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리더의 손자병법 살면서 꼭 한번 읽어야 할 지혜시리즈 1
류징즈 지음, 홍민경 옮김 / 북메이드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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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를 즐겨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법서(兵法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릴적 읽었던 삼국지에는 권말 부록으로 <제갈량 병법>이 실려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는 삼국지 속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전법들, 특히 돌로 탑을 쌓아 온갖 풍운조화(風雲造化)를 일으켜 오나라 장수 육손을 혼내주었던 “팔진도법(八陣圖法)”이 실려 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어 이내 실망하고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각종 군담(軍談)소설을 읽으면서 병법서들을 들춰보긴 했지만 완독(玩讀)하지 못했었다. 최근에 고전을 새롭게 조명하여 향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텍스트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고대 전쟁에서나 활용될 수 있을, 그 가치가 퇴색되었다고 여겨지던 이런 병법서들 또한 입신양명을 위한 처세술이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영전략비법으로 새롭게 해석한 책들이 늘고 있다. 중국 명문 대학 칭화대 역사학 초빙 교수이자 이미 <삼십육계의 활용>, <손자병법론> 등 이러한 병법 관련 해설 및 활용 서적들을 집필해온 류징즈의 <똑똑한 리더의 손자병법(북메이드/2010년 11월)>은 병법서의 고전인 <손자병법(孫子兵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치열한 생존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우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손자병법>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손자병법은 극한의 전쟁 상황에서 살아남는 삶의 지혜를 담아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명쾌한 해답을 가르쳐 주지만 그동안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어 선뜻 손에 들고 읽기란 쉽지 않았다면서 이 책은 이해하기 쉬운 사례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병법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의 반열에 오른 이 시대 최고 기업들의 성공전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태백, 사오정으로부터 완벽한 탈출대작전을 세우고, 40대에도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고 정년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치고 읽어보라고, 그러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력 권유하고 있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는 잘 알고 있듯이 중국 춘추시대의 유명한 군사 전문가로 중국 병법의 비조이며, 중국뿐만 아니라 국외 학자들까지도 손무를 ‘병성(兵聖)’으로 부르고, 그의 저서 <손자병법>을 ‘병경(兵經)’ 또는 ‘무경(武經)’으로 부르며 추앙한다고 한다 - 손무에 대한 이야기는 1984년 출간 당시 300만부 이상이 판매돼 한국 출판 역사상 10대 베스트셀러에 꼽혔다는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에 잘 나와 있다. 나도 청소년시절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 . 손무가 지었다는 <손자병법>은 전쟁에 관한 보편적인 규율을 제기하며, 총 13편으로 구성된 책속에 전쟁, 전략, 전술 등의 문제를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 최근에까지도 군 전략가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히는 고전(古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손자병법의 전술 원칙으로 “이길 확신이 섰을 때 싸워라”, “주도권을 쥐고 전투에 임하라”,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공격하라”, “속전속결” 네 가지 소개하고 이러한 전술들이 전쟁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기업 경쟁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만한 전술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손자병법 13편을 각 장(章)으로 설정하고 먼저 병법의 원문을 소개하고, 병법에 맞는 삼국지 고사와 근현대 전쟁이나 기업의 적용 사례들을 예시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후 각 장을 “지혜의 해법”으로 간략하게 마무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전쟁 계획을 세우는 원리 원칙이자 첫 번째 전략인 “시계(始計)”편에서는 병법가는 정치(政治),천시(天時),지리(地理),장령(將領), 법제(法制) 등 다섯 가지에 맞춰 자신과 상대방을 비교 분석하고 전쟁의 승패를 가늠해야 하고, 1) 군주의 깨끗한 정치 2) 장수의 유능 3) 천시와 지리적 이점 4)법령의 준수 5) 군대의 강함 6) 병사의 훈련 7) 공정하고 투명한 상벌 등 일곱가지 기준에 따라 양측을 비교해 승패를 예견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조건과 기준 를 바탕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비교 분석 계획한다면 누구라도 승부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계(計,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계”에 대한 금언으로 손자병법 구절인 “다산승 소산불승(多算勝 小算不勝: 묘책이 많으면 이기고 묘책이 적으면 진다)”을 들면서 적벽대전 당시 제갈량이 짙은 안개를 이용하여 조조에게 화살 10만개를 얻어낸 “초선차전(草船借箭; 허수아비를 실은 배로 화살을 빌리다)” 계책과 제갈량이 신중하게 지키고만 있고 전쟁에 나서지 않는 사마의를 끌어내어 포위 섬멸해낸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 또 다른 병법서인 <36계>의 15번째 계책이기도 한다> 계책 등 삼국지 일화와 함께 아일랜드에 상륙한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리고는 이집트를 정벌했던 나폴레옹의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 전략을 사례로 소개한다. 현대 사례로는 귀신 같은 예측으로 하는 사업마다 성공했다는 홍콩 최고 부자인 창장 그룹 리자청 회장과 작은 식당에 불과했던 맥도날드를 오늘날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레이 크록의 사업수완과 노력을 소개한다.  

