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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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원제 奇想、天を動かす/시공사/2011년 2월)>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서평을 읽으면서 어떤 소설이길래 이렇게 칭찬 일색 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괜한 반발심이 들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며 괜히 의심부터 해보는 고질병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먼저 읽은 독자들의 호평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내 의심병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그런 책이었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附加價値稅)와 비슷한 일본의 소비세(消費稅)가 도입된 해인 1989년 도쿄, 한 노인이 소비세 12엔을 요구하는 상점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비세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지상에 오르고, 1과 요시키 형사는 노인의 신원을 조사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벌이지만 변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데, 신문을 본 한 교도관이 자신의 교도소에서 살인죄로 26년간 복역한 사람이라는 제보를 해오면서 신원이 밝혀진다. 교도소에 방문하여 교도관을 통해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요시키 형사는 복역시절 노인과 친하게 지냈다는 동료를 만나 그에게서 노인이 썼다는 소설을 건네받게 된다. 그러던 중 지역 잡지에 노인이 썼다는 소설이 실려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친분이 있던 지역 형사에게서 노인의 소설과 똑같은 사건이 32년 전인 1957년에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라 요시키 형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금은 폐쇄된 훗카이도 철로를 달리는 열차 화장실에서 피에로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불과 30초 만에 시체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조각난 시체를 열차에 수습하였지만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 다니질 않나, 빨간 눈의 하얀 거인이 열차를 하늘로 들어 올려 탈선을 일으키는 등 괴담(怪談)에서나 볼 법한 황당무계한 사건들이 32년 전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며 그 사건을 목격한 열차 차장이 미쳐 버리기까지 했다니 말이다. 치매노인의 우발적 사건으로 종결시키라는 주임의 윽박에도 요시키 형사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에 나선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32년 전 믿기 어려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사건 이면에 감춰진 슬픈 사연이 밝혀진다.  

 

  전형적인 밀실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 첫 장 “춤추는 피에로의 수수께끼”에서 강렬한 임팩트가 느껴져 처음의 반발심이 누그러지나 싶더니 본 장에 들어가 일본의 “소비세(消費稅)”에서 비롯된 살인사건 대목에서는 첫 장과 겉도는 이야기에 잠시 당황하다가 본격 수사가 시작되면서 32년 전에 발생한 괴담(怪談) 수준의 황당무계한 사건이 제시되는 대목에서는 도대체 이 작가 어떻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이렇게 무리수를 두나 싶어 헛웃음과 함께 책장을 덮었다. 그냥 읽지 말까 하다가 이왕 읽은 거 어떻게 끝맺나 보자 하고 다시 책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결국 앉은 자리에서 꼼짝없이 붙들려 앉아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고야 말았고, 보통 때라면 사전에 책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읽었을 책 말미의 작품해설과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지 않고 본 편부터 읽기 시작하기를 정말 잘했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본편을 읽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있다 - 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말 재미있는 책이 평가할 수 있다.  

