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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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따라 절에 자주 가곤 했지만 부모님께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는 동안 나는 밖에서 주변 풍광들을 구경하곤 했다. 절 자체의 고즈넉함을 좋아할 뿐 종교로서 불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도 처음엔 나와 같은 생각이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몇 번을 권유하셨지만 요지부동이셨던 지라 어머니께서도 권유를 포기하시고 혼자 절을 올리시고 아버지께서는 나처럼 대웅전(大雄殿) 마당에서 탑과 탱화들을 둘러보시곤 하셨다. 그러시던 아버지께서 지금은 절에 가시면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신다. 아버지께서 절을 올리기 시작한 때가 바로 하시던 사업이 실패하시고 친구 분께 서주셨던 보증이 잘못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던 시절 무렵부터라고 한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으로 심사가 어지러우셨던 아버지께서 대웅전 부처님께 간절히 절을 올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절로 마음이 움직여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게 되었고, 어느새 가슴 속에 맺혔던 울분과 원망이 말끔히 씻겨나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셨다고 한다. 지금도 불교를 정식으로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 - 그 대상이 부처님일 수 도 교회의 예수님일 수도 있다. 즉 대상을 한정하지 말고 - 에게 무릎을 꿇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다 보면 교만했던 마음이 절로 사라지고 지극히 겸손해짐을 깨닫게 되고 욕심으로 들끓었던 마음도 어느새 평온함을 되찾게 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절에 가시면 꼭 어머니와 함께 절을 올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지금부터 소개하는 정찬주 작가의 남도 절 순례기인 <절은 절하는 곳이다(이랑/2011년 2월 14일)>을 보신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싶어 책 표지 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작가 이력을 살펴보니 작년에 참 감명깊게 읽었던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소유>를 쓴 바로 그 “정찬주” 작가였다, 그 책에서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으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순례한 남도의 작은 사찰들을 소개하는 글을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은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작은 절들과 인연 따라 조우한 순례의 기행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추천한 작은 절들만 찾아 떠난 자연스러운 여정으로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자신을 맑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 글을 쓴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법당에 들어 절하는 것이 더욱 절절해지는, ‘아! 절은 절하는 곳이구나“하는 단순한 깨달음을 자각한 것처럼 독자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무심코 순례하다 보면 자기 자신만의 깨어 있는 눈을 찾게 되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책 본문에 들어가면 남도(南道)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절 43 곳을 “옳거니 그르거니 내 몰라라”, “산이든 물이든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이라네”라는 선향(禪香) 가득한 네 개의 문구로 나누어 각 절마다 작가가 직접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절에 얽힌 전설들, 작가의 감상들을 7~8 페이지의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중 승보 종찰이 된 조계산 송광사 못지 않게 역사적 유례가 깊은 동명사찰인 종남산 송광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신의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손녀 딸 몸을 빌어 아들 내외를 혼내준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지리산 칠불사,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공포 소설인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에서도 소재로 쓰였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절은 절하는 곳이다”라는 소개글이 달린 영구사 운주사 등이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작년 이맘때 참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금강스님/불광출판사)>인 바로 달마산 미황사 소개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작년에 저 책을 일고 앞으로 남도로 떠나는 내 여행 길에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와 함께 금강스님이 보내주신 초대장인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이 함께 할 것이며 오래전부터 꿈꿔온 보길도 여행길에 미황사에서 들려 한 참을 머무르게 될 것 같다고 감상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사찰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시는 금강스님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P.57~58)을 설명하는 문구인 

“미황사 노을에는 금강 스님의 발원이 담겨 있다. 미황사 노을이 절과 땅끝 마을 사람들, 서해 바다와 외로운 섬들을 한 가지 빛깔로 물들이듯, 스님의 마음 또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차별 없이 신명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59 