  실제 이해관계에 근거하여 상응하는 융통성과 임기응변 방법이자 여덟 번 째 전략인 <구변(九變)>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반드시 이익과 손실의 양 측면에서 사물을 생각하는 유비무환의 대비와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하며 육손을 얕잡아보고 방비를 소홀히 했다가 결국 맥성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된 관우와 무턱대고 철군할 때의 이익과 손실을 탁월하게 예견하고, 한명의 병사로 잃지 않고 무사히 전군과 함께 철수한 육손, 관우와 장비를 잃고 분노해서 이성을 잃어 오나라와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대패하고 자신도 병사한 유비 등 삼국지 일화들을 소개하고, 매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전후해서 놀라운 가격으로 "폭탄세일"하면서 급격히 성장한 영국 "해롯 백화점" 사례들을 함께 소개한다. 이채로운 것은 우리나라 기업인 “대우그룹”을 예로 들고 있는데, 1974년 한국 기업계에 미국이 섬유제품 수입에 쿼터제를 도입한다는 소문이 돌자 각 업체들은 미국 수출 규모를 줄이고 새로운 국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김우중 회장은 오히려 회사 인력을 총동원해 과감하게 섬유 제품의 미국 수출 규모를 늘리는 데 온힘을 쏟아 1974년 미국 수출 규모에서 1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성과를 거두어 미국의 쿼터제를 극복한 유일한 승리자라는 명예를 얻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미 망해서 사라진 기업의 성공사례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데 역자(譯者)는 나처럼 의아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주석(註釋)으로 대우그룹은 방만한 경영과 자금관리로 말미암아 실패한 기업으로 인식되지만 당시 김우중 회장의 미국 시장 개척 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소개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한 지혜의 해법으로 곧장 가면 위험해진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사히 종착점에 이르는 방법인 “이우위직(以迂爲直; 우회함으로써 곧장 가는 효과)”를 모든 분야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열쇠라고 제시한다. 이 두 편 외에도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군쟁(軍爭)>, <행군(行軍)>, <지형(地形)>,<구지(九地)>,<화공(火攻)>,<용간(用間)>편들을 각 장으로 나누어 병법 원문과 사례들을 중심으로 해설하고 있다. 

딱딱하기만 한 손자병법을 잘 알고 있는 삼국지 일화들과 각종 역사 속 사례들, 그리고 현대 기업들의 성공비법과 경영전략을 예시로 들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다만 작가가 중국 사람인지라 중국 기업들 사례를 많이 담고 있는데, 이름도 생소한 중국 기업들보다는 보다 더 유명한 세계 기업들의 경영전략을 예시로 들었으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아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걸 맞는 인생 지침서 또는 경영전략서로 가치가 있을까? 구구절절이 옳은 말만 써놓은 여느 자기 계발서나 성공 사례집처럼 이 책의 활용여부는 독자의 몫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저 사무실 벽면에나 걸어놓는 “구호(口號)”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충고나 권유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병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억지로 끌어다 붙였다고 평가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런 대목은 과감히 건너뛰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만을 골라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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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책들 - 왕상한 교수, 내 인생의 책을 말하다
왕상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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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서평(書評)”을 쓰기 시작한 지가 일 년 남짓 되었다. 그 이전에는 책에 대한 감상은 철저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해서 한 두 줄의 단문 위주로 느낌을 남겨왔는데, 자주 다니는 인터넷 북카페(Book Cafe)에서 이벤트에 당첨되면서부터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이벤트 여부를 떠나서 읽은 모든 책들에 대해서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서평이라고 써놓은 내 글을 보면 서평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미흡한, 그저 독후감(讀後感) 수준의 글들이 대부분이어서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유명한 북 리더(Book Reader)들의 서평들과 함께 명사(名士)들의 독서 에세이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들이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웅진지식하우스)>, 