  책 소개글을 읽어보니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사회파 추리”에 대한 반발로 추리소설 본연의 퍼즐 풀이와 트릭에 집중하자는 “신본격 추리”의 대부라는 시마다 소지가 자신의 주특기라는 신본격 미스터리 골격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문제 의식을 담아냈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한 이 책은 기괴(奇怪)하기까지 한 미스터리를 책 초반에 제시하여 독자가 도대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손에 놓지 못하게 만들더니 결말에 이르러는 일순 멍하게 만드는 반전과 함께 생각꺼리까지 남겨 주는, 신본격과 사회파의 장점만을 두루두루 갖춘 멋진 추리소설이다. 1989년 처음 도입된 일본 소비세와 사건 해결을 위해 부랑인들을 범인으로 둔갑시키는 경찰 등 일본 사회에 만연된 문제들 아니라 일본 내에서 쉽게 언급하기가 어려운 일종의 금기 사항이었을 2차 세계 대전 시절 조선인 징용과 종군 위안부 문제까지 다룬 이 소설은 그동안 읽어온 여타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이러한 사회 비판보다 불가능할 것 만 같은 트릭과 그것을 기막히게 해결해내는 추리과정에 무게를 두고 싶다.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괴한 사건을, 그것도 현재에 일어난 사건도 아닌 32년 전 과거의 사건들을 탐문 수사를 통해서 하나씩 그 베일 벗겨 내는 과정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마지막 장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결론이 궁금해서 뒷장을 펼쳐보고 싶은 걸 참는데 꽤나 애를 먹었을 정도로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나다. 물론 항상 추리소설의 트릭이 그 결말을 알고 나면 맥이 탁 풀릴 정도로 시시하고 억지스러운 것처럼 이 책에서의 트릭도 밀실에서의 피에로 살인 사건을 제외하면 모든 사건이 결국 의도하지 않은 여러 우연이 동시에 겹친 것 - 32년 전 사건의 주요 배경인 선로 주변에서 하필이면 큰 불이 일어난 점, 빨간 눈의 하얀 거인의 정체, 공기 중에 밀가루를 뿌려놓고 불꽃을 튀기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인공인 요시키 형사가 정말 우연하게 알게 되는 점 등등 - 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밀한 조사와 탐문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에 서서히 접근해나가는 과정과 종국에 이르러 모든 단서와 추리가 하나로 귀결되면서 마침내 사건의 진정한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은 그런 억지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재미와 함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사건이 종결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비아냥거리는 주임을 요시카 형사가 멋지게 한방 먹이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이 다 느껴질 정도로 이 책의 백미로 꼽고 싶다.  

 결국 나도 시마다 소지, 이 작가 앞으로도 자주 만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재미있다”, “통쾌하다”는 호들갑 일색으로 서평을 끝맺을 수 밖에 없었다. 굳이 하나 딴지를 걸자면 32년 동안 온갖 수모와 굴욕, 고통을 견뎌온 한 남자의 복수에 대한 집념이 결국 하늘마저 움직였다고 요약할 수 있는 이 책의 제목을 왜 과학소설을 연상시키는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로 했을까 한 점이다. 원제인 <奇想>을 <기발한 발상>-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사전적으로는 “좀처럼 추측(推測)하기 어려운 생각”이라는 뜻이란다 - 으로 직역(直譯)한 것인 데 영 주제와 매칭이 되지 않는다. <한남자의 집념, 하늘마저 움직이다>라고 나름 제목을 만들어 보니 어색하긴 영 마찬가지이다. 딱히 기발한 발상을 대체할 멋진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괜한 딴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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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교양하라 -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의 가로질러 세상보기
이원복.박세현 지음 / 알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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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의 작가인 이원복 교수의 작품을 처음 접해본 것은 어릴 적 소년 잡지인 <새소년>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이었다.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나로서는 꿈이 뭐냐고 묻는 어른들과 선생님들에게 이 만화의 주인공들인 “시관이와 병호처럼 비행기 타고 세계 일주하는 것” - 결국 이 소원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신혼여행 가면서 풀게 되었다. 물론 세계 일주는 아니었지만^^ - 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내 어린 시절을 사로잡았던 그런 만화였으며, 지금도 “나폴레옹”의 별명이었던 “나풀대용”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원복 교수의 작품은 1,50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는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와 <가로세로 세계사>,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 등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꾸준히 읽는 <만화> - 원래 만화를 좋아해서 직장 다니면서도 동네 만화방과 도서대여점을 꾸준히 드나들며 만화 읽기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발길을 끊고 유일하게 보는 만화가 강풀의 연재만화와 허영만 화백의 <색객>, 이원복 교수의 작품들만 찾아 읽는다 - 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아직도 좋아하는 만화가인 “허영만”과 “이현세”보다 훨씬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온 만화작가인 이원복 교수를 이번에는 만화책이 아닌 인터뷰글로 만났다. 바로 만화이론가인 박세현 교수의 <만화로 교양하라(알마/2011년 2월 28일)>가 바로 그 책이다. 

