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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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다녀갔다)”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라는 명을 받고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500명이라는 설(說)도 있다)을 이끌고 삼신산(三神山)으로 떠났다는 방사(方士)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市))의 전설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발해(渤海)의 먼 동쪽에 있으며 선인(仙人)이 살고, 불사의 약이 있고, 옥으로 된 궁전이 있다고 알려진 삼신산, 즉 방장산(方文山),영주산(瀛州山), 봉래산(蓬萊山)이 사실은 우리나라에 있는 산인 금강산(봉래산), 지리산(방장산),한라산(영주산)을 일컬으며 서복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제주도 정방연(正房淵) 폭포 절벽에 “서불이 다녀갔다”는 뜻의 위의 네 글자가 적혀 있으며,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거북바위에도 이 글자(경남도 기념물 제6호)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진위(眞僞)여부는 다소간의 논란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진시황제의 불로초 전설을 관광 상품화하여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니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불로초 신화와 조선시대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덕궁(昌德宮) 연경당 입구에 세워진 돌문인 “불로문(不老門)”을 연계한 재미있는 "팩션(Faction)" 소설을 읽었다. 박희선 작가의 <불로문의 진실; 다시 만난 기억(에세이/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2,200 여 년 전 진(秦)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종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던 그 시절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秦始皇)”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유력한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시키고는 그 세력을 축출해버리는 그런 정치적 술수를 부렸다. 제나라 지역 유지였던 서복(徐福 또는 徐市)은 진시황으로부터 불로초를 찾아오라는 명을 받고는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술책임을 간파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성(姓)을 바꾸고 숨으라는 명을 내리고는 동남동녀와 군사를 이끌고 불로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왜(倭)를 거쳐 삼신산 중의 하나인 봉래산(한라산)이 있는 제주도를 방문한 서복 일행은 불로초를 쫓아 자신을 추적해온 왜의 군대와 자신을 제거하러 온 또 다른 진(秦)의 군대에 쫓기다가 제주 토착민들의 도움으로 뱀 전설로 유명한 김녕굴(金寧窟)에서 드디어 불로초(不老草)를 발견하고는 추적을 피해 달아나면서 자신이 다녀갔다는 표식인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네 글자를 남겨놓고 한반도 지리산 골짜기로 숨어버린다. 

 그로부터 1,800 여년이 지난 조선 숙종(肅宗) 시절, 조선조 그 어느 왕보다도 왕권강화에 힘썼던 숙종은 자신도 선대왕(先代王)들처럼 단명(短命)하게 될 까 두려워 자신의 수하로 하여금 삼남(三南)지역에 불로초를 재배하고 있다는 마을에 찾으라는 밀명을 내리고, 마침내 한반도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들어 마을을 이룬 서복 일행의 마을을 찾아내고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는 불로초를 캐서 궁궐 창덕궁에 비밀리에 재배하게 이른다. 그 불로초를 재배하던 곳이 바로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不老門)”과 “불로지(不老池)”,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애련지(愛蓮池)” 일대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신하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하자 숙종은 돌연 궁내 불로초 재배 터를 폐쇄하게 되고, 우연히 마을 참사를 피했던 서복 - 1,800 년을 살아남았다! - 무리들은 복수를 다짐하고 “천수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된다. 

  다시 300 여 년이 지난 일제 강점 말기인 1942년, 일본 황실 직속의 비밀 부대이자 임진왜란 시절부터 불로초의 행방을 쫓아온 “730부대”는 불로초로 짐작되는 풀뿌리와 “서불과차” 탁본, 그리고 왕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재배했던 관리의 기록인 고문서 “동궐지(東闕誌)”를 입수하게 되지만 경성 한복판에서 벌어진 천수당의 테러로 그만 입수 물건을 빼앗기게 되고, 우연찮게 그 사건을 목격한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학생인 박시형은 쫓기던 천수당원에게서 엉겁결에 그 물건을 건네받게 된다. 시형은 천수당 비밀 근거지로 찾아가 물건을 건네지만 천수당원들은 그 물건이 값어치가 없다 여기고 시형에게 없애라고 다시 건네 준다. 시형은 그 물건을 자신의 수강하던 생물학과 교수인 마쓰다에게 가져가고, 마쓰다 교수는 시형에게 조선사 편수회 참여하고 있던 역사학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구명한 교수를 소개하고, 시형은 동궐지와 탁본을 구 교수에게 다시 가져간다.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혈안이 된 730 부대는 물건을 강탈해갔던 천수당 조직원을 거짓으로 풀어주고 뒤를 추적한 끝에 구명한 교수의 집에 문건이 있음을 알고는 구 교수 집을 급습하고 시형은 간신히 탈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불로초를 찾기 위한 추격전이 창덕궁 일대에서 숨 가쁘게 벌어진다.  