정혜윤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민음사)> 등이 그 책인데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서평들을 읽는 것은 마치 그 사람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은밀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면을 느꼈다면 내 책읽기가 그르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전혀 다른 느낌일 때면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색다른 재미와 함께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번에 또 한 분의 유명 인사의 독서 일기를 만나게 되었다. KBS〈TV, 책을 말하다>라는 독서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각종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낯이 익은 왕상한 교수의 <결정적인 책들; 왕상한 교수, 내 인생의 책을 말하다(은행나무/ 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책의 힘”이었다고 말하며 그 책의 힘을 믿기에 지금도 가능하면 자주 책 앞에 서는 데 그 이유가 겸손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살아볼수록 어려운 인생의 나침반은 바로 책이며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선뜻 좌표를 읽지 못한다면 한번쯤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북리스트를 공개한다고 책의 집필 동기를 털어놓는다.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48권의 책에 대한 감상을 다섯 가지의 주제(章)로 나누고 각 장(章)별로 다시 소주제를 나누어 싣고 있는데, 인문학적 소양을 과시하는 여느 서평들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각종 경험들과 함께 그에 걸맞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쉽게 읽힌다. 자신이 살던 동네도 운동장도 동네 뒷산도 그렇게 좁아터질 수 가 없었고, 간혹 텔레비젼에서 보는 외국의 이국적인 장면을 턱이 빠지고 침이 나올 정도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저런 이름의 나라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던 어린 시절의 단상을 먼저 들려주는 <아라비안나이트>편에서는 단조롭고 단조로우서 어제를 산 인생의 테이프를 오늘 그대로 틀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책 속으로 숨어 그 안에서 허구하는 평온한 벽 아래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읽어보자며 어린 시절 <아라비안나이트>를 읽고 모험의 세계로 빠져드는 꿈을 꾼 아침 이불에 지도를 그리듯이 잊고 있었던 모험으로의 열정을 기억해보자. 추억의 가이드로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라고 소개한다. 또한 중학교 삼학년 때 친구의 부정행위를 신고했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비난이 쏟아졌던 일화와 함께 소개하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편에서는 어쩌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주인공 엄석대보다 이러한 불균형과 균열을 만드는 힘없는 지식인, 한병태와 같은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교훈에 다다르게 되며, 절대 권력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묵묵히 신념을 지켜가는 것의 중요성이 바로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1998년 어머니와 서점 나들이에서 골랐다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에서는 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이런 낯 간지러운 수기는 읽지 않아도 된다고 철없이 생각할 일은 아니며, 가장 소중한 것을 덧없이 놓치고 만 이후에 허탈감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실감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다못해 갑자기 뜨거운 것에 닿아도, 깜짝 놀라도, 감탄할 때에도 우리 입에 붙어 있는 것이 '엄마'라는 단어, 자주 써먹는 만큼 자주 사용료를 내자며 오래된 이 책이 훌륭한 청구서가 될 것이라고 추천한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아내가 건강보험 애기를 하면서 백혈병, 소아암 같은 큰 병에 걸릴 경우를 대비해 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 버럭 화를 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린 사연을 소개하며 그 당시에는 금방 태어나 꼬물거리는 내 아이에게 불행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 초보 아빠였었으며, 지금도 아이가 아픈 것은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잘 보지를 못한다고 밝히며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소개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병마로 고통 받는 아이의 묘사를 보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또 철없는 부모 때문에 속 썩이지 않게 되길 다시 한번 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혹시라도 있을지도 모를 절대자에게 빌어야 할 소원이 있다면 첫 번째가 바로 이것 아닐까라고 말한다.  