라는 미황사 소개글 마지막 문구를 읽고 나니 미황사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또한 나처럼 불상을 향해 절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노악산 남장사 편 머지막 문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불상을 향해 절하는 이를 우상을 믿는 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장사의 소박한 법당 앞에 무심코 한번 서보거나, 자기 내면에 자리한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법당 마룻바닥에 앉아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그렇다. 불상이란 우상이 아니라 순간적이나마 삼독三毒을 씻고 홀연히 만나야 할 미소 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P.217 

즉 종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해보는 일종의 거울로서 불상을 대하라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작은 흉터는 그냥 지나쳐 버리듯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찬찬히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슴 속 수많은 생채기들을 발견할 수 있고 결코 풀릴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가슴 속 응어리 또한 어느새 풀어낼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그래서 다음 번 절에 갈때는 나도 대웅전 부처님 앞에 서서 내면의 자화상과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절을 올려봐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남도 여행은 줄곧 계획만 세울 뿐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는 지라, 설사 절에 가봤더라도 유명 대찰(大刹) 위주였는지라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모두가 가본 곳이 한 곳도 없어 그저 이렇게 책으로만 가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한정된 분량에 많은 절들을 소개하다 보니 각 절들의 보다 많은 정취와 풍광을 접할 수 가 없던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여운에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을 들춰 보았다. 남도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절들이 눈에서 쉬이 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번 본가인 대전에 내려갈 때 이 책을 아버지께 선물해드릴 예정이다. 남도 쪽 절을 자주 찾아가셨던 터라 아시는 절도 많으셔서 꽤나 반가워하실 것 같다. 그리고 언제 떠날지 모를 나의 남도 답사 여행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와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과 함께 이 책 <절은 절하는 곳이다>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절들의 풍경 속에 나 자신도 하나의 풍경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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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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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배가 불러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배고픔이 잊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상은 나도 모르게 현실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충족시키는 훈련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것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기택 시인. “[ESSAY] '배고픔'에도 맛이 있었던 것 같다” - 조선일보 2010.10.07.)

종종 보릿고개를 겪은 어르신들의 추억담을 듣곤 한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던 그 시대를 겪어왔던 그분들에게 그 당시에는 배고픔이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오늘날 돌이켜보면 배고픔(虛飢)의 고통이 오히려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배고픔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자신을 시인이 되게 하였다는 김기택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너무 흔해 배고픔은 옛말이 되었다고 하지만 방학 중 굶는 결식아동이 한 해 22 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배고픔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무상급식 논쟁을 보면서 어처구니없던 것이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고 받아들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강변하는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의 주장이었다. 가난과 배고픔을 겪어온 어른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만은 그런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에서였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자라나는 너희들도 어른들을 본받아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은 배고픔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전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말일 것이다. 서두부터 배고픔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의 <허기의 간주곡(원제 Ritournelle De La Faim /문학동네/2010년 12월)>을 읽고 책에서 말하는 “허기”의 의미가 분명치 않아 인터넷을 검색했다가 “결식아동”과 “무상급식”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괜한 감상(感想)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하자.