   큼직한 글씨체, 각종 참고 사진들이 곁들어진 이 책은 마치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나는 비원(秘苑)이나 경복궁(景福宮), 창덕궁 등을 관람하면서 각종 문이나 전각(殿閣)들을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작가는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인 “불로문”에 고대 불로초 전설이라는 서복 이야기와 접목시켜 전혀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를 창조해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작가의 상상력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된다. 특히 조선 역대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으며 83세까지 살았던 영조가 사실은 불로초를 먹은 숙종의 피를 이어받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는 설정과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도 사실은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일본이 조선을 침탈했다는 설정, 마지막에 2,200 여년을 살아온 “서복”이 깜짝 등장하는 반전은 꽤나 인상 깊게 느껴졌다. 이야기 전개와 구성, 즉 소설적인 완성도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사실인데, 이야기를 현대(現代)에까지 좀 더 확대하고 불로초를 찾기 위한 일본 부대와 천수당, 주인공의 혈투를 좀 더 박진감있게 그렸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불로초 전설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한국형 팩션(Faction) 소설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은 완성도를 떠나서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또한 우리 역사 유적지나 유물들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을 새롭게 각색하여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창조해내는 이러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시도는 그저 전단지 배포나 홍보간판을 세워놓는 데 그치는 평면적인 문화재 홍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좋은 사례로 참고해볼 만 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나처럼 이 책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다음번에 서울 왕궁 나들이를 간다면 제일 먼저 이 책의 무대가 된 창덕궁 후원의 “불로문”과 “애련지”를 꼭 방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 왕궁에 새롭게 이야기꺼리와 생명을 불어넣은 이 책의 가치가 결코 작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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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들의 귀환 - 지구 종말론의 실상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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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나와 절친했던 친구들이 모여 그 당시 인기 있었던 만화였던 김형배 화백의 <20세기 기사단>을 모방한 비밀결사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단체의 목적은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미스터리 사건들을 수집하여 온 세상에 비밀을 폭로하자였는데, PC통신이나 인터넷은 꿈도 못 꿀 그런 시기라 자료라고는 어린이 잡지에 실린 UFO, 버뮤다 삼각지대, 네스 호의 괴물, 피라미드 등의 고대 불가사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을 다룬 기사들이나 아동용으로 나온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은 이러한 기사들이나 책들을 우표 수집하듯이 별도로 오려 모아서 친구들과 돌려 보면서 먼 훗날 지구 종말과 외계인 침공을 미리 대비하자는 거창한 꿈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 그저 잡지 스크랩 수준이었던 우리들에게 가히 충격이라 할 만한 그런 책을 만났으니 바로 외계문명기원설로 유명한 “에리히 폰 대니켄(Erich Von Daniken)”의 <신들의 수수께끼(정음사/ 1983)> - 이 책이 최근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된다는 <신들의 전차>인지는 불분명하다 - 였다.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대 유물들 - 정식 용어로는 오파츠(OOPart; Out Of Place artifact)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인도 델리에 있다는 무게 6톤, 직경 40cm, 높이 10m의 쇠기둥인 <찬드라굽타 왕의 쇠기둥>과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던 고대 마야의 <수정 해골>, 1968년 미국 유타주에서 발견된 500만년 전의 신발 발자국 화석 등을 들 수 있다 - 을 예로 들면서 우리 문명은 외계인들이 전수해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그 당시 불가사의에 푹 빠진 우리들에게는 하도 여럿이 돌려 읽어 책이 다 너덜너덜해지고 중간 중간 수십 장의 페이지가 사라졌을 정도로 마치 성경(聖經)과도 비견될 만한 보물로까지 여겨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에 그 당시 우리들은 왜 그렇게 열광했었을까? 아마도 어른들, 특히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모르시는 세상의 기원과 문명, 종교, 그리고 외계인과 UFO에 대한 비밀들을 우리들만이 알고 있다는 그런 은밀한 즐거움에 우쭐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70년대 어린이들이 비밀기지를 만들고 지구 정복과 세계종말의 상상하던 것과 같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 후로 그렇게 열망했던 휴거(携擧, rapture) - 나와 친구들은 휴거 때문에 한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다 - 는 결국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고, 적중률 99%를 자랑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아무 일없이 무사히 넘어가면서, 그리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온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그 당시 우리들이 열광했던 모든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술자리에서나 한 두 번씩 이야기하는 추억이 되고야 말았다. 이렇게 오래전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어린 시절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영웅 - 우리들에게는 거의 신(神)과 동격(同格)이었다 - 에리히 폰 대니켄을 근 30여년 만에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각종 책이나 영화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고대 마야문명의 2012년 종말론을 이슈로 한 <2012 신들의 귀환(Twilight of the Gods / 청년정신 / 2010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첫 장인 “신들의 베이스 캠프”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신들이 지었다’는 고대 잉카의 도시인 “타와나쿠 유적지” -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약 72km 떨어진 티티카카(Titicaca) 호수 남동쪽 부근 해발 4,000 m 안데스 산맥 고원에 위치한 유적지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와 함께 아돌프 히틀러의 친구이자 반(反) 유대주의자로 유명했던 한스 호르비거의 이론을 소개한다. 호르비거는 현재의 달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문명이 존재했고, 이들 문명들은 거대한 달이 대기권과 부딪혀 폭발하면서 사라져버렸으며 , 또한 인류는 제3기에 이미 상당한 문명을 갖추고 있었으며, 제3기에 출현한 달이 25,000년전 지구와 충돌하면서 안데스와 에티오피아의 몇몇 고지대를 제외한 적도 전역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호르비거와 그의 추종자들은 타와나쿠가 세워진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27,000년전(!)이며 타와나쿠에 있는 오늘날 <태양의 문>으로 잘 알려진, 거대한 돌로 만든 문에는 그 당시 지구를 방문한 우주비행사가 새겨놓은 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타와나쿠에서 발견한 전 세계적인 대재앙의 증거들, 즉 거대한 항구의 흔적이나 바다 퇴적물들, 거인의 것으로 보이는 뼈조각들, 운석의 잔해들이 바로 그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현재의 달을 끌어당겼다는 시기인 14,000년전 이전에는 거인의 왕들 이 지구를 통치했었는데, 그러한 증거로 성경이나 고대 그리스, 수메르 및 각국의 신화와 전설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석 유적지들을 예로 든다. 또한 티와나쿠 인근에 있는 “푸마푼쿠” 유적지에는 마치 현대의 밀링머신과 다이아몬드 드릴로 다듬고 문질러 작업한 것과 같은 정교한 석판 블록들이 널려 있는데 석기시대 도구로는 전혀 불가능한 그런 유적들이 널려 있다면서 이것이야말로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그리고 우리보다 더 우월한 문명, 즉 외계인들이 선사시대에 우리를 방문해 각종 유적을 남긴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2장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었다>과 3장 <과학적이냐고? 과학적이다>에서는 본격적인 외계문명기원설의 각종 사례들을 예시한다. 각종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괴물들, 즉 키메라, 스핑크스 들이 사실은 외계인들이 행성 정착을 위해 DNA를 조작하여 만든 인공 생명체일 수 있으며,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왕인 에타나(Etana)가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너무 높이 올라가 그만 떨어졌다는 전설은 사실 그 당시 신(神)으로 여겨졌던 외계인들의 UFO를 타고 성층권(成層圈)까지 여행했던 사건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UFO라 여겨지는 각종 고대 문양들이나 그림, 상징들, 성경속의 기록들-에스겔서가 대표적이다 - 을 연이어 소개하기도 한다. 4장 <신들의 귀환>에서는 본격적으로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했다는 지구 최후의 날이자 영화 <2012>로도 잘 알려진 2012년 12월 23일에 대해서 마야의 각종 기록들과 독일 색슨 주립 도서관의 보관소에 있다는 몇 개 남지 않은 마야 시대의 기록 원본 중 하나인 <드레스덴 코덱스>의 마야 달력을 소개하고 그날은 지구 종말이 아니라 오래전 우리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사라진 신(神)들, 즉 외계인들이 다시 지구로 귀환 - 제목 그대로 “신들의 귀환” - 하는 날이며 이러한 예언은 마야 문명 뿐만 아니라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티베트, 중남미 인디언 전설 등 세계 각지의 종교와 전설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외계 생명체를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페르미 패러독스(Fermi paradox)" - 1950년 미국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54)가 한 말로 유명한 말인데, 우리 은하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별과 행성이 있으니, 그중엔 생명체가 살 만한 행성들과 또 고등 문명을 이룬 행성도 충분히 많다고 여겨지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껏 외계 문명의 신호가 수신된 적은 없었다. 페르미는 “(외계 문명 가설이 맞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라는 물음을 던졌고, 이 말은 이론상으로는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만 실제론 볼 수 없다는 ‘페르미 역설’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 와 “세티 프로젝트(Seti Project)" - 외계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전자 망원경을 이용해 우주 지적 생명체의 인공 전파 신호를 포착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 그리고 생명이 운석을 통해서 행성에서 행성으로 널리 뿌려져 탄생했다는 범종설(Panspermia, 외계생명체 유입설)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마야가 예언했다는 그날인 2012년 12월- 현대 역법의 오류로 2012년이 아닐 수 도 있다고 전제를 깔고 있지만 - 오랜 여정을 마치고 신들은 지구에 다시 나타날 것이며, 이른바 신들(다시 말해 외계인들)이 다시 오게 된다면 우리는 장차 신들에 대한 엄청난 쇼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이제라도 이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며 끝을 맺는다.  

