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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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책은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이어 이번에 읽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원제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부키/2010년 10월)>이 다섯 번 째 책이다. 그동안 그가 출간한 각종 책이나 인터뷰 등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의 모순과 폐해를 꾸준히 고발해 왔던 그는 이번 책에서는 아마도 그가 인터뷰를 통해서 한번쯤은 받았을 경제 관련 질문들을 23가지로 정리해서 먼저 기존 경제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로 전제하고 그 주장의 모순과 허구성을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라고 요약 설명한 후 자신의 설명을 뒷받침할 각종 역사적 사실(史實)과 주변 사례(事例)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장하준 교수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봤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책이지만 아직도 신자유주의 경제나 부자감세, 토목 공사가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환상(幻想)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써서 삼키지 못하고 바로 뱉고 싶을 그런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서론에서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으며, 이 책의 수준을 '초보자를 위한 경제학 입문서'는 아니고, 그보다 더 좁으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넓은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이 책이 기본적인 경제학 원론에서는 으레 설명하고 넘어갈 만한 기술적인 부분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입문서보다 좁다고 하겠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건너뛴 것은 결코 이 책의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며,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경제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입문서 이상의 책이기도 하는데, 고급 경제학 서적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제학적 이론과 실증적 자료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고급 경제학서 수준을 넘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대부분 해법이 단순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사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 문제들에는 단순한 해법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전제한 후,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으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가 없으며,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경제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서 사회에 이바지 하기는 커녕 우리 자신의 권익마저도 제대로 지켜 낼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 23가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먼저 “0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 기술 혁명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하는 주장, 즉 통신기술 혁명은 물리적 '거리의 파괴'로 이어졌고, '국경 없는 세계'가 출현하면서 기술 혁명을 가져와 국가나 기업, 그리고 개인도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변화하지 않으면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제하고는 이에 대한 답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세탁기가 오히려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한다. 즉 위의 주장은 변화를 인식할 때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이며 상대적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통신기술 발전은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이지 않으며,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이 오히려 집안 일에 들이는 노동시간을 줄여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사례를 들면서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과거를 돌아볼 때 옛것을 과소평가하거나 새 것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국가 경제 정책이나 기업의 정책은 물론 우리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조언한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풀린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는 지금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고 있을까("06. 거시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편)?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경제부문 공공의 적 1호였다고 한다. 이런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1990년대 이후 길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장기 번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장하준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잡게 되면서 세계 경제는 더 불안해졌다고 반박한다. 