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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염마 이야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담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불로불사(不老不死)”는 동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테마이다. 동양(東洋)에서는 불로초(不老草)로 영원한 권력을 꿈꾸었던 “진시황(秦始皇)”과 중국인들의 영원한 이상향(理想鄕) “무릉도원(武陵桃源),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시작하는 코미디 소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전설이 우선 떠오르고, 서양(西洋)에서는 예수의 재림(再臨)시까지 죽지도 못하고 온 세상을 떠돈다는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Ahas Pertz)”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앓고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성장이 멈춰 늙지 않는 병인 “하이랜더(Highlander)" 증후군, 그리고 최근 로맨틱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전 세계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흡혈귀(Vampire)"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결말이나 교훈은 다 제각각이어서 불로불사가 행복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다다를 수 없는 꿈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영생의 존재들이 인간의 유한한 삶을 부러워하는, 무한한 삶(永生)이 주는 회한과 번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소설 공모전인 “골든 엘리펀트상” 대상 공동 수상작이라는 나카무라 후미의 <염마 이야기(원제 閻魔 / 소담출판사 / 2011년 3월)>는 이처럼 “불로불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어쩌면 식상한 소재인데다가 뻔한 결말이 예측되는 소설인데 읽고 나니 식상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극적 재미와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 일으키는 멋진 판타지 소설이었다.
책에서는 불로불사가 되는 방법으로 “문신(文身, Tatto)”으로 설정한다. “신귀 새김”이라고 부르는 이 문신은 손바닥에 귀신(鬼神)의 형상이나 글자를 새기면 귀신이 몸 안으로 깃들어 숙주(宿主)인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문신을 새긴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물며 - 다만 치유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 젊음 또한 유지하게 되어 가히 “불사신(不死身)”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문신을 새긴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까? 귀신이 치유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 즉 목이 떨어져 나가거나 심장이 터지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며 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귀신이 몸에서 떠나는 때에 이르게 되면 죽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문신을 아무나 새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신사(文身士)로서 최고의 문신 기술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호칭인 “호쇼(寶生)” 문신사 들 중 극히 일부만 가능한 기술이며,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하면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만 하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즉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방법은 선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악한 존재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 몸에 깃든 귀신들은 영생을 제공하는 대신에 숙주인 인간을 조종하여 증오심을 품게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하여 종국에는 스스로 귀신이 되게 하게 만든다. 간단히 설정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때는 일본 막부시대 말기인 1866년, 조슈 번 출신의 무사인 20세 젊은 청년 이치노세 아마네는 신선조에 밀정(密偵)으로 잡입했다가 발각되어 치명상을 입고 달아나다가 문신사 호쇼 바이코 집 앞에서 “살고 싶다 죽는 것은 싫어”라는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유언처럼 남기면서 쓰러진다. 그로부터 이틀 후 잠에서 깨어난 아마네는 치명적인 상처가 어느새 아물어 멀쩡해진 몸과 오른쪽 손바닥에 새겨진 범어(梵語) “염마(閻魔)”라는 글자를 보며 어리둥절해 한다. 그런 그에게 바이코는 불로불사의 신귀 새김을 했다고 일러주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된 존재가 되어버린 아마네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마네는 바이코에게서 문신 기술을 배워 “호쇼 염마”로 거듭나게 되고, 배신한 자신을 추적해온 신선조 옛 동료에게서 대신 칼을 맞은 바이코에게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신귀 새김을 하여 그 부작용으로 1년에 한 번씩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 하는 자신의 제자이자 염마의 선배 “호쇼 야차”를 꼭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염마는 자신의 누이인 “시와” 또한 심장이 없어진 채로 시신이 발견된 것을 떠올리고 스승의 유언을 받들고자 마음 먹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883년 봄 염마는 바이코를 죽게 만든 동료이자 이제는 가정을 이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부랑자로 몰려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아 죽음에 이른 그에게서 자신의 딸 “나쓰”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녀를 딸로 거두어 키우게 된다. 시간은 점점 흐르면서 스무 살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나이를 점점 먹어가는 나쓰는 딸에서 여동생으로, 누나로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그녀를 내심 사랑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잘 아는 염마는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라고 강권하지만 나쓰 또한 염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내 결혼하지 않고 염마의 곁에 남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봄, 나쓰는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겨 버려 할머니가 되고, 염마는 학도병으로 끌려 나가던 소년에게 불사의 신귀새김을 해줬다가 부상으로 되돌아온 소년이 고향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에 온몸이 찢겼는데도 신귀 문신 때문에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사키로 찾아가 소년의 손바닥에서 귀신을 빼내 죽음을 맞게 하는데 그곳에서 그동안 몇 번을 만나왔지만 결말을 내지 못한 “호쇼 야차”와 최후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1866년 - 책의 시작은 염마의 누이 “시와”가 호쇼 야차에게 죽임을 당하는 1859년부터 시작된다 - 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와 미스터리, 액션이 결합된 장르 소설적 재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결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살인마로 잘 알려진 “잭 더 리퍼”가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와 여자들을 연쇄 살인 하는 “3장 요코하마 리퍼 1890년 여름” 편은 사실과 픽션이 절묘히 결합된 팩션(Faction) 소설과 추리 소설적 재미, 두가지 장르적 재미를 한껏 살리고 있어 이 편을 별도로 분리해 내 장편으로 꾸며도 좋을 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각 등장인물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얼떨결에 영생의 삶을 얻게 된 염마는 사랑하는 나쓰를 자신처럼 불사의 존재로 만들어 곁에 둘 법도 하지만 결코 그녀에게 불사의 문신 새김을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켜주려고 애를 쓰고, 나쓰 또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나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여의사(女醫士)로서 성공을 거두지만, 사랑하는 염마를 위해 결혼이라는 여자로서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의 곁에 남아 평생을 같이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염마의 곁을 떠나는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영생이 과연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유한한 삶을 동경하는 염마의 번뇌에서도 잘 알 수 있지만 다음 대화에서 결코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을 여실히 들어낸다.
“만일 이 세상에 실제로 그런 게(불로불사의 묘약) 있더라도 드셔서는 안 돼요.”
나쓰가 진지한 얼굴로 응했다.
“왜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 p.208
이 책에서 염마와 대적하는 악인(惡人)이라 할 수 있는 “호쇼 야차”도 자신이 스스로 신귀 새김을 한 부작용으로 인간으로서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만, 결코 신귀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인간의 모습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나카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참상을 돌아보며 “인간이 신귀보다 더 무섭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염마의 손에 자신의 삶을 끝내주길 바라는 그의 눈물겨운 모습은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이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하나하나의 사연들이 억지스럽거나 서로 겉돌지 않고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으로 끝을 맺는 이 책은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멋진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동안 보아온 불로불사의 존재들 중 가장 인간적-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불사의 존재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수 도 있겠지만 - 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인 염마를 이 책 한 권으로 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영 아쉽다. 2011년 어느 도심 한 구석에서 아직도 스무 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염마가 털어놓는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래본다.