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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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몇 년 새 우리 문학과 사상계의 큰 별들이 유명을 달리 하셨다. 특히 작년(2010년)에는 참 크신 선생님들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욕심에서 해방될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일깨워 주신 <무소유(無所有)>의 故 법정 스님(2010.3.), 우리 시대 최고의 번역가이자 신화학자로 서양문명의 뿌리인 그리스·로마 신화를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던 高 이윤기 선생님(2010.8.), 그리고 우리시대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자 ‘사상의 은사 -프랑스 르몽드紙가 선생님을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 성함 앞에 저 호칭이 붙게 되었다 - 리영희 선생님(2010.12.)이 그분들이시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따라 붙게 되는 저 분들께서 차례로 영면(永眠)하시니 가슴이 텅 비어 버린 듯한 상실감과 슬픔이 느껴졌다. 그런데 2011년 새해 벽두부터 또 한 분께서 귀천(歸天)하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문인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박완서 선생님께서 향년 81세로 2011년 1월 22일 돌아가셨다. 인터넷이나 책 표지에서 그 분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어서 사진만 봐도 내 마음 또한 밝아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분의 환한 웃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여성 작가 작품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故 박완서 선생님은 챙겨 읽어 보는 몇 안 되는 여성 작가들 중 한 분이었다. 그 분 작품 중 읽은 책을 떠올려 보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등 3권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첫 출간인 1992년, 즉 20 여 년 전에 꽤나 감명 깊게 읽었었고, 부음(訃音)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르던 책이어서 이 책과 함께 연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함께 읽어봐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먼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지식하우스/2005년 9월)>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으로 그 분의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랠 수 있었던 소중한 책읽기였다.  

 이 책은 해방(解放)이전 일제 치하의 1930년대 개성 인근의 개풍군 박적골에서의 유년 시절과 엄마를 따라 올라온 서울에 살면서 해방 이후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의 삶을 그린 자서전(自敍傳)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작가도 여러 소설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인용해왔다고 하는데, 이 작품과 연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이 책에서는 스무 살의 성년으로 들어서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의 20대 이야기를 그렸다고 한다 - 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서 “기존 박완서 소설의 모태 혹은 원형”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한다.  출간후 지금까지 150만부가 넘게 팔렸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읽어본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어 굳이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싱아”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싱아”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싱아는 작가의 고향인 박적골 주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콤한 맛의 야생 과일이라고 하는데 나름 도시(대전) 출신인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박적골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시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추억, 즉 개천에서 물장구치고 산을 돌아다니며 산딸기와 싱아 등의 산열매를 따 먹었던 추억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작가가 일곱 살 무렵 자신을 끔찍이 아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숙부와 숙모들을 뒤로 하고 엄마를 따라 서울로 이사 오게 되는데, 가정 형편상 사대문 안이 아닌 문밖 빈민촌이라 할 수 있는 현저동에 살게 되면서 문안의 초등학교(그 당시는 국민학교)로 먼 길을 걸어서 통학하게 된다. 사는 곳이 달라 친한 친구도 없고 주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어머니 때문에 외로울 수 밖에 없는 통학길, 길 주변 산에 들어가 봐도 고향 박적골처럼 싱아와 같은 야생과일도 없고 낯선 아카시아 꽃만 가득한 그 곳에서 작가는 제목처럼 “(고향에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하고 푸념처럼 중얼거린다. 여기서 싱아는 남겨 두고온 고향의 그리운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깨벗고 뛰 놀던 고향의 시냇가와 동네 산 등 바로 유년시절의 “박적골”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에서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함께 뛰놀던 동네 소꿉친구들, 산 여기저기 흐드러진 산 열매들과 먹을거리로 행복했던 그녀가 서울에 와서는 어울릴 친구 하나 없이 먼 통학길을 외롭게 다녀야 하고 학교에서도 선생님께 주목받지 못해 겉도는 주변 아이가 된 자신의 처지를 고향을 상징하는 “싱아”의 상실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즉 “싱아”는 바로 작가의 유년시절의 행복을 상징하는 척도이며 그 싱아의 상실은 곧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 작가의 삶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어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는 호평(好評)도 많았지만 일제시대, 민족상잔의 비극, 독재 정권의 민주세력 탄압 등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던 현대사의 아픔에 대하여 치열한 자기반성과 고민이 보이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너무 매몰되었다는 비판도 있었던 걸로 안다. 