   책 도입부에 소개한 “타와나쿠”와 “푸마푼쿠”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의 전작들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들 -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 의 <신의 지문(Fingerprints of the God)>도 이처럼 초고대문명을 다루고 있다 -, 그리고 인터넷에서 수없이 만날 수 있는 UFO나 불가사의 사이트들에서 한번쯤은 읽어봤을 그런 이야기들이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에리히 폰 대니켄은 그의 외계문명기원설 주장 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자료 왜곡인데, 자신의 가설들을 끊임없이 재인용하고 반복하고 -중언부언(重言復言) - 고대 유물들의 과학적 측정결과를 자신의 가설에 맞게 축소 또는 조작하기도 했으며, 타인의 발견을 자신이 한 것처럼 주장하다가 들킨 적도 수 차례인 그런 사람인지라 이제는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고 할까?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그 진실 여부를 떠나서 누구라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내용들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굳이 “진화론도 한때는 말도 안 되는 괴설로 취급되지 않았던가” 라는 출판사 서평처럼 진화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기 생애를 “외계인 문명기원설”에 쏟아 부은 대니켄의 열정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어릴 적 비밀결사단체 멤버들 중 유일하게 연락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 책의 출간을 알렸더니 너무나도 반가워한다. 그래서 다음 술자리에서는 오랜만에 대니켄의 신작인 이 책을 안주거리로 삼아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대니켄, 지금은 사기꾼 소리까지 듣기도 하는 그이지만 이렇게 건재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니 마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쁜 그런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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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대왕 세트 - 전5권
윤영용 지음 / 웰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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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10년 세계 대백제전”과 최근 KBS에서 방송 중인 대하사극 “근초고왕”덕분에 백제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만주벌판을 호령한 “고구려(高句麗)”와 삼국통일을 이뤄낸 “신라(新羅)”에 비해 너무 때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또한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요새 인터넷을 보면 심심찮게 “대륙백제(大陸百濟)”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중국 정사인 25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양서(梁書)> 권54 제이열전(諸夷列傳)에 보면  

