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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추리소설 장르를 좋아하는지라 참 많은 추리 소설들을 읽게 된다. 물론 작품들 중에 함량 미달 작품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추리소설” 이어서 어느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큰 실수는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추리소설을 자주 만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본이나 서양 추리소설들에 편중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웃 일본이야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추리소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간되고 있고 추리소설 관련 문학상들 또한 즐비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변이 튼튼하지만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기성 유명 작가들의 맥이 끊겼다고 할 정도로 신간 출간 소식이 감감무소식인데다가 변변한 추리소설 작품상조차 찾아볼 수 가 없어 신인들이 등용하기란 정말 어렵다고 할 정도로 저변이 부실하다. 그래도 간간히 우리 작가 소설들을 드문드문 접하게 되는데, 일본 추리소설 못지않은 재미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몇 몇 마니아들에게만 읽힐 뿐 이내 서점 진열대에서 사라지곤 해서 영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문학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르 문학상 수상작이자 기존 여느 일본 소설들 못지않은 재미와 반전을 보여주는 멋진 우리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다. 유현산의 <살인자의 편지(자음과모음/2010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수도권 인근의 가상의 도시 영흥에서 가출 소녀가 목을 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살인 방식이 이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인 모터사이클 선수와 퇴역 대령의 죽음과 동일한 교수형 매듭 밧줄을 이용한 사건임을 알게 되고, 현재 진행 중인 “연쇄살인 사건”으로 파악한 경찰 당국은 특별수사본부를 결성하여 수사에 나선다. 연이어 어린이집 원장 내외가 같은 방식으로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들의 과거와 주변인물을 탐문 수사하던 중 경찰은 영흥에서 죽은 가출 소녀를 제외하고는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인면수심의 범죄 - 혼인빙자간음, 군내 비리와 의문사, 아동 학대 살인 등 - 를 저질렀지만 법의 단죄를 교묘히 피해갔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이를 무렵 정의를 위하여 피해자들을 ‘사적 처벌’했다는 “살인자”가 보내온 편지가 수사본부에 배달되어 온다. 논의 끝에 이 편지를 공개하기로 한 수사본부는 베테랑 사회부 기자인 “유제두”기자의 시사 잡지에 게재하여 범인을 압박하여 수면 위로 끌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사회적 논란만 키우게 되고, 결국 이를 비웃듯 또 다른 방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야 만다. 방화 살인사건의 연유를 설명한 글과 함께 잡지 기사에서 살인범을 비난한 것으로 실명 이름이 나왔던 피해자심리전문요원 “박은희”에 대한 살인 예고를 담은 편지가 잡지사에 배달되고, 경찰은 그녀의 보호에 나서지만 범인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그녀에게 살인의 마수를 뻗어온다. 결국 예기치 못한 반전 끝에 연쇄살인범의 진짜 정체와 사건 전모가 밝혀진다(자세한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이 책을 엄밀히 말한다면 교묘한 플롯과 트릭, 명탐정의 등장이라는 도식화(圖式化)된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벗어난 “사회파” 추리소설 - 대표적인 소설이 작가가 후기에서 좋아하는 작가라고 밝히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이유>를 들수 있다 - 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에 대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본격 추리는 기본으로 삼으며 사회의 어떤 심각한 문제들을 비판” 하는, 즉 현대 사회의 범죄와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사회비판” 요소를 부각시킨 추리소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청소년 가출문제, 아동 성범죄, 군내 비리와 의문사, 문란한 성관계와 낙태 등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문제들이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트릭이나 플롯,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번 작품이 두 번째 작품인, 사실상 신인작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와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절묘한 이야기의 배치로 읽는 내내 호흡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 마지막 장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과 살인 예고된 “박은희”에 대한 범인의 살인 시도 장면에서는 뒷장을 먼저 읽어 결말을 빨리 알고 싶을 정도로 긴장감과 스릴이 극에 달하게 된다. 또한 범인이 체포되어 모든 전말이 밝혀지지만 계속 의문으로 남았던 가출 소녀 살인사건에 대한 전말이 밝혀지는 두 번째 예상치 못한 반전 또한 마지막 장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탁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적지 않은데, 미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범죄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들을 분석하여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유형, 콤플렉스 등을 추론함으로써 수사방향을 설정하고,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데 도움을 주는 “프로 파일러”가 사건 초기부터 등장하지만 그다지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고 - 활약이라고는 체포한 범인을 자극하여 “내가 죽였다”라고 자백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도 사실은 범인이 프로 파일러의 유도 심문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 의도에 따라준 것으로 설정한다 -, 프로파일러가 여주인공이자 범인의 마지막 살인 대상이기도 했던 “피해자 심리전문요원”인 박은희가 하는 일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범인이 보내온 글을 분석하여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텍스트 분석가”도 등장하는데, 언제나 경찰은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뒤늦게 등장 한다는 고전 법칙을 되풀이하는 설정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병을 앓고 있는 형사가 가출소녀를 살해한 범인을 그토록 잡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한 개연성과 “법”으로 심판하지 못한 사회 암적 존재를 직접 처단하겠다는 “사적 처벌”에 나서는 범인이 사실은 어릴 적 학대받은 범인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작용했다는 설정, 결국 책 말미에서야 그 이유가 등장해서 책 중반까지는 범인의 살해동기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일련의 살인 사건 속에 전혀 성격이 다른 이질적 사건을 끼워 넣지만 독자들이 알아챌만한 어떤 단서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은 점이나 등장인물 중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일종의 “서술 트릭”적인 설정도 반전으로서는 묘미가 있지만 많은 소설들에서 이미 사용된, 조금은 상투적인 설정이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재미있는 멋진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 끝까지 재미와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하는 이야기 구성력은 작가의 내공이 결코 녹록치 않은, 앞으로 이어질 그의 후속 작품들을 절로 기대하게 하는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 추리소설을 읽고 리뷰 쓸 때 마다 꼭 당부하는 말을 다시 해본다면, 부디 작가의 작품이 이번 작품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 이어지기를, 그래서 우리 추리소설들이 더욱 풍성해주기를 고대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의 바램을 한껏 충족시켜주는 작가로 기억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