 이원복 교수는 들어가는 말인 <만화같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에서 이 책은 자산과 자신의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으며 자신이 썼다면 자신의 자랑이나 늘어놓거나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남의 넋두리’로 끝났겠지만 '남이 쓰는 내이야기‘ 였기 때문에 출간에 동의했다고 밝히며, 또한 늘 독자들과 작품으로만 만나다 보니 진솔하게 자신의 견해와 성향을 드러내 보일 기회가 많지 않아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오해 - 수구꼴통, 학벌주의자, 엘리트 주의자 등 - 들에 대한 변명의 기회가 없었으며, 지난 7개월간 틈틈이 인터뷰어(박세현)의 질문에 답하고, 편집자들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소통”을 통해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속내를 이야기한다. 즉 어쩌면 자신에 대한 오해를 이런 인터뷰글로 해명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나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결코 오해만은 아니었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지라 과연 이 책이 그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본론에 들어가면 먼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다룬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 즉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인터뷰글(<1부 다시 보는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이 실려 있다. 즉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를 텍스트(글)로 풀어낸 글이라 볼 수 있겠다.  

네덜란드 편에서는 네덜란드처럼 마약과 매매춘을 허락하는 게 한편으로는 사회에 악영항을 주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우리나라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금지하는 게 오히려 부작용을 더 크게 낳는다며 네덜란드라고 해서 무조건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틀안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개인의 문제로 혹은 개인의 몫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편에서는 자신의 유럽풍 만화체를 갖게 된 것이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Asterix>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히며, 혁명의 나라였던 프랑스였지만 여전히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나라이며 온전한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혁명은 서서히 일어나야만 부작용과 후유증을 줄일 수 있고, 프랑스도 머지않아 새로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일 편에서는 우리의 눈으로는 게으르게 까지 보이는 그들 생활 그 자체의 느긋함이나 느림의 “게으름”을 매력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이탈리아편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틀린 이탈리아의 남북갈등은 경제적 불균형에서 온 것이며 그러한 이달리아 국민을 한데 묶어주는 관심사과 바로 “빵”과 “축구”이고 차라리 따로 독립하는 게 나을 수 도 있겠지만 둘로 나뉘면 남부는 자금 부족으로 북부는 노동력 부족으로 경제가 위태로워질 수 있어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중국편과 일본편에서는 중국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 예전에는 유럽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아시아가 중심이 될 것이며, 특히 중국과 한국이 그렇게 될 거라면서 두 나라는 국가 시스템이 서구화되어도 그 바탕에 깔린 문화적 정체성은 수정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세계화는 물질과 무력으로 남의 것을 약탈했다면 앞으로는 물질의 힘이 아니라 멘탈의 힘으로 동일과 상생을 통해서 글로벌화의 승자가 되겠지만, 중국의 중화사상과 비슷한 일본 “탈아입구(脫亞入歐)”는 서구 문명을 일찍 받아들이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일본의 발목을 잡을 수 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미국편에서는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대는 바람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제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대하여 미국 정치에 깊숙이 뿌리박힌 엘리트 주의를 타파하고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인물로 대중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반면, 패거리 정치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기도 했으며 화합과 소통을 발휘하지 못하는 바람에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며, 한국편에서는 대통령을 맹장, 지장, 덕장 스타일로 분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의 감성을 움직인 태통령으로 국익을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측근들로부터 외면도 당하고 국민에게 비판도 들었던, 대통령 자리가 그만큼 힘든 자리였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2부 먼 이원복 VS 이웃 이원복>에서는 만화가 밥이자 놀이라는 이원복 교수의 만화 인생 역정과 히스토리 텔러(History Teller)로서의 그의 만화들의 특징과 만화철학, 한 때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던 시사만화가로서 자유주의자로서의 이원복 교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그와의 긴 인터뷰는 세가지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자신의 만화를 독자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하냐는 질문에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겠지만 그림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일 뿐 콘텐츠를 봐달라고 당부하며, 깊이가 없다는 평가에는 만화의 기본은 재미있어야 하고, 교양 만화의 기본은 재미있게 역사의 지식을 얻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 깊이를 원하면 제대로 된 역사서를 읽으라고 웃으며 말한다. 마지막 교양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후배 만화가들에 대하 조언으로는 현재 학습만화의 문제점으로 원색의 거친 그림과 콘텐츠의 빈약함이 가장 큰 문제이며 지식과 재미를 함께 담아야 하는 교양만화는 시사만화보다 더 까다로운 지식과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므로 풍부한 경험과 창작자의 관점이 잘 녹아있는, 창작자의 책임이 따르는 만화가 바로 교양만화임을 명심하라고 충고한다. 