출간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시절이었고,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조명한 인문서적이나 역사 소설들이 줄을 잇던 시절이라 작가의 개인적 시각에 한정된 시대 인식 - 물론 책에서 해방 후 잠시 좌익운동에 몸담았던 오빠 이야기나 역시 공산주의에 잠시 쏠렸던 작가의 관심, 6.25. 당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공산당원으로 이북에서 내려온 셋방 이웃 남자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한 죄로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 고생했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 이 마치 80,90 년대 인기 드라마였던 “갓난이”나 “몽실언니”, 즉 우리가 못 먹고 못살던 시절 가난의 설움을 강조했던 드라마들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 나또한 그런 생각에 자유롭지 않아서 작가의 이러한 시대 인식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 그 당시 비판했던 면면보다는 이제는 작가의 삶이 오롯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록 대학시절 필독 도서로 불렸던 어느 대하소설처럼 시대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일부러 비장감을 강조하거나 또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억지 꾸밈을 배제한 솔직 담백하고 진솔한 작가의 고백도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당시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잠시 접어두고 조금은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 “박완서”의 삶에 집중한다면 그분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올곧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 분의 글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분께서 남기신 소중한 글들을 이제라도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분의 글을 통해서 그 분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분의 환한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읽을 그분의 글들을 생각하니 절로 즐거워지면서도 다시는 그 분의 새 글을 만나볼 수 없다는 게 못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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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지식in 사전
조병일.이종완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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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연대기(年代記)순으로 공부하는 것이 정석(定石)이겠지만 그 방대한 내용에 지레 겁을 먹고 쉽게 포기하기가 일수이다. 그래서 우리 때 대입 학력 시험에서 “세계사(世界史)”는 외울게 너무 많다는 이유로 입시생들에게는 비인기 과목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도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수업이 그 어느 수업보다도 재미있었던 수업이었지만 막상 대입 시험에서는 세계사가 아닌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이었던 “지리(地理)”를 선택했었던 기억이 난다 - 뉴스를 보니 우리 때에는 필수 과목이었던 또 다른 역사 과목 국사(國史)도 최근에는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 . 그러나 역사는 굳이 역사책이 아니어도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또는 유수의 박물관이나 사적지(史蹟地), 관광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즉 언제 어디서든지 꼭 접하게 되는 “상식(常識)”으로서 그 가치가 무엇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역사 관련 서적들을 참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데, 교과서처럼 딱딱하고 두꺼운 역사책 보다는 위인(偉人)들의 숨겨진 에피소드 위주의 가벼운 읽을거리들에 더 쉽게 손이 가게 된다. 이번에 읽은 <세계사 지식 in 사전(조병일, 이종완 지음/연암서가/2011년 2월)>도 세계사를 빛낸 수많은 위인들과 굵직굵직한 사건 들 이면에 감춰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는 가벼운 역사 읽을거리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륙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강물이 필요하며 강물 또한 냇물이나 지류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이 책은 “유쾌한 지식의 가지에서 세계사의 뿌리를 찾는다”라는 소제목처럼 이런 역사의 지류ㅡ 세계사의 작은 물줄기를 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이 단순한 역사의 ‘입담거리’나 ‘통설’로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비록 그 내용이 빈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짧은 내용 속에는 역사의 큰 줄기가 존재하며, 주석과 박스 부분을 활용해 그 시기와 연대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했고, 참고문헌 또한 기록해 두었으니 눈여겨 봐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책에는 “사전(辭典)” 이라는 제목처럼 한글 자음 순인 “ㄱ”에서 “ㅎ” 까지 총 127개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 “바벨탑”과 “중세대학”은 1, 2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어 실제 콘텐츠는 125개라 하겠다. 물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몇몇 이야기는 박스 기사로 추가 설명하고 있기도 한다 - . 그런데 굳이 이렇게 자음 순으로 소개하기 보다는 연대순으로 또는 비슷한 주제들은 묶어서 소개 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몇 몇 이야기는 연관된 에피소드 임에도 자음이 달라 별도로 수록하고 있어 중복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예를 들어 십자군 이야기는 “소년 십자군”과 “십자군”. 