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대왕 세트 - 전5권
윤영용 지음 / 웰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지난 10월 성황리에 막을 내린 “2010년 세계 대백제전”과 최근 KBS에서 방송 중인 대하사극 “근초고왕”덕분에 백제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만주벌판을 호령한 “고구려(高句麗)”와 삼국통일을 이뤄낸 “신라(新羅)”에 비해 너무 때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또한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요새 인터넷을 보면 심심찮게 “대륙백제(大陸百濟)”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중국 정사인 25사(二十五史) 중의 하나인 <양서(梁書)> 권54 제이열전(諸夷列傳)에 보면  

“진(晋)나라 때에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자, 백제도 요서·진평 2군 땅을 소유하고는 직접 백제군(百濟郡)을 두었다(晉世句驪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라는 기사가 나오고, 송서(宋書), 남사(南史) 등에서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하니 대륙백제설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에 대한 반박 논설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더 역사적 검증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적인 진위 여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대륙백제설을 소설의 소재로 본다면 우리 민족으로서는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소재일까?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할 것이다. 윤영용의 <근초고대왕 1~5권(近肖古大王/도서출판 웰컴/2010년 10월)>은 지금 드라마로도 방영중인 백제 13대 왕 근초고왕(近肖古王)을 소재로 한 역사 소설로 대륙의 동부 전역과 한반도 서해, 열도 규슈와 본토, 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일원을 지배했던 대백제를 건설한 정복군주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爲民政治)를 펼쳤던 “왕중의 왕”인 대왕(大王)으로 그리고 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잠깐 기존 역사와는 다른 설정들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백제에는 두 계통의 왕가(王家)가 있었는데, 백제 건국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소서노(召西奴) 모태후(母太后)의 큰 아들이자 오늘날 요서지방을 다스렸던 대륙백제계인 “비류(沸流)”계와 둘째 아들이자 오늘날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성백제(漢城百濟)계인 “온조(溫祚)”계가 바로 그것이다.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비류 왕자는 오늘날의 인천지역인 미추홀(彌鄒忽)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황해 건너 요서(遼西) 지방으로 산정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온조계가 백제의 왕권을 차지한 것은 제8대왕인 “고이왕(古爾王)”에 이르러서였는데, 백제라는 국호의 연원이라는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오늘날 황해(黃海)를 내해(內海)로 하여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하던 거대한 해상왕국이었고 설정하며, 본가(本家)인 비류 백제를 “백제(百濟)”로, 분가(分家)인 온조 백제는 “십제(十濟)”로 불리웠다가 고이왕대에 이르러 온조계가 왕권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백제라고 불리웠다고 설정하고 있다. 또한 단군조선(檀君朝鮮) 때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비밀결사(秘密結社) 집단으로 빛을 상징하는 “광명천(光明天)”과 어둠을 상징하는 “흑천(黑天)” 조직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는데, 둘 다 단군조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 흑천은 단군 조선의 반역자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의 갈래로 보고 있다 - 광명천은 언젠가는 되찾을 밝달환국을 준비하기위해 망국의 한(恨)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선인(仙人) 집단인 반면에 흑천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 간의 전쟁도 서슴치 않은 일종의 암흑상인(暗黑商人)으로 그리고 있다. 한편 이웃 왜(倭) - 책에서는 “위(倭)”로 부른다 - 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등 한반도 계통의 수백개의 국가들이 난립해 있고, 그중 오늘날 나주(羅州)에 기원을 두고 있는 야마다, 즉 “대해부” 세력이 가장 큰 세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정도만 기초상식으로 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 본다. 