즉 인플레이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완전고용이나 경제성장 같은 중요한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또한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고, 물가안정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고들 주장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매었음에도 성장률은 미미했다는 사례를 들면서,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신 정권 들어 지식기반산업이 강조되고 있는데, 종종 제조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고 금융산업이나 경영 컨설팅과 같은 생산성 높은 지식 기반 서비스가 발전하고 있는 "탈산업화" 현상에 대해서 당연한 현상이므로 전혀 우려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0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편)에게는 제조업 생산 비율이 줄어든 것은 제조업분야의 생산성이 서비스업보다 더 빨리 증가하면서 제조업 생신 제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지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고 교역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며, 수출에서 얻는 수입이 적으면 해외에서 선진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경제 성장의 속도도 느려지니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부자감세(富者減稅)야 말로 세제 형평성에 일치하고, 나아가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고 주장하는 현 정권에게 작가가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는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편일 것이다. “부의 분배에 앞서 부를 창출해야 한다”, 즉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부자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않으며,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이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가 더 커지는데, 이는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현 정권의 경제 기조이자 언론이나 TV를 통해서 숱하게 들어본 주장일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1980년대 이후 상당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를 신봉하는 정부가 정권을 잡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예가 없는, 즉 성장을 가속화하는데 실패했다고 일축한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윗부분에서 창출된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현상” 역시 시장에 맡겨두기만 한다는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쉬운데 이는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족진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고 말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인데, 이는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를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놓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2%에 불과한 부자(富者)들에게 종부세(綜合不動産稅)를 부과하는 것이 대못박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관료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결론>인 “세계 경제는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한다고 할 때 명심해야 할 원칙 8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이러한 원칙들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어서 일부 독자들 중에는 불편함을 느낀 사람 - 당연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도 불온서적으로 분류해서 바로 그런 불편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 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 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며,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 받는 수십억 인구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책의 주장들은 그의 책들이나 인터뷰 등에서 접해본 내용들이어서 그리 새롭거나 놀라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읽어본 그의 책 들 중에서는 이 책이 그동안의 주장들을 가장 일목요연하고 쉽게 정리하고 있어 이해하기에는 훨씬 쉽다고 말하고 싶다 - 사실 이 글 첫머리에 언급한 책 들 중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나로써도 읽기가 부담스럽고 지루하기까지 한 그런 경제서적이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장하준 교수를 알고 있었던, 즉 평소에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가 어렵다고만 느끼는 청장년층이나 지금 한참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한번씩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 책이 지극히 불편하기만 할 그 분들만큼은  꼭 읽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장하준 교수의 마지막 말대로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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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콤한 상자 - 앤틱 샵에서 찾아낸 달콤한 베이킹 레시피
정재은 지음 / 소풍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알고 있는 빵이라고는 식빵과 단팥빵, 바게트 빵, 마늘빵, 고로케, 소보루 정도가 고작이고 케이크(Cake)는 그저 가족 생일이나 기념일에 한 두 번씩 사게 되는 생크림 케이크와 치즈 케이크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빵과 케이크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門外漢)이다. 시내의 전통있는 대형 유명 제과점에서는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빵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 지 몰라서 진땀을 흘리다가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동네 제과점에서는 그저 위에서 언급한 몇몇 빵들과 생일 케이크나 사는 정도가 전부이다. 이런 나에게 수많은 쿠키와 케이크, 파이의 레시피(Recipe)와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는 정재은의 <나의 달콤한 상자(소풍/2010년 11월)>은 처음에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과 같은, 별 소용없는 그런 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작가가 디저트 레시피를 모은 사연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담아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책에 흥미가 붙더니, 본문에 들어가 작가가 수집한 각종 레시피와 유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 가득 달콤함이 느껴지는 사진들과 함께 읽어보면서 멋진 디저트 파티에 초대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느낌을 맛볼 수 있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은 전문 베이커도 아니고, 미국의 베이킹 역사에 정통한 학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주부지만 그저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다 보니 직접 구워보기 시작했고, 관심은 또 다른 관심으로 이어져 다양한 미국의 베이킹 레시피에 도전하고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며, 이 책은 완벽함으로 무장한 책이 아니라. 