“진(晋)나라 때에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자, 백제도 요서·진평 2군 땅을 소유하고는 직접 백제군(百濟郡)을 두었다(晉世句驪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라는 기사가 나오고, 송서(宋書), 남사(南史) 등에서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하니 대륙백제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에 대한 반박 논설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더 역사적 검증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적인 진위 여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대륙백제설을 소설의 소재로 본다면 우리 민족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소재일까?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할 것이다. 윤영용의 <근초고대왕 1~5권(近肖古大王/도서출판 웰컴/2010년 10월)>은 지금 드라마로도 방영중인 백제 13대 왕 근초고왕(近肖古王)을 소재로 한 역사 소설로 대륙의 동부 전역과 한반도 서해, 열도 규슈와 본토, 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일원을 지배했던 대백제를 건설한 정복군주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爲民政治)를 펼쳤던 “왕중의 왕”인 대왕(大王)으로 그리고 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잠깐 기존 역사와는 다른 설정들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백제에는 두 계통의 왕가(王家)가 있었는데, 백제 건국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소서노(召西奴) 모태후(母太后)의 큰 아들이자 오늘날 요서지방을 다스렸던 대륙백제계인 “비류(沸流)”계와 둘째 아들이자 오늘날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성백제(漢城百濟)계인 “온조(溫祚)”계가 바로 그것이다.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비류 왕자는 오늘날의 인천지역인 미추홀(彌鄒忽)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황해 건너 요서(遼西) 지방으로 산정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온조계가 백제의 왕권을 차지한 것은 제8대왕인 “고이왕(古爾王)”에 이르러서였는데, 백제라는 국호의 연원이라는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오늘날 황해(黃海)를 내해(內海)로 하여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하던 거대한 해상왕국이었고 설정하며, 본가(本家)인 비류 백제를 “백제(百濟)”로, 분가(分家)인 온조 백제는 “십제(十濟)”로 불리웠다가 고이왕대에 이르러 온조계가 왕권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백제라고 불리웠다고 설정하고 있다. 또한 단군조선(檀君朝鮮) 때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비밀결사(秘密結社) 집단으로 빛을 상징하는 “광명천(光明天)”과 어둠을 상징하는 “흑천(黑天)” 조직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는데, 둘 다 단군조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 흑천은 단군 조선의 반역자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의 갈래로 보고 있다 - 광명천은 언젠가는 되찾을 밝달환국을 준비하기위해 망국의 한(恨)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선인(仙人) 집단인 반면에 흑천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 간의 전쟁도 서슴치 않은 일종의 암흑상인(暗黑商人)으로 그리고 있다. 한편 이웃 왜(倭) - 책에서는 “위(倭)”로 부른다 - 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등 한반도 계통의 수백개의 국가들이 난립해 있고, 그중 오늘날 나주(羅州)에 기원을 두고 있는 야마다, 즉 “대해부” 세력이 가장 큰 세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정도만 기초상식으로 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 본다. 

