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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 그동안 읽은 그의 작품을 헤아려 보니 <남쪽으로 튀어 1,2>, <공중그네>, <라라 피포>, <한밤중의 행진> 등 4권이 된다. 그동안 읽은 일본 작가들 작품들중에서는 권수로 꽤나 많이 읽은 작가이다 - 제일 많이 읽은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로 5종 8권이다 -. “우울할 땐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어라”라는 말처럼 작품들마다 담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가 않은데도 정색을 하지 않고 그만의 유머로 재미있게 풀어내서 읽고 나면 절로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이 드는, 책 내용을 떠나서 작가 이름만으로도 선택하게 되는 그런 작가이다. 이번에 읽은 <꿈의 도시(원제 無理/은행나무/2010년 12월)>은 처음에는 역자 후기 포함해서 632 페이지에 다다르는 묵직한 분량과 요즈음 신간들과는 달리 비교적 빽빽한 줄 간격으로 이 책을 언제 다 읽나 하는 걱정이 앞섰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존 그의 작품들 중에서 어느 한 작품 지루한 작품이 없었던 터라 탄력이 붙으면 금세 읽어내겠지 하는 기대감도 같이 들면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오쿠다 히데오.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하루 나절 만에 다 읽어 버리게 된 이번 책은 오쿠다 히데오 만의 장점 - 진지한 주제를 웃음으로 잘 승화시킨 그의 능력 - 을 여실히 보여준 참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인근 세 개의 군이 합병한 인구 12만의 가상의 지방 도시 “유메노”, 통합된지 얼마 안된 탓인지 도시 전체가 아직은 어수선하다. 이 책에서는 유메노 시에 사는 다섯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각자가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다섯 명의 공통점은 “탈출”을 꿈을 꾼다는 점이다. 먼저 시청 생활 보호과에서 생활보조비 수급 대상자를 상대로 일하는 공무원인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지긋지긋한 유메노 시를 떠나 상위 기관인 현(縣) - 우리나라의 “도(道)”에 해당 된다 - 청으로 복귀를 간절히 고대한다. 여고 2학년 생 “구보 후미에”도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유메노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고, 시의원인 “야마모토 준이치”도 다음 선거만큼은 현 의원으로 출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머지 두 주인공은 조금은 다른데, 마트 보안요원인 중년 여성 “호리베 다에코”는 사이비 종교인 “사슈카이”에 빠져 현생보다는 이생에서의 복된 삶을 꿈꾸고, 폭주족 출신의 세일즈맨 “가토 유야”는 연일 최고 성과를 올리는 같이 근무하고 있는 폭주족 선배처럼 매출 실적을 올려서 - 노인들만을 골라 전혀 쓸모도 없는 누전차단기를 교체해주고 돈을 받는 사기 영업이지만 - 빨리 자리 잡고 싶어 하는, 일종의 “경제적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며 하루하루 일상을 반복한다. 그리고 손바닥만한 도시 탓인지 아니면 마지막 결말을 암시하는 작가의 장치인지 서로 서로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작은 인연들을 맺는다. 예를 들어 후미에의 학원 친구가 준이치의 아들이고, 유야는 준이치의 집에 방문하여 누전차단기를 팔아먹고, 도모노리는 유야의 전처 친구와 원조교제를 하는가 하면, 다에코는 유야의 아버지와 여관에서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등 직접적인 인연은 아니지만 알음알음 서로 연관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모두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게 되고 그들 각자의 “탈출 모의” 또한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모든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 그들 모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의 장점을 꼽아 보자면 먼저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를 꼽을 수 있다. 작가 스스로가 스토리보다는 이야기 속 인간들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속의 다섯 주인공들은 마치 현실 인물들이 그대로 소설로 투영된 것처럼 느껴지는 사실감 넘치는 그런 인물들이다. 또한 종종 이렇게 여러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교대로 들려주는 형식의 책들은 복잡하고 모호해져서 누구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쿠다 히데오는 각자의 개성과 현재 처해진 상황, 주변 인물들을 치밀하게 구성하여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구성하면서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절묘하게 합쳐지는 탁월한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이야기 흐름에 저절로 따라가게 되고, 600 페이지가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함이 없이 내처 읽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전작들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의 유쾌한 전개를 들 수 있겠다. 전작인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무정부주의자이자 전공투(全共闘) 세대인 아버지를 통해서 교육, 복지, 환경 등 현대 일본 사회의 모순을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담아내더니 이 책에서도 생활보호 대상자로 대표되는 복지 문제, 이주 노동자 문제, 사이비 종교, 노인 대상 사기 영업, 유부녀 원조 교제, 이혼 및 자녀 양육 부담 문제, 일본 정치의 주요 특징인 정치 세습과 이권개입과 같은 정경 유착 문제, 방안에만 틀어 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 가정폭력, 입시 문제 등등 마치 현재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회적 모순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자칫하면 이야기가 무거워지고 심각해질 수 밖에 없는 이런 문제들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치로 재미있게 그려내 분위기를 가볍고 경쾌하게 환기시키고,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여기저기 터지는 사건들 - 청소년 납치 감금, 불량 서클간의 싸움, 심지어 살인에 이르기까지 - 이 터지지만 결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런 잔혹하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그저 시끄러운 난장판 정도로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잘 갈무리해낸다. 즉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주제임에도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쾌함마저 들게 하는, 그러면서도 다 읽고 나서 뭔가 곱씹을 만한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오쿠다 히데오만의 글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자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결말에 이르러서도 완성되지 않고 “열린 결말” 형태로 끝을 맺은 점과 여러 주인공과 많은 주제를 담아내다 보니 전개에 있어 다소 산만한 점,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밝고 경쾌한 유머가 다소 무뎌진 점 -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울을 떨쳐버리기 위해, 즉 기분전환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면 실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 등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번역판 제목인 <꿈의 도시>는 결코 꿈일 수 가 없는 유메노 시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은 데, 원제인 <무리(無理)>는 과연 어떤 의미로 붙인 제목일까? 작가 인터뷰 글들을 찾아봤지만 딱히 발견할 수 가 없어 추측을 해본다면, <무리>의 뜻이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남(네이버 백과사전)”이라고 한다면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를 내포하고 있는 현재 일본 사회에서 “탈출”을 꿈꾸는 다섯 주인공의 삶 그 자체가 바로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무리한 시도일 수 밖에 없다는 작가의 냉소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내 멋대로의 억측이겠지만^^
“역시 오쿠다 히데오!”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직도 못 읽어본 그의 작품들이 꽤나 많다. 읽고 싶은 책 목록 맨 앞에 올려 놓고 하나하나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먼저 눈길이 가게 될 그의 다른 작품들은 나를 어떻게 즐겁게 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