두 개로 별도로 나누어 설명하고(물론 이야기 내용은 다르다), 지동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코페르니쿠스는 “코페르니쿠스” 편과 그의 제자이자 결국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다는 “조르다노 브루노” 편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차라리 주제별로 묶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실제 본문에 들어가 보면 한 단어 당 짧게는 2페이지, 많게는 4 페이지 정도 - 그것도 삽화나 박스 기사까지 들어가 있어 텍스트는 상당히 짧은 편이다 -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내용들은 역사 속 위인들이나 사건들 이면 속에 감춰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라 책은 쉽게 읽혀진다. 물론 다른 역사 책 들에서도 흥미 유발을 위해 본문 사이 사이 마다 박스 기사 형식으로 싣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역사 관련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 등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러한 자투리 이야기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게 느껴진다. 알고 있던 내용은 복습한다는 기분으로 모르던 내용은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으로 쉬엄쉬엄 읽다 보니 반나절도 안되어 금세 읽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책이 과연 작가의 바램대로 역사라는 큰 바다를 이루는 작은 물줄기와 지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저 에피소드의 나열일 뿐, 작가가 우려한 “입담거리”나 “통설”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겠다. 즉 소제목처럼 “세계사의 뿌리를 찾는다”는 거창한 목표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유쾌한 지식”이 주는 즐거움만큼은 인정할 만한 그런 책이라 하겠다. 이런 류의 짧막짧막한 에피소드 중심의 역사 읽을거리가 이미 참 많은 책이 출간되었는지라 그 책들과 차별화될만한 뚜렷한 차별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부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읽어볼만한 역사 읽을거리로써는 제격이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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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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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신 이윤기님의 마지막 유작(遺作)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1(민음사/2011년 1월)>을 받아들고 잠시 “영웅(英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영웅”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웅의 사전(辭典)적 정의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네이버 사전)”이라고 한다. 풀이해보면 개인적인 능력(지혜, 재능)이 평범 수준을 뛰어넘고 역시 평범한 사람이 하기 힘든, 후대에까지 길이 남을 만한 “업적(業績)”을 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웅은 역사 발전을 이끄는 “선구자”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도해야 할 대상 - 특히 소수의 영웅들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영웅사관(英雄史觀)”은 구시대적, 보수적인 역사관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으로 보통 사람들(民衆)의 삶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는 “민중사관(民衆史觀)”이 대두되기도 했다고 한다 - 으로 배척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영웅으로 칭송받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시대의 반역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위인(偉人) 전기의 단골 손님이었던 “칭기스칸”이나 “나폴레옹”은 그들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온 역사의 주역 - 변화의 결과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 은 틀림없지만 그들의 최대 업적인 “정복(征服)” 사업이 과연 정당했을까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특히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위대한 영웅일 수도 있겠지만 나폴레옹의 침략 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주변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끔찍한 전범(戰犯)에 불과할 수 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이처럼 영웅으로서의 진정성(眞正性)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그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만큼은 역사적 사실로서 한번쯤은 상기(想起)시켜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웅들의 “업적”에는 올곧이 동의하지 않지만 허구의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dramatic)한 삶을 살다간 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어본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런 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가 서양 문화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면 서양문화의 초석을 이루는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과 이스라엘 중심의 헤브라이즘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웅들의 본색을 되살피는 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경로로 우리의 언어에 삼투해 들어와 있는 서양 문화의 무수한 표현법과 수사법을 조명하고 여기에다 피를 통하게 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며 “이 희망이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대에도 통용되는 수많은 어휘들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는데, 즉 ‘감추어 둔 보물’을 뜻하는 이름 “테세우스”가 ‘사전(辭典)’을 뜻하는 영어의 ‘서서로스(thesaurus)"와 무관하지 않고,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신지인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부르던 ’바르바로이(Barbaroi; 구시렁거리는 자들)'가 바로 오늘날의 야만인을 뜻하는 ‘바배리언(Barbarian)'의 어원이라고 밝힌다. 이처럼 오늘날 서양 언어의 기원이 바로 그리스 신화와 영웅 이야기에서 유래된 사례가 많은 만큼 그 연원을 돌이켜 보는 것 또한 의미 있다는 말인 셈이다. 

