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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이웃 일본에 비해 문학상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문학계의 현실에서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권위 있는 문학상인 한겨레 문학상, 문학 동네 신인작가상, 신동엽 창작상, 이효석 문학상, 이상 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들을 휩쓴 작가이자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박민규" 작가가 자신에게 부여된 온갖 수식어와 수상(受賞)이력을 쏙 뺀 채 책 표지 날개에 단지 "1968년生. 소설가"라고 딱 한줄 써서 책을 펴냈다. 첫 소설집 <카스테라>에 이어 두 번째 소설집이라는 <더블 Double Side A,B(창비/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인데, "명실 공히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는 출판사 홍보글처럼 여타의 수식어나 수상경력으로 굳이 그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선뜻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작가이며, 작가의 본연은 온갖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과잉 - 박민규는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란다 -이 아니라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는 그의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초창기 작품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지구영웅전설>에 이어 이번 작품이 세 번째인데,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 “역시 박민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너무 종잡을 수 없이 현란하고 화려한 그의 색깔에 일견 당황스럽기도 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지난 시절 나를 이끌어준 모든 <더블 앨범>에 대한 헌정”이라고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책은 오래전 LP판을 보듯이 SIDE A, SIDE B로 구성하여 각종 문학잡지에 발표했던 단편 18편을 수록하고, 원래는 단편마다 삽입하려고 했지만 사정상 별도로 구성하게 된, 앨범 속지를 연상시키는 화보들과 각 단편마다 헌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글들을 담은 일러스트 화보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의 발표 시기와 수록된 곳이 제각각이다 보니 일관된 경향이나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불가능하고, 그저 SF, 판타지, 미스테리, 스릴러,풍자, 휴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글솜씨 덕분에 그의 명성이 결코 허명(虛名)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첫 번 째 권인 <더블 A>에서는 암 선고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던 한 남자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 나무 밑에 묻어 두었던 “타임캡슐”을 캐내고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 <근처>, 홍보용으로 띄운 비행선이 줄이 풀려 바람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그 비행선을 쫓는 두 남자와 주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굿바이 제플린>, 자신의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글이라는 <누런강 배한척>은 진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단편들인데 반해, 지각 변동에 의해 새롭게 생긴 해구(海溝)를 탐색하는 이야기인 <깊>과 우리와 비슷한 모습의 또다른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크로만, 운>은 각각 아서 C.클라크와 스티븐 호킹에게 주기 위해 썼다는 말처럼 SF 장르 소설로서의 그의 재주를 맘껏 뽐내기도 한다. 그의 기존 작품 경향을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행성 충돌 하루 전날, 즉 지구 종말의 날을 앞두고 아래층 남자와 위층 남자가 층간 소음 문제로 만났다가 서로 진한 동지의식을 확인하는 <끝까지 이럴래?>와 먼 훗날 인공동면(人工冬眠)에서 깨어나 시대적인 부름에 응해야 한다고 착각을 하는 각하(閣下)와 사모님, 먼 미래까지 그들을 수행하는 충신(忠臣)이 결국 남아있는 인류의 먹이가 되고 만다는 <굿모닝 존웨인>을 들 수 있는데, 여전한 박민규식 유머와 풍자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가장 기괴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양을 만드는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인데 <선인장 포자>란 연작 소설의 일부라는 작가의 설명대로 앞으로 출간될 연작소설을 다 읽고서야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권인 <더블 B>도 앞 권처럼 다양한 장르들을 선보이는데,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폭풍 눈물을 쏟을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호평 속에 성황리에 공연했던 허진호 감독의 연극의 원작 - 작가도 연극 관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글을 남기고 있다 - 이자 어머니에게 주는 글이라는 <낮잠>, 잘 나가던 미국 금융회사 부사장이 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만난 초자연적인 연쇄 살인범과의 동행을 그린 스릴러 <루디>, 현대판 무협 소설인줄 알았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민주"와 "경제"라는 말에 괜히 한번 더 곱씹어 보게 만드는 <절 (용(龍) 네 글자로 이뤄진 말 많을 "절")>, 4명이 동시 입대해서 화제가 되었던 가수의 이름이자 같이 입대하는 친구들을 의미한다는 별칭인 "크라잉 넛"으로 불리우는 젊은이들이 입대 전 해변에서 겪는 이야기인 <비치보이스>, 어느 날 서울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하얀색의 원형 물체가 알고 보니 아스피린이었다는 기묘한 이야기인 <아스피린>, 제목만큼이나 독특하면서도 황당한 성적농담이자 오늘날 가장들의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을 그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이 단편은 마치 장정일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 알퐁스 도데의 동명 소설을 작가 특유의 감각으로 비틀어버린 <별>, 한강 다리 아치에 올라 자살 소동을 벌이는 남자와 그를 말리는 순경의 이야기인 <아치>, 몇 만년 전 빙하기 시절 굶주린 가족을 위해 사냥을 떠난 남자 이야기인 <슬(膝)> 등 9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처럼 그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단편들도 있는가 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면서 진한 휴머니티를 맛볼 수 있는 작품도 있고, 한편으로는 훌륭한 단편 SF소설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하는가 하면, 어떤 이야기들은 불쾌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성적(性的) 농담과 구토를 유발하는 이야기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이라면 어느 한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마치 성찬(盛饌)과도 같은 이 책의 다채로운 글들에 환호를 하겠지만, 왠지 박민규식 풍자와 유머가 불편한 독자들은 더욱 음울해지고 괴이해진 그의 글들에 영 마땅치가 않은 그런 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재미와 불편함을 함께 맛볼 수 있었던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지 않아 그의 색깔이나 경향이 어떻다고 딱히 정의할 수 없지만 문학적 열망으로 "후끈 달아오른" 그가 앞으로 보여줄 작품들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좀 더 지켜본 후에야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뭏튼 작가 박민규는 뭐라 정형화된 틀로 평가하기 어려운, 참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