 처음 이 책 소개글을 읽고는 이원복 교수의 또 다른 만화 작품인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하고 보니 순전히 글- 그 흔한 삽화 하나 없는 - 로만 이뤄진, 그것도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후배에게 털어놓는 인터뷰 글이라 당황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의 작품으로만 독자와 소통해온 작가가 자신의 견해와 성향을 드러내 보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머리말에서처럼 이원복 교수의 생각을 인터뷰 글이라는 텍스트로 접해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책이어서 그를 좀 더 이해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에 대한 여러 오해들에 대하여 그가 들려주는 해명 - 물론 충분하진 않았지만 - 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던 것은 참 귀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만으로 그에 대한 세간의 오해가 완벽히 풀리기를 그 또한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교양만화”의 선구자라는 긍정적인 면과 수구 꼴통이자 자유주의자, 엘리트 주의자, 학벌주의자라는 부정적인 이름이 함께 붙어 다닐 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에 대한 불신(不信)이 깊은 사람들은 이 책이 지극히 자기변명의 책이며 혹시 앞으로 정치무대에 나오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 아닐까 하는 삐딱한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해와 시선의 옳고 그름은 각자에게 맡기기로 하자. 적어도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본다면 이원복 교수의 만화 사랑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만큼은 분명히 공감하게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갖춘, 우리나라에서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양만화가로서의 그분의 작품들이 그간의 정치적 오해나 편견을 벗어버리고 어린 시절 나에게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심어 줬던 것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온전히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작품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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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10주기 추념도서
현대경제연구원 지음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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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주영 회장. 그분을 직접 모신 현대그룹 직원이 아니더라도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분의 자서전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그분의 경영 철학을 다룬 각종 서적들, 모 방송 드라마, 그리고 1992년 대선(大選) 때 TV 토론이나 홍보 책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한 두 번씩 접해봤을, 어쩌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기업인 - 대한상공회의소가 2007년 조사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설문에서 정주영 회장이 34.1%로 1위에 올랐다고 한다 -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최근 TV에서 순박한 웃음과 함께 조선소 설립 시절 일화를 들려주시는 모기업 광고 동영상을 보면서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결코 잊혀 지지 않을 그런 기업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해보기나 해봤어?”라며 웃음짓는 그분의 말씀은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삶의 고단함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주저앉고만 싶은 우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충고이자 따뜻한 격려가 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읽은 故 정주영 회장 타계 10주년(2011년 3월 21일) 기념 도서인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현대경제연구원BOOKS/2011년 3월)>이 유명 기업인들의 판에 박힌 성공신화를 담은 책이나 흔하디 흔한 자기계발서적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머리말에서 작가(현대경제연구원)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10주년 기념도서를 준비하면서 논문, 평전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정주영 회장이 살아있다면 우리는 그분께 무엇을 묻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라는, 즉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과의 가상 인터뷰에 방향을 맞춰 이 책을 기획했으며,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저성장 늪에 빠진 현시점에서 고인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중동 주베일 산업항 공사장을 누비던 활력과 조선소 부지 항공사진 한 장으로 중공업을 일으켜 세운 정열 등에 공감과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요한 정열과 통찰을 얻기를 기원한다고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신념과 신용”, “발상과 배움”, “실패와 경쟁”, “국가와 미래”, “세계와 사람” 등 5장에 걸쳐 정주영 회장과의 가상 인터뷰가 실려 있고 각장 중간과 말미에는 그분의 발자취와 업적, 경영 철학들을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기술해 놓은 “아산 경영 노트”가 실려 있다. 이미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은지라 “가상(假想)” 일 수 밖에 없는 인터뷰이지만 소 판 돈을 몰래 훔쳐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시작한 쌀가게 점원 시절 이야기와 계약금보다 더 큰 손실을 봤다는 고령교 복구 건설, 소양감댐 및 경부고속도로 건설, 항공사진과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 한 장으로 유명한 조선소 건설 일화 등의 경험담과 함께 자신의 소신과 경영철학을 특유의 직설적이며 꾸밈없는 화법으로 구성해내어 “마치 그분께서 살아 돌아와 직접 말을 한 것과 같이 생생하게 쓰여” 있다는 머리말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절로 느끼게 해준다. 