함께 배워가는 마음으로 하나씩 쌓인 나의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가가 미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요리 레시피나 직접 모은 레시피를 담아놓은 레시피 상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 가 없어서 엔틱 샵이나 벼룩시장에 가면 요리책으로 가득 채워진 곳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레시피를 베끼기도 하고,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특별한 홈 메이드 디저트를 먹게 되면 항상 호스트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레시피를 한 장 한 장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레시피 상자에 모으다 보니 그 양은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 레시피들과 그 안에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관심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고, 자신이 처음 레시피를 선물 받고 설레었던 것처럼, 달콤한 상자에 담긴 레시피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작가는 오래된 레시피를 통해서 시간의 흔적 속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아내 숨어있는 이야기를 알아가고, 그 레시피로 직접 디저트를 구워보며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짜릿하고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하며, 이러한 레시피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나누는 것이말로 큰 기쁨이며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좋은 레시피는 아무것도 없던 '무'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있는 레시피에서 더 좋은 레시피로 발전해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널리 퍼질수록 그 레시피를 바탕으로 더 좋은 레시피가 탄생한다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홈 베이킹의 즐거움이자 매력은 먼저 '나 집에서 구워졌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투박한 모양과 그날 기분에 따라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는 베이커(Baker)의 자유를 들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모양은 조금 투박하지만 좋은 재료와 정성이 담긴 디저트를 구워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움, 즉 “나눔”의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자신이 오래된 레시피를 수집하는 이유와 책을 펴낸 동기를 밝힌 책 초입부를 지나면 본격적인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작은 케이크라는 의미의 독일어에서 유래되었고, 미국에서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에 의해 처음 전해진 걸로 알려져 있는 쿠키(Cookie)에 대한 레시피를 소개하고, 머핀/브라우니/스콘/비스킷, 케이크,파이, 브레드, 바/캔디/크래커, 푸딩/코블러 등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다. 세부를 살펴보면 먼저 해당되는 디저트 명칭과 레시피의 유래들을 소개하고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개수, 오븐 시간 및 온도, 필요한 도구, 재료 , 작가만의 노하우라 할 수 있는 SWEET TIP, 그리고 만드는 방법을 완성된 디저트의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실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디저트들과 재료들, 만드는 방법들은 처음 들어본 것들이 대부분 - 머핀, 브라우니, 스콘, 코블러 등은 이 책에서 처음 들어본다 - 이어서 딱히 소개하기가 그렇지만 각 디저트들의 명칭과 유래들만 골라 읽어봐도 좋을 만큼 재미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보면, 먼저 "초기 미국인들의 정통 디저트"라고 불리우는 <허미트 쿠키(Hermits)>의 레시피는 수백년 전 매사추세츠 즈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특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기록이 따로 남아있지 않지만, 쿠기 반죽을 베이킹 팬에 올렸을 때 그 모양이 은둔자(hermit)들이 입던 갈색 가운과 비슷했기 때문에 허미트라는 이름이 지어졌을 거라고 추측되며, 다양한 향신료와 재료 덕분에 향이 풍부한 이 쿠키는 점심 도시락이나 피크닉 바구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디저트였다고 한다. “천사들의 케이크”라고 번역될 수 있는 <엔젤 푸드 케이크(Angel Food Cake)>는 색깔이 뽀얗고 맛과 질감이 공기처럼 가벼워서 천사의 음식에 비유되며, 버터나 베이킹 파우더를 넣지 않고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 케이크는 달걀 흰 자의 양과 반죽 정도가 케이크 전체의 모양과 맛, 질감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1800년 대 후반에 처음 인쇄매체에 소개되기 시작한 이 케이크는 튜브 모양의 케이크 팬을 사용한 시초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케이크 팬 중간에 있는 튜브가 반죽에 열을 골고루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확신했고, 그 후로 튜브 모양의 케이크 팬은 엔젤 푸드 케이크 팬이라는 고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케이크와는 정반대의 이름인 <데빌 푸드 케이크(Devil's Food Cake)>는 어떤 유래가 있을까? 옛날 사람들은 맛이 진하고 중독성이 강한 음식에 '데빌 푸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속이 하얗고 가벼운 엔젤 푸드 케이크와 대비되는, 초콜릿이 뒤덮인 이 케이크의 레시피는 1880년대부터 요리책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초콜릿을 넣어 만든 반죽 위에 초콜릿 프로스팅을 올려 초콜릿 레이어 케이크로 불리웠다가 1900년대 초반부터 데빌 푸드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케이크들 못지 않게 재밌는 이름의 <퓨너럴 파이(Funeral Pie, 장례식 파이)>는 건포도를 가득 넣은 필링으로 만들기 때문에 '건포도 파이'로 불리며 주로 장례식에 온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파이였다고 알려졌다고 한다. 본래는 결혼식이나 특별한 파티에서도 즐기는 디저트였는데 언젠가부터 장례식에 온 손님들을 위해 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도 장례식 파이로 불렸다고 한다.  

