이미 '위대성' 위주로 굳어진 우리의 통상적 고대사관이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역사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보다 민중이 하루하루 사는 일상을 더 주목하는 사회를 그려본다고 자신의 바램을 털어놓는다.  

 책의 본문에 들어가면 그동안 학창시절 국사교과서를 통해서, 또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각종 책이나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우리의 당연하고 분명한 역사라고 알고 있는 상식들, 즉 만주는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의 고토(故土)이며, 그래서 외세(外勢)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 국가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드넓은 만주를 져버리고 한반도 한쪽 구석으로 찌그러진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이고, 이웃 "왜(倭)"는 우리가 문명사회로 교화(敎化)시킨 야만인에 불과했다는 역사적 상식들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의 몇몇 책이나 인터뷰에서 이미 비판한 바 있는, 우리의 국조(國祖)이자 반만년 역사의 시원(始原)인 단군(檀君) 신화에 대하여 책에서는 단군 신화는 고대에는 한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신화가 아니라 북방계통인 고구려, 발해에서 전해진 일종의 지역 신화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5세기 후반부터 신라와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던 고구려와 발해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통일 신라 말기까지 신라 금석문이나 문서에서는 단군에 대한 글을 한마디로 찾아볼 수 없었다가, 평양 지역을 영토화해 신라와 고구려 양쪽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졌던 고려의 건국으로 사정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고려 건국의 주인공들인 왕(王)씨 문중 전승자체에 백두산, 범이나 호랑이 모습을 띤 여신과 결합, 산신이 돼 산속으로 사라졌다 등 왕씨 일부 측면에서 단군 이야기와 상통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10세기가 되어야 비로소 단군 이야기가 구전에서 필기의 형태로 그 모습을 바꿨고, 대몽항쟁에 이르러 국가 통합의식이 절실해지자 일연과 이승휴가 잘못하면 영원히 잃을 지도 모를 평양지역의 단군 전승을 '해동 전체"의 기원 신화로 부각시킨 것이며, 그 신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불교 신중(神衆)인 제석환인(帝釋桓因)을 차용해오고,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도 보살도(菩薩道) 정신의 요체인 요익(饒益;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단군 신화가 일제 말기 항일(抗日)을 위한 방편이자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개념으로 승화되면서 단군 신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그런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즉 일부 지방 설화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해석되면서 우리 민족 전체의 신화로 격상되었다는 말인 셈이다. 그렇다면 일개 부족 국가에 불과한 고조선이 만주를 지배한 제국이라던가,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국경이 확정되지 않았고 느슨한 영역개념에 불과했던 고대에 고구려가 만주를 통치했던 위대한 제국으로 묘사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며 그런 역사적 인식을 배경으로 만주가 우리 영토이니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연 성경을 바탕으로 한 위대한 이스라엘식 역사서술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 오늘날 이스라엘이 2천년을 넘게 살아온 팔레스타인들을 내쫓은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한편 당시 중국인들 입장에서야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같은 민족인 삼한(三韓)의 후예로 간주했지만, 삼국 간에는 전혀 그런 민족적 동질성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신라인들에게 고구려와 백제는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할 적국(敵國)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즉 중국 왕조와 동맹을 맺은 신라의 선택은 자신을 위협하는 적국을 무너뜨리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하고 주장한다. 그렇게 때문에 통일신라 이후를 발해와 신라, 남북조시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 당시 신라가 발해에게 느꼈을 적대감과 이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근대적인 역사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오늘날 쇠고기 수입 등 내줄 것은 다 내주고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현 정권의 편집증적 친미 일변도 외교를 "조공외교(朝貢外交)"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고대의 조공외교를 폄하하는 그런 발언이라고 비판하는데, 중국 교과서에서 중국의 역대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동북아 국가들을 지방정권 또는 할거 정권이라 부르며 마치 종속 정권이었던 양 서술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며,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왜곡이라기보다는 전통시대 역사의 부적절한 근대주의적 해석이라고 봐야할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근대적 주권 국가론 입장에서야 조공이나 책봉이 독립포기처럼 보이지만 중원 국가와 비 중원 국가 사이의 모든 외교관계가 조공으로 인식됐던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조공과 국가적 자주성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호혜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죽 중원 바깥의 국가들이 중원 국가의 중심적 위치를 인정해주는 대가로 문명적 국제사회의 멤버로서 인정을 받았는가 하면 공물을 바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희사품을 듬뿍 얻어가곤 했으며, 사실 조공 과정에서 이루어진 물물 교환의 차원에서 보면, 조공 외교는 관무역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으며, 오늘날 국제 교류라는 범주에 드는 거의 모든 행위를 총망라했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맺음말인 "나가며 -'고여 있는' 민족사 대신 '흘러가는 고대사' ”에서 '민족 국가'의 기원과 발전, '정신·주체성'을 조명 확립시킴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강압적으로 민족 또는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자아 인식을 갖게 하는 오늘날의 고대사 대신 다양성과 상호연관성, 비판적 인식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고대사 패러다임을 제안하려는 게 이글의 요지라고 다시 한번 책 집필 동기를 밝히며 “국방사관”을 극복하고, "동질성"에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서로 스며듦", "흐름"으로서의 고대사 인식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 영구 불변의 주제로서 '민족'신화를 버리고 수많은 이질적 요소들을 내포한 여러 '흐름'들의 중첩으로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오늘날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실제 대한민국은 상호 갈등을 손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계급, 계층, 연력, 지역 집단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동질적인 단수의 '우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일단 인정해야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해결에 착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권이 보이는 행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이른바 "주류"는 다양성의 인정과 비폭력적 갈등 해결보다 늘 '불도저"식의 폭력적인 '진압'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다양성의 인정과 소통문화의 정착이란 아직도 멀고 먼 과제라고 한탄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아마도 만주와 내몽고지역, 북경까지 아우르는 찬란한 고대 제국 “고조선(古朝鮮)”과 "수(隋)", "당(唐)"의 대군을 무찌른 "을지문덕(乙支文德)",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느껴질 이 책은 그러나 자칫 배타적 국수주의(國粹主義)로 흐를 수 있는, 이웃 국가들과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인식의 위험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영토와 민족의 틀에 얽매이는 우리만의 고대사를 보다 넒은 의미로써의 동(東)아시아 역사로 관점을 확대하여 지역공동체로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읽어볼 가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이 책 한 권으로 이미 위대함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역사인식이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강조하는 그런 역사관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시절 민중의 하루하루 삶을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다루는 그런 역사적 시각이, 다양성과 상호연관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역사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희망해본다. 그래서 "한류(韓流)"라며 우리를 치켜세우는 칭찬보다도 우리에게 불편하기만 한 이런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해대는 박노자 교수가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하고 소중한 그런 존재일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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