  유학시절부터 알고 지낸 미국인 교수가 우리나라 국회 파행 사태에 대해 질문하는 메일을 받고는 참 부끄러웠다며 결국 그 이메일에 답장하는 대신 우리가 하는 싸움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 존스타인 벡의 소설<의심스러운 싸움>을 다시 읽었다는 작가는 의심스러운 싸움의 승자가 누구든 간에 그 승리가 공통을 위한 선을 상실한 트로피라면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묻고 있는 소설이라고 정의하며 오늘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무 상관없이 흘러갈 대로 흘러가 버리라며 방관하고 있을지라도 이 시대를 향해 품은 의심에 답을 줄지도 모를 일이니까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대학 시절 자신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삶에 눈물을 흘리고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었던 때를 회상하며 소개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편에서는 혹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또는 자신이 다른 이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으로 밤을 지새우는 청춘이 있다면 다자이 오사무를 만날 것을 권하고는 청춘의 무게를 책의 주인공 “요조”처럼 혼자 짊어지지 말라고 당부하며 눈 쌓인 산사에서 “악!” 하고 지르는 세상을 향한 비명이 언제고 한번은 필요한 것이 바로 젊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소설에서부터 인문, 사회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망라한 이 독서 에세이는 많은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독서광(讀書狂)들 뿐만 아니라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독서 입문 초보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읽어봐도 좋을 훌륭한 독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경험과 어우러진 책 소개 글이어서 기존의 평론이나 서평처럼 딱딱하고 어렵지 않아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어 책 정보와 함께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재미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자기계발서도 그걸 읽는 독자가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화장실에서나 잠깐 잠깐 읽는 책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작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그저 그런 책 소개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자신의 마음을 울린 책들이라면 누군가에도 어느 정도의 반향은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투병기 같고 반성문 같은 자신의 제멋대로 독후감이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게 한다면, 또는 이미 읽은 책을 다시 한번 읽게 한다면 참 좋겠다고 바람을 밝히고 있는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책 읽기를 한번쯤 돌아보고 앞으로의 독서 계획을 수립해보는 데 참고해볼만 한 책으로서는 가치가 크다고 평하고 싶다.  

책에서 소개하는 48권의 책 중에서 읽은 책을 헤아려 보니 반 남짓 되는 것 같다. 같이 읽은 책들은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확인해보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며 읽지 못했던 책들은 향후 읽을 독서 계획 목록 맨 앞에 두고 차근차근 읽어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작가처럼 내가 읽은 책들의 독후감 - 서평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부끄러워 독후감이라 칭한다 - 들을 나만의 리스트로 엮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꿈꿔본다. 어떤 책을 선택해서 어떻게 독후감들을 다듬을지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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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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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즈음 행복감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서점가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 추리소설들은 소개된 작가들의 수 만큼이나 소재와 형식이 다양한데, 미스터리에 사회, 역사, 청춘, 공포, SF, 심리 등 다른 분야와의 이종 결합으로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추리소설 장르를 선보이고 있어 저절로 눈이 가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신세대 경향의 추리소설을 읽다가도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고전 추리소설, 즉 독자에게 두뇌 싸움을 걸어오는 정교하고 치밀한 트릭과 플롯, 그리고 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하는 명탐정의 명쾌한 추리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동안 보아온 일본 추리 소설 중에는 아직 그러한 작품을 만나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본격“ 추리소설이라 부를 만한,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고전 추리소설의 풍취를 한껏 맛 볼수 있는 그런 추리소설을 만났다. 수많은 일본 추리소설 문학상 중에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특별상(2001)”-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작품인 <용의자 X의 헌신>이 2006년에 대상을 수상했다 - 과 “제6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2003)”을 수상하며 본격 추리 소설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는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원제 りら莊事件 / 시공사/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출간년도가 1958년이니 50년도 더 된 작품 - 문학상들은 최근에 받았다 - 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만큼 고전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건물 주위에 가득 핀 라일락 꽃 때문에 “리라장”- <베사메 무초> 한국 번안 가사에 나오는 ‘리라꽃 지던 밤에’에서 리라가 바로 라일락이다. 책에서는 리라장이라는 짧은 이름이 젊은이들의 근대 감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 이라 불리는 별장에 일본 예술 대학교 음악부와 미술학부 일곱 남녀가 여름 휴양을 온다. 워낙 개성들이 제각각인데다 선남선녀로 학생들에게 연모의 대상이었던 ‘다치비나 아키오’군과 ‘마쓰다이라 살로메’양이 약혼 발표를 하자 묘한 질투와 시기로 서로간의 관계가 일순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다음날 학생 중 하나인 ‘아마 릴리스’양의 우비(雨備)와 가지고 온 트럼프 중 ‘스페이드’ 12장이 잃어버리는 소소한 사건이 일어나고, 인근 마을 숯쟁이가 계곡에서 실족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숯쟁이 주변에서 잃어버린 릴리스의 우비와 ‘스페이드 A' 카드가 발견되고, 지역 경찰서 '우키’ 형사가 리라장으로 찾아와 이 사건에 대해서 탐문 수사를 한다. 