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제생태계 보호 - 세계적인 경제학자 크레이그 토머스의 통찰력 있는 서민경제 생존법
크레이그 토머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지훈 / 2010년 11월
평점 :
경제(經濟)는 생물(生物)이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만큼 경제 예측이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 빗대어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경제가 복잡다단하다 보니 경제 상황에 대한 해석 및 처방도 가지각색이다. 한쪽에서는 경제 시스템(시장)은 완전무결한 존재 - 고전 경제학파에서는 전지전능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여서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니 경기 부양이나 경기 통제를 위한 인위적 개입은 사태만 더 키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한쪽에서는 인간이 만든 이상 경제시스템(시장)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제시스템, 즉 시장에 대한 논쟁은 경제학 태동과 함께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케케묵은 논쟁이라 할 수 있는데, 정책 입안자가 어떤 입장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경제 정책 기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종종 볼 수 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읽은 미국 경제학자인 크레이그 토머스의 <경제생태계 보호(원제 The Econosphere/지훈/2010년 11월)>은 아예 경제를 생물 그 이상의 개념, 즉 자연 생태계와 같은 개념의 “경제생태계”으로 정의하고,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듯이 경제도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는, 경제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책 서두에 많은 사람들이 생물생태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듯이 경제도 일종의 살아있는 생태계와 마찬가지여서 경제생태계를 잘 이해하면 경제생태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생태계의 기능과 법칙을 이해하면 최고 가치를 생산해낼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며, 훌륭하게 결정하도록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구속 없이 자유롭게 기능할 때 우리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는 사회 환경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 즉 자연 보호하는 것처럼 경제에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말고 잘 보호하면 최적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작가는 “경제생태계의 법칙”으로 먼저 종종 양육비와 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젊은 부부에게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인 “누구나 제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예로 들며 고의로 방해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새로운 구성원은 모두 세상에 부를 추가한다는 “성장의 법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차례대로 경제 생태계에서는 문제가 무엇이든 더 나은 정보가 높은 해결책의 일환이며(->정보의 법칙), 경제생태계의 생기를 주는 힘은 바로 인간이며(->지속가능성의 법칙), 종종 제로섬(ZERO SUM)게임으로 알려진 경제 생태계에는 한쪽에는 빼앗아 다른 쪽에 주는 법은 결코 없다(->풍요로움의 법칙)고 설명한다.
서두까지는 기존 경제 시각에서 벗어나 “경제생태계”라는 새로운 경제 해석에 다소 흥미를 느꼈는데 본격적인 각론에 들어서부터는 왠지 작가의 사상이 기존에 많이 접해본 그 “무엇”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의심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작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작가는 종종 산업장려책으로 사용되는 정책인 “관세장벽”과 “생산 보조금”정책을 사실상 해당 생산자에게는 보조금이고 소비자에게는 세금이라고 잘라 말한다 - 물론 생산보조금의 재원(財源)이 국민 세금에서 충당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 다른 국가와 교역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하는 나라나 상당히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느슨한 환경 규정을 묵인하는 나라는 사실상 다른 나라의 소비 장려를 기꺼이 돕는 셈으로 자신들이 창출한 가치를 스스로에게서 빼앗고 있으며 유용성을 제대로 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경제 상황이 지속되며, 반면에 그런 수출국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적어도 수입국 소비자에게는 이익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는 경제생태계는 “무역”, 즉 “교환”을 아주 좋아해서 결국 직업과 산업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허용되면 경제생태계는 생산성이 가장 높아지고 최대한 원활하게 운영되는데, 반면에 자연스러운 이동을 막으려고 하면 압력이 쌓이며 그 압력이 아주 강해지면 구소련에서 경제 붕괴에 이어 정치 붕괴가 일어난 것처럼 성급하고 폭력적인 이동이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작가는 또한 경제에 있어서 “불평등”은 사실상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경제라는 탱크의 연료이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성공하는 능력은 자유 시장 경제의 기본 엔진이자 경제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추진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서 “부(富)의 상속”에 대해서 작가는 상속된 부는 이전 세대의 저장된 노동일 뿐이고, 누군가가 가치를 아주 많이 생산해서 미래 세대에게 안락함을 더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이며, 