본문에 들어가면 신화(神話)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인간(人間)들의 시대, 즉 역사(歷史) 시대 속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1권에서는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 “세계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스파르타의 아버지 뤼쿠르고스”, “현자 솔론”, “공명한 의인 아리스테이데스”을 소개하고 있다. 분명 역사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하는 데, 신화 시대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테세우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의외다.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그리스 영웅으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서 자신의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작은 나그네는 늘여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긴 나그네는 남는 부분을 잘라서 죽인 도둑인 “프로크루스테스(두드려서 펴는 자)”를 같은 방식으로 죽여 버렸으며 크레타의 미궁(라뷔린토스)” 속의 반우반인(半牛半人)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테세우스는 과연 실제 인물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책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 열전>에도 첫 시작이 아테나이의 건설자 테세우스와 로마의 건설자 로믈루스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원래 실존했던 테세우스에 신화적 요소가 덧 입혀져 오늘날 신화적인 영웅담이 더 부각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테세우스를 민주주의(democratism)를 지향하는 최초의 통치자, 즉 인민(demos)의 힘(kratos)을 바탕으로 나라는 다스린(kratein) 최초의 민주주의자(Democrat)였다고 하며, 흩어져 있던 아티카 지방 주민을 아테나이로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치적(治積)도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각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매 페이지마다 각 영웅들의 모험담과 연관된 신화 전설을 그린 명화(名畵)들과 유물 사진들, 그리고 삽화들을 싣고 있어 시작적인 즐거움을 함께 주고 있다. 그림들이 많이 포함된 책들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라 우선 텍스트(TEXT) 위주로 읽고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시 읽으니 책을 새로 읽는 것 같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언어만큼이나 서양 회화, 조각, 건축 또한 그 연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서양 미술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읽어라 라는 충고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책은 원래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로 지면의 한계 때문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로 보충하고,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으로서 시각적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 새로 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의도에 걸맞게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 두 가지 재미를 모두 만족 시켜 주는 멋진 책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2권에서는 페리클레스에서 카이사르까지 다루고 있다는데, 책이 그 이후로 계속될 예정인지 아니면 2권으로 기획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 이 책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카이사르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더 나오니 시리즈가 계속 연결되었을 수 도 있고, 작가가 기획, 감수하고 따님인 이다희씨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란 시리즈가 별도로 출간되고 있는 것을 보면 2권으로 끝났을 수 도 있겠다 - 그저 서양 고전에 대한 기계적인 번역 출간물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이해가 곁들어진 “우리 식(式)”의 영웅 열전이 계속 이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시대 최고의 번역가 - 움베르트 에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작품들을 보면 이윤기님의 이름을 꼭 만나게 된다. 종종 다른 번역가 작품을 만나기도 하는데 사실 이윤기님의 번역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이자 우리 학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통 신화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윤기님이 작고하신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다행히 그 분 따님께서 아버지와 기획했던 유고(遺稿)들을 마무리해 주시고 있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계속 만나 뵐 수 없다니 아쉽기만 하다. 어렸을 적에는 그리스 신화하면 “토마스 불핀치”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제일 먼저 “이윤기”님을 떠올릴 정도로 신화(神話)에 대한 재미와 감동을 널리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작품들이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계속 읽혀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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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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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잠시 시골 살 때는 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지금은 도심 속에서 살다 보니 개와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뚝 끊겼다. 