그러나 사건은 숯쟁이가 릴리스의 우비와 카드를 훔쳐 달아나다 실족사한 걸로 결론이 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이어 있을 리라장의 비극적인 연쇄살인사건의 전조였음을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 안개가 자욱한 다음날 ‘살로메’가 비소가 든 코코아를 마시고 중독사(中毒死)하고, 그의 약혼남인 ‘아키오’도 인근 하천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그림용 나이프로 숨골에 찍힌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각각에는 ‘스페이드 2’와 ‘스페이드 3’ 카드가 발견된다. 잃어버린 스페이드 카드가 바로 연쇄살인사건임을 알려주는 중요 단서가 되고, 연이어 리라장 관리인의 아내인 ‘소노다 하나’도 수건으로 목이 졸린 변사체로 발견되고, 시체 곁에는 어김없이 ‘스페이드 4’가 놓여져 있다. 연쇄 살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키 형사와 겐모치 경감, 그리고 경찰들이 리라장에 머물고 있는데도 이를 비웃듯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중간에 합류해서 살인사건의 전말을 눈치 챈 선배마저 살해당하고, 살해범으로 유력한 학생이 유치장에 갇혀 있음에도 살인이 일어나는 등 총 7명이 살해당하자 지역 검사는 자신의 친구이자 유명한 명탐정인 “호시카게 류조”를 불러들이게 된다. 류조 탐정은 살아남은 학생들의 진술과 유키 형사의 조사내용을 듣고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채고는 살인범이 스스로 정체를 밝히게 하는 함정을 파게 되고, 마침내 살인범은 함정에 속아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면서 사건의 모든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책에는 살인이 일어날 때 마다 등장하는 스페이드 카드와 기괴한 살인, 범인을 의심하지만 결국 죽게 되는 피해자들,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위해 작가가 제시하는 갖가지 단서들과 정교한 플롯, 그리고 마침내 명탐정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 등 고전 추리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전형(典型)을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추리소설들에서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단서들로 독자들이 범인을 짐작하기란, 즉 독자들이 작가와의 두뇌싸움에서 승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단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주의 깊게 읽었지만 역시나 전혀 의외의 결말에 여지없이 두뇌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 그리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트릭은 과연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책 말미까지 전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니, 얄밉다는 생각마저 드는 명탐정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설명하는 대목을 읽고 나서야 “아 맞아. 이런 단서들이 앞 부문에 소개되었지”하는 감탄과 함께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수학문제를 가지고 낑낑대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답지를 들춰 풀이방법과 정답을 보고는 괜히 맥이 빠지는 그런 느낌마저도 들게 만들었다.  

  지금은 다소 낯설기까지 느껴지는 예스러운 문체와 몇 번을 읽어봐야 전체 얼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트릭, 그리고 마지막에 탐정의 멋스러운 추리라는 고전 추리소설의 멋을 한 껏 보여주는 이 책 덕분에 과거 ‘애거서 크리스티’에 열광해서 그녀의 단행본들을 죄 다 찾아 읽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현란한 맛의 퓨전음식을 즐기다가도 가끔은 하얀 쌀밥에 된장국이 그립듯이 신세대 추리소설들의 화려한 재미에 길들여져 있다가 조금은 무미건조함마저 드는 고전 추리소설의 향취를 맛보게 되니 오히려 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껴볼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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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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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인심 견성성불(直旨人心 見性成佛)” 

 모든 중생(衆生)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어 교리(敎理)를 공부하거나 계행(戒行)을 떠나서 직접 마음을 교화하고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선종(禪宗) 교리의 근간이자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부르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한다. 이제는 불교를 더 이상 탈속(脫俗)·은둔(隱遁) 종교라고 부르기에는 세상 명리(名利)에 너무 물들었지만, 스님들이 여름(4.15.~7.15.)과 겨울(10.15.~1.15.)에 산문(山門) 출입을 금하고 수도(修道)에 전력하는 “안거(安居)”를 통해 아직도 수행(修行)종교로서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안거”제도는 원래 인도의 브라만교의 전통으로 우기(雨期)인 여름철에 수행자들이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는 사태가 많으므로, 이 시기에는 아예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불교에게도 관습이 되어 오늘날에는 여름(夏安居))과 겨울(冬安居), 두 계절에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원래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안거에 대해서는 이전에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동안거 수행 과정을 올곧이 그린 선향(禪香) 가득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1993년에는 비매품으로, 2000년에는 정식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다가 이번(2010년)에 새롭게 복간되어 나온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화자(話者)인 지허 스님이 겨울 수행을 위해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향하던 10월 1일부터 수행이 끝나는 날인 이듬해 1월 15일인 해제일(解制日)까지의 동안거 수행과정을 그린 일종의 수행일기(修行日記)라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흔히 여름과 겨울은 공부철이라 하고, 봄과 가을은 산철이라 하는데 공부철에는 출입이 엄금되고, 산철에는 출입이 자유롭다고 한다. 그래서 결제(結制;안거가 시작되는 날)를 위한 준비는 산철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책 초반에는 이러한 결제를 위한 준비들, 즉 김장 울력(運力 또는 雲力. 여러 사람이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는 뜻으로 일반에게는 삶의 한 방편인 노동을 뜻하나 불교에서는 중요한 수행 수단에 속한다고 한다)과 겨울 채비 과정을 설명하고, 동안거가 시작되는 10월 15일 부터는 본격적인 수행 과정과 함께 선방 풍경과 동료 스님들과의 일화, 그리고 화두(話頭), 열반(涅槃) 등 불교 주요 교리에 대한 스님의 단상(斷想)들을 그리고 있다. 

