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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ㅣ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평점 :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다녀갔다)”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라는 명을 받고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500명이라는 설(說)도 있다)을 이끌고 삼신산(三神山)으로 떠났다는 방사(方士)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市))의 전설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발해(渤海)의 먼 동쪽에 있으며 선인(仙人)이 살고, 불사의 약이 있고, 옥으로 된 궁전이 있다고 알려진 삼신산, 즉 방장산(方文山),영주산(瀛州山), 봉래산(蓬萊山)이 사실은 우리나라에 있는 산인 금강산(봉래산), 지리산(방장산),한라산(영주산)을 일컬으며 서복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제주도 정방연(正房淵) 폭포 절벽에 “서불이 다녀갔다”는 뜻의 위의 네 글자가 적혀 있으며,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거북바위에도 이 글자(경남도 기념물 제6호)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진위(眞僞)여부는 다소간의 논란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진시황제의 불로초 전설을 관광 상품화하여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니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최근에 이러한 불로초 신화와 조선시대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창덕궁(昌德宮) 연경당 입구에 세워진 돌문인 “불로문(不老門)”을 연계한 재미있는 "팩션(Faction)" 소설을 읽었다. 박희선 작가의 <불로문의 진실; 다시 만난 기억(에세이/2010년 1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2,200 여 년 전 진(秦)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종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던 그 시절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秦始皇)”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유력한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시키고는 그 세력을 축출해버리는 그런 정치적 술수를 부렸다. 제나라 지역 유지였던 서복(徐福 또는 徐市)은 진시황으로부터 불로초를 찾아오라는 명을 받고는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술책임을 간파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성(姓)을 바꾸고 숨으라는 명을 내리고는 동남동녀와 군사를 이끌고 불로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왜(倭)를 거쳐 삼신산 중의 하나인 봉래산(한라산)이 있는 제주도를 방문한 서복 일행은 불로초를 쫓아 자신을 추적해온 왜의 군대와 자신을 제거하러 온 또 다른 진(秦)의 군대에 쫓기다가 제주 토착민들의 도움으로 뱀 전설로 유명한 김녕굴(金寧窟)에서 드디어 불로초(不老草)를 발견하고는 추적을 피해 달아나면서 자신이 다녀갔다는 표식인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네 글자를 남겨놓고 한반도 지리산 골짜기로 숨어버린다.
그로부터 1,800 여년이 지난 조선 숙종(肅宗) 시절, 조선조 그 어느 왕보다도 왕권강화에 힘썼던 숙종은 자신도 선대왕(先代王)들처럼 단명(短命)하게 될 까 두려워 자신의 수하로 하여금 삼남(三南)지역에 불로초를 재배하고 있다는 마을에 찾으라는 밀명을 내리고, 마침내 한반도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들어 마을을 이룬 서복 일행의 마을을 찾아내고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는 불로초를 캐서 궁궐 창덕궁에 비밀리에 재배하게 이른다. 그 불로초를 재배하던 곳이 바로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不老門)”과 “불로지(不老池)”,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애련지(愛蓮池)” 일대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신하들의 의심을 사기 시작하자 숙종은 돌연 궁내 불로초 재배 터를 폐쇄하게 되고, 우연히 마을 참사를 피했던 서복 - 1,800 년을 살아남았다! - 무리들은 복수를 다짐하고 “천수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게 된다.
다시 300 여 년이 지난 일제 강점 말기인 1942년, 일본 황실 직속의 비밀 부대이자 임진왜란 시절부터 불로초의 행방을 쫓아온 “730부대”는 불로초로 짐작되는 풀뿌리와 “서불과차” 탁본, 그리고 왕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재배했던 관리의 기록인 고문서 “동궐지(東闕誌)”를 입수하게 되지만 경성 한복판에서 벌어진 천수당의 테러로 그만 입수 물건을 빼앗기게 되고, 우연찮게 그 사건을 목격한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학생인 박시형은 쫓기던 천수당원에게서 엉겁결에 그 물건을 건네받게 된다. 시형은 천수당 비밀 근거지로 찾아가 물건을 건네지만 천수당원들은 그 물건이 값어치가 없다 여기고 시형에게 없애라고 다시 건네 준다. 시형은 그 물건을 자신의 수강하던 생물학과 교수인 마쓰다에게 가져가고, 마쓰다 교수는 시형에게 조선사 편수회 참여하고 있던 역사학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구명한 교수를 소개하고, 시형은 동궐지와 탁본을 구 교수에게 다시 가져간다.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혈안이 된 730 부대는 물건을 강탈해갔던 천수당 조직원을 거짓으로 풀어주고 뒤를 추적한 끝에 구명한 교수의 집에 문건이 있음을 알고는 구 교수 집을 급습하고 시형은 간신히 탈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불로초를 찾기 위한 추격전이 창덕궁 일대에서 숨 가쁘게 벌어진다.
큼직한 글씨체, 각종 참고 사진들이 곁들어진 이 책은 마치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나는 비원(秘苑)이나 경복궁(景福宮), 창덕궁 등을 관람하면서 각종 문이나 전각(殿閣)들을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작가는 왕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인 “불로문”에 고대 불로초 전설이라는 서복 이야기와 접목시켜 전혀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를 창조해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작가의 상상력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된다. 특히 조선 역대왕 중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으며 83세까지 살았던 영조가 사실은 불로초를 먹은 숙종의 피를 이어받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는 설정과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도 사실은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일본이 조선을 침탈했다는 설정, 마지막에 2,200 여년을 살아온 “서복”이 깜짝 등장하는 반전은 꽤나 인상 깊게 느껴졌다. 이야기 전개와 구성, 즉 소설적인 완성도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사실인데, 이야기를 현대(現代)에까지 좀 더 확대하고 불로초를 찾기 위한 일본 부대와 천수당, 주인공의 혈투를 좀 더 박진감있게 그렸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불로초 전설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한국형 팩션(Faction) 소설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은 완성도를 떠나서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또한 우리 역사 유적지나 유물들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을 새롭게 각색하여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창조해내는 이러한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시도는 그저 전단지 배포나 홍보간판을 세워놓는 데 그치는 평면적인 문화재 홍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좋은 사례로 참고해볼 만 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나처럼 이 책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다음번에 서울 왕궁 나들이를 간다면 제일 먼저 이 책의 무대가 된 창덕궁 후원의 “불로문”과 “애련지”를 꼭 방문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 왕궁에 새롭게 이야기꺼리와 생명을 불어넣은 이 책의 가치가 결코 작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