 

<왼쪽부터 허미트 쿠키, 엔젤 푸드 케이크, 데빌 푸드 케이크, 퓨너럴 파이>

 책 표지 날개에 작가 사진을 보면 상당히 날씬한데 책에서 소개한 디저트들의 주재료인 버터, 초콜릿, 생크림, 설탕 등, 즉 다이어트의 적(敵)으로 알려진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서 작가는 어떻게 그렇게 날씬한 체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칼로리를 조금 줄인다고 쿠키나 케이크를 구울 때 버터나 설탕의 양을 덜 넣기 보다는 '레시피대로 달콤하게 만들고 그만큼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자'하는 게 바로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자신의 개똥 철학이라고 말하며, 집 바로 앞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지 않고 30분을 걸어 다른 슈퍼마켓에 가고, 가득 찬 장바구니를 두 손에 들고 숨을 헐떡이며 6층에 있는 집으로 뛰어 올라간다고 말한다. 이처럼 먹는 만큼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방법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몸무게 숫자를 유지하는 작가에게만큼은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아내에게 선물하기 위해 신청했던 책이었는데, 레시피의 유래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에, 각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는 수많은 빵과 케이크, 파이들의 사진들을 눈으로 먹어보는 즐거움에 내가 먼저 다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나와 있는 레시피대로 빵과 과자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지는 영 미지수 - 엄밀히는 불가능 -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이라고는 햄버거나 스테이크, 아니면 칠면조 구이 정도 밖에 없는, 요리에 관해서는 미개한 나라인줄만 알았던 미국에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디저트 레시피가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책 페이지를 가득 메우는 각종 디저트의 사진들만으로도 눈이 호사(豪奢)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꽤나 즐거운 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빵과 케이크를 집에서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인 이 책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비록 눈으로만 즐겨보는 “그림의 떡”일 수 도 있겠지만, 다양한 디저트에 대한 상식들을 공부해볼 수 있는 재밌고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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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상하이
신동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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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앞으로 20년 후인 2030년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國家)는 과연 어디일까 하는 질문에 2010년 2/4분기 GDP 기준으로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2위를 기록하면서 군사력과 경제력 모든 면에서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는 양대 강국(G2)의 위치에 오른 “중국(中國)”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최근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을 TV로 시청하면서 “저 곳이 정말 중국 맞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하루하루 눈이 부시게 변화하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한 요새 서점가에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2020 부의 전쟁 in ASIA>, <중국 세계의 중심에 서다>, <2049년 중국을 주시하라> 등 중국 중심의 미래 예측 서적들이 연일 출간 - 물론 앞에 언급한 책들이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 되는 것을 보면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향후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한 공감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중국의 위상(位相)을 제일 잘 엿볼 수 있는 도시가 어디일까? 아마도 수도 “베이징(北京)”보다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도시가 바로 양쯔강[揚子江] 하구에 있는 중국 최대 도시이자 2010년 국제 EXPO로도 유명한 “상하이(上海)”를 꼽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면적으로는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10배(6340 k㎡)이자 2010년 기준 인구 1,660 만 명으로 세계 7위의 도시(보스턴글로브(The Boston Globe) 선정. 1위는 인구 3,670 만 명의 일본 도쿄(東京))이며 하늘로 쭉쭉 뻗은 현대판 바벨탑들인 고층 빌딩이 밀림(密林)을 연상시킬 정도로 빽빽이 늘어선 초거대 도시인 상하이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하이의 휘황찬란한 겉모습을 한꺼풀 벗겨 내보면(Face-off) 현재 중국의 숨기고 있는 정치·사회· 경제적 모순이 역력히 들어나며 따라서 이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이자 1년 여 간 상하이에 체류했던 신동흔 작가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체험을 사진들과 함께 엮어낸 <페이스 오프 상하이(랜덤하우스 코리아/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시안(西安)은 중국 2000년의 역사를 지켜봤고,
베이징(北京)은 1000년의 역사를 목격했다.
그리고 상하이(上海)는 그 마지막 100년의 역사를 증명해보이고 있다" 