 스님은 선방에 전래되는 생활규범으로 “두량 족난 복팔분(頭凉 足煖 腹八分)”라고 소개한다.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만복(滿腹)에서 이분(二分)이 모자라는 팔분(八分)으로 유지”하라는 뜻으로 의식주의 간소한 생활을 표현한 극치라고 말하며, 납자(衲子, 승려가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의 수행을 생사문제까지 의탁해 버린 부처가 되겠다는 대욕(大欲)에 사로잡혀 심산유곡을 배회하면서, 면벽불이 되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에서 고혈을 착취하는 고행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헷갈려 하는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의 정의에 대하여 숙명은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와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사실이지만, 운명은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므로 선객(禪客)은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소조(所造)이며,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고, 숙명은 자기 부재(不在)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리가 보통 자기 주장의 주제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하는 “화두(話頭)”에 대해서 스님은 화두란 참선할 때 정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붙드는 하나의 공안인데 철학의 명제, 논리학의 제재(題材)라고 말할 수 있으며, 처음 선방에 입방할 때 조실(祖室)스님으로부터 받게 되는데, 흔히들 세상에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종류가 무한량이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화두는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으로 분석적인 것이 아니고 맹목적이라 할 수 있으며, 화두는 견성의 목표가 아니라 방편(方便)이며, 여하한 수단도 목적이 달성되면 정당화되는 것처럼 여하한 화두도 견성하고 나면 정당해지니 화두가 좋으니 나쁘니, 화두다 아니다 하고 시비함은 미망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절에 가더라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글귀인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

 처럼 유무(有無)에 얽매인 세간의 지식은 무용(無用)하여 선객을 끌고 가던 화두는 마침내 선객을 백치가 아니면 천재 쪽으로 끌어놓는데, 백치는 백치성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되고, 천재는 천재성 때문에 번뇌에 얽매여서 대우(大愚)는 대현(大賢)이 되고 대고(大苦)는 대탈(大脫)이 되며, 선객의 우열은 화두에 끌리느냐 끄느냐가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는 神光不昧 萬古輝猷(신광불매 만고휘유) 入此門內 莫存知解 (입차문내 막존지해)라는 절구로 "천지신명의 빛은 어둡지 아니하여 만고의 아름다운 지혜로다.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지식을 알려고 하지 마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님은 인간 완성을 열반(涅槃)에 귀결시키는 데 열반은 현실태(現實態)인가 가능태(可能態)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것은 현실태로 있는 것이지 가능태로 있는 것은 없다', 즉 일원론적인 현상은 현실밖에 없다고 하면서 현상 뒤의 어떤 실재, 어떤 영원한 세계를 말하는 것은잠꼬대라고 말하면서 현실에서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실존주의의 함정이라고 잘라 말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생명이 단절된 죽음의 저편에 때로 존재하는 세계를 말함이 아니고, 부조리하고 무분별한 실재(百八煩惱)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조화시킨 생명력, 즉 무의 인식에서 반야를 밝히는 힘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아집(我執)의 색상色相에서 해방된 세계를 말하므로 진제(眞諦)는 열반이고 속제(俗諦)는 유무(有無)이며, 유무에 얽매임은 현실적인 생사이나, 열반에 들어옴은 영겁에 의해 해탈된 것으로 신 없는 세계의 신, 이것은 곧 완성된 인간을 의미함이요, 주는 자 없이 주어지는 것은 완성된 인간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이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불교 교리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방에서의 재밌는 일화들도 들려주고 있는데, 수행하면서 스님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밤마다 고방에서 감자를 훔쳐 구워 먹자 살림살이 책임자인 원주 스님이 자물통을 채웠지만, 자물통을 못과 손톱깎이로 열어 계속 구워 먹게 되고, 이번에는 큼직한 번호 자물통으로 채우자 고방문의 돌쩌귀를 아예 뽑아버린 후 감자 구이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원주 스님이 방법을 바꿔 감자국에 감자나물 등 주 부식을 아예 감자 위주로 편성하자 감자에 질려 드디어 감자구이가 끝나게 되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또한 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퇴방하자 십시일반 비상금을 거두어 보탰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져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맨다며 양생(養生)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116쪽의 페이지에 23컷의 동화(童畵)풍의 삽화가 실려 있어 작은 분량의 이야기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분량 이상의 많은 생각꺼리를 담고 있으며, 동안거라는 불교 전통의 수행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이고, 그동안 귀에는 익숙하지만 참의미를 몰랐던 불교 용어들의 개념 정리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불교의 참선(參禪)을 하릴없이 앉아서 시간이나 죽이는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에게는 “寂靜妙窮 寂然妙覺[적정묘궁 적연묘각. 고요한 가운데 신묘한 이치를 궁구(窮究)하고, 조용한 가운데 신묘한 이치를 깨달음. 고요 속에서 무상(無上)의 정각(正覺)을 얻는다는 의미)”라는 말처럼 스님들의 참선 수행 모습이 소리 없이 조용한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에서 고혈을 착취하는 고행”을 하는 스님들의 치열한 열정이 소리 내어 외치는 그들의 통성 기도보다도 얼마나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지를 절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  출판사 홍보 문구처럼 “종교나 연령을 떠나 새해에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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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의 기술 - 나 홀로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알아야 할 솔로여행의 모든 것
