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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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인심 견성성불(直旨人心 見性成佛)” 

 모든 중생(衆生)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어 교리(敎理)를 공부하거나 계행(戒行)을 떠나서 직접 마음을 교화하고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선종(禪宗) 교리의 근간이자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부르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한다. 이제는 불교를 더 이상 탈속(脫俗)·은둔(隱遁) 종교라고 부르기에는 세상 명리(名利)에 너무 물들었지만, 스님들이 여름(4.15.~7.15.)과 겨울(10.15.~1.15.)에 산문(山門) 출입을 금하고 수도(修道)에 전력하는 “안거(安居)”를 통해 아직도 수행(修行)종교로서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안거”제도는 원래 인도의 브라만교의 전통으로 우기(雨期)인 여름철에 수행자들이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피해를 입기도 하고, 또 이를 피하기 위하여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는 사태가 많으므로, 이 시기에는 아예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불교에게도 관습이 되어 오늘날에는 여름(夏安居))과 겨울(冬安居), 두 계절에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원래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안거에 대해서는 이전에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동안거 수행 과정을 올곧이 그린 선향(禪香) 가득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1993년에는 비매품으로, 2000년에는 정식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다가 이번(2010년)에 새롭게 복간되어 나온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禪房日記)/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화자(話者)인 지허 스님이 겨울 수행을 위해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향하던 10월 1일부터 수행이 끝나는 날인 이듬해 1월 15일인 해제일(解制日)까지의 동안거 수행과정을 그린 일종의 수행일기(修行日記)라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흔히 여름과 겨울은 공부철이라 하고, 봄과 가을은 산철이라 하는데 공부철에는 출입이 엄금되고, 산철에는 출입이 자유롭다고 한다. 그래서 결제(結制;안거가 시작되는 날)를 위한 준비는 산철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책 초반에는 이러한 결제를 위한 준비들, 즉 김장 울력(運力 또는 雲力. 여러 사람이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는 뜻으로 일반에게는 삶의 한 방편인 노동을 뜻하나 불교에서는 중요한 수행 수단에 속한다고 한다)과 겨울 채비 과정을 설명하고, 동안거가 시작되는 10월 15일 부터는 본격적인 수행 과정과 함께 선방 풍경과 동료 스님들과의 일화, 그리고 화두(話頭), 열반(涅槃) 등 불교 주요 교리에 대한 스님의 단상(斷想)들을 그리고 있다. 

 스님은 선방에 전래되는 생활규범으로 “두량 족난 복팔분(頭凉 足煖 腹八分)”라고 소개한다.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만복(滿腹)에서 이분(二分)이 모자라는 팔분(八分)으로 유지”하라는 뜻으로 의식주의 간소한 생활을 표현한 극치라고 말하며, 납자(衲子, 승려가 자기를 낮추어 부르는 말)의 수행을 생사문제까지 의탁해 버린 부처가 되겠다는 대욕(大欲)에 사로잡혀 심산유곡을 배회하면서, 면벽불이 되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에서 고혈을 착취하는 고행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헷갈려 하는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의 정의에 대하여 숙명은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와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사실이지만, 운명은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므로 선객(禪客)은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소조(所造)이며,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고, 숙명은 자기 부재(不在)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리가 보통 자기 주장의 주제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하는 “화두(話頭)”에 대해서 스님은 화두란 참선할 때 정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붙드는 하나의 공안인데 철학의 명제, 논리학의 제재(題材)라고 말할 수 있으며, 처음 선방에 입방할 때 조실(祖室)스님으로부터 받게 되는데, 흔히들 세상에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종류가 무한량이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화두는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으로 분석적인 것이 아니고 맹목적이라 할 수 있으며, 화두는 견성의 목표가 아니라 방편(方便)이며, 여하한 수단도 목적이 달성되면 정당화되는 것처럼 여하한 화두도 견성하고 나면 정당해지니 화두가 좋으니 나쁘니, 화두다 아니다 하고 시비함은 미망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절에 가더라도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글귀인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

 처럼 유무(有無)에 얽매인 세간의 지식은 무용(無用)하여 선객을 끌고 가던 화두는 마침내 선객을 백치가 아니면 천재 쪽으로 끌어놓는데, 백치는 백치성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되고, 천재는 천재성 때문에 번뇌에 얽매여서 대우(大愚)는 대현(大賢)이 되고 대고(大苦)는 대탈(大脫)이 되며, 선객의 우열은 화두에 끌리느냐 끄느냐가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원래는 神光不昧 萬古輝猷(신광불매 만고휘유) 入此門內 莫存知解 (입차문내 막존지해)라는 절구로 "천지신명의 빛은 어둡지 아니하여 만고의 아름다운 지혜로다.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지식을 알려고 하지 마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님은 인간 완성을 열반(涅槃)에 귀결시키는 데 열반은 현실태(現實態)인가 가능태(可能態)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것은 현실태로 있는 것이지 가능태로 있는 것은 없다', 즉 일원론적인 현상은 현실밖에 없다고 하면서 현상 뒤의 어떤 실재, 어떤 영원한 세계를 말하는 것은잠꼬대라고 말하면서 현실에서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 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실존주의의 함정이라고 잘라 말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생명이 단절된 죽음의 저편에 때로 존재하는 세계를 말함이 아니고, 부조리하고 무분별한 실재(百八煩惱)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조화시킨 생명력, 즉 무의 인식에서 반야를 밝히는 힘이 열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아집(我執)의 색상色相에서 해방된 세계를 말하므로 진제(眞諦)는 열반이고 속제(俗諦)는 유무(有無)이며, 유무에 얽매임은 현실적인 생사이나, 열반에 들어옴은 영겁에 의해 해탈된 것으로 신 없는 세계의 신, 이것은 곧 완성된 인간을 의미함이요, 주는 자 없이 주어지는 것은 완성된 인간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이처럼 일반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불교 교리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방에서의 재밌는 일화들도 들려주고 있는데, 수행하면서 스님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밤마다 고방에서 감자를 훔쳐 구워 먹자 살림살이 책임자인 원주 스님이 자물통을 채웠지만, 자물통을 못과 손톱깎이로 열어 계속 구워 먹게 되고, 이번에는 큼직한 번호 자물통으로 채우자 고방문의 돌쩌귀를 아예 뽑아버린 후 감자 구이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원주 스님이 방법을 바꿔 감자국에 감자나물 등 주 부식을 아예 감자 위주로 편성하자 감자에 질려 드디어 감자구이가 끝나게 되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또한 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퇴방하자 십시일반 비상금을 거두어 보탰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져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맨다며 양생(養生)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116쪽의 페이지에 23컷의 동화(童畵)풍의 삽화가 실려 있어 작은 분량의 이야기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분량 이상의 많은 생각꺼리를 담고 있으며, 동안거라는 불교 전통의 수행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이고, 그동안 귀에는 익숙하지만 참의미를 몰랐던 불교 용어들의 개념 정리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불교의 참선(參禪)을 하릴없이 앉아서 시간이나 죽이는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들에게는 “寂靜妙窮 寂然妙覺[적정묘궁 적연묘각. 고요한 가운데 신묘한 이치를 궁구(窮究)하고, 조용한 가운데 신묘한 이치를 깨달음. 고요 속에서 무상(無上)의 정각(正覺)을 얻는다는 의미)”라는 말처럼 스님들의 참선 수행 모습이 소리 없이 조용한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에서 고혈을 착취하는 고행”을 하는 스님들의 치열한 열정이 소리 내어 외치는 그들의 통성 기도보다도 얼마나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지를 절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  출판사 홍보 문구처럼 “종교나 연령을 떠나 새해에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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