그분의 말씀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빨리 빨리”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이제는 한국인의 민족성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성공의 열쇠는 시간과 행동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빨리 할수록 좋다고 답변한다. 다만 빨리하는 것과 대충하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빨리한다는 것은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총력을 쏟아 부으라는 것이지. 그저 시간만 맞추기 위해서 대충대충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빨리’하라는 것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집중력의 개념이며 모든 일은 총력을 다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처리 할 때 그 결과가 가장 좋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정말로 무엇이든지 ‘하면 되는’ 것이지만 막무가내로 덮어놓고 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남보다 더 열심히 생각하고 더 치밀하게 계산하여 남보다 적극적인 모험심과 용기와 신념으로 일을 추진하라는 그런 뜻이라고 풀이해 준다. 그분의 유명한 말인 “해보기나 했어?” 라는 말의 의미도 무모함보다 더 나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써 모든 일이 성사될 수 는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며, 다음 번에는 더 잘할 수 있으며,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여기서 얻은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는데, 애초에 해보지도 않았다면 남는 것 하나도 없이 그저 가지고 있는 것을 지켰다는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따라서 무모함이란 가능성이 적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생각이 없는 일을 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야말로 그나마 있는 가능성마저도 스스로 위축시킬뿐더러, 실패했을 때 남는 것 도 없으며, 정말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 보다는 실패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점이라고 충고한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신용을 지켜야 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변함없이 지켜왔던 원칙은 ‘이익이냐 신용이냐, 둘 중에서 선택하라’한다면 언제나 신용이었다고 말하며 엄청난 적자만을 남긴 채 끝난 “고령교 복구 공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또한 사업가에게 신용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며 신용이 없는 사업가는 잠깐 동안은 돈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모두가 외면하게 되고, 그 결과 아무런 사업도 하지 못하게 되지만 신용이 있다면 주위에서 ‘무모해 보이지만 저 사람이라면 믿어볼 만하다’라는 믿음을 얻을 수 있어 설사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신용은 쌓는 것은 힘들지만 잃는 것은 정말 쉬워서 한번 잃은 신용은 다시 쌓는 데에는 처음보다 몇 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성공하기는 힘든 것일까요?”라는 질문에는 불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이 유리한 지점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노력을 해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수준이 아닌 “남들 보다 훨씬”몇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격려하며 학교를 떠난 뒤라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배우고, 쉽게 좌절하거나 포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어쩌면 이 인터뷰에서 가장 가상 질문다운 우리나라에서도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냐는 질문에는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우리 기업인들이 가졌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점점 더 큰 문제에 대한 의문을 품고 해결해나간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성패를 쥐고 있는 것은 시간과 행동이며, 생각만 해서는, 그리고 모든 걸 다 갖추어 놓고 시작하려 해서는 이미 늦어버리니 좋은 생각이 났다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냐는 물음에 건강한 몸과 담백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성장하면서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는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박한 행복과 작지만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답하며 끝을 맺는다.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肉聲)을 곁에서 듣는 듯한 느낌의 이 책은 연일 쏟아져 나오는 서양 유명 기업인들의 거창하고 화려한 경영기법이나 사업전략에 비하면 소박하기까지 한 고 정주영 회장의 진솔한 답변이 더 큰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였는지 인터뷰 글 사이사이 마다 정주영 회장과 현대의 발자취를 전문적인 시각에서 소개하는 “아산 경영 노트”도 나름 가치가 있겠지만 종종 기업 사보(社報)나 창립 몇 십 주년 기념 발간 책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라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신용을 이익보다 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실패해서 얻는 교훈을 더 의미 있다고 여기는, 실패와 시련의 차이를 ‘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 책에서의 그 분의 말씀들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렵기만 한 작금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어주길 바래본다.  