부의 창조자는 자신의 저장된 노동을 물려줄 권리가 있으며, 후대에 장려책을 제공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생산성을 높이 유지하며 일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부자를 질투하지 말고 존경하라고 당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진정한 권한이라 할 수 있는 “재산권 보호”를 제쳐두고 노동조합에 유리하게 법률을 제정하거나 부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하는 등 “재산 재분배”에 더 주안점을 둔다면 결과적으로 사기 기미가 느껴지고 당연히 일부 사람의 격분을 살 일이며, 더구나 그런 정책은 경제생태계의 속성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각종 결과를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경제생태계의 법칙에 따르지 않는 외부 세력이 경제 생태계로 들어온 셈이며, 이 결과로 파문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작가는 경제생태계의 장려책을 멋대로 조작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경제생태계 운영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1인당 생산량, 원자재 대비 생산량, 시간 단위 대비 생산량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와 최종적으로 모두에게 손해만 가져올 뿐이며, 이렇게 보면 생산자의 삶을 편하게 하고 변화나 압박의 영향을 덜 받게 하려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셈이라고 폄하한다. 또한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의 두 가지 방향 중 하나인 통화정책은 대체로 경제 전반을 침해하는 반면, 또 다른 정책인 재정정책 - 작가는 세계적으로 좌경 성향이 있는 정당이 재정정책을 선호하는 케인스 학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 은 일부를 집중적으로 침해하는 문제가 있으며, 작가는 저소득층 등에게 우편으로 수표를 보내는 것과 같은 부가가치가 전혀 없는 경기 부양책에 왜 정치계가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시장가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정하고 변경하고 차단하려는 모든 활동은 우리가 번창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시장 가격은 어떤 척도도 알려줄 수 없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세상에 필요한 제품과 가장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일자리를 알려주므로 세상에 시장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시장 가격이 없으면 우리는 방향을 잃기 때문에 시장가격을 “사랑”하라고 타이른다.
작가의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니 그 “무엇”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바로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저서를 통해서 그렇게 줄기차게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바로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 사상과 단어 선택과 문맥이 다를 뿐 그 내용은 완전 판박이가 아닌가? 경제가 자연생태계와 같은 유기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경제라는 생물이 좀 더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 - 주로 감세(減稅)나 규제 철폐 등과 같은 방법 - 에 매진해야 하며, 정부는 경제 생태계에서는 외적 존재일 수 밖에 없으니 유치(幼稚)산업 보호나 통화정책, 재정정책 구분할 것도 없이 모든 경기 부양책과 같은 인위적 개입을 해서는 절대 안 되고, 경제적 불평등은 동기 유발이 될 수 있는 사실상 좋은 것 - 최근 무상급식 반대론자들 논지와 완전 똑같다 - 이며, 부의 재분배, 상속 제한 등과 같은 정책은 경제생태계를 파괴하는 악덕(惡德) 정책으로 몰아붙이고, 상품과 산업의 자유로운 이동만이 경제 생태계를 유지 보존하는 데 중요하다는 등 주장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그대로 일치한다. 물론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제 해석이라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여러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그 사상적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혹을 결코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장하준 교수의 주장대로 “신자유주의”는 정말 나쁜 것일까? 아직도 신자유주의 신봉자들과 장하준 교수와 같은 반대론자들의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으니 딱히 여기서 내가 두 진영의 쟁점을 다시 중언부언(重言復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 경제 비판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향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는 이 책의 주장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나” 같은 사람들 - 물론 이 책의 이론에 동의하는 분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책이겠지만 - 에게는 읽을 가치가 없는 그런 책일까? 작가는 책 마지막 장에서 “부와 행운을 극대화하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으로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유용성을 극대화하고, 경제생태계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게 만드는 인공적인 장애물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이다. 경제 생태계를 보호하라는 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의하긴 어렵지만 경제 주체로서의 “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최대한 극대화하라는 충고만큼은 한번쯤 새겨들어볼 만 하다고 생각된다. 나와 다른 생각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는 차원에서는 한번쯤 읽어볼 만 한 책이라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