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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 교수의 책은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이어 이번에 읽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원제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부키/2010년 10월)>이 다섯 번 째 책이다. 그동안 그가 출간한 각종 책이나 인터뷰 등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의 모순과 폐해를 꾸준히 고발해 왔던 그는 이번 책에서는 아마도 그가 인터뷰를 통해서 한번쯤은 받았을 경제 관련 질문들을 23가지로 정리해서 먼저 기존 경제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로 전제하고 그 주장의 모순과 허구성을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라고 요약 설명한 후 자신의 설명을 뒷받침할 각종 역사적 사실(史實)과 주변 사례(事例)들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장하준 교수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봤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책이지만 아직도 신자유주의 경제나 부자감세, 토목 공사가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환상(幻想)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써서 삼키지 못하고 바로 뱉고 싶을 그런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서론에서 이 책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돌아가게 할 수 있는지를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으며, 이 책의 수준을 '초보자를 위한 경제학 입문서'는 아니고, 그보다 더 좁으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넓은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이 책이 기본적인 경제학 원론에서는 으레 설명하고 넘어갈 만한 기술적인 부분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입문서보다 좁다고 하겠지만,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건너뛴 것은 결코 이 책의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며, 나머지 5퍼센트도 아주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경제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입문서 이상의 책이기도 하는데, 고급 경제학 서적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제학적 이론과 실증적 자료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고급 경제학서 수준을 넘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대부분 해법이 단순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사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 문제들에는 단순한 해법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전제한 후,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으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가 없으며,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경제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서 사회에 이바지 하기는 커녕 우리 자신의 권익마저도 제대로 지켜 낼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 23가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먼저 “0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 기술 혁명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하는 주장, 즉 통신기술 혁명은 물리적 '거리의 파괴'로 이어졌고, '국경 없는 세계'가 출현하면서 기술 혁명을 가져와 국가나 기업, 그리고 개인도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변화하지 않으면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전제하고는 이에 대한 답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세탁기가 오히려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한다. 즉 위의 주장은 변화를 인식할 때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이며 상대적 관점에서 볼 때 최근 통신기술 발전은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이지 않으며,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이 오히려 집안 일에 들이는 노동시간을 줄여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사례를 들면서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과거를 돌아볼 때 옛것을 과소평가하거나 새 것을 과대평가하게 되면 국가 경제 정책이나 기업의 정책은 물론 우리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조언한다.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풀린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는 지금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고 있을까("06. 거시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편)?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경제부문 공공의 적 1호였다고 한다. 이런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1990년대 이후 길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장기 번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장하준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잡게 되면서 세계 경제는 더 불안해졌다고 반박한다. 즉 인플레이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완전고용이나 경제성장 같은 중요한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또한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고, 물가안정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고들 주장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매었음에도 성장률은 미미했다는 사례를 들면서,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신 정권 들어 지식기반산업이 강조되고 있는데, 종종 제조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고 금융산업이나 경영 컨설팅과 같은 생산성 높은 지식 기반 서비스가 발전하고 있는 "탈산업화" 현상에 대해서 당연한 현상이므로 전혀 우려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0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편)에게는 제조업 생산 비율이 줄어든 것은 제조업분야의 생산성이 서비스업보다 더 빨리 증가하면서 제조업 생신 제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지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고 교역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며, 수출에서 얻는 수입이 적으면 해외에서 선진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경제 성장의 속도도 느려지니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부자감세(富者減稅)야 말로 세제 형평성에 일치하고, 나아가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고 주장하는 현 정권에게 작가가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는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편일 것이다. “부의 분배에 앞서 부를 창출해야 한다”, 즉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부자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않으며,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이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가 더 커지는데, 이는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현 정권의 경제 기조이자 언론이나 TV를 통해서 숱하게 들어본 주장일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1980년대 이후 상당수의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소득 재분배'를 신봉하는 정부가 정권을 잡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예가 없는, 즉 성장을 가속화하는데 실패했다고 일축한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윗부분에서 창출된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현상” 역시 시장에 맡겨두기만 한다는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쉬운데 이는 세금과 소득 이전 정책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 성장까지 족진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고 말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인데, 이는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를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놓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 2%에 불과한 부자(富者)들에게 종부세(綜合不動産稅)를 부과하는 것이 대못박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관료가 꼭 읽어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결론>인 “세계 경제는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한다고 할 때 명심해야 할 원칙 8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이러한 원칙들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어서 일부 독자들 중에는 불편함을 느낀 사람 - 당연히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도 불온서적으로 분류해서 바로 그런 불편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 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 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며,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 받는 수십억 인구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책의 주장들은 그의 책들이나 인터뷰 등에서 접해본 내용들이어서 그리 새롭거나 놀라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읽어본 그의 책 들 중에서는 이 책이 그동안의 주장들을 가장 일목요연하고 쉽게 정리하고 있어 이해하기에는 훨씬 쉽다고 말하고 싶다 - 사실 이 글 첫머리에 언급한 책 들 중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나로써도 읽기가 부담스럽고 지루하기까지 한 그런 경제서적이었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장하준 교수를 알고 있었던, 즉 평소에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가 어렵다고만 느끼는 청장년층이나 지금 한참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한번씩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아가 이 책이 지극히 불편하기만 할 그 분들만큼은 꼭 읽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장하준 교수의 마지막 말대로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