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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셔스
사파이어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프레셔스(Precious)>을 처음 알게 된 건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였다. 제82회 아카데미 각색상, 여우조연상, 제25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특별상, 관객상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으며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제작했다는 이 영화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두 아이까지 낳은 흑인 소녀 -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뚱뚱하고 못생긴 흑인 소녀의 모습은 사실 보기 좋은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 를 그린 영화라는데 소개로만은 그다지 새삼스럽거나 흥미롭게 느껴지진 않았었다 - 엄밀하게 말하면 일부러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영화였다 -. 이번에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프레셔스(원제 Precious / 사파이어 저/ 북폴리오/2011년 1월)>을 읽게 되었다. 영화가 그다지 끌리지 않은 터라 책도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 기구한 운명의 소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괜히 불편하다고 읽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그런 책이었다.
16세의 소녀 “프레셔스”는 책 표지 사진처럼 지극히 뚱뚱하고 못생긴 할렘 출신의 흑인 소녀이다. 누구보다도 꿈 많을 나이였던 그녀에게 닥친 환경은 빛 한 점 비추지 않는 “암울” 그 자체였다. 7세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강간 - 의붓아버지라 해도 천인공노할 짓인데 친아버지였다 - 으로 12세에 첫 아이를 낳지만 다운증후군으로 보호시설에 맡기고, 16세에 다시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어머니 또한 보살피기는 커녕 아버지를 뺏은 창녀 취급하며 그저 부양가족으로 등록하여 복지수당을 타내는 수단으로나 이용할 뿐 갖은 학대를 다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수년 채 학교를 다니지만 알파벳조차 알지 못하는 문맹인 그녀에게 삶이란 그저 지옥보다도 못한 그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다니던 학교 선생이 대안학교에 가볼 것을 권유하고 새 학교에서 “레인 블루” 선생님을 만나 글을 배우면서 인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철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삐뚤빼뚤 엉망인 글씨이지만 하루하루 글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그녀, 그러던 중 다행히 첫 아이와 같은 선천적 질환이 없는 건강한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다. 어머니의 학대에 못 이겨 집에서 나온 그녀는 선생님 덕분에 학교 근처 보호소에 들어가게 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던 그녀에게 얼마 전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가 바로 HIV 양성, 즉 AIDS 환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자신과 아이들을 검사한 결과 아이 둘은 이상이 없지만 자신이 HIV 양성 보균자임을 알게 되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갖게 된 그녀의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의 격려와 보살핌으로 프레셔스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하루하루 희망을 키워가며 살아간다.
책은 불편 할 수 밖에 없는 소재, 즉 근친상간, 인종 문제, 빈부 문제 등 화려한 미국 사회 이면에 독버섯처럼 만연하고 있는 사회 모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 출간 당시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 .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사회 모순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할렘에서 청소년과 성인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쳤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아이처럼 부모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던, 멋진 남자 친구와 섹스를 해보는 것이 소원인 프레셔스가 결코 헤어 나오기 힘들 것 같은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갖게 되는지, 또한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야말로 프레셔스의 삶을 그녀의 이름처럼 “값지게(Precious; 귀중한, 값비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억지스럽지 않게 담담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독지가나 자선단체의 금전적 지원과 같은 타인의 동정에 의존하지 않고 글을 배우면서 그녀 스스로가 꿈을 키워나가는 장면과 이제 겨우 일어선 그녀에게 HIV라는 또 다른 절망이 엄습하지만 어렵게 갖게 된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 또한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또한 그녀 못지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 등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책부터 먼저 만나본 프레셔스,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는 영화에서는 과연 어떻게 그려냈을지 이번 주말에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HIV 양성자 판정을 받은 프레셔스는 과연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을 수 도 있겠지만 그녀가 잘 이겨내고 자신의 아이와 함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그녀 옆에는 여전히 삐뚤빼뚤한 글씨겠지만 어느 시인보다 멋지고 감동적인 시(詩)를 빼곡히 적어 놓은 노트가 놓여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실화(實話)인지 아니면 허구(虛構)인지 알 수 는 없지만 프레셔스의 그 후의 삶이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