  책은 전형적인 영웅소설(英雄小說), 즉 어린 시절에는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온갖 고초를 겪다가 성인이 되어 뛰어난 무용(武勇)과 자질(資質)로 두각을 나타내 결국 왕에 오르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때는 백제 9대왕인 책계왕(責稽王.?~298) 시절 비류백제 본가 출신인 려호기는 정체모를 암살자들에 의해 온가족이 몰살당하는 위기를 겪지만 어머니와 시녀가 가까스로 항아리에 숨겨준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되고, 지나가던 백제 최고의 무사(武節)이자 왕의 밀명을 받고 천하를 주유하던 근자부에 의해 거두어져 그에게서 무술을 배우게 된다. 때는 흘러 어엿한 대장부로 장성한 려호기인 사부인 근자부와 함께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에 들렸다가 낙랑(樂浪)과의 전쟁을 위한 무사를 선발하는 무술시합인 “백가제해 천하무술대회”의 소식을 알게 되고 근자부의 딸이자 백제 대천관 신녀의 추천으로 무술대회에 참석하여 공동 우승하며 이름을 떨치게 된다. 백제 왕비가인 진하료와 결혼하고 백제 무절(武節)의 4대 군장이 된 려호기는 바다 건너 일본 열도의 위(倭)의 중심 세력인 야마다, 즉 대해부가를 설득하러 갔다가 대해부의 큰 딸이자 신녀인 선화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갖게 되지만 이를 시기한 아내 진하료와 오래전 예언인 “절대무왕”의 탄생을 막으려는 비밀세력 “흑천”의 암살집단에 의해 쫓기다가 선화는 그만 죽임을 당하고야 만다. 그러나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죽으면서도 복중 태아를 끌어 앉고 죽은 선화의 모성애에 아이는 근처 단군 선인의 마을인 “소도(蘇塗)”에 머물고 있던 려호기의 스승인 근자부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어 “여구”라는 이름으로 소도의 선인들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한편 낙랑과의 전쟁에서 책계왕이 죽고 연이어 즉위한 분서왕(汾西王, ?~304) 여휘마저 낙랑 태수의 암살세력에 의해 죽자 백제 귀족들은 분서왕의 아들이자 대륙 백제의 좌장인 설리를 제치고 비류 백제 본가 출신인 려호기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 그가 바로 백제 제11대 왕이자 다시 왕권을 비류백제계로 찾아온 비류왕 [比流王, ?~344]이었다. 비류왕은 대외적으로는 분서왕의 장자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형제의 의(義)를 맺고 백제 2인자로 군림하게 되는 복(優福)이 왕비인 진하미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인 설리를 양자로 삼는다. 그러나 가슴 한켠엔 갑자기 실종된 연인 선화를 못내 잊지 못하고 선화에게 몹쓸 짓을 한 걸로 의심되는 왕비 진하료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한편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여구는 자신을 돌보는 단군 선인들과 의붓 부모 밑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되고, 어느날 다시 마을에 들른 근자부가 려호기의 어릴 적 모습을 빼다 박은 여구를 보고 려호기와 연관이 있음을 깨닫고 비류왕에게 서찰을 남기지만 이를 먼저 눈치챈 왕비와 이제는 흑천의 주인이 된 우복의 암살자들이 한발 먼저 마을을 급습해 마을 사람들을 죽이게 되고, 여구 일행들은 위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비류왕은 한발 늦게 당도해 폐허가 된 마을만 확인하게 된다. 대해부 노예로 팔려가 온갖 고초를 겪던 여구는 자신 어머니 동생인 현 신녀의 딸인 연희와 가깝게 지내게 되고, 천재적인 바둑 실력과 재치로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대해부까지 사로잡아 대해부가에 자신의 소도를 재건하고 연희 공주의 호위무사로 자리잡게 된다.  

  대해부는 커갈수록 려호기와 닮아가는 모습과 못 잊어하는 딸인 선화가 남긴 유품인 목걸이로 여구가 려호기와 선화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여구는 위까지 잠입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왕비와 흑천의 암살 시도를 구사일생으로 넘기고 대해부의 본거지인 나주(羅州)를 차지하는 한편 뒤늦게 여구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분서왕의 장자이자 백제 제12대 왕인 계왕[契王]과 맞서게 되고, 대해부를 없애려는 고구려, 신라, 가야계, 백제 계왕의 지원을 받는 열도의 또다른 세력과 일대 전쟁을 벌여 태양광과 기름폭탄으로 멋지게 승리를 거두어 “일본무존(日本武尊)”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여구는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궁(宮)을 빠져 나온 비류왕과 짧은 재회를 한 후 아버지를 광명천의 은신처로 모시지만, 흑천과 계왕의 군대에 의해 그만 아버지를 잃게 되고, 오랜 은원이 얽힌 흑천주 우복 또한 여구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다. 나주의 여구 군대가 한성으로 들이닥치면서 백제는 일대 내전(內戰)의 위기에 휩싸이게 되지만 백제 귀족 회의에서 계왕이 귀족 대표들에게 패륜아로 낙인 찍혀 죽음을 맞게 되고, 여구는 비류왕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게 되니 그가 바로 백제 제13대 왕인 근초고왕[近肖古王, ?~375]이다. 재위에 오른 근초고대왕은 단순히 정복 군주로서가 아니라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위민정치를 펼쳐 소금과 비단, 삼(蔘)등의 교역과 각종 기술들을 크게 부흥시켜 영토와 문화 양 면에서 크나큰 위업을 이룬 “왕중의 왕”, “진정한 왕”인 “대왕(大王)”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중국 대륙 양자강과 황하에 이르는 동부 전역과 한반도 서해, 열도 규슈와 본토, 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일원을 지배했던 대제국 “백제(百濟)”를 건설하고 예언 속의 “절대무왕”의 전설을 현실에서 이뤄낸다. 