특히 사람을 잘 따르는 개와 달리 사람을 경계하고 마치 사람을 깔보는 듯한 특유의 시니컬한 눈빛이 영 마땅치 않은 고양이는 다욱 관심 밖의 그런 동물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고양이에 관한 책 - <고양이가 쓴 원고로 만든 책(폴 칼리토 / 월북)>, <행복한 길고양이(종이우산/북폴리오)> - 과 고양이 사진으로 유명한 블로거들의 글과 사진을 접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면서 저렇게 앙증맞고 이쁜 고양이라면 나도 한번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져 아내와 진지하게 상의를 해본 적이 있었다. 결국 고양이를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단독 주택이 아니라 이웃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라 “고양이 키워보기”는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껴안고 있는 고양이를 볼라치면 괜히 다가가서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단지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을 보면 어디서 사는지 괜히 따라가 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달랜 아쉬운 마음을 제대로 들쑤시는 그런 책을 만났다. 바로 시골 길고양이들을 담은 이용한의 <명랑하라 고양이(북폴리오/2011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전작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에서 도심 속 길고양이들을 담아 많은 애묘가(愛猫家들에게 절대적인 지지- 아쉽게도 전작을 읽어보진 못했다 - 를 받았다는 작가가 이번에는 여름에서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까지 1년 반 동안 만난 시골 길고양이들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도심에서는 여기저기서 발견하는 고양이 배설물, 고양이가 찢어 놓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악취, 한 밤에 들으면 마치 귀신소리처럼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이미 골칫거리로 전락해 고양이 번식을 막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나올 정도인지라 한적한 시골에서는 그래도 그런 위협은 없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오히려 도심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보금자리인 축사며 집들이 철거되어 하루아침에 쉼터를 잃어버리고 거리로 내몰리는 시골 길고양이들 삶도 결코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작가는 그런 시골 고양이들의 고단한 삶 뿐 만 아니라 누구 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애교 만점의 고양이들의 모습들을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담아낸 사진과 함께 일기를 쓰듯이 꼼꼼히 적어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마치 이래도 고양이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저렇게 이쁜 눈망울을 한 고양이가 아직도 괜히 꺼름직하냐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고양이들 중에 기억에 남는 고양이로 우선 그렇게 먹이를 줬건만 끝까지 고양이 특유의 시니컬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블로그 연재 당시에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바람이”를 들 수 있겠다. 3개월이 넘게 먹이를 줬음에도 그 모습조차 쉽게 보여주지 않았던 왕초 고양이 “바람이”,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면 경계의 몸짓을 보이며 달아나 버리기 일 수 이며 항상 뚱한 표정으로 작가의 집에서 키우는 집고양이들을 일순 경계하게 만드는 포스가 장난 아닌 이 고양이는 엉뚱하게도 먹이를 주는 작가에 대한 보답(?)으로 새를 물어다 주는 선물을 했다고 한다. 난감한 작가가 앞서 선물한 두 마리를 묻어주자 죽은 새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지 세 번째에는 살아있는 새를 선물했던 이 고양이, 끝까지 왕초 고양이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시니컬한 모습을 간직했던 바람이는 만난 지 일년 만인 어느 봄 날 기생충 감염으로 보이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긴급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갔지만 결국 완치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 - 이 책에서는 고양이의 죽음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라고 표현한다 - 건너고야 만다. 죽기 전날 찾아간 작가를 알아보는 듯한 묘한 눈 마주침을 하고 나서야 편안하게 잠들었다는 바람이 최후의 모습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는 절로 가슴이 짠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동네 파란 대문집 마당 고양이 -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 고양이 - 인 “달타냥”을 들 수 있겠다. 막상 주인인 홀로 사는 할머니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지만 달 빛에 담 타는 모습이 멋져 “달타냥” - 삼총사의 그 달타냥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 이라고 이름 붙인 이 고양이는 할머니가 마실 나갈 때 마다 마치 호위하듯 따라 걷기도 하고 문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하는 등 기특한 구석이 많은 그런 고양이였다. 볼 때마다 먹이를 줬더니 어느새 작가가 지나가면 따라 붙어 뒷동산을 같이 산책하기도 해서 “궁극의 산책 고양이”라고 지칭하는 이 고양이, 길고양이인 암컷 깜찍이와 사랑에 빠져 신혼집을 차려 새끼 다섯 마리 - 그 중에는 전혀 달타냥의 새끼라고 보기 힘든 검은 고양이이가 있어 작가는 깜찍이의 불륜을 의심하기도 한다 - 를 낳고는 홀대를 받기 시작하면서 짧게는 이삼일, 길게는 열흘 씩 집을 비우기도 한단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가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닌다니 여간 귀여운 녀석이 아니어서 한번쯤은 꼭 키워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녀석이다. 어디 인상 깊은 녀석들이 이 두 녀석 뿐이랴. 