  책은 전형적인 영웅소설(英雄小說), 즉 어린 시절에는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온갖 고초를 겪다가 성인이 되어 뛰어난 무용(武勇)과 자질(資質)로 두각을 나타내 결국 왕에 오르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때는 백제 9대왕인 책계왕(責稽王.?~298) 시절 비류백제 본가 출신인 려호기는 정체모를 암살자들에 의해 온가족이 몰살당하는 위기를 겪지만 어머니와 시녀가 가까스로 항아리에 숨겨준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되고, 지나가던 백제 최고의 무사(武節)이자 왕의 밀명을 받고 천하를 주유하던 근자부에 의해 거두어져 그에게서 무술을 배우게 된다. 때는 흘러 어엿한 대장부로 장성한 려호기인 사부인 근자부와 함께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에 들렸다가 낙랑(樂浪)과의 전쟁을 위한 무사를 선발하는 무술시합인 “백가제해 천하무술대회”의 소식을 알게 되고 근자부의 딸이자 백제 대천관 신녀의 추천으로 무술대회에 참석하여 공동 우승하며 이름을 떨치게 된다. 백제 왕비가인 진하료와 결혼하고 백제 무절(武節)의 4대 군장이 된 려호기는 바다 건너 일본 열도의 위(倭)의 중심 세력인 야마다, 즉 대해부가를 설득하러 갔다가 대해부의 큰 딸이자 신녀인 선화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갖게 되지만 이를 시기한 아내 진하료와 오래전 예언인 “절대무왕”의 탄생을 막으려는 비밀세력 “흑천”의 암살집단에 의해 쫓기다가 선화는 그만 죽임을 당하고야 만다. 그러나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죽으면서도 복중 태아를 끌어 앉고 죽은 선화의 모성애에 아이는 근처 단군 선인의 마을인 “소도(蘇塗)”에 머물고 있던 려호기의 스승인 근자부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어 “여구”라는 이름으로 소도의 선인들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한편 낙랑과의 전쟁에서 책계왕이 죽고 연이어 즉위한 분서왕(汾西王, ?~304) 여휘마저 낙랑 태수의 암살세력에 의해 죽자 백제 귀족들은 분서왕의 아들이자 대륙 백제의 좌장인 설리를 제치고 비류 백제 본가 출신인 려호기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 그가 바로 백제 제11대 왕이자 다시 왕권을 비류백제계로 찾아온 비류왕 [比流王, ?~344]이었다. 비류왕은 대외적으로는 분서왕의 장자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형제의 의(義)를 맺고 백제 2인자로 군림하게 되는 복(優福)이 왕비인 진하미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인 설리를 양자로 삼는다. 그러나 가슴 한켠엔 갑자기 실종된 연인 선화를 못내 잊지 못하고 선화에게 몹쓸 짓을 한 걸로 의심되는 왕비 진하료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한편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여구는 자신을 돌보는 단군 선인들과 의붓 부모 밑에서 무럭무럭 자라게 되고, 어느날 다시 마을에 들른 근자부가 려호기의 어릴 적 모습을 빼다 박은 여구를 보고 려호기와 연관이 있음을 깨닫고 비류왕에게 서찰을 남기지만 이를 먼저 눈치챈 왕비와 이제는 흑천의 주인이 된 우복의 암살자들이 한발 먼저 마을을 급습해 마을 사람들을 죽이게 되고, 여구 일행들은 위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비류왕은 한발 늦게 당도해 폐허가 된 마을만 확인하게 된다. 대해부 노예로 팔려가 온갖 고초를 겪던 여구는 자신 어머니 동생인 현 신녀의 딸인 연희와 가깝게 지내게 되고, 천재적인 바둑 실력과 재치로 자신의 외할아버지인 대해부까지 사로잡아 대해부가에 자신의 소도를 재건하고 연희 공주의 호위무사로 자리잡게 된다.  