  인터넷 서점(YES24)에서 작가 소개를 보니 작가는 지난 2006년 가을~2007년 여름 상하이교통대학교로 해외연수를 다녀오면서 중국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고, 이미 ‘나는 중국서 이렇게 실패했다’(2003년), ‘한류 드라마도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2005년) 등의 기사에서 중국을 소개한 적이 있어 가히 ‘중국통(中國通)’이라 부를 만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 “상하이가 그립다”에서 “상하이는 자본주의적 외관을 보여주지만, 내적으로는 사회주의적 관리 방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상하이를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났지만 아직 성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묘한 '미성년(未成年)'의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책에서는 먼저 세계 최초라는 상하이 자기부상열차와 아직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인력거(人力車)”를 대비시키면서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민공(民工, 이주노동자)”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중국의 영유아 매매 때문에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외출할 때마다 긴장했다는 작가는 2006년을 전후하여 정조우(鄭州)에서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기차역 근처에서 실종되는 일이 많았었는데, 관계 당국에 신고를 해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 부모들이 단체를 결성해 직접 조사한 결과 인근 산시성(山西省)의 벽돌 공장에 유괴된 아이들을 포함해 무려 1000여명이나 감금된 채 "노예"처럼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이처럼 2차 대전 이전에 중국에서 짐꾼, 광부, 인력거꾼을 부르던 호칭인 “쿨리”(苦力/coolie.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나 힘든 일)가 지금 현재 중국에서도 존재하며, 그들이 바로 현대 중국 경제의 고속 발전을 위해 '고된 노동(苦力)"을 감당하고 있는, 경제가 발전한 해안 지방이 아닌 서부나 내륙의 시골 출신자들로 동부 연안 지방으로 나와 그 옛날 쿨리들처럼 도시의 하급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민공(民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주로 농촌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 중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이 대도시 빈민가에서 구직활동을 하거나 임시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미족(蟻族)”, 도시에서 자란 민공의 자녀들로 체제순응적인 부모 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최근 중국 제조업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신세대 농민공”들 또한 사회 불만 세력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중국이 사회주의 시절 제정한 거주 이전 제한 법률인 “호구(戶口)” 제도가 현재까지 계속되면서 비롯된 것이며, 상하이 2천만 인구 중에서 7백만 명은 호구조차 없는 민공(民工)들이며, 한 달에 800 위안(한국 돈 10만 원) 정도를 벌고 있는 그들은 과거 서구 열강들이 상하이에 진출하면서 하루 1위안을 주면서 쿨리들에게 고역을 감당케 했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또한 상하이에서 느꼈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중국에서 제재하는 특정사이트에 접속하면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던 일들, 자녀를 하나 이상 가질 수 없음에도 드라마는 3자녀를 가진 가정을 동경하는 모습들이나 은행에서 월세를 출금하기 위해 2시간 이상 기다려 본 경험들, 마트에서 돈을 던지듯 계산대 위에 탁 놓는 점원들 때문에 불쾌했던 기억, 주택가 근처에도 버젓이 붉은 등(紅燈)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는 퇴폐업소들, 일본인들에게 대놓고 적개심을 들어내는 사람들, 인터넷에서도 종종 소개되고 있는 요상한 중국 화장실들을 예로 들고 있다. 또한 할인점에서 100 위안을 주고 산 지 일주일 만에 녹슬어 버린 프라이팬을 예로 들면서 1958년부터 추진한 대약진 운동의 결과로 ‘산업의 쌀’이라는 철의 생산량은 세계 1위를 차지했지만 냉연강판 등 고급 제품은 자체 기술이 미약해 대량으로 수립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며 이것을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의 모순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편 정치적으로 무력함에 빠져 있는 듯해 보이는 중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정치적인 부문에서 심한 '무력함'을 느끼지만, 중국의 경제가 급물살을 타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런 상황을 '경제성장'이라는 '조증(躁症)'과 정치사회적 무력감이라는 '울증(鬱症)'이 만나 사회적으로 '조울증(躁鬱症)'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을 빌어 진단하기도 한다.  