작가만 보면 벌러덩에 무릎 올라가기 신공을 펼쳐 보이는, “개냥이”라 부를 정도로 궁극의 접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어디선가 쓸쓸히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봉달이”, 개울가 방죽에 앉아 사색하는 모습에 철학자이자 소설가 이름을 붙여준 암컷 고양이로 폐가에서 새끼를 낳아 가족을 이뤘지만 집이 철거되면서 영역을 잃고 떠돌다가 새끼마저 잃고 자신 또한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불쌍한 고양이 “까뮈”, 어미 까뮈와 형제들의 죽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어엿이 성장한 두 형제 고양이 “당돌이와 순둥이” 등 한 마리 한 마리들의 “묘생(猫生)”이 사람들과 비교해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고양이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종의 “애묘가(愛猫歌)” 또는 “헌사(獻辭)”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앙증맞고 귀여운 고양이 재롱들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다가도 쓸쓸하게 죽어간 가엾은 고양이들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등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다 보니 어디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금세 다 읽어버리게 되었다. 작가는 마지막 4부 여름편의 부제(副題)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명랑하라 고양이”로 달아놓았다. 길 위에서의 묘생이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겨울 추위에 쓸쓸히 죽어가기도 하고,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돌에 맞아 한 쪽 눈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길고양이들을 죽이려고 풀어놓은 쥐약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 등 결코 명랑할 수 없는 고단한 삶인데도 작가는 길고양이들에게 명랑하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길고양이들의 삶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는 고양이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들의 별”에서의 안온하고 행복한 삶이 인간과 어우러지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도 꼭 이뤄지기를, 그래서 그들의 삶이 “명랑”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바람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보살피고 쓰다듬는데, 어떤 손은 길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고 막대기를 휘두른다. 어떤 손은 아름답고 어떤 손은 공포가 된다. 망설이는 당신, 길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어보라. 길고양이는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기다리고 있다.- P. 247 

 즉 이제는 더 이상 길고양이의 삶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그들이 삶이 온전히 “명랑”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덕분에 간신히 달래놓은 고양이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불쑥 내민다. 그러나 아파트에 사는 이상 집고양이를 키우겠다는 내 소망은 이루기가 여전히 요원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아파트 단지에서 종종 만나는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볼 생각이다. 먼저 가을까지 종종 눈에 띄던, 그 어느 해보다 모질었던 겨울 동안은 자취를 감췄던 우리 아파트 단지 길고양이 “냥이” 녀석을 찾아봐야겠다. 그래도 1월 중에도 가끔 나타나서 음식을 몇 번 준 적이 있다는 경비 아저씨 말씀을 들어보면 분명히 어딘가에 씩씩하게 살아있을 것 같다. 직접 찾아다니지는 못하지만 경비 아저씨께 고양이 사료라도 사 드려야겠다. 작가처럼 꾸준히 먹이를 줄 수 는 없겠지만, 먹이를 준다고 해서 그네들이 “달타냥”이나 “봉달이”처럼 내 품에 안겨 재롱을 떨지는 않겠지만, 그네들을 그저 거리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불쌍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네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무심히 외면하지 않고 가서 따끔하게 혼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운 손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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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셔스
사파이어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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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프레셔스(Precious)>을 처음 알게 된 건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였다. 제82회 아카데미 각색상, 여우조연상, 제25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특별상, 관객상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했다는 이 영화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두 아이까지 낳은 흑인 소녀 -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뚱뚱하고 못생긴 흑인 소녀의 모습은 사실 보기 좋은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 를 그린 영화라는데 소개로만은 그다지 새삼스럽거나 흥미롭게 느껴지진 않았었다 - 엄밀하게 말하면 일부러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영화였다 -. 이번에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프레셔스(원제 Precious / 사파이어 저/ 북폴리오/2011년 1월)>을 읽게 되었다. 영화가 그다지 끌리지 않은 터라 책도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 기구한 운명의 소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괜히 불편하다고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그런 책이었다. 