개인적으로 고 정주영 회장에게 묻고 싶은 괜한(?) 질문이 있다. 우선 92년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아파트 반 값”이 과연 실현 가능했을까 하는 질문이다. 난 그 당시 정 회장님에게 투표하지 않았지만 - 투표 결과를 밝히면 비밀 투표라는 선거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아파트 반 값 공약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아파트를 건설해온 한국 건설업의 역사라는 그 분이 대통령이 되셨으면 반드시 지켰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과연 그랬다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제는 살인적인 전세 값과 자신의 연봉의 수십배가 되는 집 값에 내 집 마련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서민(庶民)들에게 그래도 발 뻗고 누울 만한 작은 내 집 한 채 씩 만은 가질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토건(土建) 신화의 주역으로서 역시 토건을 아직도 경제 정책의 일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현 정권, 특히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자신의 직원이었던 대통령의 각종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역시 괜한 질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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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짤리게 된다면? 당장 매월 갚아나가는 주택 대출금 원금과 이자는 어떻게 갚을지, 아직도 만기가 한참 남은 나와 아내 명의의 보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전직(轉職)을 꿈꾸기 어려운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변변한 손재주와 주변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내가 과연 뭘 하며 먹고 살아가야 할지 등등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면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삼팔육”, “사오정”, “오륙도” 등 정년(停年)은 커녕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에 거리로 내몰리는 직장인들의 처지를 나타내는 신조어들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야기로 들려 가슴이 뜨끔 뜨끔거린다. 역시 서브프라임 사태로 몰락한 미국 중산층을 유머스럽게 그려낸 제스 윌터의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원제 The Financial Lives of Poets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위트와 재치에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결코 미국이라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일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가 없었다. 

40대 가장인 “맷”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아름다운 아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이다. 한때 잘나가던 신문 기자였던 그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금융 정보를 시(詩)로 구성하여 제공하는 사이트 사업을 시작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신문사로 복귀한다. 그러나 신문사의 경영악화로 곧 해고되고, 설상가상으로 한때 두 배까지 치솟던 집값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대폭락하고 대출 이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나 6일 이내에 갚지 못하면 쫓겨날 형편에 놓인다. 그런데 그런 그를 격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밤늦게까지 페이스 북으로 옛 애인과 밀담을 주고 받고, 친구와 오페라를 보러 간다고는 하지만 왠지 “그놈”과 바람을 피우는 것 같기만 한 아내가 영 수상쩍어 맷은 아내의 옛 애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 일부러 말을 걸어보면서 그의 동정을 살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유를 사러 세븐 일레븐에 갔다가 거기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권하는 마리화나를 피워본 맷은 소량의 마리화나를 구매해서 자신의 재정상담사와 신문사 동료에게 웃돈을 받고 팔게 되면서 지인(知人)들을 대상으로 마리화나 장사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편의점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을 통해 마리화나 밀매 조직에 접근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맷에게 마리화나 밀매 조직은 자신들의 마리화나 사업 인수 제안을 해오고, 곧바로 마약 단속반의 정보망에 걸려든 맷은 수사관들의 끄나풀이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꼬여 버린다. 