이 책은 시대적 격변기였던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한 소녀의 성장과정을 그려낸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파리의 부유한 상류층의 소녀였던 “에텔”은 부모의 불화로 결코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했던 종조부 “솔리망”의 보살핌으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그녀에게 러시아 망명자의 딸이었던 “제니아”를 만나게 되면서 우정의 소중함과 함께 제니아가 겪는 배고픔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열세 살이 되던 해 종조부 솔리망의 죽음을 겪으면서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에텔에게 남겨진 종조부의 유산을 탕진해버리면서 에텔의 삶 또한 평온함을 점차 상실해 간다. 한편 어린 시절 자신의 집 “살롱”모임에 드나들던 영국 청년 “로랑 펠드”와 사랑에 빠지면서 에텔은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파리로 진군한 나치를 피해 에텔과 그의 부모는 “니스”로 피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쟁의 상흔과 곤궁을 몸소 겪어나가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피난처에서 다시 만난 아버지의 정부(情婦)이자 불화의 근원이었던 “모드”는 더 이상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고, 연인 로랑과는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만남을 이어간다. 어느덧 긴 전쟁은 끝이 나고 로랑과 결혼한 에텔은 파리에서의 신혼생활을 보내던 중 니스에 머물러 있던 아버지의 부음(訃音)을 듣게 된다. 에텔은 홀로 남은 어머니에게 파리에서 같이 살자고 권유하지만 어머니는 니스에 남기로 한다. 전쟁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온 몸으로 견뎌온 에텔은 이제 온전한 어른이 되어 시대를 살아간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해 썼다는 이 소설은 첫 느낌이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에텔의 친구 제니아의 등장이 “데미안”처럼 에텔의 삶을 이끌어나갈 계기가 되겠거니 했는데 제니아는 유년시절 잠시 잠깐의 우정으로만 남게 되면서 <데미안>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텔의 성장을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전 유럽에 몰아닥친 시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온했던 삶이 종조부의 죽음과 아버지의 파산, 그리고 전쟁에 휩싸이면서 급변하게 되고, 결국 에텔은 이러한 시대 상황의 변화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고난의 삶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겪은 온갖 역경 -여기에서는 “허기”로 표현된다 - 들은 그저 고통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허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시절,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 기나긴 세월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지 못 했을 것이다. - P. 312

즉 에텔에게 “허기”는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장치이자 앞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셈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배고픔의 고통을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승화시킨 어르신들이나 시적 상상력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던 김기택 시인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술되지 않았지만 그 후 에텔의 삶 속에서 그녀가 겪게 될 또 다른 아픔과 슬픔의 시간들도 그녀가 겪어온 “허기”의 기억으로 잘 이겨냈을 거라는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어찌 보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그동안의 소설이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 도 있지만 한 여인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 시대 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 솜씨가 역시나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다만 2차 세계 대전 전후 유럽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인명이나 지명, 사건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다 보니 주인공이 겪게 되는 온갖 고난과 심적 변화에 대해 충분한 공감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추후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고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좀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책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 지금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내 생각은 그들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바랄 것 -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도 이겨낼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 이 아니라 이겨낼 수 있도록 보살피고 지원하는 것이 맞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부(富)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극명하게 나뉘는 이런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龍)난다”라는 속담이 유효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꿈마저 잃어 버리는 그런 참담한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허기"라는 책 제목 때문에 괜한 생각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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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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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인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원제 A Confederacy of Dunces /도마뱀/2010년 12월)>에는 “걸작 코미디”, “대단한 서사 코미디”, “지성과 세련된 기교의 고급 코미디”, “가장 웃기는 책들 중 하나”라는 요란스럽기까지 한 찬사들이 붙어있다. 찬사만 본다면 재미있고 유쾌한 책 일 텐데 읽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코미디물- 책, 드라마, 영화 장르를 불문하고 -을 소문 때문에 접해봤지만 당최 그들의 농담과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 실망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기발한 착상과 유머감각으로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더글러스 애덤스 저)>도 허무개그 같은 영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해 결국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었고, 가끔 빅 히트한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들도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 공감하기가 영 난감하기만 했다. 그나마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면 어린 시절 즐겨 본 미국 TV 시트콤인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 정도였을 뿐이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읽기 시작한 560 여 쪽의 이 책, 결론적으로는 역시나 내 우려가 맞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참 난감한 책읽기이었다.

