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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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신 이윤기님의 마지막 유작(遺作)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1(민음사/2011년 1월)>을 받아들고 잠시 “영웅(英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영웅”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웅의 사전(辭典)적 정의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네이버 사전)”이라고 한다. 풀이해보면 개인적인 능력(지혜, 재능)이 평범 수준을 뛰어넘고 역시 평범한 사람이 하기 힘든, 후대에까지 길이 남을 만한 “업적(業績)”을 쌓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웅은 역사 발전을 이끄는 “선구자”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도해야 할 대상 - 특히 소수의 영웅들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영웅사관(英雄史觀)”은 구시대적, 보수적인 역사관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으로 보통 사람들(民衆)의 삶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는 “민중사관(民衆史觀)”이 대두되기도 했다고 한다 - 으로 배척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영웅으로 칭송받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시대의 반역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위인(偉人) 전기의 단골 손님이었던 “칭기스칸”이나 “나폴레옹”은 그들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온 역사의 주역 - 변화의 결과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르겠지만 - 은 틀림없지만 그들의 최대 업적인 “정복(征服)” 사업이 과연 정당했을까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특히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위대한 영웅일 수도 있겠지만 나폴레옹의 침략 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주변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끔찍한 전범(戰犯)에 불과할 수 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이처럼 영웅으로서의 진정성(眞正性)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많겠지만 그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만큼은 역사적 사실로서 한번쯤은 상기(想起)시켜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웅들의 “업적”에는 올곧이 동의하지 않지만 허구의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dramatic)한 삶을 살다간 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어본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런 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가 서양 문화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면 서양문화의 초석을 이루는 그리스 중심의 헬레니즘과 이스라엘 중심의 헤브라이즘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웅들의 본색을 되살피는 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경로로 우리의 언어에 삼투해 들어와 있는 서양 문화의 무수한 표현법과 수사법을 조명하고 여기에다 피를 통하게 하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며 “이 희망이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대에도 통용되는 수많은 어휘들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는데, 즉 ‘감추어 둔 보물’을 뜻하는 이름 “테세우스”가 ‘사전(辭典)’을 뜻하는 영어의 ‘서서로스(thesaurus)"와 무관하지 않고,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신지인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부르던 ’바르바로이(Barbaroi; 구시렁거리는 자들)'가 바로 오늘날의 야만인을 뜻하는 ‘바배리언(Barbarian)'의 어원이라고 밝힌다. 이처럼 오늘날 서양 언어의 기원이 바로 그리스 신화와 영웅 이야기에서 유래된 사례가 많은 만큼 그 연원을 돌이켜 보는 것 또한 의미 있다는 말인 셈이다. 

본문에 들어가면 신화(神話)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인간(人間)들의 시대, 즉 역사(歷史) 시대 속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1권에서는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 “세계의 지배자 알렉산드로스”, “스파르타의 아버지 뤼쿠르고스”, “현자 솔론”, “공명한 의인 아리스테이데스”을 소개하고 있다. 분명 역사 시대를 이야기한다고 하는 데, 신화 시대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테세우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의외다.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그리스 영웅으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서 자신의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키가 작은 나그네는 늘여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긴 나그네는 남는 부분을 잘라서 죽인 도둑인 “프로크루스테스(두드려서 펴는 자)”를 같은 방식으로 죽여 버렸으며 크레타의 미궁(라뷔린토스)” 속의 반우반인(半牛半人)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테세우스는 과연 실제 인물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책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 열전>에도 첫 시작이 아테나이의 건설자 테세우스와 로마의 건설자 로믈루스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원래 실존했던 테세우스에 신화적 요소가 덧 입혀져 오늘날 신화적인 영웅담이 더 부각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테세우스를 민주주의(democratism)를 지향하는 최초의 통치자, 즉 인민(demos)의 힘(kratos)을 바탕으로 나라는 다스린(kratein) 최초의 민주주의자(Democrat)였다고 하며, 흩어져 있던 아티카 지방 주민을 아테나이로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었다는 구체적인 치적(治積)도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각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매 페이지마다 각 영웅들의 모험담과 연관된 신화 전설을 그린 명화(名畵)들과 유물 사진들, 그리고 삽화들을 싣고 있어 시작적인 즐거움을 함께 주고 있다. 그림들이 많이 포함된 책들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라 우선 텍스트(TEXT) 위주로 읽고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다시 읽으니 책을 새로 읽는 것 같은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언어만큼이나 서양 회화, 조각, 건축 또한 그 연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서양 미술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읽어라 라는 충고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이 책은 원래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로 지면의 한계 때문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새로 보충하고,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으로서 시각적 자료를 확보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 새로 출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의도에 걸맞게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 두 가지 재미를 모두 만족 시켜 주는 멋진 책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2권에서는 페리클레스에서 카이사르까지 다루고 있다는데, 책이 그 이후로 계속될 예정인지 아니면 2권으로 기획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 이 책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카이사르 이후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더 나오니 시리즈가 계속 연결되었을 수 도 있고, 작가가 기획, 감수하고 따님인 이다희씨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란 시리즈가 별도로 출간되고 있는 것을 보면 2권으로 끝났을 수 도 있겠다 - 그저 서양 고전에 대한 기계적인 번역 출간물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이해가 곁들어진 “우리 식(式)”의 영웅 열전이 계속 이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시대 최고의 번역가 - 움베르트 에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작품들을 보면 이윤기님의 이름을 꼭 만나게 된다. 종종 다른 번역가 작품을 만나기도 하는데 사실 이윤기님의 번역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이자 우리 학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통 신화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윤기님이 작고하신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다행히 그 분 따님께서 아버지와 기획했던 유고(遺稿)들을 마무리해 주시고 있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계속 만나 뵐 수 없다니 아쉽기만 하다. 어렸을 적에는 그리스 신화하면 “토마스 불핀치”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제일 먼저 “이윤기”님을 떠올릴 정도로 신화(神話)에 대한 재미와 감동을 널리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작품들이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계속 읽혀지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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