<타임>지가 선정한 2009년 10대 소설 중 2위를 했다는 이 책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몰락해버린 미국 중산층을 다룬 일종의 세태고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작가는 중산층의 붕괴와 가정의 해체라는 결코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오히려 처절한 비장미가 제격일 그런 심각한 소재를 웃음이라는 코드로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몰입감 또한 뛰어나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마냥 웃고 즐기기에는 가슴 한 켠에 묘한 앙금이 남는다. 미국이라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벌어질 수 도 있는 바로 “나”의 이야기 - 그렇다고 마약 거래상으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 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맷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의 집을 내주고 작은 아파트로 옮겨와서 자신에게 묻는 질문, 지금보다 더 큰 집과 좋은 가구, 자가용을 가지고 살았을 때는 , 즉 초라해진 지금보다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을 때는 왜 더 행복할 수 가 없었을 까 하는 묻는 장면에서는 씁쓸함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경제적 여유가 행복의 크기를 측정하는 잣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도덕교과서 맨 첫 장 첫 구절로 나올 법한 지극히 당연한 진리(眞理)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오늘도 남과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가격을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소설 속의 맷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에 괜한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예전 같으면 돈으로도 취급하지 않았을 겨우(!) 20달러를 가지고 가족들과 티격태격하는 맷이 모습이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도, 또한 결국 행복의 참의미를 깨닫는다는 교훈적인 헤피 엔딩이 별로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결코 남 얘기 같지 않은 맷의 처지에 절로 감정 이입되는 나와 같은 중년의 독자들에게 희망의 일면을 제시해주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씩 등장하는 얼토당토 않는 시(詩)들과 몇몇 장면에서의 미국식 유머의 허무함 - 원래 서양식 유머는 영 나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아 즐겨하지 않는데 그래도 이 책의 유머 코드는 꽤나 재미있고 유쾌하다 - 만 잘 견뎌낸다면 참 재미있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직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중년 남성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잠시나마 웃음 짓게 하는 유쾌한 책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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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염마 이야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담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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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불로불사(不老不死)”는 동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테마이다. 동양(東洋)에서는 불로초(不老草)로 영원한 권력을 꿈꾸었던 “진시황(秦始皇)”과 중국인들의 영원한 이상향(理想鄕) “무릉도원(武陵桃源),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코미디 소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전설이 우선 떠오르고, 서양(西洋)에서는 예수의 재림(再臨)시까지 죽지도 못하고 온 세상을 떠돈다는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Ahas Pertz)”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앓고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성장이 멈춰 늙지 않는 병인 “하이랜더(Highlander)" 증후군, 그리고 최근 로맨틱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흡혈귀(Vampire)"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결말이나 교훈은 다 제각각이어서 불로불사가 행복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다다를 수 없는 꿈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영생의 존재들이 인간의 유한한 삶을 부러워하는, 무한한 삶(永生)이 주는 회한과 번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 공모전인 “골든 엘리펀트상” 대상 공동 수상작이라는 나카무라 후미의 <염마 이야기(원제 閻魔 / 소담출판사 / 2011년 3월)>는 이처럼 “불로불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어쩌면 식상한 소재인데다가 뻔한 결말이 예측되는 소설인데 읽고 나니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극적 재미와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 일으키는 멋진 판타지 소설이었다.  

 

 책에서는 불로불사가 되는 방법으로 “문신(文身, Tatto)”으로 설정한다. “신귀 새김”이라고 부르는 이 문신은 손바닥에 귀신(鬼神)의 형상이나 글자를 새기면 귀신이 몸 안으로 깃들어 숙주(宿主)인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문신을 새긴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물며 - 다만 치유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 젊음 또한 유지하게 되어 가히 “불사신(不死身)”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문신을 새긴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까? 귀신이 치유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 즉 목이 떨어져 나가거나 심장이 터지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며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귀신이 몸에서 떠나는 때에 이르게 되면 죽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문신을 아무나 새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신사(文身士)로서 최고의 문신 기술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호칭인 “호쇼(寶生)” 문신사 들 중 극히 일부만 가능한 기술이며,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하면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만 하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즉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방법은 선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악한 존재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 몸에 깃든 귀신들은 영생을 제공하는 대신에 숙주인 인간을 조종하여 증오심을 품게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하여 종국에는 스스로 귀신이 되게 하게 만든다. 