책 표지를 보면 빨간색 외투를 입고 초록색 목도리를 걸치고 있는, 그리고 초록색 사냥 모자와 그 위에 새 한 마리가 올라가 있는 - 처음에는 새 인형이 장식되어 있는 독특한 모자인 줄 알았다. 책 말미에 주인공이 펼친 일대 난장판에서 앵무새가 주인공 귀를 무는 장면을 보고서야 알았다 -만화풍의 한 남자가 그려있다. 뚱뚱한 몸집에 짙은 콧수염이 마치 “슈퍼 마리오”를 연상시키는 이 남자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이다. 우스꽝스러운 표지 그림만 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표지를 펼쳐보면 제일 먼저 “서문”이 나오는 데, 특이하게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출간한 “워터 퍼시”가 쓴 글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즉 자신의 첫 작품에 확신이 있었지만 출판사마다 퇴짜를 맞고, 건강악화에 우울증, 어머니와의 불화가 겹치면서 32세의 나이에 자살한 작가, 결국 아들이 죽은 후 어머니가 아들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을 전전하다가 남부문학의 대가라는 “워커 퍼시”를 만나면서 사후 11년 만에 작품이 출간되고, 이듬해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단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출간 사연을 다시 읽어 보니 엉뚱한 주인공 이그네이셔스가 바로 작가 자신, 즉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는 우울증과 편집증으로 끝마쳤지만 이그네이셔스는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를, 뻔뻔함과 황당함으로 백세를 누리고도 남겠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의 이력을 살펴보자. 표지 그림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외형적으로는 뚱뚱한 거구에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삼십 세 청년이다.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록 잠시지만 강사로 대학 교단에도 섰었으며, 매일같이 현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장문의 글을 쓸 정도로 “유식”한 인텔리라고 할 수 있는 데 이 친구, 옮긴이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엉뚱한 청년이다. 직장이라고는 대학 교단과 도서관 사서로 잠깐 일했을 뿐 버텨내지 못하고 집에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백수인 주제에 툭하면 큰소리치고 악기를 연주해서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길에서 불신 검문하는 경찰과는 한바탕 댓거리를 하기도 한다. 종종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문(幽門) -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 부분이라는데 여기가 열려 있으면 십이지장액이 위로 역류하여 속이 쓰리고 종종 구토를 하게 된다고 한다 - 이 열리는 통에 항상 신경이 유문에 쏠려 있다. 이 팔자 좋은 청년이 어느날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를 내서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되는 불운을 만나는 바람에 취업 전선에 나서게 된다. 요행히 유행 지난 바지를 만드는 회사인 “라일리 팬츠”에 취직하지만 순진한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 - 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 을 일으켰다가 짤려 버리고, 핫도그 노점상으로 나섰다가 팔라는 핫도그를 죄 먹어버리지 않나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권익을 위해 동성애자 정당 “평화당” 건설을 주도하기도 하는 등 엉뚱하고 기괴한 소동을 연이어 벌인다. 결국 정신병원에 넣어 버리려는 어머니의 음모(?)에 맞서 자신의 전 애인이자 역시나 데모꾼인 “머나”에 의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고 탈출하게 된다. 주인공 외에도 참 많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엉뚱한 인물들 일색이다. 결국 이 책은 1960년대 60년대 뉴올리언스에서 벌이는 주인공과 주변인물이 어우러져 벌이는 일대 소동극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그네이셔스가 벌이는 각종 소동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책 마지막 장을 덮을 정도로 나름 재미와 몰입도가 있는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소동들이 앞에서 언급한 세련되거나 지적인, 또는 가장 웃긴다는 찬사들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몇몇 장면에서는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어이없어 지은 헛웃음들이라고 평가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또한 이그네이셔스가 일기처럼 써대는 장문의 글들도 현대 문명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라기보다는 머리에 헛된 망상만 가득 찬 한남자의 넋두리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평(好評)이 여러 편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는 이 책의 텍스트만 읽었을 뿐 텍스트 행간의 속 뜻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도 있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다를 수 도 있겠지만.