  작가는 한중일 동아시아 공동체 시대의 모델로서 근초고왕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정복왕에 머무르지 않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한 문명 교화자로서의 역할까지를 수행해낸 “문명왕(文明王)”으로서의 모델로서 근초고왕을 현대인의 시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우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우리에게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영토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는 패왕이 아닌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진정한 대왕의 길, 그 길을 통해 현대의 각 지도자와 국민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책에서의 근초고대왕은 그 여느 임금과 왕들과는 차별화된, 진정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로는 영웅소설이자 역사소설로서 참 재밌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몇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이나 근거는 <환단고기(桓檀古記)>로 대변되는 재야사학자들의 대륙 백제설 - 책의 목차를 천부경(天符經) 81자로 한 것이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치우천왕과 47세로 이어져 왔다는 단군 왕검들의 명칭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와는 사뭇 달라 스토리에 집중하기에 꽤나 어려웠다 -사전 도입부에 대륙백제설과 설정에 대해 제시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또한 이야기 전개에서도 다소 아쉬운데, 근초고왕의 아버지인 비류왕에게 3권 중반까지 이르는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 - 처음에는 려호기가 근초고왕이 될 것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 막상 주인공인 근초고왕의 치세는 5권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어 서둘러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낯선 역사적 배경과 서사시(敍事詩)를 연상시키는 문체(文體) 때문에 꽤나 더디게 읽혔고 책 중반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읽는 속도가 제법 나게 된, 책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인 나로서는 꽤나 오랫동안 읽었던 그런 책이었다. 또한 책 도입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무예시합” 장면이나 책 후반부 흑천주 우복과 여구의 대결 장면은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져 역사소설로서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그런 설정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잊혀진 백제의 역사를 다시 복원(復原)해내고 새로운 영웅 근초고대왕을 우리에게 제시한 점만큼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극복해낼 만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격언처럼 이미 수천년전에 바다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양(大洋)을 누빈 위대한 백제의 기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우리 현실을 딛고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또한 책 속에서 그린 근초고대왕의 위업을 그의 정복사업에만 한정하여 한민족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는 것에만 몰입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다를 바 없는 자국중심의 배타적 민족주의(民族主義)가 아니라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꿈꿨던 위민제일(爲民第一) 정신이 더욱 부각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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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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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 서점 및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장하준 교수의 신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기존 그의 작품들과 큰 차별성은 없지만 기존 경제 정책 입안자들이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편견과 오류를 조목조목 집어내고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설해놓은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장하준 교수가 비판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경제의 역사를 말할 때마다 꼭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미국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공화당원들이 선거 직후 가진 각종 축하모임에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9-1790)의 옆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 연원을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애덤 스미스보다 한세대 앞선 영국의 의사이자 사상가인 버나드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1670~1733)라는 이름도 생소한 -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나도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 사람에게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책을 최근에 읽게 되었다. 바로 그 당시 유럽의 도덕과 경제관을 철저하게 비틀고 비꼬는 풍자시로 악마(devil)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다는 버나드 맨더빌의 문제작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원제 The Fable of the Bees / 문예출판사/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어디서 갑자기 뚝 하고 나타난 것 같은 생소한 인물인 버나드 맨더빌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원래 맨더빌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철학과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일하면서 각종 글을 써왔다고 한다. 1723년 기존에 출간했던 <꿀벌의 우화> 개정판이 나오면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는데, 당시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 기독교 도덕, 즉 “금욕”과 “이타심”을 위선이라 비판하며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을 바로 보자고 주장하고, “악덕”이라는 욕심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며, 사치는 생산을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어 잘살게 만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기존의 가치관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이러한 주장은 수많은 종교가들과 도덕가들의 공분을 샀고 그의 책들은 금서(禁書)로까지 분류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상계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런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런 맨더빌의 주장에 반발한 후대의 사상가들이 그의 주장들을 반박하면서 새로운 사상 조류를 이끌어왔다고 하는데, 돈 벌 욕심을 아예 버리라는 낡은 도덕을 비판한 맨더빌을 따라 돈 벌 욕심을 받아들이되, 나 돈 벌자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는 짓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으로, 그런 짓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칸트의 도덕원칙으로 각각 발전해왔다고 하는 번역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해볼 만 한다. 

  책의 구성은 먼저 해제(解題)에서 맨더빌의 삶과 사상을 조명해보고, 맨더빌과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와의 차이점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문제작인 <꿀벌의 우화>와 맨더빌의 주석을 싣고, 마지막 부록으로 맨더빌의 다른 작품들인 <맥주의 우화>등을 소개하고 동시대와 후세의 사상가들이 맨더빌을 평가하는 각종 말들인 <다른 이들이 보는 맨더빌>과 참고문헌을 수록하고 있다. 사실 본문격인 <꿀벌의 우화>는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라 텍스트(text)만 읽게 되었고, 맨더빌이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이 책의 번역자이자 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최윤재 교수의 해제만 꼼꼼히 읽어봐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역자(譯者)는 해제에서 맨더빌은 그저 악덕에도 좋은 점이 있다거나 또는 그 좋은 점이 나쁜 점보다 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사람들이 도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생각, 즉 욕심을 나쁜 것으로 쳐서 금욕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에 따라야 미덕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소개한다. 맨더빌은 이 두 가지 기본전제를 부인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끝끝내 고집했으며, 이러한 조건에 맞는 미덕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나아가 정말로 글자 그대로 미덕만 남게 된다면 세상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동안 비판자들의 말과는 달리 그는 한 번도 악덕 그 자체를 드러내 추켜세운 적이 없으며 그 대신 악덕의 효용을 보여주며 이제 악덕을 어찌 생각해야 할 것인지 물음을 던진 것이라고 말한다.  

  맨더빌을 이해하려면 그를 비판하면서 경제학의 비조(鼻祖)라고까지 추앙받고 있던 애덤 스미스의 사상과 비교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그래서인지 “5. 맨더빌과 스미스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별도의 장(章)을 할애하여 두 사상가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탄생시킨 사상적 원흉으로 오해하고 있던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그런 대목이었다. 