간단히 설정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때는 일본 막부시대 말기인 1866년, 조슈 번 출신의 무사인 20세 젊은 청년 이치노세 아마네는 신선조에 밀정(密偵)으로 잡입했다가 발각되어 치명상을 입고 달아나다가 문신사 호쇼 바이코 집 앞에서 “살고 싶다 죽는 것은 싫어”라는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유언처럼 남기면서 쓰러진다. 그로부터 이틀 후 잠에서 깨어난 아마네는 치명적인 상처가 어느새 아물어 멀쩡해진 몸과 오른쪽 손바닥에 새겨진 범어(梵語) “염마(閻魔)”라는 글자를 보며 어리둥절해 한다. 그런 그에게 바이코는 불로불사의 신귀 새김을 했다고 일러주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된 존재가 되어버린 아마네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마네는 바이코에게서 문신 기술을 배워 “호쇼 염마”로 거듭나게 되고, 배신한 자신을 추적해온 신선조 옛 동료에게서 대신 칼을 맞은 바이코에게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신귀 새김을 하여 그 부작용으로 1년에 한 번씩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 하는 자신의 제자이자 염마의 선배 “호쇼 야차”를 꼭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염마는 자신의 누이인 “시와” 또한 심장이 없어진 채로 시신이 발견된 것을 떠올리고 스승의 유언을 받들고자 마음 먹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883년 봄 염마는 바이코를 죽게 만든 동료이자 이제는 가정을 이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부랑자로 몰려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아 죽음에 이른 그에게서 자신의 딸 “나쓰”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를 딸로 거두어 키우게 된다. 시간은 점점 흐르면서 스무 살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나이를 점점 먹어가는 나쓰는 딸에서 여동생으로, 누나로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그녀를 내심 사랑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잘 아는 염마는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라고 강권하지만 나쓰 또한 염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내 결혼하지 않고 염마의 곁에 남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봄, 나쓰는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겨 버려 할머니가 되고, 염마는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던 소년에게 불사의 신귀새김을 해줬다가 부상으로 되돌아온 소년이 고향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온몸이 찢겼는데도 신귀 문신 때문에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사키로 찾아가 소년의 손바닥에서 귀신을 빼내 죽음을 맞게 하는데 그곳에서 그동안 몇 번을 만나왔지만 결말을 내지 못한 “호쇼 야차”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1866년 - 책의 시작은 염마의 누이 “시와”가 호쇼 야차에게 죽임을 당하는 1859년부터 시작된다 - 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와 미스터리, 액션이 결합된 장르 소설적 재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살인마로 잘 알려진 “잭 더 리퍼”가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와 여자들을 연쇄 살인 하는 “3장 요코하마 리퍼 1890년 여름” 편은 사실과 픽션이 절묘히 결합된 팩션(Faction) 소설과 추리 소설적 재미, 두가지 장르적 재미를 한껏 살리고 있어 이 편을 별도로 분리해 내 장편으로 꾸며도 좋을 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각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얼떨결에 영생의 삶을 얻게 된 염마는 사랑하는 나쓰를 자신처럼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 곁에 둘 법도 하지만 결코 그녀에게 불사의 문신 새김을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켜주려고 애를 쓰고, 나쓰 또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나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여의사(女醫士)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사랑하는 염마를 위해 결혼이라는 여자로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의 곁에 남아 평생을 같이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염마의 곁을 떠나는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영생이 과연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유한한 삶을 동경하는 염마의 번뇌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다음 대화에서 결코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을 여실히 들어낸다.

“만일 이 세상에 실제로 그런 게(불로불사의 묘약) 있더라도 드셔서는 안 돼요.”
나쓰가 진지한 얼굴로 응했다.
“왜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 p.208

이 책에서 염마와 대적하는 악인(惡人)이라 할 수 있는 “호쇼 야차”도 자신이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한 부작용으로 인간으로서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만, 결코 신귀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모습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나카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참상을 돌아보며 “인간이 신귀보다 더 무섭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염마의 손에 자신의 삶을 끝내주길 바라는 그의 눈물겨운 모습은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이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억지스럽거나 서로 겉돌지 않고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으로 끝을 맺는 이 책은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멋진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동안 보아온 불로불사의 존재들 중 가장 인간적-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불사의 존재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도 있겠지만 - 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인 염마를 이 책 한 권으로 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영 아쉽다.  2011년 어느 도심 한 구석에서 아직도 스무 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염마가 털어놓는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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