  16세의 소녀 “프레셔스”는 책 표지 사진처럼 지극히 뚱뚱하고 못생긴 할렘 출신의 흑인 소녀이다. 누구보다도 꿈 많을 나이였던 그녀에게 닥친 환경은 빛 한 점 비추지 않는 “암울” 그 자체였다. 7세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강간 - 의붓아버지라 해도 천인공노할 짓인데 친아버지였다 - 으로 12세에 첫 아이를 낳지만 다운증후군으로 보호시설에 맡기고, 16세에 다시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어머니 또한 보살피기는 커녕 아버지를 뺏은 창녀 취급하며 그저 부양가족으로 등록하여 복지수당을 타내는 수단으로나 이용할 뿐 갖은 학대를 다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수년 채 학교를 다니지만 알파벳조차 알지 못하는 문맹인 그녀에게 삶이란 그저 지옥보다도 못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다니던 학교 선생이 대안학교에 가볼 것을 권유하고 새 학교에서 “레인 블루” 선생님을 만나 글을 배우면서 인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철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삐뚤빼뚤 엉망인 글씨이지만 하루하루 글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그녀, 그러던 중 다행히 첫 아이와 같은 선천적 질환이 없는 건강한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다. 어머니의 학대에 못 이겨 집에서 나온 그녀는 선생님 덕분에 학교 근처 보호소에 들어가게 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던 그녀에게 얼마 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가 바로 HIV 양성, 즉 AIDS 환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자신과 아이들을 검사한 결과 아이 둘은 이상이 없지만 자신이 HIV 양성 보균자임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갖게 된 그녀의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의 격려와 보살핌으로 프레셔스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하루하루 희망을 키워가며 살아간다. 

 책은 불편 할 수 밖에 없는 소재, 즉 근친상간, 인종 문제, 빈부 문제 등 화려한 미국 사회 이면에 독버섯처럼 만연하고 있는 사회 모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 출간 당시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 .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사회 모순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할렘에서 청소년과 성인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쳤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아이처럼 부모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던, 멋진 남자 친구와 섹스를 해보는 것이 소원인 프레셔스가 결코 헤어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갖게 되는지, 또한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야말로 프레셔스의 삶을 그녀의 이름처럼 “값지게(Precious; 귀중한, 값비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억지스럽지 않게 담담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독지가나 자선단체의 금전적 지원과 같은 타인의 동정에 의존하지 않고 글을 배우면서 그녀 스스로가 꿈을 키워나가는 장면과 이제 겨우 일어선 그녀에게 HIV라는 또 다른 절망이 엄습하지만 어렵게 갖게 된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 또한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또한 그녀 못지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 등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책부터 먼저 만나본 프레셔스,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는 영화에서는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지 이번 주말에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HIV 양성자 판정을 받은 프레셔스는 과연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을 수 도 있겠지만 그녀가 잘 이겨내고 자신의 아이와 함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그녀 옆에는 여전히 삐뚤빼뚤한 글씨겠지만 어느 시인보다 멋지고 감동적인 시(詩)를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가 놓여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실화(實話)인지 아니면 허구(虛構)인지 알 수 는 없지만 프레셔스의 그 후의 삶이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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