 참 독특하고 색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대체 공감할 수 없는, 나에게는 난감하기만 했던 이 책, 결국 서양식 유머와 풍자가 나에게는 이해불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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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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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히가시노 게이고”의 국내 출간 작품 -외서(外書)를 제외하고 국내에 번역된 작품만도 근 50여 권에 달한다고 한다 - 들 중에서 내가 읽은 작품이 일곱 편에 이르는데, 그의 작품이라면 꼭 챙겨 읽은 열혈 팬들에 비하면 오히려 몇 권 안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작품 수가 많다 보니 작품마다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편차가 있긴 하지만 어느 책을 골라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의 공통된 평가이며 나 또한 내가 읽은 그의 작품들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지라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다. 이번에 여덟 번 째로 읽은 그의 작품인 <플래티나 데이터(원제 プラチナデ-タ/서울문화사/2011년 1월)>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재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도쿄 시부야의 한 모텔에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베테랑 형사 “아사마” 반장은 상사의 지시로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과 음모를 “경찰청특수해석연구소”에 전달하는데, 연구소에서는 DNA 프로파일러 기법으로 범인의 신상명세와 몽타주는 물론 범인의 친족(親族)까지 밝혀내고 사건은 간단히 종결된다. 이처럼 DNA 수사기법의 놀라운 성과로 국회에서는 개인 DNA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각종 흉악 범죄에 DNA 수사기법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범인 검거율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는 개가를 올린다. 그러던 중 동일 범인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인 남성 정액(精液)까지 채취되면서 여느 사건과 같이 금세 해결될 것으로 보였지만 연구소의 회신 결과는 뜻밖에도 “Not Found"로 밝혀지며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DNA 수사 시스템 구축 책임자인 “가구라” 주임은 DNA 검색 시스템 개발자이자 천재 수학자인 ”다테시나“ 남매를 찾아가는데, 남매는 ”Not Found"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말만 전하고는 가구라 주임이 치료 - 이중인격(二重人格) 소유자로 나오는데, 매주 한번 씩 또 다른 인격인 “류”를 불러내는 일종의 병원 치료를 받는다 - 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사이 그만 총으로 살해당하고 만다. 남매를 살해한 총탄이 기존 “Not Found" 사건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지고, 시신에서 발견된 모발은 연구소에서 수거, DNA 분석을 마치고 범인의 신체적 특징과 몽타주가 가구라 주임의 핸드폰으로 전송되는데, 가구라 주임은 크게 놀라게 된다. 핸드폰에 전송되어 온 범인의 얼굴이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가구라 주임은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인 “류”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면서 분석 시트를 조작하여 은폐를 하려고 하지만 결국 발각되고 류가 그리던 그림의 모델이자 류와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주장하는 의문의 소녀 “스즈랑”과 함께 도피하게 된다. 도쿄에서 다테시나 남매의 은신처, 다시 도쿄로 이어지는 기나긴 도피 끝에 가구라 주임과 그를 추적하던 아사마 반장은 마침내 의외의 인물이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고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플래티나 데이터"와 관련된 음모의 전말을 알게 된다. 

  이번 책은 내가 만나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과는 색다른 경향이 느껴졌다. 우선 이번 작품이 그가 선보여온 정통 추리소설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분명 연쇄 살인 사건이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는 반전 등 추리 소설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그동안 보여준 정교한 트릭이나 플롯을 이용한 허를 찌르는 반전 대신 사건 배후에 숨겨진 “음모(陰謀)”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사회파” 추리소설 - 탐정추리나 트릭위주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나 시스템적 오류를 중시하는 소설을 말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들 수 있다 - 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Not Found" 연쇄살인사건의 경우처럼 증거나 알리바이 조작, 밀실 트릭 등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한 트릭의 허점을 단번에 깨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DNA 수사기법이라는 최첨단 과학 수사 방식 -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한 두 가닥의 모발과 미세한 피부조직 만으로도 범인의 신체적 특징과 혈연관계, 99%까지 일치하는 정확한 몽타주가 나오는 이상 시간 조작이니 밀실 트릭이니 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 이지만 시스템적 오류나 