  먼저 “개인의 이기심(利己心)”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관점이었다고 생각하기 쉬운 두 사상가의 차이점을 역자는 맨더빌의 도덕체계는 미덕과 악덕의 구분을 아예 없애버렸으나, 스미스는 이익이냐 손해냐, 또는 잘사느냐 못사느냐 하는 기준만 남긴 맨더빌의 생각을 해로운 것이라 선언하고 새로 도덕기준을 마련하였다고 설명한다. 스미스는 물론 자기 사랑(SELF-LOVE)을 긍정하였지만, 고삐 풀린 이기심만 있다면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사회는 무너질 것이며, 여기에는 잘못된 행동을 막아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정의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오해하고 있는 공권력이나 다수결이 정의라고 할 수 없으며 자유로운 시민사회에서 정의는 절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도덕 감정에 따르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감정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공감에서 나오며, 그것을 배우고 익히고 발전시켜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수준에 맞춰 개인행동방식과 범위가 정해지고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스미스에게 도덕과 경제와 법과 정의는 별개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함께 발전해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맨더빌이 생각하던 사회 이익은 오늘날의 경제 제일주의 또는 돈 잘 벌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비해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 스미스가 생각한 사회정의는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심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며 도덕 수준과 정의를 강조한 데 이어, <국부론>에서는 - 비록 이기심을 기본 행동원리로 삼았지만 - 현실 세계에 비뚤어지게 나타는 이기심을 비판하면서 이를 막을 방도를 연구한 점에서 잘 드러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가의 돈욕심>에서 대한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맨더빌은 그당시 유행했던 중상주의(重商主義) 체제 차제는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낡은 도덕이 부국강병이라는 중상주의의 목적에 걸림돌이 됨을 지적하였는데, 반면 스미스는 중상주의가 못마땅한 나머지 정부는 손을 떼라고 자유방임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스미스의 생각을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없애고 기업이 마음껏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호도하는 이른 바 신자유주의식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스미스는 요즘 말로는 기업가라고 할 상인과 제조업자가 제 이익만 챙겨 나라에 해가 된다는 점을 가장 걱정했으며, 스미스는 정부가 기업 발목을 잡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기업편만 들어주기 때문에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을 주장했다고 한다. 소수 대기업이 제 이익을 챙기느라고 나라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나건만, 이미 소수 대기업 손아귀에 들어가 있어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기업 편만 드는 정부와 의회라면 차라리 소수 대기업의 독점을 없애는 시장 경쟁 체제가 독점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게 막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욕심을 이용하여 나라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스미스와는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맨더빌을 비롯한 중상주의자들은 노동자를 생산요소로만 보았기에 노동자들에게는 간신히 먹고 살만큼만 주면 된다고 주장했는데, 스미스는 생산자 이익보다는 소비자 이익이 앞서는 것이며, 나라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가 잘살아야 진짜 부국이 되고, 나라가 잘살면 임금이 올라가는 것은 마땅한 결과이며, 임금이 올라가면 노동자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맨더빌의 주장대로 돈이 많아 게을러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쉽게 돈을 버는 지주들이며, 물건 값이 올라 국제 경쟁에서 뒤진다면 그 것은 높은 임금 때문이 아니라 높은 이윤 때문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맨더빌은 또한 부자가 돈을 써야 가난한 사람이 일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를 이야기하며, <사치>를 미덕으로 강조했다고 하는데, 부자들에게 마음껏 허용한 사치를 가난한 사람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스미스는 부자의 사치가 경제에 해롭다고 보았다고 한다. 산업이 잘되려면 자본이 늘어나야 하고, 자본축적은 절약을 통한 저축으로 이루어지는데, 부자가 사치하면 나라 전체에 본보기가 되어 사치를 조장함으로써 결국 자본축적을 방해하고 장기 경제성장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교육>에서도 맨더빌은 소수만을 위한 교육을 강조하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한 반면, 스미스에게는 모든 사람을 교육시켜 깨우치는 것이 시민사회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고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제 이익이 무엇인지 깨닫고 제 주장을 제대로 펼 수 있고, 정부도 이들에게 귀 기울일 것이고, 그래야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에 균형을 맞추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그동안 자유방임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온 스미스는 그가 정부 역할을 제한하려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무렵 영국 정부의 능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유방임이라는 원칙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국민 전체의 행복이었다고 말하는 역자는 신자유주의는 원래 주류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재산가들이 만들어낸 풍조라 할 것인데, 이는 중상주의를 타파하자던 스미스보다는 오히려 맨더빌의 중상주의에 놀랍도록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19세기말 강도귀족들이 설쳐대던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에서도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다고 말하며,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의 매력적인 구호들 이면의 속셈은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하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또한 맨더빌은 남의 속마음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는 있었지만 남의 어려운 처지에는 좀처럼 공감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없었던 반면에 스미스는 있는 그대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적절한지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묻고, 적절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 함께 화를 내는 것이고 이것이 정의를 세우는 바탕이 된다는, 즉 스미스가 말하는 '공정한 관찰자'는 있는 그대로 보되 적절성을 판단하는 관찰자라고 정의한다.  