베스 휘트먼 지음, 강분석 옮김 / 푸르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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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럿이 어울려 하는 것이 좋을까? 학창시절에야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시끌벅적 놀다오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혼자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거나 아니면 가족 위주의 소수 인원으로 단출하게 다녀오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 때문에 번잡하고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게 된 탓일 것이다. 그런데 여자 혼자 여행가는 것은 어떨까? 여행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한 휴양(休養) 목적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낯섬과 함께 위험함도 내포하고 있는지라 내 여동생이나 미래의 내 딸이 혼자 여행을 가겠다면 우선 걱정부터 앞서 극구 말리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영국에서 7년간 유학하며 유럽 곳곳을 혼자 여행했다는 아내 -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여행담 중에는 사고를 안 당한 것이 천운이라 생각할 정도로 위험했던 순간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 나 박준의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여행 책에서 혼자서 수년간 세계 곳곳을 배낭여행하는 여성들의 여행담을 읽어보면 그렇게까지 위험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책에서 어느 여성은 혼자서 여행 다닌다는 것이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으며, 실제 위험한 일을 겪더라도 여행 중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일이라고 여기고 넘아간다고 말한다. 여행전문작가이자 여성여행 전문 웹사이트인 Wanderlust and lipstick.com을 운영하고 있는 배스 휘트먼의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의 기술(원제 Wanderlust and Lipstick /푸르메/2010년 11월)>은 바로 혼자 여행하고 싶지만 두려움으로 망설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안성맞춤인 여행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우선 “나홀로 여행”의 장점으로 무엇을 하든 자유롭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지하지 않는 홀로 여행으로 강해지고 성숙해지며, 여럿이 함께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든 완전히 몰입하는 것, 즉 ‘최적 경험’, 또는 ‘그 완벽한 순간’의 체험을 하기가 쉽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취미나 관심사에 중점을 두어 계획하면 목적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여 모험·체험 여행, 휴양여행, 시진촬영, 야생동물 관람, 음식 여행, 자원봉사 등의 취미여행, 타문화 체험 여행과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찾기 위해 가계를 연구하는 여행인 가계(家系)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여행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핑계를 소개하는데, 생각만 해도 두렵다는 사람에게는 여행 시기와 목적지를 고려하여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하고, 책에 소개된 조언에 따르면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과 일생일대의 체험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된다고 말하며, 집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린다는 사람에게는 여행을 통해 더욱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여행은 당신과 소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유대와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고 충고한다. 또한 여행지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사람에게는 식당에서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으며 식당에 앉아 뭔가 열중한 만한 꺼리를 만들거나 카운터에 앉아 바텐더와 이야기도 나누고 TV도 보고 부동산 매물목록이나 신문을 들여다보면 어색함이 사라질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혼자는 외롭고 지루하지 않겠냐는 물음에는 오히려 혼자 여행하면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사교적인 활동 중의 하나이며, 당신에게 날마다 새로운 가능성과 재미있는 일들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 당신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이제까지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고 권유하고 있다. 그 외의 핑계들, 즉 수줍음을 잘 타서, 너무 늙고 또는 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어디로 떠나야 할 지 모르겠고, 직장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으며, 여행 중 길을 잃거나 병이 나면 어떡하나. 외국어가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우며 여행할 만큼 넉넉하지 않다 등등의 온갖 핑계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있다. 