과학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시스템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 언제든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오히려 특권 계층을 비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과학과 전혀 상반되는 초자연적인 요소들, 즉 가구라 주임이 완전 별개되는 또 다른 인격체를 가지고 있다는 “이중인격”으로 설정하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의문의 소녀 스즈랑의 정체 등 과학이 결코 밝혀낼 수 없는 또 다른 사건들도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커져서 이런 소설을 썼다기보다는 더 이상 추리소설 전통 기법이 유효하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일종의 “작가”로서의 반발심 -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 "CSI" 등에서 보여주는 과학 수사에 대한 작가의 비웃음일 수도 있겠다 -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체계적인 논거가 미흡하고 일부 비약하는 면도 없지 않지만 갈수록 의존도가 심해지는 과학 기술에 대한 작가의 경계심만큼은 이 책을 통해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손가락 지문을 뭉개버려 피해자의 신원을 못 밝혀내거나(-><용의자 X의 헌신>), 결정적인 증거였던 비디오의 촬영 시간 조작이라는 기초적인 트릭에 휘둘리는(-><악의>) 등 전작들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DNA 수사가 본격 도입되면서 경찰은 탐문 수사나 증거 확보 등 전형적인 수사를 전혀 할 필요 없는, 그저 시스템이 일러준 대로 범인을 체포하는 들러리로 전락해버리고, 물샐 틈 없이 구축된 경찰의 포위망을 전혀 도주 경험이 없는 초보자나 다름없는 가구라 주임이 너무 손쉽게 벗어나 버리는 등 일본 경찰에 대한 냉소(冷笑)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가 형사”라는 명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도 여러 편 되고, 이 작품에서도 디지털적인 가구라 주임과 정반대인 아날로그적 인물인 아사마 반장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일선 경찰 개개인에 대한 폄하라기 보다는 일본 경찰 전체 시스템에 대한 비웃음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전작들과는 다른 경향의 이번 책에 실망스러워 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서평들을 보면 호불호(好不好)가 나뉘어 있다 - 개인적으로는 500쪽이 넘는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몰입도와 재미가 뛰어난,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 작품으로 평하고 싶다. 또한 이번 작품의 일본 현지 출간이 2010년이니 가장 최신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사회파” 추리소설 경향 - 그의 전작들을 모두 읽지 않아서 그의 기존 작품 중에도 사회파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 이 일회성(一回性)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어질지 알 수 는 없지만 좀 더 묵직한 주제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담긴 작품들이 계속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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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가의 살인 -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이야기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자음과모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 매니아를 자처하는 나에게 그동안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최고의 명탐정(名探偵)이 누구냐고 물어온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의 “셜록 홈스(Sherlock Holmes)”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Mary Clarissa Christie)”의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나 "미스 마플(Jane Marple)"에 더 애정을 갖고 있음에도 셜록 홈스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가장 처음 읽었던 추리 소설이 바로 “홈스 시리즈”- 주변에 나처럼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가장 먼저 읽은 추리소설이 홈스 시리즈와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의 “아르센 뤼팡(Arsene Lupin)”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종종 홈즈와 루팡, 누가 더 뛰어나냐를 가지고 친구들과 자주 다퉜던 기억이 난다. 마치 "로버트 태권 V"와 “마징가 Z"랑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로 다투듯이^^ - 여서 “셜록 홈스는 곧 명탐정” 이라는 각인(刻印)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셜록 홈스를 추종하는 팬들을 일컫는 신조어인 “셜록키언(Sherlockian)"- 전세계에 걸쳐 500여개에 이르는 셜록키언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란 말이 영어 사전(辭典)에 등재되고, 그가 살았다는 런던 베이커가 221번지는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아직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하며, 추리소설 베스트 셀러 목록에는 항상 셜록 홈스 시리즈가 랭크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후배 작가들에 의해 수많은 속편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니 말이다. 