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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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대학시절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저항으로 너도나도 거리로 나서던 시절, 선배들에게 주문(呪文)처럼 지겹게 들었던 말이다. 깊은 성찰도 없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이 말을 그 당시에는 냉철함을 가장한 비겁한 선배들의 자기 변명 쯤으로 비웃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선배들이 말하던 것처럼 머리는 점점 차가워졌지만 - 내 일신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을 냉철함이라고 합리화시켜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이제는 가슴마저 차갑게 식어버렸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 날치기, 국회 폭력, 인신공격, 추문(醜聞)에 온갖 비리(非理)를 저지르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제는 분노보다는 냉소적인 헛웃음이 먼저 나오고, 비정규직 파업 문제나 철거민 문제 등의 뉴스가 나오면 이제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한 때는 애청 프로그램이었던 <인간극장>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애환과 슬픔을 담은 방송은 기쁘고 즐거운 일만 생각해도 부족할 판에 저런 이야기로 가슴 아파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어쩌면 그 당시 선배들의 말은 “비겁함”을 자기 합리화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라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하는 뜨거운 열정만큼은 나이가 들어서도 잃지 말라는 진정어린 충고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애써 외면해 왔던 사회 모순들, 즉 비정규직 문제, 도시빈민, 학내 종교 갈등, 여성 문제 등을 모아 놓은 책을 제대로 만났다. “저항하는 인간”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하는 <호모 레지스탕스;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박경신 등 저 / 해피스토리/2011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 또한 그냥 외면하고 싶었지만 읽기로 약속한 책이라 불편함을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고 나니 오랜만에 먹먹해지는 아픔과 함께 가슴 한 켠에서 이제는 완전히 꺼져버린 줄 알았던 불꽃이 다시금 피어오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부의 상징으로 불리는 강남 이면에 감춰져 있던 “구룡마을”, “잔디마을‘ 판자촌 주민들, 안기부 X파일을 인용해 ‘삼성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하여 ‘통신비밀 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던 “노회찬” 의원, 단군 이래 최대 공사라는 ‘새만금 사업’, 국익(國益)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구속까지 되었던 “미네르바” 필화(筆禍) 사건, 학내 종교 자유 문제를 온 몸으로 거부해서 유명인사가 되었던 “강의석”씨 등 그동안 뉴스를 통해서 희자되었던 13건의 사건을 소개한다. 다들 유명한 이야기인지라 몇몇 사건들은 발생부터 결과까지 알고 있는 사건들도 있지만, 어떤 사건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났을지 궁금했던 사건들도 있고, 다섯 살 난 자신의 딸이 손담비의 노래를 흉내 내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당한 사건 등과 같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해본 이야기들도 있었다. 작가들은 가두 투쟁이나 화염병 투척 같은 과거의 방식으로 “저항”이 아니라 바로 “법”으로 저항하라고 이야기하며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이 책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들에서도 틈만 나면 강조했던 통치이념인 “법치(法治)”가 결국은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13가지 사례들과 같이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고통 밖에 주지 못하건만 법으로 저항하라니 왠지 아이러니하기까지 한데, 작가들은 서문인 “법으로 저항하라”에서  

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군림했을 뿐이다. 이제 그 법을 우리 것으로 만들 때가 왔다. 법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다. 우리가 그 법 위에 앉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과 정의감을 법 위에 앉히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어찌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혼자서만 억울해하고 금세 포기해버릴 만도 한 그런 사건들을, 결국 “법”이라는 잣대로 핍박 받던 이 책의 주인공들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법에 호소하여 결국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내는 “승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즉 부당한 현실에 대한 그들의 끊임없는 “저항”이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법과 사회 통념이라는 철옹성의 문을 활짝 열어 제꼈고, 그들의 목소리는 강한 울림의 메아리가 되어 이렇게 책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결국 “승리”했지만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과정을 따라가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지 절로 숙연한 마음마저 들게 하고, 그들의 저항이 결국 “진보”로까지 이어졌다는 작가들의 해석에 또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앞으로도 계속 유효한 것일까? 이미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났지만 아직 도비정규직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공장점거 파업을 벌어야 했고 - 결국 노조간부는 불법 파업죄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90%까지 진행된 새만금 공사를 결국 2년여 가까이 중단시키는 쾌거를 거두었지만 결국 일방적인 공사가 다시 재개되어 결국 “세계 최장 33.9km의 명품 방조제 건설”이라는 요란한 선전과 함께 지난 2010년 4월 준공을 완료했으며, 떡값 검사를 폭로한 노회찬 의원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떡값 사건의 주인공들이 무슨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커녕 금세 사면을 받고 재계에 화려하게 복귀하지 않았던가? 또한 미네르바 적용 법조항이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違憲)” 판결을 받아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보수 언론들이나 집권여당은 일제히 “공익”을 해치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난하며 보다 엄격한 대체입법을 만들겠다고 저 난리인 것을 보면 그들의 승리가 결국 “일회성(一回性)”에 지나지 않은, 보다 더 단단하고 굳건한 벽을 만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계란으로도 바위가 결국은 깨진다는 사실을 입증해낸 이 책의 13가지 사례는 앞으로 새로운 싸움과 저항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격려와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처럼 머리 뿐만 아니라 가슴마저 차갑게 식어버린 이들에게는 오래전 뜨거웠던 열정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분노하지 않는 젊음은 죽은 것이다”라고 하던가? 사회 모순이나 부조리에 분노하는 것은 연령과 신분을 떠나서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국민이라면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이 책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이러한 의무를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상기해볼 수 있도록 널리 읽혀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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