  대해부는 커갈수록 려호기와 닮아가는 모습과 못 잊어하는 딸인 선화가 남긴 유품인 목걸이로 여구가 려호기와 선화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여구는 위까지 잠입하여 자신을 죽이려는 왕비와 흑천의 암살 시도를 구사일생으로 넘기고 대해부의 본거지인 나주(羅州)를 차지하는 한편 뒤늦게 여구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된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분서왕의 장자이자 백제 제12대 왕인 계왕[契王]과 맞서게 되고, 대해부를 없애려는 고구려, 신라, 가야계, 백제 계왕의 지원을 받는 열도의 또다른 세력과 일대 전쟁을 벌여 태양광과 기름폭탄으로 멋지게 승리를 거두어 “일본무존(日本武尊)”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여구는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궁(宮)을 빠져 나온 비류왕과 짧은 재회를 한 후 아버지를 광명천의 은신처로 모시지만, 흑천과 계왕의 군대에 의해 그만 아버지를 잃게 되고, 오랜 은원이 얽힌 흑천주 우복 또한 여구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다. 나주의 여구 군대가 한성으로 들이닥치면서 백제는 일대 내전(內戰)의 위기에 휩싸이게 되지만 백제 귀족 회의에서 계왕이 귀족 대표들에게 패륜아로 낙인 찍혀 죽음을 맞게 되고, 여구는 비류왕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게 되니 그가 바로 백제 제13대 왕인 근초고왕[近肖古王, ?~375]이다. 재위에 오른 근초고대왕은 단순히 정복 군주로서가 아니라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위민정치를 펼쳐 소금과 비단, 삼(蔘)등의 교역과 각종 기술들을 크게 부흥시켜 영토와 문화 양 면에서 크나큰 위업을 이룬 “왕중의 왕”, “진정한 왕”인 “대왕(大王)”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중국 대륙 양자강과 황하에 이르는 동부 전역과 한반도 서해, 열도 규슈와 본토, 대만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일원을 지배했던 대제국 “백제(百濟)”를 건설하고 예언 속의 “절대무왕”의 전설을 현실에서 이뤄낸다. 

  작가는 한중일 동아시아 공동체 시대의 모델로서 근초고왕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정복왕에 머무르지 않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한 문명 교화자로서의 역할까지를 수행해낸 “문명왕(文明王)”으로서의 모델로서 근초고왕을 현대인의 시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우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벤치마킹 모델로 삼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우리에게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영토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는 패왕이 아닌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진정한 대왕의 길, 그 길을 통해 현대의 각 지도자와 국민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책에서의 근초고대왕은 그 여느 임금과 왕들과는 차별화된, 진정한 군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로는 영웅소설이자 역사소설로서 참 재밌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몇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이 책의 역사적 배경이나 근거는 <환단고기(桓檀古記)>로 대변되는 재야사학자들의 대륙 백제설 - 책의 목차를 천부경(天符經) 81자로 한 것이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치우천왕과 47세로 이어져 왔다는 단군 왕검들의 명칭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와는 사뭇 달라 스토리에 집중하기에 꽤나 어려웠다 -사전 도입부에 대륙백제설과 설정에 대해 제시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또한 이야기 전개에서도 다소 아쉬운데, 근초고왕의 아버지인 비류왕에게 3권 중반까지 이르는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해 - 처음에는 려호기가 근초고왕이 될 것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 막상 주인공인 근초고왕의 치세는 5권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어 서둘러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낯선 역사적 배경과 서사시(敍事詩)를 연상시키는 문체(文體) 때문에 꽤나 더디게 읽혔고 책 중반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읽는 속도가 제법 나게 된, 책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인 나로서는 꽤나 오랫동안 읽었던 그런 책이었다. 또한 책 도입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무예시합” 장면이나 책 후반부 흑천주 우복과 여구의 대결 장면은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져 역사소설로서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그런 설정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잊혀진 백제의 역사를 다시 복원(復原)해내고 새로운 영웅 근초고대왕을 우리에게 제시한 점만큼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극복해낼 만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오래된 격언처럼 이미 수천년전에 바다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양(大洋)을 누빈 위대한 백제의 기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우리 현실을 딛고 일어나는 기폭제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또한 책 속에서 그린 근초고대왕의 위업을 그의 정복사업에만 한정하여 한민족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는 것에만 몰입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다를 바 없는 자국중심의 배타적 민족주의(民族主義)가 아니라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꿈꿨던 위민제일(爲民第一) 정신이 더욱 부각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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