작가는 ‘Epilogue 新중화주의의 부상’에서  

현재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대국이 되었지만, 덩치만 커져버린 아이처럼 아직 자신들의 경제 수준에 맞는 정치적인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불균형상태에 놓여 있다. 이 반성없는 민족주의가 젊은 유학생들로 하여금 남의 나라 서울의 한복판에서 망치와 스패너를 던지고 경찰관을 폭행하도록 만들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강해졌지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미성숙'상태를 스스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앞으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동북아시아 지역은 '신중화주의'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 p.269 

라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오버랩되는 책이 하나 있었다.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 없다>라는 책인데, 중국의 사회문제인 민공을 언급하고 아직도 남아있는 중국식 사회주의 폐해를 언급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 했는데, 작가가 주장하는 현대 중국의 모순들과 사회문제들을 사회주의 관료주의적 폐해와 계획경제 후유증에 자꾸 결부시켜, 결국은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인상을 심어주는 면에서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부엌이 좁고 외식이 발달한 사연을 중국식 사회주의 배급 경제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상하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퇴폐업소인 마사지 방이나 KTV(가라오케 TV방) - 사실 우리 도심 유흥가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근처나 주거단지 근처에서 더 쉽게,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업소들이다 -에 대한 부연설명 , '잘 기다리는'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중국 민중의 '무력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개인적인 시각으로 전체를 해석하려는 오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나이 많은 서양 노인과 팔장을 끼고 다니는 젊은 중국인 처녀 이야기나 자신의 중국어 개인교사였던 “애슐린”이란 여자의 애정공세에 작가의 두 친구가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 등은 <~없다>류의 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들 정도로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했었다. 어쩌면 중국에 대한 피상적인 비판에만 몰입해서 행간(行間)에 숨어있는 작가의 진심어린 애정과 충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과문(寡聞)함을 탓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몇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오늘날 중국의 성공 이면에 숨겨진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고, 어쩌면 중국의 이런 모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발견해 볼 수 있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익한 책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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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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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 홈즈, 에르큘 포와로, 미스 마플, 샘 스페이드. 
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독자라도 그 이름은 한번씩은 들어봤을 명탐정들이다. 물론 이름을 언급한 저 탐정들은 소설 속 가상인물들이지만 많은 나라들에서는 실제로 탐정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하는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에서는 공인탐정, 민간조사원(PIA: Private Intelligence Administer) 등으로 불리며 합법적인 활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추리소설 시장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웃 일본에서는 어떨까? 일본은 탐정 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나라로 잘 알려져 왔었는데, 사실은 탐정업에 대하여 특별한 국가적 규제 및 관리를 시행한 것이 아니라, 관청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탐정업을 운영 -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탐정업의 폐해와 부작용이 심각해지면서 탐정업의 규제를 위한 입법화를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2006년 6월 “탐정업의 업무 적정화에 관한 법률”이 외회를 통과되면서 국가가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는 공인탐정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사설(私設) 탐정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국가가 관리 감독하는 공인(公認) 탐정은 일본에서도 최근에서야 등장하게 된 것이다 - 물론 기존 사설 탐정들도 관청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으니 국가 공인이라 봐도 큰 오류는 없겠지만 -. OECD 국가 중 탐정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 - 우리나라도 2008년에 '민간조사제도'(일명 탐정) 도입을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 라는 우리나라에서 탐정은 기껏해야 바람난 배후자 뒷조사나 가출한 가족 찾기 정도인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가 고작이니 멋진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들은 우리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구(虛構)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자 경찰 소설의 베테랑 작가라는 사사키 조(佐佐木讓)의 단편집 <폐허를 바라다(廢墟に乞う/북홀릭/2010년 11월)>이 그동안 내가 읽어본 여느 일본 추리소설보다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책에는 표제작인 <폐허에 바라다>를 포함해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인 훗카이도 경찰본부 소속 형사인 센도 다카시는 자신의 실수로 인한 사건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고 자택 요양 명령을 받아 4주에 한번 씩 지정된 심료내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담당의가 오케이 사인을 내려주지 않으면 업무에 복귀를 할 수 없는 상태다. 