  본론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혼자 여행 방법을 소개하는 데, 여행 세부 계획 짜기와 예약, 숙소 고르기 노하우, 현지 관광 방법, 각종 형식과 절차 챙기는 방법, 건강, 교통편, IT기기와 소품들 사용법들을 안내하고, 항상 빠듯하기만 경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쉽게 사귀는 방법, 여행 중에 연락을 주고 받는 방법,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소통 방법 등 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각 사항별로 시시콜콜하다 느낄 정도로 세세하게 안내한다. 각 장에는 또 다른 여성여행자 45명이 들려주는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별도로 싣고, 각 안내 내용 사이사이에는 작가만의 노하우를 “생생 팁”으로 들려주고, 마지막 부록에는 이 책에 소개된 여행에 유용한 사이트들의 주소를 소개한다. 

  앞에서 말한 여성 혼자서 하는 여행을 위한 안전 수칙은 13장 “뭐니뭐니해도 안전이 최고!”편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 수 있는 위험 대비법, 예를 들어 호텔에서는 객실 번호가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계단에 가까운 방이 안전하며, 문을 잠그는 습관을 들이고, 자물쇠 외에 다른 잠금장치가 없는 때는 가구로 문을 막으라는 식의 일반적인 충고를 한다. 이 장에서 재밌는 것은 일반적인 안전 수칙이 아니라 작가의 노하우인 생생 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남자들의 원치 않는 접근을 막으려면 결혼반지를, 필요하다면 가짜 반지라도 끼고, 가짜 '남편‘의 사진도 몸에 지니고 다닐 것이며, 남편이 여행에 동행하지 않은 이유를 술술 말할 수 있도록 가짜이야기도 지어놓으라고 일러둔다. 또한 문에 체인 록이 없을 때 아래쪽에 도어스톱을 밀어 넣으면 침입자가 열쇠로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도어스톱을 챙겨가라고 조언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대로 호신용으로 최루 가스나 후추 스프레이를 사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작가는 마무리 글인 <마지막 한마디>에서 자신은 20 여 년 전 첫 번째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제는 여행, 그것도 혼자 떠나는 여행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으며, 솔로여행은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꼭 세계 여행이나 1만 마일 오토바이 여행과 같은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좋으며, 꿈이 무엇이든 바로 지금 여행이라는 모험을 계획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지는 날, 전에는 몰랐던 힘을 발견할 것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삶에 여행은 긍정의 힘을 곳곳에서 발휘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리고 일리노어 루즈벨트의 "당신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바로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첫걸음이라고 당부하며 끝을 맺는다.
 

  이 책은 여행전문가인 작가만의 여행 노하우나 비법(秘法)을 담았다기보다는 계획에서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로 놓치기 쉬운 각종 주의 사항들을 꼼꼼히 일러주는 일종의 체크리스트(Checklist)로써 활용가치가 높은 실용 여행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 제목에는 “여성”과 “홀로”를 강조하고 있지만 “남성”들과 “단체”여행에도 참고할 만한 사항들이 많아 여행가기전에 한번쯤은 준비사항을 체크할 겸 읽어봐도 좋을 것 같고, 얇은 책자라 배낭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열어봐도 좋을 듯 하다. 낯설고 불편한 것이 여행의 특성이겠지만 그만큼 잘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여행만큼 삶의 활력을 불러 일으키고,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것도 없을 것이다. 혼자라는 두려움에, 집을 떠나서 겪게 되는 불편함에 아직도 여행을 망설인다면 작가의 마지막 당부처럼 자신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격려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그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마음껏 즐기는 것이 곧 작가가 말하는 여행의 참 멋이자 본질이라고 지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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