최근에 읽은 <베이커가의 살인;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이야기(원제 MURDER IN BAKER STREET/자음과모음/2006년 12월)>도 현대 추리소설계에서 각자 명성을 날리고 있는 후배 작가들이 선배 작가인 “코넌 도일”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獻辭)”와 같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 11편을 소개하는 데, 특이하게 베이커 가를 운행하는 마부(馬夫)가 화자(話者)인 <홈스를 태운 마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존 시리즈처럼 홈스의 영원한 동반자 “왓슨”이 홈스와 겪은 기묘한 사건들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처럼 "다른 작가들이 원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만든 새로운 작품"을 “패스티슈(Pastiche)라고 부른다는 데, 주로 문학에서 특정 작품의 소재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패러디(Parody)"와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차용하는 “오마주(Hommage)"와는 철저하게 선배 작가의 구성이나 문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그대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된 11편 모두 기존 홈스 시리즈를 읽어본 독자라면 코넌 도일의 숨겨진 작품이 출간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인물들과 전개를 그대로 맛볼 수 있다. 다만 현대의 유명 작가 - 사실 여기서 언급한 작가들은 나에게 생소하기만 하다 - 들이 새롭게 재해석하고 창조해낸 셜록 홈스를 기대한 독자들이라면 실망스러울 수 도 있겠지만 기존에 출간된 홈스 이야기 와 같은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 이뤄진 또 다른 모험을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제격인 작품이라 하겠다. 11편 모두 고른 재미를 보여주고 있어 딱히 어느 편이 더 재미있다고 고르기가 힘든데 그 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이 깜짝 등장하는 두 편이 인상 깊었는데, 바로 바로 <드라큘라(Dracula)>의 저자 “브램 스토커(Bram Stoker)”가 나오는 <흡혈귀에 물린 자국> 편과 영국의 유명한 모험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Richard Francis Burton)이 등장하는,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을 발굴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그린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이다. 특히 “에이브러햄 스토커”- 누가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는 이름으로 살짝 바꿔놓았다 - 로 등장하는 브람 스토커는 홈스 덕분에 흡혈귀로 위장한 사건을 해결하고 또한 홈스가 얘기해 준, 실제 드라큘라의 모델로 유명한 루마니아의 “블라드 체페슈” 공작을 모델로 흡혈귀 소설을 쓰게 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후배 작가들이 코넌 도일과 다른 실존 인물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익살 - 그렇다고 패러디와는 전혀 다른 - 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이 외에도 원저자인 아서 코넌 도일이 자신의 주인공인 “셜록 홈스”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있는 프롤로그인<셜록 홈스에 대해 말하다>에서는 홈스를 실제 인물로 착각한 독자들이 정말 많았으며 셜록 홈스의 실제 모델이 누구였는지를 들려주고 - 홈스가 그의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대결에서 죽자 그의 죽음을 반대하는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로 결국 되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일화는 홈스의 팬이라면 누구도 잘 알고 있을 유명한 일화이다 - , 책 말미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연극, 영화, 텔레비전이라는 영상 산업에서 ‘셜록 홈스 시리즈’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연대기 순으로 설명하는 <셜록 홈스 탄생 100년>과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홈스 관련 어휘들을 소개하는 <아서 코넌 도일의 단어> 편이 실려 있어 홈스에 대한 상식 면에서도 읽을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셜록 홈스에 대한 패스티슈 작품은 이번 작품이 처음인데, 어린 시절 읽었던 홈스를 다시 읽는 것 같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물론 이제는 고전(古典)이 되어 버린 셜록 홈스 시리즈를 능가한 기막힌 트릭과 반전의 재미를 보여주는 현대 추리 소설들이 물밀듯이 출간되고 있지만, 어릴 적 우상인 셜록 홈스는 명탐정의 대명사로서 나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다. 그동안 코넌 도일 작품이 아닌 후대의 홈스 이야기는 괜히 꺼려 왔는데 이번 작품을 읽어 보니 원작에 버금가는 작품들도 제법 있어 이제는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최근 유명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와 “주드 로(Jude Law)”가 각각 홈스와 왓슨으로 나온 영화 <셜록 홈즈(2009)>- 홈스의 추리 솜씨보다는 액션과 모험을 너무 강조해서 기존 홈스 팬들에게는 원성을 샀다고 한다. 나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 가 큰 인기를 끌고, 심지어 홈스의 대명사인 파이프 담배와 사냥 모자를 버리고 “스마트 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21세기 판 셜록 홈스가 드라마로 나오는 것을 보면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셜록 홈스”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명탐정의 대표 “아이콘(Icon)"으로서 계속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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