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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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따라 절에 자주 가곤 했지만 부모님께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는 동안 나는 밖에서 주변 풍광들을 구경하곤 했다. 절 자체의 고즈넉함을 좋아할 뿐 종교로서 불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도 처음엔 나와 같은 생각이셨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몇 번을 권유하셨지만 요지부동이셨던 지라 어머니께서도 권유를 포기하시고 혼자 절을 올리시고 아버지께서는 나처럼 대웅전(大雄殿) 마당에서 탑과 탱화들을 둘러보시곤 하셨다. 그러시던 아버지께서 지금은 절에 가시면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신다. 아버지께서 절을 올리기 시작한 때가 바로 하시던 사업이 실패하시고 친구 분께 서주셨던 보증이 잘못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던 시절 무렵부터라고 한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으로 심사가 어지러우셨던 아버지께서 대웅전 부처님께 간절히 절을 올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절로 마음이 움직여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게 되었고, 어느새 가슴 속에 맺혔던 울분과 원망이 말끔히 씻겨나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셨다고 한다. 지금도 불교를 정식으로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 - 그 대상이 부처님일 수 도 교회의 예수님일 수도 있다. 즉 대상을 한정하지 말고 - 에게 무릎을 꿇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다 보면 교만했던 마음이 절로 사라지고 지극히 겸손해짐을 깨닫게 되고 욕심으로 들끓었던 마음도 어느새 평온함을 되찾게 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절에 가시면 꼭 어머니와 함께 절을 올리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지금부터 소개하는 정찬주 작가의 남도 절 순례기인 <절은 절하는 곳이다(이랑/2011년 2월 14일)>을 보신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싶어 책 표지 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작가 이력을 살펴보니 작년에 참 감명깊게 읽었던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소유>를 쓴 바로 그 “정찬주” 작가였다, 그 책에서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으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순례한 남도의 작은 사찰들을 소개하는 글을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은 경상도와 전라도 제주도의 작은 절들과 인연 따라 조우한 순례의 기행문이라고 이야기하며 작가 스스로가 자신에게 추천한 작은 절들만 찾아 떠난 자연스러운 여정으로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자신을 맑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 글을 쓴 동기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법당에 들어 절하는 것이 더욱 절절해지는, ‘아! 절은 절하는 곳이구나“하는 단순한 깨달음을 자각한 것처럼 독자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무심코 순례하다 보면 자기 자신만의 깨어 있는 눈을 찾게 되리라고 권유하고 있다. 

책 본문에 들어가면 남도(南道)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절 43 곳을 “옳거니 그르거니 내 몰라라”, “산이든 물이든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이라네”라는 선향(禪香) 가득한 네 개의 문구로 나누어 각 절마다 작가가 직접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함께 절에 얽힌 전설들, 작가의 감상들을 7~8 페이지의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중 승보 종찰이 된 조계산 송광사 못지 않게 역사적 유례가 깊은 동명사찰인 종남산 송광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신의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손녀 딸 몸을 빌어 아들 내외를 혼내준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 지리산 칠불사,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공포 소설인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에서도 소재로 쓰였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절은 절하는 곳이다”라는 소개글이 달린 영구사 운주사 등이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작년 이맘때 참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금강스님/불광출판사)>인 바로 달마산 미황사 소개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작년에 저 책을 일고 앞으로 남도로 떠나는 내 여행 길에는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와 함께 금강스님이 보내주신 초대장인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이 함께 할 것이며 오래전부터 꿈꿔온 보길도 여행길에 미황사에서 들려 한 참을 머무르게 될 것 같다고 감상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사찰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시는 금강스님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P.57~58)을 설명하는 문구인 

“미황사 노을에는 금강 스님의 발원이 담겨 있다. 미황사 노을이 절과 땅끝 마을 사람들, 서해 바다와 외로운 섬들을 한 가지 빛깔로 물들이듯, 스님의 마음 또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차별 없이 신명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59 

라는 미황사 소개글 마지막 문구를 읽고 나니 미황사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또한 나처럼 불상을 향해 절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노악산 남장사 편 머지막 문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불상을 향해 절하는 이를 우상을 믿는 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장사의 소박한 법당 앞에 무심코 한번 서보거나, 자기 내면에 자리한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법당 마룻바닥에 앉아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그렇다. 불상이란 우상이 아니라 순간적이나마 삼독三毒을 씻고 홀연히 만나야 할 미소 짓는 우리 내면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P.217 

즉 종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해보는 일종의 거울로서 불상을 대하라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작은 흉터는 그냥 지나쳐 버리듯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서 찬찬히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슴 속 수많은 생채기들을 발견할 수 있고 결코 풀릴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가슴 속 응어리 또한 어느새 풀어낼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그래서 다음 번 절에 갈때는 나도 대웅전 부처님 앞에 서서 내면의 자화상과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절을 올려봐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남도 여행은 줄곧 계획만 세울 뿐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는 지라, 설사 절에 가봤더라도 유명 대찰(大刹) 위주였는지라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들 모두가 가본 곳이 한 곳도 없어 그저 이렇게 책으로만 가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한정된 분량에 많은 절들을 소개하다 보니 각 절들의 보다 많은 정취와 풍광을 접할 수 가 없던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여운에 쉽게 책장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을 들춰 보았다. 남도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절들이 눈에서 쉬이 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번 본가인 대전에 내려갈 때 이 책을 아버지께 선물해드릴 예정이다. 남도 쪽 절을 자주 찾아가셨던 터라 아시는 절도 많으셔서 꽤나 반가워하실 것 같다. 그리고 언제 떠날지 모를 나의 남도 답사 여행에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와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과 함께 이 책 <절은 절하는 곳이다>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절들의 풍경 속에 나 자신도 하나의 풍경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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