  이 책 덕분에 지난 수 십 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폐혜를 가져온 신자유주의 경제의 진정한 뿌리를 알게 되었다. 맨더빌의 사상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애덤 스미스와 칸트라는 걸출한 사상가들이 탄생한 것을 보면 결코 맨더빌은 이렇게 쉽게 잊혀져야 할 그런 인물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냉철하다 못해 비인간적인 생각 - 이미 그 당시 많은 사상가들에게 철저히 비판받고 해체되었는데도 불구하고 - 을 현 시대에 되살려 자신들의 세계 경제 지배에 정신적 멘토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어찌 보면 맨더빌이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망령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지금,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그들의 가면과 위선을 철저히 벗겨낼 수 있는 또 다른 애덤 스미스와 칸트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모든 사람을 교육시켜 깨우치는 것이 시민사회로 가는 필요조건이었다는 애덤 스미스의 믿음처럼 맨더빌의 망령을 떨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 깨우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옛날 민주화 시절 그렇게 강조했던 “깨어있는 시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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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라
정헌재 글.그림.사진 / 살림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지?” 

정헌재의 포토에세이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라(살림출판사/2010년 12월)> 책을 받아들고는 신혼여행 다녀와서 매형(아버지)과 누나(어머니)에게 인사드린다고 우리 집에 와서는 뭐가 좋은지 괜히 실실 웃기만 하는 외삼촌에게 아버지께서 농담처럼 건넸던 말에 “예!”하고 힘차게 대답하던 외삼촌과 얼굴 붉히던 외숙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이 저렇게 실없게 웃음 짓게 할 정도로 마냥 좋은 것인지 영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훗날 나도 외삼촌 나이가 되어 - 사실은 외삼촌 결혼했던 나이를 훌쩍 넘어 늦게 결혼했다^^ - 이 사람과 같이 산다면 참 좋겠다 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그제야 외삼촌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시작은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포엠툰>으로 잘 알려진 - 그림과 글이 참 이뻐서 한때 미니홈피에 열심히 퍼다 날랐었다 - 작가 페리테일은 <시작글>에서

단 한 장의 그림,   

단 한 장의 사진,  

단 한 줄의 글이

당신의 가슴에 말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친 당신에게 살짝 미소가 그려지고,

당신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바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책 제목처럼 기분 좋아지는 예쁜 사진들과 앙증맞은 만화 캐릭터, 그리고 감성적인 글들을 “상상”,“사랑”,“꿈과 희망”, “따뜻함, 달콤함”, “선물” 이렇게 다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스토리를 담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테마에 해당하는 사진과 글들이니 각 챕터별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첫 테마인 “상상으로 기분 좋아지다”부터 읽기 시작했다. 먼저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수놓아진 눈이 시원해지는 사진에 “하늘,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라고 물어온다. 흐리기만 하지 별거 없다고 하는 나에게 어쩌다 하늘 한번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며 힘겨워졌는지 다시 물어오고는 이렇게 된 이유가 나이가 먹어가면서 상상의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며, 상상하는 법을 잊어버리니 웃음과 꿈과 사랑을 포기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씨앗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속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상상'의 힘이었습니다.

라고 상상의 힘을 말해준다. 또한 웃음은 고통을 견디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이자 부작용없는 우울즐 치료제이며 게다가 돈도 들지 않는, 신이 인간에게 쥐어준 가장 멋진 선물 중에 하나이니 지금 당장 사용하라고 권유한다. 

"끔과 희망으로 기분 좋아지다"에서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며 검은 구름 뒤에 맑은 하늘을 보려면 먹구름을 밀어내야 하는 것처럼 마음에 생긴 먹구름은 되도록 빨리 치워버리라고 말한다.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뿜어내고 보낼수 있을 때까지 보내보는 것, 꿈은 그런 것이며 꿈꾸는 모든 것들이 다 이뤄진다고, 꿈꾸는 모든 것들이 다 이뤄지지 않는다고도 말할 지 못하는 것은 둘 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365일 중 몇번 쯤 놓쳤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닙니다. 

기운내요 

내일, 또 해 뜹니다."
 

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책의 말미에는  이제까지의 모든 페이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지만 조금 더 특별한 선물 크리스마스, 생일, 소원을 위한 이쁜 그림을 싣고 마지막으로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로 답답한 우리를 위해 페이지를 북 찢어내면 노란 백사장과 파란 바다가 펼쳐지는, 언제든지 가볼 수 잇는 작은 바다를 선물한다.

 

이쁜 사진들과 그림, 감성적이면서도 용기를 북독워주는 글들을 읽고 나니 책 제목처럼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곤 못내 아쉬워 아무 페이지나 펼쳐 다시 한번 그림들과 글들을 읽어본다. 몇 번을 펼쳐보고는 책장에 꼽아둔다. 책장 깊숙한 곳에 꼽아두고는 다시는 펼쳐보지 않는 여느 책과 달리 눈에 가장 잘 띄이는 곳에, 손길이 쉽게 닿는 곳에 꼽아둔다. 삶의 무게에 어깨가 자꾸 처지고 기분이 울적해질 때 자주자주 꺼내봐야하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 책, 지인들에게 한권씩 선물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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