문제는 그런 상태가 벌써 1년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인데, 증상이 개선됐고 충분히 건강해졌으니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누차 밝혀왔지만 아직도 경찰 인사과에서는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그런 센도에게 과거 동료 형사들과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 알음알음 비공식적으로 수사를 의뢰해오고, 휴직 상태라 수사에 직접 참여를 할 수 없지만, 그저 도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의뢰를 받아들이고는 사건이 발생한 훗카이도 곳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가 의뢰받은 사건들은 우리가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건들인 외국인 범죄, 상해치사, 여성 납치 성폭행 및 실종 사건 등으로 센도 또한 번뜩이는 두뇌회전이나 초능력처럼 느껴지는 직관력이 아니라 형사들의 기본 수사방법인 사건 현장 조사, 주변 인물들의 탐문과 알리바이 조사 등을 통해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다. 그러나 휴직 상태라 실제 수사권을 발휘할 수 없는 입장인 센도로서는 그를 경계하는 지역 형사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하고, 담당 수사관이 아니란 이유로 주변 인물에게 증언을 거부당하기도 하는 어려움도 겪게 되고, 자신 또한 기존 수사 허점과 새로운 정황 증거, 범인 추정 인물에 대한 힌트를 담당 형사에게 일러주고는 사건 결과를 미처 보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며 자신의 복귀가 이번 사건들 때문에 갈수록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한다. 마지막 편인 <복귀하는 아침>에서는 심료치료 의사로부터 다시 요양을 명령받고 한적한 시골 온천에서 휴식을 취하던 센도는 더 이상 현장 복귀를 미룰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오던 중 3년 전 삿포로 사건에서 알게 된 여인에게 의뢰를 받고 오비히로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각 단편마다 잠깐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던, 그를 휴직에 처하게 했던 과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사건은 또 다른 사건과 연계되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책에서는 크게 자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사건들이 소개되고, 그 해결도 형사들의 기본 수사 방식인 현장조사와 탐문에 의해 해결되며, 뛰어난 두뇌회전과 범인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명탐정이 아닌 과거 사건에 의해 고통 받는 평범한 수사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동안 많은 일본 추리소설들에서 볼 수 있었던 절묘한 트릭이나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고 읽은 독자들이라면 실망감이 들 정도로 재미 면에서는 밋밋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그런 면이 더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게 느껴져 색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작가 특유의 문체(文體)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솜씨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을 장황하게 길게 늘여 쓰지 않고, 짧게 끝을 맺는 단문(短文) 위주여서 꽤나 속도감 있게 읽혀져 400 페이지 가까운 책을 금새 읽게 만든다. 그동안 읽어본 많은 일본 추리소설들 중에서 손꼽을 만한 걸작이라 평할 수 는 없겠지만 부담감 없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추리소설 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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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 마라 - 박해선 詩를 담은 에세이
박해선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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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11/22)가 절기(節氣)상으로 “소설(小雪)”이었으니 벌써 겨울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바빠지니 계절은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의 온도로만 가늠할 뿐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산다. 예전에는 가을이 되면 자주 듣게 되는 가을 노래들, 즉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나 10월 말일이면 수십 번도 더 들었을 이용의 "잊혀진 계절", 바람이 차가워질 때면 역시나 자주 듣게 되는 “찬바람이 불면” 등을 들으면서, 또는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도심 가로수나 시골 녘 들판과 산의 풍경들을 보면서 괜한 감상(感傷)에 빠지곤 했었는데 이제는 책상 옆 탁상 달력이 어느새 두 세장 밖에 남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았을 때, 또는 이른 아침 출근 길 공기가 어느새 차갑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어느새 가을이구나, 그만큼 지금 삶이 얼마나 여유가 없어졌는지,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 어느 해보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서 어느새 그 끝자락마저 사라져버린 11월 어느 날, 잊어 버린 줄 알았던 내 감성(感性)을 자극하는 책 한권을 만났다. 즐겨보던 음악 방송 프로그램 연출자이자 시인인 박해선의 <그리움에게 안부를 묻지마라(헤르메스 미디어/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짙은 빨간색 표지가 가을 분위기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책 속에 담겨 있는 시와 에세이들은 가슴 속 깊이 잠들어 있던 감성을 올곧이 일깨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을 상념(想念)에 젖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처음 책 소개 글을 대할 때는 오래전 읽었었던 서정윤 시인이나 원태연 시인의 시집들처럼 다분히 감상적인 시어(詩語) - 학창시절 읽었을 때는 시구(詩句)들을 일기장 등에 따로 적어놓고 연애편지 쓸 때 자주 인용했었는데, 지금 읽어보면 낯이 간지러울 정도로 유치하게 느껴진다 - 들로 가득한 그런 시집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 읽어보니 감성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진솔한 단상(斷想)들과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져 그저 가볍게만 읽히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이런 느낌이 아마도 프롤로그에서 밝힌  

