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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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즈음 행복감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서점가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 추리소설들은 소개된 작가들의 수 만큼이나 소재와 형식이 다양한데, 미스터리에 사회, 역사, 청춘, 공포, SF, 심리 등 다른 분야와의 이종 결합으로 독특하면서도 색다른 추리소설 장르를 선보이고 있어 저절로 눈이 가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신세대 경향의 추리소설을 읽다가도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애거서 크리스티’ 등의 고전 추리소설, 즉 독자에게 두뇌 싸움을 걸어오는 정교하고 치밀한 트릭과 플롯, 그리고 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하는 명탐정의 명쾌한 추리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동안 보아온 일본 추리 소설 중에는 아직 그러한 작품을 만나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본격“ 추리소설이라 부를 만한,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고전 추리소설의 풍취를 한껏 맛 볼수 있는 그런 추리소설을 만났다. 수많은 일본 추리소설 문학상 중에서 “제1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특별상(2001)”-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작품인 <용의자 X의 헌신>이 2006년에 대상을 수상했다 - 과 “제6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2003)”을 수상하며 본격 추리 소설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는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원제 りら莊事件 / 시공사/2010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출간년도가 1958년이니 50년도 더 된 작품 - 문학상들은 최근에 받았다 - 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은,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만큼 고전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건물 주위에 가득 핀 라일락 꽃 때문에 “리라장”- <베사메 무초> 한국 번안 가사에 나오는 ‘리라꽃 지던 밤에’에서 리라가 바로 라일락이다. 책에서는 리라장이라는 짧은 이름이 젊은이들의 근대 감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 이라 불리는 별장에 일본 예술 대학교 음악부와 미술학부 일곱 남녀가 여름 휴양을 온다. 워낙 개성들이 제각각인데다 선남선녀로 학생들에게 연모의 대상이었던 ‘다치비나 아키오’군과 ‘마쓰다이라 살로메’양이 약혼 발표를 하자 묘한 질투와 시기로 서로간의 관계가 일순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다음날 학생 중 하나인 ‘아마 릴리스’양의 우비(雨備)와 가지고 온 트럼프 중 ‘스페이드’ 12장이 잃어버리는 소소한 사건이 일어나고, 인근 마을 숯쟁이가 계곡에서 실족해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숯쟁이 주변에서 잃어버린 릴리스의 우비와 ‘스페이드 A' 카드가 발견되고, 지역 경찰서 '우키’ 형사가 리라장으로 찾아와 이 사건에 대해서 탐문 수사를 한다. 그러나 사건은 숯쟁이가 릴리스의 우비와 카드를 훔쳐 달아나다 실족사한 걸로 결론이 난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이어 있을 리라장의 비극적인 연쇄살인사건의 전조였음을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 안개가 자욱한 다음날 ‘살로메’가 비소가 든 코코아를 마시고 중독사(中毒死)하고, 그의 약혼남인 ‘아키오’도 인근 하천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그림용 나이프로 숨골에 찍힌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각각에는 ‘스페이드 2’와 ‘스페이드 3’ 카드가 발견된다. 잃어버린 스페이드 카드가 바로 연쇄살인사건임을 알려주는 중요 단서가 되고, 연이어 리라장 관리인의 아내인 ‘소노다 하나’도 수건으로 목이 졸린 변사체로 발견되고, 시체 곁에는 어김없이 ‘스페이드 4’가 놓여져 있다. 연쇄 살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키 형사와 겐모치 경감, 그리고 경찰들이 리라장에 머물고 있는데도 이를 비웃듯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심지어 중간에 합류해서 살인사건의 전말을 눈치 챈 선배마저 살해당하고, 살해범으로 유력한 학생이 유치장에 갇혀 있음에도 살인이 일어나는 등 총 7명이 살해당하자 지역 검사는 자신의 친구이자 유명한 명탐정인 “호시카게 류조”를 불러들이게 된다. 류조 탐정은 살아남은 학생들의 진술과 유키 형사의 조사내용을 듣고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채고는 살인범이 스스로 정체를 밝히게 하는 함정을 파게 되고, 마침내 살인범은 함정에 속아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면서 사건의 모든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책에는 살인이 일어날 때 마다 등장하는 스페이드 카드와 기괴한 살인, 범인을 의심하지만 결국 죽게 되는 피해자들,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위해 작가가 제시하는 갖가지 단서들과 정교한 플롯, 그리고 마침내 명탐정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 등 고전 추리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전형(典型)을 다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추리소설들에서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단서들로 독자들이 범인을 짐작하기란, 즉 독자들이 작가와의 두뇌싸움에서 승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단서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주의 깊게 읽었지만 역시나 전혀 의외의 결말에 여지없이 두뇌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 그리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트릭은 과연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책 말미까지 전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니, 얄밉다는 생각마저 드는 명탐정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설명하는 대목을 읽고 나서야 “아 맞아. 이런 단서들이 앞 부문에 소개되었지”하는 감탄과 함께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수학문제를 가지고 낑낑대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답지를 들춰 풀이방법과 정답을 보고는 괜히 맥이 빠지는 그런 느낌마저도 들게 만들었다.  

  지금은 다소 낯설기까지 느껴지는 예스러운 문체와 몇 번을 읽어봐야 전체 얼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트릭, 그리고 마지막에 탐정의 멋스러운 추리라는 고전 추리소설의 멋을 한 껏 보여주는 이 책 덕분에 과거 ‘애거서 크리스티’에 열광해서 그녀의 단행본들을 죄 다 찾아 읽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현란한 맛의 퓨전음식을 즐기다가도 가끔은 하얀 쌀밥에 된장국이 그립듯이 신세대 추리소설들의 화려한 재미에 길들여져 있다가 조금은 무미건조함마저 드는 고전 추리소설의 향취를 맛보게 되니 오히려 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껴볼 수 있었던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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