나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가족과 떨어져 여러 곳에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일 년 여의 시간. 이글들은 대부분 그 기간에 씌여진 나의 그리움에 대한 기록이다. 그 시간들이 시가 되고 일기가 되고 편지가 되었다.  

라는 글처럼 우리에게 털어놓지 못한 작가만의 사연과 감상이 올곧이 책 속의 시와 에세이에 담겼기 때문이라 짐작하며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바쁘고 힘든 일상에 지쳐 계절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한나절 연락도 닿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푹 한숨 자라고 이야기한다. 

남의 꿈
남의 눈빛과 셈
다 잊고 그냥
한나절
푹 주무세요 - <그냥 한나절> 中에서 

또한 우리의 사랑이 지금 생에서 끝나는 한순간의 사랑이 아니라 다음 생에까지 이어지는 그런 영원한 사랑이 되기를 바라는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다. 

전생에 서로 미워해서
지금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이면
이생의 끄트머리에
난 그대를
일부러 미워할 것이다
(중략)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사랑을
다음 생엔 어쩌란 말이냐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 <우리가 이승에서> 中에서 

하지만 그렇게 영원하길 바라던 사랑이 끝나게 되었다면, 그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그런 사랑을 두고 떠나야 한다면, 돌아보지 말 것이며 이 책의 제목처럼 그리움에 더 이상 안부를 묻지 말고 그냥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돌아보지 말라
눈물 난다
세상 그리움에게 더 이상 안부를 묻지 마라
네 뒷모습 보고 있을 그대에게
네 눈빛 다시 보이지 마라
이제 그리움들은 다 잘 있다
너 없이 잘 있다 - <안부> 

사랑하는 이가 곁에 없어 가슴 하나 가득 차오르는 외로움은 결국 사랑에 의해 치유될 수 밖에 없으며, 사랑이 외로움을 키우고 외로움이 사랑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한다. 

외로움은 질환이다
약이 소용없는 독한 질환이다
오직 사랑으로만 치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랑이 외로움을 키운다
한없이 외로워하라
그 외로움만이 사랑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다 

잠깐 소개한 아름답고 감성적인 시(詩) 외에도 짤막한 에세이들과 시와 글들과 잘 어울리는 사진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과 가족, 그리고 그와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 그리고 삶에 대한 단상들을 과장되지 않고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작가가 아내에게 바치는 ‘하나뿐인 당신. 당신이 나의 종교라오’라는 고백을 읽으며, 사랑은 그저 가슴 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그 모습을 온전히 갖게 된다는 오래전 어느 수필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친구에게, 부모님께, 나를 아끼고 격려하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나와 그런 인연을 맺게 될 그 누구들에게 멋쩍어서 들려 주지 못했던 말을 가만히 말해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 앞에서 좀 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사랑합니다” 
 


오랜만에 대하는 감성적인 글들이라 처음에는 쉽게 몰입되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읽을 수록 조금씩 조금씩 작가의 감성에 동화되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책 속 구절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아 자꾸 책장을 쓰다듬고 펼쳐보게 되는, 그리고 책에 들어 있는 이소라, 성시경, 이문세 등 그와 함께했던 가수들의 시낭송 CD를 틀어놓고 다시금 책을 펼쳐 읽게 되는, 요란스럽진 않지만 가슴 한 켠을 조용히 물들이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자꾸만 메말라가는 가슴을 따뜻한 감성으로 채울 수 있었고, 이미 훌쩍 지나가 버렸다 생각했던 2010년 가을 한 자락을 잠시나마 내 곁에 머물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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